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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을 바로 알자 (마 5:17∼19)

에반젤(복음) 2021. 6. 13. 06:49

율법을 바로 알자 (마 5:17∼19)


이 시간 우리 함께 “율법을 바로 알자”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과 행하심을 보고 율법을 폐기하러 온 율법훼방꾼으로 생각했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거나 제자들이 이삭을 비벼 먹고 간음한 여인을 살려 주는 등 자신들과 다른 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큰 차이를 볼 수 있는데 율법을 바로 알지 못하면 유대인들과 같은 큰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아주 두려운 일이고 조심해야 할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본질을 알지 못하여 율법에 매인 불행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매여 자유도 없고 기쁨도 없고 율법대로 살아지는 것도 아니고 정죄와 심판에 빠져 한없이 괴로웠습니다. 이것을 남에게까지 강요함으로 그 사회는 비난과 법이 두려워 숨조차 쉴 수 없는 경직된 사회였습니다. 요즘 중동에서 이슬람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얼마나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고통을 줍니까? 그래서 발달한 것이 외식입니다. 속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런 것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잘못 이해하면 그렇게 됩니다. 신앙생활이 재미없고 힘들게 됩니다. 율법을 모르면 살리는 율법이 아니라 나와 남을 죽이는 율법이 됩니다. 율법을 잘못 대하면 큰 시험을 장만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을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본문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교훈은?


1. 구약 율법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7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구약의 율법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악한데 하나님의 정의가 다 나타나면 그 율법의 정죄를 받아 살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10:5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보세요. 십계명은 완전한 법은 아닙니다. 다른 신 섬기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완악함을 인하여 수준 낮게 주신 최소한의 계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율법 지켰다고 다 되는 것 아닙니다. 다 지켜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 지켰다고 하니까 너는 너의 재산을 다 팔아 나를 따르라고 하셨지요? 십계명을 다 지켜도 재물에 대한 욕심 등 해결해야 할 점이 아주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더 완전한 법을 주셨습니다. 마음으로라도 범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십계명을 지켰어도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또 완전한 법 성령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명령만 하지 지킬 능력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법은 지킬 능력 자체입니다.


2. 율법의 정신을 찾아 행하라는 것입니다.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건 모든 율법이 폐하여지지 않고 완전한 형태로 나타날 것이라는 뜻입니다. 율법에는 크게는 365가지가 있었습니다. 이 모든 율법을 다 알아서 그리고 완전한 형태로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다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알려 주신대로 하면 완전한 형태로 지킬 수 있습니다. 율법의 정신만 알면 됩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인데 사랑으로 행하면 다 지키는 것이 됩니다. 율법의 조항을 몰라도 사랑하면 다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롬13:8-10에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했습니다.


사랑만 있다면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고 율법 적용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살리는 율법을 가지고 죽이는 일을 합니다. 사람 살리려고 위험 경고 붙였는데 그 곁으로 갔다고 사람을 죽인다면 그것이 율법주의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모르고 비판하고 죽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율법의 정신이 사랑이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마22:37-40).


3. 다 가르쳐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19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당시 사두개인이라는 종파가 있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자유주의자들입니다. 천국도 지옥도 천사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을 자기 맘대로 난도질해서 빼고 혹은 더하여 가르쳤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다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는 내가 행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옳은 말 같지만 옳지 않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팔로 쓰임을 받는 것이지 내 경건을 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파의 말씀은 남만이 아니라 전하는 자도 동일하게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이 내 경건의 한계에 제한되어 가르쳐진다면 복음을 막는 자가 됩니다.


또 가르치는 사람들 중에는 신학적인 오류에 빠져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혹은 상황윤리대로 성경을 말합니다. “미자립 교회에서는 선교 가르쳐서는 안 된다. 구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하자고 하면 곤란하다.” 그런 식으로 가르치면 잘못입니다. 가르쳐서 작게 라도 하게 해야 합니다.


헌금 가르치지 말라 하면 될까요? 하나님은 작은 물질도 정성드려 드리면 부자보다 더 귀하게 보시는 분이신데 왜 상황윤리적으로 가르칩니까? 성경이 말씀은 어떤 말씀도 다 가르쳐야 하고 못하면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한 말씀이라도 소홀하면 그것 때문에 우리의 영적 삶은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4. 행하면서 가르치면 더 큰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19절 하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자신은 행치 않으면서 남에게 강요했습니다. 혹은 행치 못하는 것도 남에게는 행하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행하면서 가르칠 때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천국에서 큰 자라니까 미래 천국만 말하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물론이고 현세에서도 영적으로 큰 자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율법을 다 이루셨습니다. 나는 율법적으로 불완전해도 율법을 다 지키신 예수님의 공로로 그리고 피 흘리신 공로로 우리는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제사하지 않아도 예수만 믿으면 됩니다. 더 완전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율법대로 살 성령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모두 아버지 사랑과 예수님 은혜와 성령의 교통 가운데 완전한 주의 은혜를 누리는 자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