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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0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3. 07:45

 

10주-(월)

찬송 :(새)405장, 458장

신명기 15: 1-19:21 시민법

15-16장 절기들

17장 왕의 규례

18장 참 선지자

19장 도피성

☞ 줄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들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에 세 번씩(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예루살렘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절기는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 중심으로 연합되게 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7년마다 안식년을 지키면서 형제들의 빚을 탕감해 주도록 요청받았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기적으로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시민법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재판장은 뇌물 받는 일이 금지되었고, 공의로 재판할 것이 요청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일을 금하셨습니다. 통치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따라 선출해야 했으며, 율법의 원리를 따라 이스라엘을 통치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위인을 구별하여 성소의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은 실수로 살인한 사람들이 보복을 당하지 않도록, 그들이 피할 수 있는 도피성 제도를 제정해 주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도피성(19:13)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 가운데서 세 성읍을 너를 위하여 구별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 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19:2-3)

사람이 살면서 부지중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이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쉽게 희생당할 수 있기에 무모한 피 흘림과 보복의 악순환을 막기 위하여 하나님은 도피성을 마련하게 하였습니다.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전역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여 살인자가 그리로 쉽사리 도피할 수 있게 하였고, 정당한 재판을 받아 그 무죄함이 드러나기까지 복수하려는 사람들로부터 안전하게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도피성의 제정은 생명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중한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본보기입니다. 비록 우연히 이웃을 죽였다 해도 그는 장기간에 걸쳐 많은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신문에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둘도 없는 것이며, 다른 모든 것 보다 높이 평가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부지중에 범한 살인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인을 한 자가 도피성으로 피할 경우에는 하나님의 백성 중에서 제해 버려야 합니다. “사람이 … 미워하여 … 엎드려 기다리다가 … 죽게 하고”(11)라는 말은 인간의 죄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미움으로 시작하여 살인이라는 잔인한 행동으로 끝을 맺는 인간의 흉칙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시작한 죄는 이처럼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파괴적인 힘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죄를 범하는 자를 결단코 긍휼히 보지 말고 어떤 식으로든 죄를 처리하여 그 잔인한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사회가 인간생명의 유일무이한 가치를 인식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속에서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대하려고 하는 부분은 없습니까? 사랑은 모든 죄를 덮습니다(벧전 4:8).

-학생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2003. 07. 07-

살며 생각하며 :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용서는 망각이 아닙니다. 깊은 상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지만 용서는 상처의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며 망각은 용서의 부산물이지 필수적인 결과물은 아닙니다.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용서는 가해자에 대한 복수를 의도하지 않고 상대를 용서할 수 있으나 가해자의 행동이 바뀌지 않는 한 화해란 어려운 것입니다. 화해는 용서의 결과일 뿐입니다.

용서는 사면이 아닙니다. 용서는 사면의 권리가 없음을 인정하고 무조건으로 다른 사람의 잘못을 덮어주겠다는 의도적인 결정입니다.

용서는 행동이며 선택입니다. 사람은 어떻게 느끼는지는 통제할 수 없으나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하여서는 통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마음의 쓴 뿌리는 독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미워하는 상대를 닮아가게 되고 자신조차 미워하게 됩니다. 용서하지 못하면 가장 큰 피해는 자신이 받습니다.

세상엔 용서하지 못한 사람도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용서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김필곤 목사(열린 교회 담임목사/「열린 편지」-

10주-(화)

찬송 :(새)310장, 410장

신명기 20: 1-25:19 사회법

20장 평화 규정

21-22장 가정에서의 성결

23-25장 약자 보호

☞ 줄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인권을 존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전쟁할 때에도 다른 백성들의 인권을 존중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범인이 확인되지 않은 미결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외국인 포로들의 인권을 존중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선을 행하고, 성적으로 순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을 유지하기 위해서 종교, 윤리적으로 부패한 민족들이 총회에 참여하는 일을 금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끗한 제물을 드리라고 명하셨으며, 특히 약자들을 보호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법을 집행할 때에 인권을 존중하고, 공정히 법을 집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모세는 구체적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만일 …할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는 형식을 사용해서 여러 가지 자세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다른 이들을 위한 배려(신24:19-22)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신24:19) .

