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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만 하십시다 (고후 1:17-20)​

에반젤(복음) 2021. 10. 11. 11:12

예만 하십시다 (고후 1:17-20)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이 시간에 “예만 하십시다.”라는 제목입니다. 사람이 “예”라고 해야 할 때 “예”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아니오”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특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5:37) 하셨습니다.

요즘 ‘No’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체면 때문에 혹은 후환이 두려워서‘Yes’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거절해야 할 때는 거절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끙끙대며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긴 병을 정신병리학에서는 ‘거절 장애’라고 부릅니다. 거절 장애증이 심하면 두통 소화불량 심혈관질환 우울증 반사회적 인격장애로까지 발전한다고 합니다. 사람은 인격적인 존재인데 오로지 예만 해야 한다면 자신을 노예로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오직 예만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 앞에서는 오직 예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는 아멘입니다. 아멘만 하시기 바랍니다. 아멘이란 '진실로', '정말로', '실로', 이 외에도 '그렇게 되어 주소서', '그렇게 이루어 주소서'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의미 가운데는 예라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아니오”라고 하는 이유는 뭘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감당할 수 없을 때, 그 대표적인 사람이 예레미야와 모세입니다. 렘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부르실 때 나이가 14세였습니다. 그는 너무도 어려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아니요”했습니다.

모세도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아니오 했습니다. 그것은 나이가 80세로 많았고 사람을 죽이고 도망자가 되어 40년간 은둔생활하다 보니 언변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다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또 돕는 자를 주시니 아니오 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은, 하나님의 뜻보다 추구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 부자 청년이 주님을 찾아와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정답은 예수 믿어야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마음의 자세를 떠보기 위해 우회적으로 질문하셨습니다. “계명을 지켜라” 지켰나이다 “그럼 네게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 이 때 청년은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돈이 그 사람을 막고 있었습니다.

혹은 자기 생각과 다를 때 “아니요”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우리의 짧은 머리로는 하나님의 뜻과 행하심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현명하고 위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할 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일까요?

1. 예할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20절에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우리가 아멘하고 순종하면 영광될 일이 생깁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았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두 배에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요한복음 2장에 가나의 혼인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더니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안식도 믿고 순종하는 자가 간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찬송 부르며 살아보세요. 날마다 기도하며 사세요. 날마다 성경 보고 성경구절 외며 살아 보세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세상을 성령으로 불지를 위대한 일군들이 될 것입니다.

이론으로는 쉽습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그래서 눅11:28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실행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 결과 때문입니다. 눅6:46에도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하시면서 말씀대로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2. “예”할 때 복이 됩니다.

히6:14-15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복을 받은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아멘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갈3:7에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했고 9절에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가지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성경의 모든 복의 약속을 믿기만 하면 다 복이 됩니다.

알고 보면 복 받기 쉽습니다. 복의 약속을 믿으시면 됩니다. 사람들은 왜 나는 복이 없을까 하지만 복의 말씀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면 복이 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예 하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책임지십니다. 그래서 히10:35에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했고 38절에서는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야곱에게 외삼촌의 집을 떠나라 하실 때 떠났더니 외삼촌 라반이 추격해 오지만 하나님께서 밤에 라반의 꿈에 나타나셔서 선악 간에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아니요”하다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여리고 전쟁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전리품을 챙기다가 아이성 전쟁에서 얼마나 크게 실패했습니까? 하나님께 예 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하셨습니다. 믿어야 할 것은 말씀밖에는 없습니다. 성경을 읽되 외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늘 외우고 외우면서 그 말씀이 믿어지게 되고 불이 되고 능력이 되고 기적이 됩니다.

강준민 목사의 "성경암송"이라는 책에서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 어떤 노력도 성경암송만큼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그 어떤 훈련도 성경암송보다 쓸모 있고 유익하지 못하고 이보다 더 큰 영적 열매를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암송을 통해 누리는 유익을 수십 가지 나열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누리는 복입니다.

3. “예”할 때 하나님의 사자가 됩니다.

요10:34-35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여기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한 사신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고후5:20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전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니 그 말씀에 관한한 자동으로 하나님의 사자가 됩니다. 모세를 바로왕 앞에 신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처럼 바로왕이 보기에 신처럼 보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권위로섰기 때문입니다.

4. “예”할 때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성경에 “예”하고 순종하고 기적이 나타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면서부터 소경인 사람도 주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흙을 이겨 그걸 그의 눈에 바를 때 거부하지 않았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하셨을 때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눈 뜨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이삭도 창26:2에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실 때 순종했더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창 26:12)았습니다.

마 21장에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않았지만, 둘째에게 말하니 둘째는 싫소이다 했지만 그 후에 뉘우치고 갔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습니까? 동생입니다. 그러나 기쁨으로 받고 기쁨으로 했다면 더 좋겠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쁨으로 받고 기쁨으로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성공과 실패는 우리 믿음에 달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이 아멘의 사람이 된 것은 17-20절에 나오듯 육체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을 본받음, 그리고 성경을 100%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아버지의 말씀에 항상 예만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아멘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 받고 쓰임 받고 영광 돌리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