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창/- 믿음의 사람 123

마틴 루터 / 요한 웨슬레 / 찰스 스펄젼

마틴 루터 / 요한 웨슬레 / 찰스 스펄젼 마틴 루터의 구원 간증 (1483.11.10~15846.2.18) "내 죄로소이다. 내 죄로소이다." 젊은 신부가 수도원장 앞에서 마룻바닥에 엎드린 채 울부짖었다. "제게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는 애원했다. "빈곤과 순결과 순종이 항상 너를 따라야 한다." 수도원장은 억양을 높여가며 말했다. 독일 농부의 아들인 젊은 마르틴 루터는 엄숙하게 그러할 것을 맹세했다. 그러고 나서 모직 속옷에 검정 가운을 입고 짧은 고깔 달린 웃옷을 걸치고 검정 벨트를 차고, 하나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리고 그는 얼마나 열심히 애썼던가! 한 번에 며칠씩 금식했다. 밤에 담요도 걸치지 않고 고해성사를 하여 거의 얼어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또한 마룻바닥에..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여호와를 앙망하라 - 찰스 스펄젼의 거듭남 율법에서 방황하던 시절 1850년 1월 6일. 찰스 스펄젼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날이었다. 이 날 확실히 거듭나는 경험을 하기 전까지 스펄젼은 많은 내적인 방황과 고뇌를 겪었다. 훗날 스펄젼은 그 날들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젊었을 때, 약 5년간이나 심히 괴로운 시기, 그러니까 암흑기를 지낸 일이 있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면, 나는 그를 충분 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적이 있었기 때문 이다. 당시의 나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나에게서 인간적으로나 도덕적 으로 어떠한 죄를 발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을 살펴볼 때 나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패역무도한 죄인이었다...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성경속의 위대한 지도자들에게서 배우는 교훈 하나님의 백성, 어떻게 이끌것인가? 지난 사십 여 년 동안, 나는 공동체 리더십(group leadership)에 대해 다양만 각도에서 관찰하는 기회를 가져왔다. 공동체와 함께 지내온 나의 인생여정을 돌이켜볼 때 내가 지도력에 대해 상당히 강력한 감각을 개발시켜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에는 리더십에 관한 교훈들이 풍부하다. 그 중에 내게 큰 감동을 준 성경의 지도자들을 선택해서 그들의 리더십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에 대해 당신도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예수님 : 소수와의 친밀함 지도자가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경영학의 전형적인 가르침이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질투를 불러일..

폴리갑의 고백

때는 주후 156년 초, 교회 박해 시대였다. 흑해로 들어가는 다다넬즈 해협을 굽어보며 에게해를 끼고있는 서머나는 어디로 보나 아름답고 화평한 도시였다. 그러나 무럭무럭 연기만 태우며 서서히 진행되던 박해의 기세는 이제 열을 뿜으며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광신적인 유대인들의 선동을 받은 이방폭도들은 피에 주린 마귀 떼들 같이 거리를 휩쓸며 죄없이 길을 거닐고 있는 기독교도들을 나꿔채어서는 지금 한창 경기가 진행 중인 투기장으로 끌고 간다. 로마인 총독 앞에서 벌어지는 약식재판은 어디까지나 형식뿐이다. "너 그리스도를 저주하겠느냐? 시-저에게 분향하겠느냐?" 이 두 마디의 간단한 질문이 있을 뿐이다. "싫다" 기독교도들은 분연히 대답한다. 그러면 재판은 몇 초만에 끝나 버리는 것이다. 총독은 손을 들어 ..