 

‘곡물을 추수할 때나 과일을 수확할 때 모조리 거두어들이지 말고 조금씩 남겨두어 가난한 자의 생계가 되게 하라.‘ 하나님은 이 명령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난한 이웃들에게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관심을 가지게 하여 사랑과 긍휼을 베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들이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자각토록 하셨던 것입니다.

위와 같은 본문을 대할 때 우리는 정녕 각박하지 않은 훈훈한 정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본문의 명령을 들을 때, 어떤 이는 이렇게 말 할런지 모릅니다

“전 농부가 아닙니다. 때문에 추수에 관하여 아는 바가 없고, 감람나무는 이 추운 나라에서는 자라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포도를 재배하는 인구가 얼마가 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는 오직 자신과 자신의 가족의 행복만을 추구하며 매정하게 살아가는 오늘 우리 현대인이 흔히 말해 버릴 수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셨던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도 나그네나 과부나 고아에게 본문의 교훈대로 행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와 같이 곤고하고 궁핍한 자들 모두에게 힘과 평안과 기쁨을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일을 행할 수 있습니까? 어쩌면 하나님의 이 같은 명령 앞에 우리 모두는 자심의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지폐, 또는 동전의 수를 계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들 중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자라 할지라도 힘과 평안과 기쁨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줄 수 있는 여유와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충분히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디 많은 돈이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첨단을 걷는 과학이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명예와 권력입니까? 아닙니다.,그 모든 것들은 진정한 의미의 힘과 평안과 기쁨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한 말, 사랑이 가득 찬 부드러운 손길은 곤고하고 궁핍한 자들에게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선사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인생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병든 자, 힘없는 자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소외된 자, 천대 받는 자, 악한 죄인들과 더불어 식탁에 마주 앉는 사랑의 행위를 통해 굳어버렸던 그들 심령들을 뜨거운 사랑의 도가니로 변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선한 말과 부드럽고 자상한 희생과 봉사의 손길인 것입니다. 진정 우리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향한 한 마디의 부드러운 말, 따뜻한 한 조각 사랑의 실천이 그들의 마음에 힘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반면, 가 행복한 사람은 자신을 잊고 남을 위해 사는 사람, 자기 소유의 일부분에 타인의 권리를 인정해 주는 사람일 것입니다 (Moorehouse)

-기독 지혜사 / 「호크마 종합 주석 구약 6권,」‘QT’에서, p388-

살며 생각하며 : 진짜 비저너리(visionary)-성 프랜시스의 삶>

13세기 사랑의 성자 성 프랜시스는 당대의 재벌 2세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공허를 느끼고 홀로 말을 타고 교외로 나갔습니다. 말을 달리던 중, 그는 온 몸이 문드러져 소름끼치게 생긴 문둥병자를 만났습니다. 신비한 감동에 이끌려 그는 말에서 내려 돈을 주고 문둥병자의 손에 입을 맞췄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에 올라타 가다가 왠지 뒤를 돌아보고 싶었습니다. 멀리서 돌아보니 거기에 문둥병자는 없었고 예수님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맹렬히 낮은 자와 함께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가 십자군 전투에서 돌아오는 한 노병을 만났습니다. 노병은 누더기 옷을 입고 쓸쓸히 빼빼 마른 말을 끌고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찬바람이 불자 노병이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그 모습에 너무 안쓰러워 프랜시스는 자기의 망토를 그에게 씌워주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예수님이 그가 벗어준 망토를 입고 나타나셨습니다.

가장 더러운 모습은 남을 더럽게 보고 내치는 모습이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남을 아름답게 보고 껴안는 모습입니다. 약자에게 가까워질수록 전능자에게 가까워집니다. 큰 사람을 기쁘게 대접하는 것은 작은 대접이고, 작은 사람을 기쁘게 대접하는 것은 큰 대접입니다. 저 낮은 곳에 민감해질수록 저 높은 곳에 민첩해집니다.

