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월)
찬송 : (새)67장, 31장
■ 출애굽기 35:30∼40:38 : 성막 봉헌 ☞ 줄거리 모세가 성막을 완성한 날은 출애굽 제 2년 1월 1일이었습니다(출40:17). 이 날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지 만 1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성막을 세우는데 필요한 지침과 규정을 주셨습니다. 성막은 흰 천으로 성막의 경계를 만들었으며, 문은 동쪽에 하나 있었습니다. 동쪽에 있는 성막 문을 통과하면 안뜰의 북쪽에 번제 단이 있었고, 정면에는 놋대야가 놓여있었습니다. 성막 뜰 안에는 성막이 있었는데, 성막의 첫 번째 부분은 성소가 있었고, 두 번째 부분에는 지성소가 있었습니다. 성소 안에는 떡을 진설해 놓는 떡 상과 빛을 비추는 금 촛대, 그리고 향을 피우는 분향 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에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있었습니다. 이 언약궤의 뚜껑 위에는 그룹(천사)들이 있었는데, 그 천사들은 펼친 두 날개로 언약궤를 덮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언약궤 안에 십계명을 새긴 돌 판과 아론의 싻 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를 담은 항아리를 놓게 하셨습니다. 이 언약궤 위를 시은소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즉 대 속죄일에 희생제물의 피를 이 시은소 위에 뿌렸습니다. 언약궤 안에 있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 판은 인간이 마땅히 행할 의무를 기록했는데, 이 돌 판은 이 계명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증거 했기 때문에 증거 판이라고 불렀습니다(신 31:26). 그러나 피가 뿌려진 시은소의 언약궤 뚜껑이 사람들의 죄를 가리워 주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죄를 "덮어준다" 는 말이 죄를 "용서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다 시은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시은소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이러한 시은소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시은소와 하나님의 임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레16:2)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성막을 세운 후에는 "구름이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습니다(출 40:34)." 하나님은 시은소에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덮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영광을 볼 수 있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성막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40:16-38)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16절)
“그가 또 성막과 단 사면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의 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33-35절)
성삼위 하나님은 본래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분의 영광을 이 땅위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특권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러한 특권을 누릴 수 있습니까?
순종하는 삶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성막을 짓는 역사가 마치자 구름이 성막을 덮으며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웠던지 모세조차도 회막 안에 들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장면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도 이렇게 충만히 임재 하셔서 그 영광을 나타내 주시기를 진실한 그리그도인들은 모두 바랄 것입니다.
어떻게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아야합니다. 성막에 하나님이 거하시겠다는 것은 이미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25:8).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마28:20; 요14:16).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약속을 받았으므로 그 영광을 충만히 나타내실 것을 우리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행하여 성막을 건축했습니다. 성막을 세우고 기구들을 배치한 내용을 기록한 17-33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되니라’는 말씀이 7번이나 반복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철저하게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 영광을 충만히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철저한 순종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대충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철저히 순종하려는 자세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광스러운 성막을 보면서 광야 길을 갔습니다. 성막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이 자신들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가나안을 향하여 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으면 멈추고 영광이 나타나면 진행하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성막은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아주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절대적인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성막에 임재하신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을 지키고 보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은 험한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에게 가장 강력한 보호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처럼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특권을 가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특권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가능했던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이스라엘이 성막과 함께 하면서 영광스러운 백성으로서 무한한 감사와 감격을 느끼며 행진했지만, 이스라엘이 성막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형식화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광스런 모습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살면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보호받고 승리하지만,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자기 멋대로 살면 비참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말고 살아야합니다.
-기독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4, 10, 23-
살며 생각하며 : 주님께만 영광을
영국의 종교 개혁자였던 크롬웰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왔을 때, 수많은 인파가 모여 크롬웰을 환영하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그때 크롬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양합시다.”
