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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질그릇에 가진 보배 (고후 4:7-10)

에반젤(복음) 2021. 10. 11. 11:20

질그릇에 가진 보배 (고후 4:7-10)

 

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8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이 시간에 “질그릇에 가진 보배”라는 제목입니다. 중국 속담에 “웃을 수 없는 날에는 가게 문을 열지 말라.”는 속담이 있다고 합니다. 잘 웃는 가게가 더 잘 팔랍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웃으면서 살고 계십니까? 웃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최고의 화장은 웃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쪽을 보나 저 쪽을 보나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즐거워해야 할 일보다 슬퍼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웃으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 누구도 갖지 못한 큰 보배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개 선지자는 예수님을 만국의 보배라 했습니다(학2:7). 그런데 기억해야 할 점은 더 약하고 더 부족하고 더 어려울수록 더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질그릇에 보배를 가득 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이것이 질그릇의 비밀입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 못하고 흙수저로 태어났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질그릇에 하나님의 능력이 더 나타나고, 예수의 생명이 더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질그릇을 쓰십니다.

 

왜 예수님이 질그릇의 보배실까요?

 

주님은 우리가 약할 때 더 강하시기 때문입니다. 고후 12장에 바울은 자기에게 사탄의 사자, 곧 자기를 찌르는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합니다. 그 때 주님이 뭐라고 응답하십니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우리가 약할 때 주님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던 그 찌르는 가시가 자신의 불치의 질병이었는지, 자기를 대적하는 원수들이었는지, 두 가지 다였는지 모르지만 그랬기에 바울은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의 유명한 주석가였던 이상근박사님은 평생 발가락에서 고름이 나오는 고통 속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치료해도 낫지 않아 무슨 나쁜 병이라도 된 줄 알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성경 보며 살았습니다. 노년에 이르러 지금 의학이 발달했으니 다시 한 번 진단해 보자 하여 검사했더니 발가락 속에 이상한 철사가 박혀 있습니다. 어릴 때 놀다가 박힌 철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그 찌르는 철사가 그 분을 위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럼 질그릇에 보배가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1. 싸이지 않게 하십니다.

 

8절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우겨쌈을 당한다는 원어는 ‘들리보메노이’입니다. 이는 포도주를 짜기 위하여 포도를 짓이길 때 쓰는 말입니다. 혹은 기름을 짤 때 깻묵이 되도록 보자기에 싸서 짓이겨 누르는 것을 말합니다. 혹은 적군에게 포위당할 때도 그런 표현을 씁니다. 이리 봐도 캄캄하고 저리 봐도 어둡고, 가슴이 터질 정도의 압박감입니다. 이것이 싸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나올 때도 그랬습니다. 홍해 앞에 다다랐을 때 앞에는 홍해가 넘실거리고 뒤에는 애굽의 병거가 쫓아옵니다. 특별병거 600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라고 했으니 몇 백대 몇 천 대일지 모르는 대군이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 울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를 죽이고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엄청난 압박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세 앞에 홍해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넜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습니다. 답답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평안함이 오고 무거운 짐이 사라집니다. 어려울수록 더 용기 백 배 하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누가 주신 마음입니까?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보배가 있으면 낙심하지 않게 됩니다.

 

그 다음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이란 원어에 ‘아포루메노이’입니다. 이 말은 극심한 불안을 의미합니다. 안절부절하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성도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심하지 않을 마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유라굴라 광풍을 만났을 때도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바울아 두려워 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행27:24)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고라의 자손들은 시편 46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46:1-3) 도와주실 뿐 아니라 위대한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미국의 부흥사 티엘 오스본 목사는 1950년도부터 세계 각지에서 초대형 집회를 성공적으로 인도한 분으로 유명한데, 원래 이 분은 인도에 선교사로 나갔다가 1년 만에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하고 선교에 실패하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실망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그 부부는 어느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때부터 오스본 목사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나타내는 사역자로 바뀌었습니다. 그 집회에서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귀신 들린 자가 나음을 얻고 놀라운 기적이 그의 사역에 나타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다른 신에게 붙잡혀 돌아오지 않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 돌아왔습니다. 우리가 질그릇 같아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이처럼 귀히 여기십니다.

 

지금 정부 발표로 불안하십니까? 백신을 맞았어도 집단면역은 형성되지 않고 코로나는 확산되고 델타변이바이러스까지 나와도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통계로 보면 호흡기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오히려 줄었습니다. 매년 독감과 그 백신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는데 마스크를 쓴 이후로는 그걸로 사망한 사람은 거의 없고 코로나로 대체되었을 뿐입니다. 변이바이러스 역시 방역수칙 잘 지키고 조금만 노력하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에 걸렸지만 불과 3일 만에 완치되어 복귀되는 것을 보세요. 그것은 그 치료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그가 귀뜸한 적이 있었듯 의료기관에서 부정하거나 신통치 않게 여기는 것들입니다. 그게 약이었습니다. 앞으로의 큰 재앙은 약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안 도와서가 아니라 세계보건기구나 제약사나 의료기관들의 상업주의 때문에 올 것입니다. 입증 논문이 수백 수천편씩 쌓인 좋은 방법들은 감춰버립니다.

 

상기도 점액질에 온 코로나를 죽이는 것은 과산화수소수를 물에 희석하여 분무 흡입하는 것밖에는 답이 없습니다. 2차 백신이 더 고약하다고 합니다. 백신을 맞고도 부작용이 오면 타이레놀 드시고 타이레놀로 안되면 아스피린을 드시기 바랍니다. 아스피린이 담당하는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니까 아스피린 먹고 많이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도우십니다. 다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시121:1-2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했고, 7-8절에는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했습니다.

 

3. 보배가 있으면 버림받지 않게 됩니다.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예수님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벧전2:7에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했듯이 하나님께서는 그를 가장 귀히 쓰셨습니다.

 

다윗도 형제 중에 가장 버림받은 자였습니다. 아버지 이새는 다른 아들들만 사무엘 앞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들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시27:10에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했습니다. 요셉도 형제들이 요셉을 버렸으나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대신으로 삼으셨습니다.

 

4. 보배가 있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 한다고 말씀합니다. 모두 자신의 체험담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불모지에서 전도하다가 죽을 뻔 한일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명을 원수들이 노리고 있었습니다. 돌에 맞아 죽을 줄 알고 성 밖에다 버렸지만 거기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피할 길을 주시거나 오뚝이처럼 살아나서 일하곤 하였습니다. 질그릇에 보배가 그렇게 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질그릇이라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주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는 질그릇임을 철저히 인식하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배이신 주님을 더 믿고 더 사랑하고 더 경외함으로 온전히 모시고 어떤 가운데서도 포위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버린바 되지 않고 망하지 않는 놀라운 비밀 가운데 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