약자를 얕보는 자는 최대의 약자이고, 장애자를 멸시하는 자는 최대의 장애자입니다. 공허는 무관심의 열매입니다. 약자는 하나님이 우리의 공허한 삶을 채우려 보낸 사랑의 편지입니다. 큰 자를 찾는 자는 작은 자이고 작은 자를 찾는 자는 큰 자입니다. 큰 사람은 내게 주어진 작은 선물이고, 작은 사람은 내게 주어진 큰 선물입니다.

부를 가짐이 행복이 아니라 부를 나눔이 행복입니다. 내 것을 나눌 사랑의 대상이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사랑의 대상인 하와가 생긴 때부터 아담의 행복은 시작되었습니다. 행복은 나눌 줄 아는 철든 인생에게 주어집니다. 주는 재미가 최고의 재미입니다. 받는 가치관은 ‘상처의 어머니’이지만, 주는 가치관은 ‘행복의 어머니’입니다.

기복주의와 이기주의는 있던 복까지 앗아갑니다. 복은 병자에게 소망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자에게 벗이 되어 주고, 살맛을 잃은 자에게 살맛을 줄 때 옵니다. 약자에게 민첩하게 다가갈 때 복은 바람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있는 사람을 찾아 나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기대하는 것’보다 ‘없는 사람을 찾아 그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대기하는 것’이 행복의 씨앗입니다. 남의 부족을 신나게 채우려 할 때 나의 부족은 신비하게 채워질 것입니다. 자기 응석을 받아달라는 이기심의 껍질을 깰 때 하늘의 열린 문이 보일 것입니다. 진짜 비저너리(visionary)는 미래를 환히 내다보는 자가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 동참해 하늘을 맛보는 자입니다.

-‘이한규(분당샛별교회 담임목사)의 사랑의 컬럼’에서-

 

10주(수)

찬송 : (새)455장, 507장

■ 신명기 26: 1-28:68 언약에의 헌신

26장 인간관계의 성결

27장 예식들

28장 약속된 축복

☞ 줄거리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결케 한 후에 그들에게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대해 새롭게 헌신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소산을 거두게 되면, 첫 열매와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또 그들은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서서 언약을 갱신하는 예식을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예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가 율법 준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게 하기 위한 중요한 예식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예식을 통해서 율법을 지키면 축복이 임하고, 율법을 어기면 저주가 있을 것을 명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모세는 율법을 지키는 자에게 임할 축복과 불순종했을 때에 임할 저주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모세는 이러한 일을 통해서 율법에 순종하는 것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성경이 말하는 축복(28:1-14)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 28:2)

본문은 모압 평지에서 언약을 갱신하는 동안 모세가 선포한 축복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스라엘이 여기에 기록된 풍성한 복을 받는 비결은 오직 말씀을 삼가 듣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1). 2절과 8절은 이렇게 할 때 축복이 그들에게 임하여 미치려고 준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처럼 복은 사람이 추구해서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으로 복이 사람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 순종에 따르는 구체적인 복을 살펴보면, 이스라엘은 어디서나 복을 받고(3), 무엇이나 복을 받으며(4-5), 언제든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6). 또한, 대적에 대해 승리를 얻게 되고(7),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여호와의 성민임이 만민에게 알려져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8-10).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차고 넘치는 그 같은 축복을 다른 민족들에게 나누어주고(12), 앞서서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민족이 되리라는 것입니다(13). 이처럼 복의 근원이 되고 복의 전수자가 되는 것이 이스라엘이 받은 원래 소명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소명의 성취는 온전히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14).

