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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자가의 감화력 (히 12:1-3)

에반젤(복음) 2021. 10. 11. 11:16

십자가의 감화력 (히 12:1-3)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3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이 시간에 “십자가의 감화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늙고 병들어 어려 해 동안 병원생활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을 오랫동안 정성껏 돌봐준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어 그녀는 세상을 떠나면서 자기 재산을 먼 친척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사에게는 아무 것도 주지 않고 커다랗고 묵직한 십자가만 하나 주었습니다. 간호사는 상속자가 아니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재벌이고 그토록 열심히 돌봐드렸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간호사는 실망해서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병원 한 구석에 치워놓았습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간호사는 십자가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십자가 뒷면에 무슨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뭔가가 반짝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구멍을 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것은 거기에 아주 비싼 각종 보석들이 잔뜩 들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십자가의 도에는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구원이 들어 있습니다. 영생이 들어 있습니다. 자유와 해방과 복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를 온전케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의 감화력입니다. 예수님의 공로와 아울러 십자가의 감화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감화력은 무엇일까요?

 

1. 감사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살전5:10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고후5:15에도 있습니다.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한 마디로 감사 감격한 삶입니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7-8) 했듯 이보다 큰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믿고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만족이 없습니까? 무슨 불만이 있습니까? 불편한 것이 있습니까? 고통이 있습니까? 나를 위한 아버지의 사랑과 예수님 고난을 생각하면 그런 것이 다 사라집니다. 우리가 받는 고난은 예수님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고난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장차 받을 우리의 영광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예수 바라보지 않고 사람 바라보다 잘못된 모본이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혹은 비교의식이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바라보지 마시고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겸손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는 최고 겸손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을 생각하고 자기를 낮추면 시험이 조금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자기를 존중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니까 시험이 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성도들은 억울하다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핍박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겼기에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행5:41).

 

이렇게 낮추신 예수님을 아버지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영광의 자기 우편에 낮게 하셨습니다. 낮춘다고 손해가 아닙니다. 약4:10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셨습니다.

 

프란시스의 위대한 영성은 주님의 사랑을 깨달음에서 왔습니다. 그가 얼마나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했든지 몸에 성흔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랬기에 재산도 옷도 다 빈민들에게 나눠주고 섬겼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3. 사랑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자기를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원수를 이기는 최고의 기도입니다.

 

용서가 안 된다면 예수님의 기도를 따라서 해보세요. 그러면 우리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은사가 임합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을 능가합니다. 은사는 부분적이지만 사랑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4. 순종의 믿음이 생깁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을 봅니다. 막14:36에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순종이 안 되면 복종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은 자기 뜻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눈높이를 한 단계만 낮춰도 평안이 옵니다. 우리의 죄는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우리의 자아는 날마다 죽여야 합니다. 어떻게 죽입니까?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히12:3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묵상입니다. 묵상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말씀과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이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고후3:18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했습니다.

 

세상 묵상하지 마세요. 세상 것을 탐하여 가슴에 품고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나를 죽입니다. 혹은 속상한 일 가지고 밤새 잠 못 이루는 것도 일종의 묵상인데 잘못된 묵상입니다. 마음을 비운다고 함부로 이방종교 흉내 내며 무념무상하다가는 도리어 악신이 임하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과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특권과 행복을 생각하는 그런 묵상을 하시기 바랍니다.

 

199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대통령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인구의 10%도 채 되지 않는 백인들이 80%의 흑인들을 지배하며 인종차별을 하였습니다. 만델라는 흑인 인권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44세에 반역죄 죄목으로 구속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힌 그는 백인들에 대한 증오심이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결핵까지 걸려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치유 받지 못한 잘못된 묵상 때문이었습니다. 온갖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만델라는 하나님께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따지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백인들을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어떻게 그들을 용서한다는 말인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음성에 항복하였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백인들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응어리졌던 원한과 증오가 사라지면서 평안해지고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동터오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했습니다. 저녁에는 감옥 창살을 통해 비쳐오는 별빛을 보고 감사했습니다.

 

만델라는 감옥보다 더 넓은 자연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며 일터로 나갔고, 파란 하늘과 새소리를 듣는 기쁨으로 일했습니다. 그러자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좋아졌습니다. 1990년 2월에 27년 만에 석방되고 대통령이 되어서도 누구라도 원망하거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잘못된 묵상을 했다면 그는 병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고난의 사랑을 묵상하는 사람의 위대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감화를 받으세요. 그러면 마음이 완전한 믿음에 도달하게 됩니다. 진실로 믿고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모두 고난의 주님을 더욱 묵상하므로 구원의 자리, 겸손의 자리, 사랑의 자리, 순종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가장 완전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