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설교이론>>>/ - 산상수훈 강해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마 5:20)

에반젤(복음) 2021. 6. 13. 06:51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 (마 5:20)


이 시간에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라는 제목입니다. 성도에는 구약성도와 신약성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의 성도를 구약성도, 예수님 오신 후의 이 시대의 성도를 신약성도라고 합니다. 신구약 성도는 서로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차이점 하나만 말씀 드리면 좀 더 밝은 진리 아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을 존중해야 함과 동시에 신약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약적인 신앙생활이란 무엇일까요? 율법의 중심을 깨달아 그 중심에 맞게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20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에는 몇 가지의 귀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1. 율법 조항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여기 천국 갈 수 없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는 바로 형식적인 의입니다. 내가 율법의 조항을 지켰으니 의롭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외적으로는 율법을 매우 엄하게 지키는 자 같았지만 실재로 그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에는 거리가 먼 형식 외식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조항을 준수했다고 안도하고 자랑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심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바울도 예수 만나지 못했을 때 그렇게 착각했습니다. 빌3:5-6에 “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만나 다음부터는 그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습니다.


나는 율법 지키고 선행했으니 천국 갈 것이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율법의 행위 자기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갈2:16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2. 율법의 중심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아니하면 안 된다는 말씀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않고 이루리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해 볼 때 그 다름은 곧 율법의 중심을 알아서 행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눅24:27에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구약은 오실 메시아 예수를 자세히 알려주는 책입니다. 예수 믿어 의롭다 함을 받은 자가 되어야만 천국 백성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빌3:9에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거저 주시는 의입니다.


둘째는 율법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자가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을 사랑의 행위로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예수 믿어 천국 백성된 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할 때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신약 성도가 지킬 두 계명이 있습니다. 요일3:23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형식적인 조항 준수만 있었지 이 두 가지가 없었습니다.


3. 율법의 중심대로 행해야 합니다.


약1:25에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율법을 알고 행하면 은혜를 받습니다. 즉 율법이 말씀하는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또 율법이 말씀하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약에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은혜 속에서 살았습니다. 시므온과 안나라든가 하나님의 종들 보세요.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은혜가 뭔지 모르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에 유대인의 왕 아기 예수가 났다고 해도 어느 누구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메시아를 죽이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그들의 메시아관은 외세의 속박에서 구해 줄 것이라는 지극히 현세적인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요5:42에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니 이웃 사랑 역시 없었습니다. 최고의 초점은 자기들이 존중 받고 대접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신령한 은혜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본래 문제였을까요? 그들도 보수 경건신앙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외식과 형식만 남았습니다. 우리 믿음도 식어지고 형식화 된다면 우리 역시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반면 우리 믿는 성도가 율법의 중심 그대로 살면 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늘 찬송하고 경외해 보세요. 그리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나누면서 사랑해 보세요. 예수 믿고 사랑하는 이 두 계명은 우리가 은혜 받고 천국을 누리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의 조항만 가지고 믿음도 사랑도 없는 바리새적인 신앙으로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혹시 신앙의 본질은 사라지고 형식으로 떨어지지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율법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구원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성령 안에서 영생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