성자 프랜시스는 자기의 이름이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여 자서전도 남기지 않았고 일기조차 남기지 않았습니다. 또 그는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도 빵 반쪽을 먹음으로 예수님과 같은 날만큼 금식했다는 자만을 버리려고 했습니다. 프랜시스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살았습니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스스로 영광 받기를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탐내는 행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은 것에 감사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p 444-
6주-(화)
찬송 : (새)321장, 351장
■ 레위기 1: 1∼5: 19 5대 제사 ☞ 줄거리 성막을 지은 후에 성막은 계시의 중심 장소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성막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그 지시를 따랐습니다. 레위기는 성막을 지은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성소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번째 방법(제사)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그들 대신 의생을 당할 희생제물이 필요했습니다. 이러한 희생제물은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레 1장은 헌신을 의미하는 번제의 규례, 2장은 번제에 곁들여 드린 소제(곡식제사)의 규례, 3장은 서원이나 감사를 위해 드린 화목제의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드린 속죄제와 속건제(배상제사)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제사 규례들은 우리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이러한 제사 규례들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속죄의 복음(4: 1-5:13)
“누구든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그릇 범하였으되,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죄얼을 입게 하였으면 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4:1-3)
속죄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부지중에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때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통해 속죄의 길을 미리 열어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속죄제의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용서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데 만족하지 않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결한 목표를 가지고 거룩한 삶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살기를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말씀을 특별히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실제 모습은 거룩이나 성결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쉽게 넘어지고, 쓰러져 범죄하는 연약한 존재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연약함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부지중에 그릇 범죄 하였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사죄함을 받고 정결케 될 수 있는 정결제로서 속죄제를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정결 죄로서 속죄를 통하여 위로부터 대제사장에서부터 아래로 가루 한 줌 밖에 낼 수 없는 지극히 가난한 극빈자까지도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소외되지 않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도와주시는 영혼의 치료자가 되십니다. 더 이상 죄의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지 말고 지금 주님께 나아갈 수 있기 바랍니다.
둘째로 우리를 제사장 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속죄제를 드려야 할 대상을 언급하면서 가장 먼저 제사장부터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누구보다 여호와를 향한 열정을 가지고 정결한 삶을 살며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직분이었습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 백성들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제사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해 정결제로서 속죄제의 첫 번째 대상으로 온회중보다 먼저 제사장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우리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주셨습니다. 거룩한 제사장된 우리는 정결함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정결함을 무엇보다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고 연약함을 핑계하며 쓰러지지 말고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거룩한 능력을 덧입도록 말씀과 기도에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주를 섬기는 다른 지체들, 특히 사역의 최전선에서 앞장서서 헌신하고 수고하는 사역자들의 성결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기독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7,1,20-
살며 생각하며 : 새로 나게 하는 복음
‘신사의 나라’ 영국은 기독교 국가가 되기 전에는 야만인과 같았습니다. 영국에서 축구가 시작되었는데, 축구의 유래를 살펴보면 영국인들이 얼마나 야만스러웠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은 덴마크의 식민지로 살다가 자유를 얻은 나라입니다. 자유를 얻게 되자 영국인들은 분풀이로 전쟁에서 패한 덴마크 사람들의 두개골을 길거리에서 발로 차며 다녔습니다. 이것이 축구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두개골 다음에 소의 방광에 바람을 넣어 오늘의 공 모양을 갖추어서 발로 찼습니다. 이런 민족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게 되자 ‘신사’라는 별명을 가진 민족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야만인을 신사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힘이 복음에 안에 있습니다. 복음은 사람의 내면을 바꾸고 질을 바꾸고 근원을 바꿉니다. 새롭게 된 속사람은 겉 사람을 단정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갑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436-
6주-(수)
찬송 : (새)254장, 186장
■ 레위기 6: 1∼7:38, 민 7: 1∼8:26 제사장을 위한 제사 규례 ☞ 줄거리 모세는 레위기 1-5장에서 제사를 드리는 백성들의 입장에서 5대 제사에 대한 규례를 설명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레위기 6-7장에서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5대 제사에 대한 규례를 기록했습니다. 똑같은 제사 규례지만,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백성들이 알아야 할 규례와(1-5장),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 알아야 할 규례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습니다(6-7장). 레위기 6장에는 제사장들이 번제, 소제, 속죄제를 드릴 때에 지켜야 할 규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7장에는 제사장들이 속건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에 지켜야 할 규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후에 하나님께 드린 제물 중에서 제사장에게 돌려질 분깃이 무엇인지를 정해주고 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꺼지지 않는 불꽃(레 6:8-13)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레 6:13)
본문은 하나님께 대한 끊임없는 봉사와 헌신으로써 복음의 불꽃, 사랑과 희생이 불꽃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할 우리들의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온 우리 조상들의 생활을 탐구해 보노라면 가끔씩 놀랄만한 삶의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그 중에서도 몇 대를 거치면서 한 번도 꺼뜨리지 않은 불씨에 관한 이야기는 급하고 조심성 없이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감동을 줄 만합니다.