오늘날 신자들에게 흔히 축복 장으로 알려져 있는 오늘 본문은 잘못 이해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먼저는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여기에 나타나는 축복은 이스라엘 민족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그 결과 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을 나누어주고 의의 길로 인도하는 방편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곧 축복은 영적 이스라엘인 교회로 하여금 지상명령을 성취할 수 있도록 허락된 도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망각한 이기적인 축복 추구는 바알 신앙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순종과 축복의 관계설정에 대한 잘못입니다. 사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복 자체이신 하나님을 모시는 삶의 방식입니다. 왜냐하면, 복이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어떤 유익의 단계를 넘어 바로 하나님 자신이 복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은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복이 되어 주신 데 대한 감사이자,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의무입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축복은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GTM /「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2006, 07, 24-

살며 생각하며 : 축복의 어머니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 소알론 박사 부부가 솔래교회 전도를 지원키로 마음을 정하고 마을 유지를 초청했습니다. 선교사 부부는 안방에 놓여 있는 요강을 아주 귀하고 큰 밥그릇으로 생각했습니다. 부부는 놋요강 다섯 개를 빌려와 깨끗이 씻어, 그 속에 흰 쌀밥을 가득 담았습니다. 전직 대감의 부인 안성은 씨도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안 씨는 선교사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받아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온갖 핍박을 받으며 황해도 서해안 일대를 전도했습니다. 안씨는 2남 4녀를 두었는데 큰아들 김윤방은 솔래교회 초대 장로가 되었고, 둘째아들은 한국 최초의 외과 의사가 되었습니다. 셋째 딸은 김규식 박사와 결혼했습니다.

안성은 권사는 솔래교회의 증인이요, 장한 어머니요, 황해도 서해안의 전도자요, 한국 교회사에 빛나는 복받은 여인이 됐습니다.

복음이 평범한 한 여인을 특출한 여인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복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장자옥 목사,인천 간석제일교회) -한태환 목사/「설교 예화 자료 집,복」-

1. 신 28:30-33. 하나님께 순종할 때는 모든 열방의 머리가 되었던 이스라엘이 불순종할 때 당하게 된 비참한 상황을 보라.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매일 매일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중 당신이 순종하기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왕상3:14;

10주-(목)

찬송 :(새)395장, 450장

신명기 29: 1-31:29 언약을 맺는 백성

29장 언약의 조건

30장 민족의 헌신

31장 후계자

☞ 줄거리

모세는 죽기 전에 광야에서 태어난 새로운 세대들에게 다시 한번 율법을 요약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다시 하나님 앞에서 언약에 헌신하게 했습니다. 그때에 모세는 이 언약이 그들 뿐 아니라, 앞으로 태어날 이스라엘 후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도 역시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여 심판을 받는 경우에, 그들이 회개하면 다시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날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그 후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담당했던 일을 마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대신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도록 지시 하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어려운 것도 아니오 먼 것도 아니니(신30:1-20)

“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것이 아니요”(30:11,12)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어려워하고 지켜 행하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쉽고도 우리 가까이에 있는 가를 가르쳐 줍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어떠합니까?

본문은 하나님의 계명이 우리에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11). 율법은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거나, 놀라운 것이 아니며, 너무 어려워서 그 도를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에게 밝히 계시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쉽게 깨닫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인간의 심령이 너무 완악하여 상대적으로 말씀을 깨닫기가 어려울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함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하고 가난한 심령을 가져야 하며, 또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지식이나 인간의 지혜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25).

우리가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운다면 “송이 꿀 보다 더 달다”는 다윗의 고백대로 말씀을 깨닫는 기쁨과 환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의 명령은 하늘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바다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말씀합니다(12,13).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닿을 수 없을 만큼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 가까이 있어 우리 현실의 삶에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교훈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계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법도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인 지침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준행하기에 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결코 인간이 지키기에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요일5:3).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 위나 바다 건너에 있는 초월적인 메시지가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쉽고 구체적으로 적용될 살아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믿음으로 기쁘게 말씀을 청종하는 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삶 속에서 살아 있는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 다윗이 누렸던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기독대학인회,ESF /「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5. 04. 11-

살며 생각하며 : 성경을 읽는 자세

성경은 일반 서적과는 달라서 기도하고 읽으며 성령의 조명하심이 필요하며 읽는 자세도 다릅니다. 성경을 읽으면 졸리다는 사람은 제일 좋은 시간에 연속극 보고 신문 보다가 할 일 없으면 성경 읽으려고 하니 그 때는 피곤하여 졸릴 때이므로 책을 펴면 졸리게 되어 있습니다. 좋은 시간을 성경 읽는데 써야 합니다.