신앙위인 - 토마스 아퀴나스

신앙위인 -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입니다. 아직 철학이 신학의 시종으로 있었던 시기였기에 철학은 곧 신학이며, 신학은 곧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상황은 중세만의 독특한 신학 체계를 만들어 냈습니다. 스콜라 철학으로 부르는 중세철학은 자연과 신학이 버무려진 형태입니다. 지난번에 살펴본 토마스 아퀴나스의 는 중세적 신학의 신학을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습니다. 오늘 다루게 될 은 오로지 철학만을 다룬 책입니다. 은 아퀴나스의 이십 대 후반에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술 시점이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252년에서 1254년 사이로 봅니다. 이때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연금에서 풀려나 3년간의 모호한 시간을 보낸 뒤 쾰른의 도미니코수도회에서 알베르투스 마그누..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 웨슬리의 삶의 전환점은 ‘회심’이다. 그리고 이 회심사건은 영국사에 새국면을 시작하게 한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웨슬리의 이 회심에 대한 이해 없이는 그의 부흥운동이나 사회개혁에 대해 참된 이해를 할 수 없다. 그런데 학자들 간에는 웨슬리의 회심에 대해 1725년과 1738년의 문제를 놓고 이견을 표출하고 있다. 본 연구자는 대다수 웨슬리 학자들의 견해를 따라 1725년을 웨슬리의 ‘윤리적인 회심’으로, 1738년을 ‘복음적인 회심’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사회개혁활동에 대한 이해에 양자 모두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1. 존 웨슬리의 윤리적 회심 가. 신비주의자들의 영향과 웨슬리의 헌신의 다짐 1725년은 캐논의 말처럼 “웨슬리의 생애에 큰 빛을 준 해”였다. 웨슬리..

스크랩 영적판단과 식별(로이드존스)

영적 판단과 식별(마7:6) 로이드존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1-6) 6절은 7장 1-5의 결론이며 그에 관한 최종적인 진술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절이 앞의 내..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시62:11 출처보기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Why God used D.L. Moody? R. A. 토레이 목사 저, 이인한 목사님 역. 무디 선생은 1837-1899 토레이 박사는 1856-1928, 토레이 박사는 1889년에 무디 사역에 조인했으니, 약 11년간 만년의 무디를 지켜본 셈이다. ▲서론 1837.02.05. D. L. 무디는 미국 매사추세츠 노스필드에서 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 시대에 가장 놀라운 사람이 될 아기였다. 위대한 장군들, 정치가들, 학자들, 그리고 문호들도 모두 가버리고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졌으며 그들의 업적과 큰 감화력도 종말을 고했지만, 무디의 업적과 그의 구원의 감화력은 계속 증거 되고 있으며 온 미..

D. L. 무디 Dwight Lyman Moody

◈D. L. 무디 Dwight Lyman Moody 1837-1899 ◑관련글 무디의 일생 드와이트 무디의 생애 D. L. Moody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1) 하나님께서는 왜 무디를 쓰셨는가? (2) 크게 쓰인 작은 그릇, 무디 혹평 신문기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무디 ... ◑조각글 모음 여러 설교에서 인용되어진 부분들 당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하신다. - D. L. 무디 ▲1. 먼저 전하면.. 은혜는 따라온다. 어느 날, 무디 목사님이 전도를 강조하는 설교를 하니까 한 청년이 찾아와서 말했다. “목사님! 전도가 중요한 줄 알지만, 먼저 제게 은혜가 있어야 나가서 복음을 전하지요. 저는 지금 은혜가 떨어졌습니다!” 무디 목사..

무디의 어머니

무디의 어머니 19세기가 낳은 신앙인, 세계적인 대부흥사 무디 선생의 이면에도 역시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움직이는 힘은 박식이나 그 어떤 출중한 기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훌륭한 예가 바로 무디 선생의 이야기입니다. 그를 가까이 하는 사람 중에서 그의 확신과 겸손과 덕망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비록 학교교육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했으나 그는 영력이 탁월했을 뿐 아니라, 모든 선한 일에 이해 관계를 초월하여 덕을 베풀 줄 알았습니다. 무디 선생은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언젠가 여러분은 동 노스필드의 드와이트 엘 무디의 죽음에 대한 기록을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기록의 내용을 믿지 마십시오. 그때는 내가 죽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