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믿음의 사람 123

[스크랩]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 (478호) - 승리

행복한 예수님의 사람들 칼럼 (478호)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신 이유 (삼하 8:1-14).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삼하 8:6). 하나님께서 다윗을 항상 이기게 하셨던 이유가 있었다. 1.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 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삼상 13:14) “이에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 ..

[스크랩] 영국의 선구적 종교 개혁가 존 위클리프

영국의 선구적 종교 개혁가 존 위클리프 존 위클리프(John Wycliff, 1324-1384)는 1324년 경 영국의 요크셔(Yorkshire)에서 태어나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1372년에 신학박사가 되었다. 존 위클리프는 영국 요크셔 출신으로 옥스포드를 다녔고, 신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에는 신학 교사로 거의 한 평생을 옥스포드와 인연을 맺고 살았다. 그는 학자였으며, 사제이며, 중세 스콜라 철학의 석학이었으며, 국가주의자였던 애국자 존 위클리프는 모든 면에서 14세기의 뛰어난 복음주의자였다. 교회의 부와 권력을 잘못 사용하는 법에 대한 격렬한 공격, 성사예배 제도에 대한 그의 비판, 라틴어 성서의 영문번역 등은 후세에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기의 샛별이하고 받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라터워스의 사제관에..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율법에서 방황하던 시절 1850년 1월 6일. 찰스 스펄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 확실히 거듭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스펄젼은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훗날 스펄젼은 그 날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시기, 그러니까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 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다. 당시의 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나에게서 인간적으로나 도덕적 으로 어떠한 죄를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살펴볼 때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스크랩] 백부장 고넬료

사도 바울은 늘 로마에 가고 싶어 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사도였고(행 9:15) 당시 로마는 이방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부르심을 받기 전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 그러나 로마에는 바울이 그곳에 가기 전부터 이미 예수님을 믿는자들이 있었다, 그냥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교회가 아니라 온 세상에 소문이 날 정도로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좋았던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로마 교회 출신이었고(행 18:2) 구레네 시몬의 아내 마리아도 이미 그곳에 가 있었으며 바울은 로마 교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롬 16:5∼15).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누가 로마에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개척했던 것일까. 로마 교회의 성장..

교부 크리소스톰 이야기

교부 크리소스톰 이야기. 교부 크리소스톰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크리소스톰은 로마 황제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기하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그는 죽어도 그리스도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하며 맞섰다. 그가 끝까지 신앙을 포기하지 않자 로마황제는 그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린후 신하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크리소스톰을 아무와도 대화하지 못하게 고독한 개인 감방에 집어넣어라!" 그러자 그 신하가 울상을 하며 대답했다. "황제님, 크리소스톰은 크리스천입니다." 황제가 고함을 질렀다. "크리스천이면 별 놈이냐? 빨리 집어넣어라!" "황제님은 모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일 그 사람을 거기다 가두어 넣더라도 혼자 있는게 아닙니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으면서 중얼중얼합니다..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은 ‘회심’이다. 그리고 이 회심사건은 영국사에 새국면을 시작하게 한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웨슬리의 이 회심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의 부흥운동이나 사회개혁에 대해 참된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웨슬리의 회심에 대해 1725년과 1738년의 문제를 놓고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대다수 웨슬리 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1725년을 웨슬리의 ‘윤리적인 회심’으로, 1738년을 ‘복음적인 회심’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사회개혁활동에 대한 이해에 양자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1. 존 웨슬리의 윤리적 회심 가. 신비주의자들의 영향과 웨슬리의 헌신의 다짐 1725년은 캐논의 말처럼 “웨슬리의 생애에 큰 빛을 준 해”였다. 웨슬리..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율법에서 방황하던 시절 1850년 1월 6일. 찰스 스펄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 확실히 거듭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스펄젼은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훗날 스펄젼은 그 날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시기, 그러니까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 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다. 당시의 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나에게서 인간적으로나 도덕적 으로 어떠한 죄를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살펴볼 때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결국 나는 내 자신을 율법 가운데로 인도해..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은 ‘회심’이다. 그리고 이 회심사건은 영국사에 새국면을 시작하게 한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웨슬리의 이 회심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의 부흥운동이나 사회개혁에 대해 참된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웨슬리의 회심에 대해 1725년과 1738년의 문제를 놓고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대다수 웨슬리 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1725년을 웨슬리의 ‘윤리적인 회심’으로, 1738년을 ‘복음적인 회심’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사회개혁활동에 대한 이해에 양자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1. 존 웨슬리의 윤리적 회심 가. 신비주의자들의 영향과 웨슬리의 헌신의 다짐 1725년은 캐논의 말처럼 “웨슬리의 생애에 큰 빛을 준 해”였다. 웨슬리..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하나님의 백성, 어떻게 이끌것인가? 지난 사십 여 년 동안, 나는 공동체 리더십(group leadership)에 대해 다양만 각도에서 관찰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공동체와 함께 지내온 나의 인생여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지도력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감각을 개발시켜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리더십에 관한 교훈들이 풍부하다. 그 중에 내게 큰 감동을 준 성경의 지도자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리더십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당신도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 : 소수와의 친밀함 지도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경영학의 전형적인 가르침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질투를 불러일..

폴리갑의 고백

때는 주후 156년 초, 교회 박해 시대였다. 흑해로 들어가는 다다넬즈 해협을 굽어보며 에게해를 끼고있는 서머나는 어디로 보나 아름답고 화평한 도시였다. 그러나 무럭무럭 연기만 태우며 서서히 진행되던 박해의 기세는 이제 열을 뿜으며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광신적인 유대인들의 선동을 받은 이방폭도들은 피에 주린 마귀 떼들 같이 거리를 휩쓸며 죄없이 길을 거닐고 있는 기독교도들을 나꿔채어서는 지금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인 투기장으로 끌고 간다. 로마인 총독 앞에서 벌어지는 약식재판은 어디까지나 형식뿐이다. "너 그리스도를 저주하겠느냐? 시-저에게 분향하겠느냐?" 이 두 마디의 간단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싫다" 기독교도들은 분연히 대답한다. 그러면 재판은 몇 초만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총독은 손을 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