1. 성경은 높이 읽어야 합니다. / 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2. 성경은 깊이 읽어야 합니다. / 이는 한 번 정도 읽고 치워버릴 책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계속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성경은 넓게 읽어야 합니다. / 성경의 일부분만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게 되면 성경의 참 뜻을 모르고 과오를 범하게 되므로 성경 전체를 읽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영의 양식이라 함은 먹고 힘을 내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음식을 매일 먹어야 하듯 성경도 매일 읽어야 합니다.

아무리 미련한 사람이라도 쌀 한말을 밥해서 한번에 먹고 일주일을 굶지는 않는데, 젊은이들은 매일매일 읽는다는 것은 힘들어하며 밤 새워 읽은 후 한 달은 쉬고 하는 식입니다. 그날그날의 양식과 사랑으로 살듯이 매일 성경을 읽는 노력과 그 말씀대로 살려는 각오가 필요합니다.

(요한복음 5:30)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 195-

 

축복과 약속

참 고 성 경 귀 절

1

하늘에서 회개 기도를 들으심

대하 7:14

2

긍휼히 여기심

신 13:17

3

죄사함을 얻게 하심

막 1:7

4

구원을 주심

사 59:20

5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심

신 30:3, 4

6

그를 다시 기뻐하심

신 30:10

7

새 역사 새 인생을 사작하게 해 주심

고후 5:17

8

모든 상처를 치유하심

호 6:1

9

다시 범죄치 않게 하심

히 6: 6

10

원수들의 공격에서 보호하심

신 30:7

11

진리를 알게 하심

딤후 2:15

12

하나님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 더욱 풍성하게 하심

욥 42:5

13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심

겔 18:31

14

성령을 주심

행 2:38,39

15

모든 일에 선을 이루게 하심

롬 8:28

16

천사들의 기쁨이 되게 하심

눅 15: 7,10

17

과거 잘못을 기억조차 않으심

사 43:25

18

영생의 소망을 더욱 강하게 하심

· 요일 5:13

정리하며 확신하며 : 회개에 따른 축복과 약속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3권, p846

10주-(금)

찬송 :(새)333장, 381장

■ 신명기 31:30-34:12(참고:시 90) 모세의 마지막 노래

32장 마지막 노래

33장 축복

34장 죽음

☞ 줄거리

모세는 성령을 통해서 장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할 것이며, 이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때에 이스라엘이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미리 노래를 지어 기록했습니다. 이 노래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하여 범죄한 경우에 그들이 당할 재앙에 대한 예언이었으며, 또한 범죄한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노래를 읽으면서 자신들이 죄로 인해 징계를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이 노래를 지어서 기록한 후에, 이스라엘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12지파에게 예언적인 축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갈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때에 모세의 안수를 받은 여호수아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게 임합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죽음의 고독 앞에서 (신 34:1-8)

“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34:4,5)

모세는 자기가 죽을 곳인 느보산 정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한 발걸음을 내딛으며 위로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그가 느보산 봉우리를 향해 천천히 올라갈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물어린 눈으로 모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에 연연하지 않고 계속하여 위를 향해 발을 내디뎠습니다. 실로 모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토록 알지 못하는 거룩한 곳으로 모세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힘겹게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 모세의 마음에 어떤 생각들이 밀려오고 있었을까요?