지금처럼 성냥과 같은 간편한 발화 물질이 발명되지 않았을 때는 여인네들의 손에 의해 불씨가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즉 여자가 시집을 오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집의 시어머니로부터 그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불씨 보관의 책임을 인계받게 됩니다. 그 책임을 인계받은 며느리는 음식 장만을 위해 사용했던 아직 불기운이 남아있는 장작들을 모아다가 흙으로 잘 덮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숯과 같은 역할을 하여 나중에 불씨가 필요할 때 다시 꺼내어 입김을 불어 넣으면 금새 불기운이 되살아납니다. 비가 오고 눈 내리는 날이면 놋으로 만든 화로에다 숯덩이를 옮겨 놓음으로써 불씨를 보존했다고 합니다. 하루도 아니고 365일, 아니 수십 년, 수 세대를 한 번의 실수 없이 계속 해서 불씨를 보존한다는 것은 웬만큼 공을 들이지 않고서는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은근과 끈기과 성실로 마치 자기 생명보다 더 소중히 그 불씨를 보존해 왔던 것이다. 실로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그리스도께서 지펴주신 그 불꽃을 꺼뜨리지 말아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불꽃을 계속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과 더불어 매 순간 교제하며 성경을 깊이 묵상하고 복음을 증거하며 이웃에 대한 희생적인 사랑을 한결 같이 행하고 있는가요? 혹시 필요에 따라 그 불꽃을 꺼뜨리기도 하고 다시 피우기도 하지는 않는가요? 영적 제사장으로 부름받은 우리들은 “불은 끊이지 않고 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는 본문의 말씀에 오늘 바로 이 순간 어떻게 대답하고 있는가?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3권 , QT」p125-
살며 생각하며 : 남편 선교사의 뒤를 따리
1960년 당시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은 너무 포악하여 아무도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때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어트 교수가 선교하기 위해 그들에게로 갔습니다.. 그러나 염려대로 참혹하게 찢겨진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 사건 후 짐 엘리어트의 부인이 남편의 뒤를 따라 그곳의 선교사로 나섰습니다. 부인은 1년 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아우카족에게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우카족은 여자를 해치는 것는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여 여자는 해치지 않았습니다. 부인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목숨을 걸고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우카족을 위해 여러 해 동안 헌신하였습니다. 추장이 어느 날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고, 우리를 위해 이렇게 애써서 수고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는 6년 전 당신들이 죽인 그 사람의 아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아우카 족은 감동을 받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p 113-
6주-(목)
찬송 : (새)199장, 177장
■ 레위기 8: 1-10:20 제사장 위임식 ☞ 줄거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에 계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 번째 길은 제사였습니다. 레위기 8-10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번째 길(제사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의 중보자로 제사장을 세워주셨습니다. 제사장이 없었다면 부정한 삶을 살던 백성들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나아오다가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백성들을 대신해서 제사를 담당할 제사장을 세워주셨습니다. 이러한 제사장은 우리의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8장에는 최초의 제사장 위임식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레위기 9장에는 위임을 받은 제사장이 첫 번째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0장에는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렸던 제사장들이 징계를 받은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지 않은 향불을 피우다가(레10:1) 불에 타죽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제사장들이 성령의 역사를 거스려서 자기 마음대로 제사를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직자들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만 예배를 인도해야 합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죽음이 주는 교훈(10:1-20)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10:1,2)
하늘의 불로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비극적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사를 드리러 나갔던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불에 타죽는 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나답과 아비후를 심판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성막 안에 향을 피우는 분향단의 불은 반드시 번제단의 불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7일간의 회막 집중 교육까지 받은 나답과 아비후는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규정을 가볍게 여기고 감히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로 하나님께 분향하였습니다. 누구보다 말씀에 대한 순종의 본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자신들의 생각을 앞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하게 여기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어쩌면 성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도와 소행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불을 내리사 그들을 징계 하셨습니다. 