<<<강해설교이론>>> 319

살인하지 말라 (마 5:21-26)

살인하지 말라 (마 5:21-26) 본문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여섯 번째 계명 즉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바로 알려 주시는 내용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잘못은 사람을 꼭 죽여야만 살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들은 계명을 범한 일이 없는 의로운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도 내가 무슨 죽을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나는 법 없이 살 사람이라며 자기 의로움을 말하는데 마음의 범죄도 하지 않고 살았다는 말인가요? 마음의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랬습니다. 이 얼마나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의입니까? 신앙이란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마음이 어떻든 상관이 없다는 것은 이미 신앙이 아닙니다. 이런 바리새적인 의로는 ..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마 5:20)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마 5:20) 이 시간에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는 제목입니다. 성도에는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성도를 구약성도, 예수님 오신 후의 이 시대의 성도를 신약성도라고 합니다. 신구약 성도는 서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차이점 하나만 말씀 드리면 좀 더 밝은 진리 아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존중해야 함과 동시에 신약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약적인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율법의 중심을 깨달아 그 중심에 맞게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

율법을 바로 알자 (마 5:17∼19)

율법을 바로 알자 (마 5:17∼19) 이 시간 우리 함께 “율법을 바로 알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행하심을 보고 율법을 폐기하러 온 율법훼방꾼으로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거나 제자들이 이삭을 비벼 먹고 간음한 여인을 살려 주는 등 자신들과 다른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큰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면 유대인들과 같은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아주 두려운 일이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본질을 알지 못하여 율법에 매인 불행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매여 자유도 없고 기쁨도 없고 율법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정죄와 심판에 빠져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이것을 남에게까지 강..

세상의 소금과 빛 (마5:13∼16)

세상의 소금과 빛 (마5:13∼16) 이 시간에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밟히느냐 아니면 사람들에게 칭찬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느냐 하는 것은 누구에게 달렸을까요? 답은 우리에게 달렸다입니다. 속담에 예쁜 정도 자기에게서 나오고 미운 전도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꼭 맞는 것 같아요. 그러므로 문제를 외부에서도 찾아야 하나 그보다 내부에서 더욱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을 간단히 말하면 세상에서 성도의 선행을 말씀한 것입니다. 성도의 선행이란 그 영향 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도, 사람들이 회개하여 예수 믿게 되는 것도, 우리가 받을 상도 우리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욕 돌리지 않고 성도의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마 5:10-12)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마 5:10-12) 10-12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핍박을 받아보셨습니까? 그러나 그 핍박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은혜입니다. 의를 위해서 핍박을 받는 자가 하나님의 행복을 누립니다. 천국이 저희 것이라 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보세요. 그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나지 않았습니까? 그 마음에 벌써 천국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은 그것이 복덩이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고..

천국 백성의 삶3 (마 5:8-9)

천국 백성의 삶3 (마 5:8-9)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이 시간에 계속하여 “천국 백성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팔복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눅 17장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질문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하셨습니다. 우리가 지상을 사면서도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으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천국 백성은 어떤 사람입니까? 6. 천..

천국 백성의 삶2 (마 5:6-8)

천국 백성의 삶2 (마 5:6-8) 이 시간에 계속하여 “천국 백성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행복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힘들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시고 자기처럼 행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시켜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질투심이 생긴 천사는 행복을 갖다 주되 좀 찾기 어려운 곳에 감추어 놓고자 다른 천사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천사들의 여러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다 찾아내고 말 것이라는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 궁리 저 궁리하던 천사들은 드디어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

천국 백성의 삶 1 (마 5:1-5)

천국 백성의 삶 (마 5:1-5) 이 시간에 “천국 백성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습니다. 두 장의 그림을 그려서 상자 속에 넣었습니다. 한 장은 웃는 얼굴, 밝은 얼굴을 그린 것이었고 또 다른 한 장은 우는 얼굴, 슬픈 얼굴을 그린 것이었습니다. 그는 상자에 두 개의 눈구멍을 뚫어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동시에 상자 속에 있는 두 장의 그림을 들여다보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웃는 얼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지만, 우는 얼굴을 본 사람들의 표정은 어두웠습니다. 다른 사람을 실험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역시 동일한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세상을 살되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살면 해와 같이 밝게 살겠지만 마음의 지옥을 이룬다면 정 반대가 될 것입니..

강재식목사 8복강해

강재식목사 8복강해 출처 - http://deungdae.org/ 본문: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지난 1월 1일에도 곳곳에 있는 해돋이 명소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몰렸습니다. 새해 첫날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올 한해가 잘 되기를 기원을 하고자함이었습니다. 새해 첫날에 뜨는 해라는 것 때문에 사람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중에 어떤 사람은 그 해를 보고 기원하므로 잘 된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저 태양..

스크랩 부록(1) 사도신경의 배경

사도신경 강해 부록(1) 사도신경의 배경 우리가 지금 고백하고 있는 사도신경은 어떤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어떤 교회의 공의회에서 의도적으로 제정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성경말씀의 가르침을 가장 분명하게, 해석적으로 요약해서 교육과 비기독교 사상으로부터의 변증, 그리고 이단에 대한 성경적 기독교의 보호 등의 목적으로 사용해 보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오랜 시도(試圖)들이 쌓이고 걸러져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단순히 역사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 고백이 신구 기독교의 공통적인 신앙고백으로 남아있게 된 것은 분명히 성령의 역사라고 믿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도신경이 형성될 즈음 미사가 많이 행해졌는데, 미사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설명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