정녕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기 때부터 그들을 돌보아 왔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온갖 비난과 불평을 퍼부을 때도 묵묵히 견디며 그들 옆에 있어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생명처럼 사랑했던 그들 백성을 남겨두고 떠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40년의 광야생활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든 시련을 인내로, 사랑으로 감수해 왔는데 지금에 와서 그들과 헤어져야 하다니…. 진정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그를 괴롭게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을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등 뒤에 남겨두고 자기만 홀로 죽음의 길로 떠나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의 모세는 얼마나 깊고 뼈저린 고독을 느꼈겠습니까? 눈에 익숙해 있던 모든 것과 작별하고 홀로 생의 저편에 있는 낯선 곳으로 떠나가야만 했던 모세…. 이러한 고독의 주인공이 비단 모세뿐이겠는가? 확신하건데 누구든지 죽음을 앞에 두고는 한번쯤은 이처럼 뼈저린 고독을 체험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느보산에 오르는 모세가 철두철미하게 경험했던 바로 그 고독을 준비하며 또한 그 같은 고독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처럼 고독한 죽음의 시간 앞에서 결단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기억하며 죽음 저 너머에 있는 신비한 하늘나라에로 조용히 눈을 돌려야할 것입니다. 평화와 소망의 마음으로….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5권」QT, p564-

살며 생각하며 : 사랑은 함께 있고 싶은 것

☞ 서재에서 설교 준비를 하려고 문을 닫고 성경을 읽으며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전화도 받지 않는 시간인데도 딸애가 슬며시 들어왔습니다. 냉정하게 “무슨 일이니?” 물었더니

“아빠, 용건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고 싶어서요.”

☞ 수영이는 여자를 사귀게 되어 연인관계가 되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만나다 보니까 공부가 뒤쳐져 새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애인이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니?” 물었더니, “오빠,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함께 있고 싶어서지!”

☞ 신혼인 광래는 아내 신옥이가 몸살이 난듯하여 쉬도록 하고 자신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보도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아내가 옆으로 왔습니다. “안 아파?” 물었더니, “아니, 그냥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면 나을 것 같아.” ‘함께 있다’는 것은 창조의 섭리로서 하나님은 아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하와를 창조하여 ‘함께’있게 했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며, 예수님의 제자 선택 이유도 “함께 있게 하시기”위함이 있습니다.

인간은 고독하면 힘들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면 힘이 되고 위로도 되기에 그런 사람이 그대에게 있다면 복입니다. 예수님은 2-3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곳에 함께 있겠다 했습니다. (마가복음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 326-

10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주제 : 축복받은 자의 가정(시128:1-6)

말씀 묵상 : 축복받은 가정(시편 128편1- 6 )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말이 유명무실하게 느껴지는 세상이지만 계시록 말씀은 거듭하여 진리가 승리하고 악은 반드시 멸망함을 말씀합니다. 마지막 대접 재앙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 수고의 열매를 먹으며 복되고 형통하게 삽니다

노동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수고의 열매를 먹게 하신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람이 남을 의지하거나 남의 수고로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동을 하여 얻은 결과로서 사는 것이 복되고 형통한 모습입니다(2절). 그러나 사람이 수고한대로 열매를 맺고 복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수고하고 애를 써도 허망하게 날아 가버릴 때도 있습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려서 애지중지하게 키운 농작물이 태풍이나 폭설로 완전히 망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잠을 자지 않고 쉬지 못하고 열심히 준비한 것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이 수고의 열매를 충분히 얻어서 먹고 사는 것이 우연히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너무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으로 행하는 자의 삶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십니다. 그래서 복되고 형통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잘되고 형통한 것은 잘 된 것이 아니며, 언젠가 허망하게 없어질 것들입니다. 복된 가정을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 충실한 열매와 같은 가정을 이루며 행복하게 삽니다

복된 가정의 모습은 아내와 자식들을 주목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집 내실에 있는 아내의 모습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고, 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고 말합니다(3절).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는 것은 많은 자녀를 낳고 훌륭하게 길러낸 것을 뜻하며,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와 같다는 것은 어린 감람나무처럼 활기차게 자라가는 모습을 나타내줍니다. 이것은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본 것이 아니라 대표성을 두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누릴 행복은 부부와 자녀들에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복을 누려야 국가와 후손들이 잘 되는 것입니다(5, 6절).