이성과 경험을 앞세워 말씀을 판단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피땀을 흘리며 자기를 부인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주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며 적은 일에도 전폭적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포도주와 독주에 취했기 때문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직후에 포도주나 독주를 금지하는 규례를 제정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8,9절). 이것은 그들의 죽음이 술과 관계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고 정하고 부정한 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분별력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제사장된 자는 하나님 앞에서 맡기신 직무를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쾌락을 삼가고, 자신을 절제하며 철저히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음주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만 것입니다. 사실, 이 실수는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시내 산에서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고(출 24:1,2), 금송아지 범죄사건(출 34장)에서도 아론과 함께 하나님의 크신 심판과 긍휼을 맛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당연히 크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직무에 최선을 다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자신을 훈련함이 부족했기에 마침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어버린 것입니다.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의 즐거움을 좇지 말고, 이 시대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 거룩하고 분별 력있는 삶을 살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기독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7, 1, 26-
살며 생각하며 : 삶의 벼랑 끝에서
1965년 세계적인 컨트리 포크 가수인 미국의 자니 캐시가 마약과 다름없는 신경안정제를 1천개 소지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인기와 부를 누렸으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처럼 평화와 기쁨을 잃고 방황하다 신경안정제를 괴용하게 된 것입니다.
마약복용과 방황, 허무와 불안 등으로 그의 인생은 흔들렸습니다. 그는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후 더 큰 사람의 벼랑에서 절망했습니다.
그러던 1971년 5월 어느 주일, 그는 남루한 인생을 마감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의 모든 어둠을 몰아냈던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인생의 내리막길이 내겐 구주를 만날 기회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천사를 만나 씨름한 것은 ‘홀로 있었을 때 였습니다./김상길(언론인)
-규장문화사/⌜지혜로 여는 아침2(지하철 사랑의 편지 모음)⌟ p30-
정리하며 확신하며 : 안식일 관련 기본 사항
구 분 |
안식일 기 본 사 항 |
참 고 성 경 귀 절 |
근 거 |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하시고 7일째 쉬심 |
창 2: 2, 3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심 |
신 5:15 |
|
최초언급 |
만나를 내리시던 때 |
출16:23 |
규 정 |
모든 일을 중지하고 쉼 |
출20:8-11 |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죽임을 당함 |
출31:15 |
|
목 적 |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언약의 표징 |
출31:13,17 |
변 천 |
구약 안식일의 폐지와 신약의 주일 신설 |
마12: 8;고전16: 2;골 2:16;계 1:10 |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2권, p450
6주-(금)
찬송 : (새)534장, 342장
■ 레위기 11: 1∼15:33 정결 규례 ☞ 줄거리 우리는 앞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두 가지 방법(제사와 제사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레위기 11-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세 번째 방법(거룩한 삶)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부정하게 되었을 때에는 속히 정결예식을 통해서 정결함을 회복해야만 했습니다. 레위기 11-15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며, 부정해졌을 때에 그것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 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1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식생활을 통해서 거룩을 유지할 수 있는지 가르쳐 주고 있고, 12장은 아이를 낳은 여인의 정결 규례가 기록되어 있으며, 13장은 문둥병를 진단하고 처리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고, 14장은 문둥병에 걸렸다가 나은 사람을 정결케 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5장에는 몸의 유출병으로 부정해졌던 사람을 정결케 하는 규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동행해야 했기 때문에, 삶의 모든 영역에서 부정을 멀리하고, 정결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온 영혼을 휘감는 죄악(레13:2/엡4:25-3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13:2)
성경에서는 나병을 죄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나병은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속성을 지닌 질병입니다. 그것은 작은 반점으로 시작하여 서서히 온 몸을 점령해 갑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습니다. 나병의 속성은 죄악의 속성을 그래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병에 대한 모든 규례를 보면서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자기 집에 덩굴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의 집 정원에는 덩굴나무가 괴물처럼 뻗어 있었습니다. 그가 그 나무를 심은 것은 아마 10년 전의 어느 봄날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정원에는 쓸 만한 나무나 꽃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는 빨리 자라 무성한 잎사귀로 그늘을 만드는 수종을 골라 심기로 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것이 바로 그 덩굴 나무였습니다.
