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믿음의 사람 137

부흥운동가 / 조신일

부흥운동가 / 조신일(趙信一, 1901. 9. 19~1972. 10. 9) 부흥운동가 강원도 연천군 동면 적음리에서 부친 조경숙의 장남으로 출생. 어려서부터 부모를 따라 주일학교에 다니며 종교교육을 받았으며 1908년 세례를 받았다. 1911년 철원 삼양학교를 졸업하고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회원으로 열심히 봉사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향리에서 만세시위에 가담, 3개월여의 혹독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복음 전도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피어선성경학교에 입학하여 1921년 졸업하였다. 그 후 남감리회에서 복음전도사업에 헌신하여 1923년 8월 1일 전도사 직첩을 받았다. 1923년 9월 평강구역장, 1924년 9월 영평구역장으로 시무했으며 1928년 3월 감리교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9월 9일..

스크랩 [인물소개] 모니카 (성 어거스틴의 모친)

모니카 (성 어거스틴의 모친) 331년에 북아프리카의 한 부유한 가정에서 한 여자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기는 그녀의 아버지가 어릴 적부터 이미 그 집안 일을 돌보고 있던 한 늙은 하녀로부터 기독교 신앙을 접하였다. 이 아이의 이름은 모니카(Monica)였다. 모니카는 로마의 관원이며 부유한 지주였던 파트리키우스(Patricius)라는 비 기독교인과 결혼하여 누미비아에서 거주하였다. 결혼후 모니카는 줄곧 남편이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간구하였다.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에 따라 모니카는 말보다는 자신의 절제되고 단정한 품행을 남편의 회심을 위한 도구를 삼았다. 그녀의 온유와 겸손은 그리스도의 양어머니라고 불려질 정도였다. 남편 파트리키우스는 거의 인생의 종착점에서 기독교인이 되었다. 모니카는 종종 다투는 사람..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있는 사람들’

신약성경에 나타난 ‘복있는 사람들’ 1. 시작하는 말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개인 중심의 현세적, 물질적 축복관에 시달려왔다. 현세적 물질적 축복관이란 삶의 모든 해악적 요소 즉 허약, 병, 가난, 사고, 재난, 실패, 단명 등을 복이 아닌 상태 혹은 저주나 하나님의 벌을 받은 상태로, 이것을 극복하거나 없애는 것 혹은 그 반대개념들 즉 능력, 건강, 부, 성공, 명예, 장수 등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이 축복관은 한 편으로는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고, 다른 한 편으로는 한국교회의 타락을 가져왔다. 힘없고, 병들고, 가난하고, 크고 작은 사고로 고통을 당하고, 최선을 다해도 계속 실패와 좌절, 이런 저런 인생의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찌들린 삶에서의 해방이란 희망을 품고 교회를 찾았다..

스크랩 백부장 고넬료

사도 바울은 늘 로마에 가고 싶어 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함 받은 사도였고(행 9:15) 당시 로마는 이방의 중심지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부르심을 받기 전부터 로마 시민권자였다. 그러나 로마에는 바울이 그곳에 가기 전부터 이미 예수님을 믿는자들이 있었다, 그냥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듣는 교회가 아니라 온 세상에 소문이 날 정도로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이 좋았던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만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로마 교회 출신이었고(행 18:2) 구레네 시몬의 아내 마리아도 이미 그곳에 가 있었으며 바울은 로마 교회의 많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롬 16:5∼15). 바울이 도착하기 전에 누가 로마에 복음을 전했고 교회를 개척했던 것일까. 로마 교회의 성장..

마틴 루터 / 요한 웨슬레 / 찰스 스펄젼

마틴 루터 / 요한 웨슬레 / 찰스 스펄젼 마틴 루터의 구원 간증 (1483.11.10~15846.2.18)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젊은 신부가 수도원장 앞에서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었다. "제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는 애원했다. "빈곤과 순결과 순종이 항상 너를 따라야 한다." 수도원장은 억양을 높여가며 말했다. 독일 농부의 아들인 젊은 마르틴 루터는 엄숙하게 그러할 것을 맹세했다. 그러고 나서 모직 속옷에 검정 가운을 입고 짧은 고깔 달린 웃옷을 걸치고 검정 벨트를 차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얼마나 열심히 애썼던가! 한 번에 며칠씩 금식했다. 밤에 담요도 걸치지 않고 고해성사를 하여 거의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한 마룻바닥에..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율법에서 방황하던 시절 1850년 1월 6일. 찰스 스펄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 확실히 거듭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스펄젼은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훗날 스펄젼은 그 날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시기, 그러니까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 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다. 당시의 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나에게서 인간적으로나 도덕적 으로 어떠한 죄를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살펴볼 때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하나님의 백성, 어떻게 이끌것인가? 지난 사십 여 년 동안, 나는 공동체 리더십(group leadership)에 대해 다양만 각도에서 관찰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공동체와 함께 지내온 나의 인생여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지도력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감각을 개발시켜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리더십에 관한 교훈들이 풍부하다. 그 중에 내게 큰 감동을 준 성경의 지도자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리더십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당신도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 : 소수와의 친밀함 지도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경영학의 전형적인 가르침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질투를 불러일..

폴리갑의 고백

때는 주후 156년 초, 교회 박해 시대였다. 흑해로 들어가는 다다넬즈 해협을 굽어보며 에게해를 끼고있는 서머나는 어디로 보나 아름답고 화평한 도시였다. 그러나 무럭무럭 연기만 태우며 서서히 진행되던 박해의 기세는 이제 열을 뿜으며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광신적인 유대인들의 선동을 받은 이방폭도들은 피에 주린 마귀 떼들 같이 거리를 휩쓸며 죄없이 길을 거닐고 있는 기독교도들을 나꿔채어서는 지금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인 투기장으로 끌고 간다. 로마인 총독 앞에서 벌어지는 약식재판은 어디까지나 형식뿐이다. "너 그리스도를 저주하겠느냐? 시-저에게 분향하겠느냐?" 이 두 마디의 간단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싫다" 기독교도들은 분연히 대답한다. 그러면 재판은 몇 초만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총독은 손을 들어 ..

신앙위인 - 토마스 아퀴나스

신앙위인 -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입니다. 아직 철학이 신학의 시종으로 있었던 시기였기에 철학은 곧 신학이며, 신학은 곧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상황은 중세만의 독특한 신학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스콜라 철학으로 부르는 중세철학은 자연과 신학이 버무려진 형태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토마스 아퀴나스의 는 중세적 신학의 신학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습니다. 오늘 다루게 될 은 오로지 철학만을 다룬 책입니다. 은 아퀴나스의 이십 대 후반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술 시점이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252년에서 1254년 사이로 봅니다. 이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연금에서 풀려나 3년간의 모호한 시간을 보낸 뒤 쾰른의 도미니코수도회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은 ‘회심’이다. 그리고 이 회심사건은 영국사에 새국면을 시작하게 한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웨슬리의 이 회심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의 부흥운동이나 사회개혁에 대해 참된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웨슬리의 회심에 대해 1725년과 1738년의 문제를 놓고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대다수 웨슬리 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1725년을 웨슬리의 ‘윤리적인 회심’으로, 1738년을 ‘복음적인 회심’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사회개혁활동에 대한 이해에 양자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1. 존 웨슬리의 윤리적 회심 가. 신비주의자들의 영향과 웨슬리의 헌신의 다짐 1725년은 캐논의 말처럼 “웨슬리의 생애에 큰 빛을 준 해”였다. 웨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