가정에서 아내가 결실하지 못하고, 자식들이 활기차게 미래를 준비해가지 못할 때 가정의 행복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된 가정은 먼저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하고, 그 다음에 자식들이 잘 자라가도록 가정의 토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이런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에 이런 지혜를 주십니다. 축복받은 가정의 첫 번째 특징은 하나님을 잘 섬긴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정하시길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 일용한 양식- 2008. 10. 16

생각하며 살며 : 두 가정의 후손 비교

미국의 초기 청교도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람 중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신앙적인 여인과 결혼해서 신혼 초기부터 철저하게 기독교적 원리에 입각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형성해 갔습니다.

같은 때에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같이 자란 동네친구였던 맥스 쥬크는 신앙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방탕했던 여인과 결합하여 나중에 자신도 신앙을 저버려 그의 사람됨이 점차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두 사람의 가계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의 후손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드워드는 오늘날까지 617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대학의 총장을 지냈던 사람이 12명, 교수가 75명, 의사가 60명, 성직자가 100명,군대 장교가75명, 저술가가 80명, 변호사가 100명, 판사가 30명 공무원이 80명, 하원의원이 3명, 상원의원이 1명, 미국 부통령을 1명 배출했습니다.

맥스 쥬크는 1,292명의 후손을 두었는데 유아로 사망한 사람이 309명, 직업적인 거지가 310명, 불구자가440명, 매춘부가 50명, 도둑이 60명, 살인자가 70명,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이 53명이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예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성이 풍부한 가정과 그리스도가 떠나버린 가정과의 차이를 여실히 볼 수 있는 좋은 예입니다. 당신의 가정에도 영성을 회복하십시오. 신앙적인 원리가 당신의 가정에서부터 실천되도록 하십시오.

당신의 가정은 어떻습니까?

당신의 가정은 깨끗합니까?

그리고 가족 모두가 한결 같이 하나님의 사랑하십니까? 또한 늘 영성이 넘쳐 찬양과 기도가 끊이지 않습니까?

 

돌아보며 다짐하며 : 생존과 사명

이 세상에는 생존으로 사는 사람이 있고 사명으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1. 생존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일을 '먹고 살기 위해서'하는 사람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집에서 살까? 무슨 차를 탈까?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할까? 온통 어떻게 먹고 살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생존'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일이 무슨 일이든지 그것은 '생존'을 위한 일입니다. 만약 목사님이 그런 말을 했다면 목회는 '생존'을 위한 직업에 불과 하겠지요?

그러나 성경은 '생존'은 인간이 고민해야 될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주시는 일이라고 합니다.(마6:19-34)

2. 사명으로 사는 사람은 모든 일을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내가 굶어 죽는 한이 있어도 이 일을 하겠다며 누군가가 아무리 말리고 방해를 하고 고통을 주고 조롱하고 비웃어도 오히려 더욱 그 일을 가열하게 하고야 마는 사람은 '사명'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지"라고 생각한다면 그 일이 무슨 일이든지 그것은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에 '사명'을 이루라고 보내셨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사명이 아니라, 하기 싫어도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그 일이 사명입니다.

만약 나의 어린 자식들이 해야 될 공부는 안하고 "뭘 먹고 살까, 뭘 입고 살까." 걱정하고 있다면 부모인 저는 속이 터질 것입니다. "야! 그런 것은 아빠가 책임질 일이지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너는 지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때라고!" ⓒ최용우

-‘최용우의 햇빛 같은 이야기‘에서-(2008.9.27 3328쪽)

오늘의 기도 : 가정을 위한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정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바쁘다는 핑계로 가정의 소중함을 잊고 살았는데, 회개합니다.

시편 128편의 말씀대로 저의 가정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과 복이 넘치는 가정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가정을 주님 앞에 내놓고 주의 통치를 기다립니다. 우리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우리의 가정이 참 안식의 터전이 되게 하시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며, 주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식구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에게 더 높은 삶의 목표를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섬김의 거룩한 목표를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에 가득 채워진 이 향기의 근원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 주님을 자랑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가정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