처음 그 나무를 심었을 때의 설레임이란... 나무가 자라 그늘을 이루고 그 그늘 아래서 정겨운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의 그러한 기대들은 1년이 지나고 2년이 흐르면서 이루어져 갔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그 덩굴나무가 제공하는 휴식처를 만족해했으며 또한 그의 집을 찾는 손님들에게 하나의 자랑거리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심은 지 7.8년째부터 그 덩굴나무는 차츰 괴물로 불려 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덩굴나무가 자신의 영토인 정원을 떠나 그의 집 지붕 위에까지 그 마수를 뻗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나무는 생장 력이 대단했던 터라 삽시간에 기와로 된 지붕에 터를 잡고는 그때서야 그는 스스로 관리 소홀을 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지붕 쪽으로 향한 덩굴의 큰 줄기를 잘라내고 지붕을 수리해야만 했습니다. 그 일 후 그 덩굴나무의 생장에 계속적으로 깊은 주의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덩굴나무,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생명을 휘감아 끝내 괴멸시켜버리는 흉악한 죄와 같다 할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어릴 적에는 훌륭해 보이고 우리에게 평안과 만족을 제공해 주는 것 같았지만.... 기독 지혜사/ ⌜호크마 성경주석 구약 3권⌟‘큐티’란에서, p242-
살며 생각하며 : 엉겅퀴의 놀라운 번식력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상징으로, 호주로 이민 온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그곳에서 엉겅퀴를 볼 수 없는 안타깝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결국 스코틀랜드에서 엉겅퀴 씨앗을 들여오게 되었는데, 세관에서는 엉겅퀴가 농산물에 어떠한 해를 끼치는지 알지 못하고 그것을 그냥 통과시켜 주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세관을 통과한 엉겅퀴는 불과 수년 내에 호주 전역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호주 어디에서나 이 엉겅퀴를 볼 수 있게 되자 스코틀랜드인들은 향수를 달래며 흐믓해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발생하였습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엉겅퀴는 농사에 더 없는 적으로서 호주의 전체 농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호주 당국은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되었습니다. 즉 세관에서는 당연히 엉겅퀴를 철저히 검사하여 유입을 막았어야 했던 것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문등 병 환자를 진 밖에서 살도록 하여 전염을 막았듯이, 죄악도 격리하여 성도들 가운데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 들어온 죄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 법입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주석 2권⌟‘예화’에서, p678‘-
6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주제 :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가정(창6:5 22)
말씀 묵상 : 하나님의 비전을 품는 가정(창6:5-22)
비전은 가정을 하나로 만듭니다. 마음이 하나 되는 가정 안에는 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존재합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는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찬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은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실 정도로 악했습니다(5-6절).
☞ 하나님이 찾으시는 가정
아담의 타락 이후 세상에는 셋을 대표로 하는 하나님 중심의 문화와, 가인을 대표로 하는 인간 중심의 대조적인 문화가 존재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셋의 후예들이 점점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 중심의 문화에 잠식당해 갔다는 것입니다(6:2). 세상은 주인 없는 무법천지였고 썩을대로 썩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8절에서의 ‘그러나’라는 접속사와 함께 반전을 이루는 인물의 소개입니다. 본문은 의인이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완전한 자(9절)인 노아를 소개하고, 그를 본받는 세 아들을 소개합니다.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주목하고 계셨습니다. 노아가 사는 시대의 모습은 현대사회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노아의 가정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을 찾고 계십니다.
☞ 하나님이 쓰시는 가정
하나님은 당신을 떠난 사람들과 피조물들을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노아와 함께 나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계획과 비전을 나누어 주십니다. 노아의 가정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초대하신 것입니다. 심판 계획과 함께 하나님은 한 가지를 더 계획하셨습니다. 그것은 방주로 노아의 가정을 구원하시겠다는 구원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가정과 언약을 체결하십니다. 그것은 생명을 보존해 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비전과 계획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함께 품고 연합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드리는 가정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볼 수 있습니다(창 7:7).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당신의 비전을 함께 나눌 가정을 찾고 계십니다.-묵상하는 사람들, 2007. 5. 2
살며 생각하며 : 신앙의 명문가
중국 근대사를 움직인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의 삶을 그린 ‘송가황조’라는 영화가 있다. 세 자매의 아버지는 송가희로 목사다. 명문가로 키워낸 송가희의 교육방법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배우고 싶어 한다. 송가희는 어려서 미국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였는데, 거기서 기독교인이 되어 목사 안수를 받고 중국으로 귀국하게 된다. 중국으로 돌아온 송가희는 한편으로는 사업을 해 돈을 벌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쇄소를 차려 성경을 출판하여 복음을 전했다. 그 때 친구면서 사위가 될 손문을 만나게 되는데, 손문 역시 기독교인이었다. 송가희는 결혼을 해 세 딸을 낳게 되는데, 세 딸을 서양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미션스쿨에 보내 공부를 시킨다. 그러다 세 딸 모두 미국에 보내 공부를 시키는데 그것은 큰 세상을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와서 훌륭한 일꾼이 되었으면 하는 그의 비전을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세 딸은 아버지의 뜻대로 믿음 안에서 잘 자라서 큰 딸 송애령은 중국 최고의 부자인 공상희와 결혼을 했고, 둘째 딸 송경령은 중국 혁명의 아버지라는 손문과 결혼을 했으며, 막내딸인 송미령은 후에 중국 국민당 총재가 된 장개석과 결혼했다. 한 집안에서 2명의 퍼스트레이디를 배출한 것이다. 돈과 나라, 권력이 세 자매와 연결되면서 세 자매는 중국을 이끌어가는 실질적인 인물이 되었다.
그런데 세 자매의 성공적 삶 뒤에는 아버지 송가희 목사로부터 배운 신앙이 있었다. 막내딸인 송미령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송미령이 살았던 ‘메이링 궁’을 가보면 2층 거실 중앙 벽에 예수님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그 아래 성경책이 놓여 있다. 남편인 장개석과 송미령은 그 거실에서 늘 기도를 했다고 한다. 송미령이 결혼을 할 때 장개석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는데, 결혼조건으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개석은 기독교인이 되었다.
신앙의 명문가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철저한 신앙교육과 커다란 비전이 어우러질 때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도 신앙의 명문가가 있다.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가문이다. 5대 째 믿음을 이어오고 있는 김승규 전 국정원장의 가족들은 연말이나 새해 초가 되면 온 가족이 모여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데, 특히 연말에는 한 해 동안 신·구약 성경을 통독한 가족에게 선물을 주고 특별 찬양과 연주의 시간을 갖는다. 온 가족들이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가정에서 가족예배를 드리는 것은 오랜 신앙의 전통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가족들의 영혼을 키우는 젖줄이 되어 8남매 모두 훌륭하게 자라났다. 장남 김홍규 장로(전 순천매산고 교장), 차남 김병규 장로(명보 회장), 3남 김성규 장로(유성T&G 회장), 4남 김명규 장로(전 국회의원), 5남 김승규 장로(전 국정원 원장)는 모두 다 사회의 훌륭한 일꾼들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신앙의 명문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대에 걸쳐 신앙의 계승이 이루어지고 거룩한 비전을 품고 하나님의 사람답게 구별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신앙의 명문가가 되는 것이다. 신앙의 명문가야 말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증거요, 하나님이 함께 하신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돌아보며 다짐하며 : 포기하지 말라
윈스턴 처칠은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정치가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중학교 때 3년이나 진급을 못했습지다. 영어에 늘 낙제점을 받은 때문이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포병학교에, 그것도 명문의 자제라는 특전 때문에 입학이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먼 훗날 옥스퍼드대학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칠은 우레같은 박수를 받아가며 위엄있게 연단에 걸어 나와서 천천히 모자를 벗어놓고 청중을 바라보았습니다. 청중은 숨소리를 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습니다.
"포기하지 말라(DON'T GIVE UP)"
이것이 그의 첫마디였습니다. 그러고는 처칠은 천천히 청중석을 둘러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조용히 그이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처질은 목청을 가다듬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포기하지 말라!" 그러고는 그는 위엄으로 가득찬 동작으로 연단을 걸어나갔습니다.
1914년 겨울밤 에디슨의 공장에 불이 타버렸습니다. 그의 필생의 노력의 결과가 완전히 없어진 것입니다. 화재소식을 듣고 달려온 에디슨은 바람을 타고 퍼저 나가는 화염을 방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에디슨의 나이 67세였다. 그것은 에디슨에게는 재기 불능의 재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잿더미로 변한 공장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저지른 모든 시행착오며 실패들이 완전히 타 버리고 없어졌다 이제 우리는 그런 실패들을 거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3주일 후에 에디슨의 공장은 첫 축음기를 생산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저는 제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의 절반도 성취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뭔가 저에게 힘이 되는 말씀을 해주세요."
신부는 한참 동안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이여, 뉴욕 타임즈의 1970년판 연감의 9백30페이지를 펴보아라. 그러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 말을 듣고 그는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그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그 기사는 미국의 야구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라는 타이콥의 연간 타율이 3할 6푼7리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신부한테 돌아와서 물었습니다.
"타이콥의 타율이 0.367 이었다는 기사밖에는 없던데요?"
"바로 그것이다. 그처럼 훌륭한 선수도 세 번 타석에 서서 한 번밖에는 안타를 치지 못했단다."
1980년 2월 어느 날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런 공익광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다면 이런 사나이를 생각해보라. 그는 초등학교를 중도 퇴학했다. 그는 시골에서 잡화점을 경영하다 파산했다. 그 빚을 갚는 데 15년이나 걸렸다. 그의 결혼생활은 매우 불행한 것이었다. 그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다.....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두 번이나 낙선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늘 A 링컨이라고 서명했다."
직장을 잃을 사람, 일거리를 잃은 사람, 홍수 속에 재산을 잃은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들입니다. ‘홍사중(조선일보 98년 8월 18일 5쪽 논설고문) -‘좋은 생각’ 에서--
: 오늘의 기도 : 가정을 위한 기도
우리에게 천국과 같은 가정을 주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이 땅의 가정들이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사랑과 격려, 그리고 안식이 있어야 할 가정에 미움과 갈등의 상처들이 가득합니다.
주님이시여, 우리의 가정이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하나 되길 원합니다. 아버지가 가정에 헌신하게 하시고 어머니는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게 하소서. 자녀들이 거친 세파에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소서. 그리하여 튼튼한 믿음의 뿌리를 갖고 신앙의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소서. 부모들이 눈물의 기도로 씨를 뿌리며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소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소망을 통해 하늘 복락을 충만하게 누리는 복된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물댄 동산과 같은 가정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예문-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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