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주 (월) 찬송 :(새)463장, 518장 읽으며 묵상하며 : 부르심을 받은 대로 살라(고전 7:17~24)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7:23,24)
그대로 있으라 (7:17~20) 종말론적 사상이 팽배했던 당시,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해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부르심 받은 그대로 살 것을 권면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심할 당시 할례 받은 자였다면 할례의 표시를 굳이 지우지 말며, 할례 받지 않은 상태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굳이 할례를 받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이 할례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할례가 하나의 경건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심이 가져오는 각 개인의 영적인 변화는 급격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외부적인 할례의 유무나 이와 유사한 신체의 일부의 제거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비교할 때 너무나 하잘것없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믿게 되었든, 이방인으로 믿게 되었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신앙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느냐 가 중요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며 삽니다. 나는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자유자이며 종인 이중적 신분 (7:21~24) 바울은 종 된 자에게 자신의 신분으로 고민하지 말 것을 권면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해서 외부적인 상황이나 신분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지위가 변화되었다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걱정하지 말 것을 바울은 당부합니다. 비록 외적인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신분이 바뀜으로써 모든 상황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인 신분의 지위고하를 떠나 그리스도인은 “주께 속한 자유자”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종”이란 이중적 신분을 갖게 됩니다. 주어진 상황과 신분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이 속한 집단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새로운 본질을 영향력 있게 나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 나는 부르심을 받는 자리에서 “주께 속한 자유자”임과 동시에 .. “그리스도의 종”으로 충실히 섬기고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2004. 06. 06- 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의 선물에 감사 1875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한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글자보다 악보를 먼저 배웠다는 그는 열 살 때 빈 음악원에서 금메달을 받고 열두 살 때 로마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가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입니다. 크라이슬러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후 사람들이 그의 재능을 부러워하고 칭찬할 때마다 그 영광과 명성을 자신이 취하지 않고 이렇게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된 것은 제 능력보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름답게 노래하는 새들이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것을 보셨나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음악을 제 명예를 위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영광을 자신이 취하고 하나님 위에 서서 교만해 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므로 충이 먹어 죽었고, 교만했던 나발은 몸이 굳어 죽었으며, 제사장이 분향할 수 있는 성전에 들어간 웃시야 왕은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잘 하신 일이 있습니까가? 영광 받을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 있습니까?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96- 46주 (화) 찬송 :(새)545장, 340장 읽으며 묵상하며 : 우리의 거울(고린도전서 10: 1~13)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조심하라(10:12)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 불신앙의 자리로 떨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시간 이스라엘 조상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을 삼을 뿐 아니라 경계함으로 역사적 교훈을 삼아야겠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특혜를 누린 자들이었습니다. 이 특혜를 다섯 가지로 말해 줍니다. 구름 아래 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았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 홍해를 기적적으로 건넜고, 위대한 스승인 모세와 연합하여 세례도 받았고,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신 만나와 메추라기도 먹었고, 반석에서 생수를 마시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축복을 받았음에도 추악한 죄악에 빠짐으로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조상들이 범한 첫 번째 죄악은 우상숭배입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화려한 금송아지를 만들어 따랐습니다. 둘째는 음행입니다. 광야훈련이 끝나갈 쯤 모압의 여자들과 간음을 행하여 하루에 2만 3천 명이나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 원망하고 불평하여 불 뱀의 습격을 받아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은 우리도 이러한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절대로 시험에 넘어지지 않을 거라’는 교만함을 버려야합니다.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으며 언제나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넘어지기 쉽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언제나 조심해야겠습니다. 시험에서의 승리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시험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려움으로 자신에게 화를 내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도 원망하게 된다면 믿음을 망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움은 그것이 어떤 성질의 것이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두려워하고 낙담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붙잡고 나아가면 됩니다. 지금 있는 어려움을 알 수 없어도 실족하지 않고 견디는 것이 살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렇게 될 때 처음에는 죽을 것 같지만 어려움 안에도 길이 있고, 반드시 피할 길도 주십니다. ‘피할 길’이란 시험의 강도가 살짝 떨어질 수도 있고, 도저히 못 참겠다할 때 기간을 줄여서 어려움을 끝내주기도 하고, 또한 도저히 생각지 않았던 방법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주심으로 감격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찬양하게도 하십니다. 우리는 어둡고 긴 시험의 터널을 지날 때도 하나님의 신실함을 의지하고 감사하며 나아가야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피할 길을 예비해 주십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0. 10- 살며 생각하며 : 교만을 극복하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탁월한 이간쟁입니다. 교회 분열도 교만한 신자들에게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지도자에 대해 투덜거리고, 동료 신자들을 판단하며 분열을 조장합니다. 교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시하도록 부추깁니다. 또한 교만은 우리가 많은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도 더 영성이 있다고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당신은 당신과 같은 영적인 경험을 갖지 못한 사람, 다른 교단 혹은 다른 성(性)을 가진 사람을 무시하지는 않습지까? 그렇다면 당신 안에 교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가 죄인이며 ,반드시 하나님의 도움과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원하시기 때문에 그분의 아들을 보내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여러 세대를 거쳐 하나님은 교만에 의해 저질러진 파괴와 상처를 보아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붙들고 있는 교만의 권세에서 우리가 자유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하고, 우리 마음속에 숨겨진 교만이 드러날 수 있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은 연약함 안에서 온전해집니다. 자신을 연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삶 속에서 그분의 힘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인정할 때 주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플로이드 맥클랑 /「하나님과의 친밀감」- 정리하며 확신하며 : 끈질긴 기도의 실례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권, 700 46주 (수) 찬송 :(새)220장, 278장 읽으며 묵상하며 : 사랑의 송가(고전13:1-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나하되 예언도 폐하고 예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8절)
12장부터 14장까지는 하나의 묶음으로 고린도 교회의 은사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존재하는 13장은 우리가 은사를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절대성: 사람들은 은사를 무기처럼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은사를 붙들고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이 없는 은사는 무가치하다고 말합니다. 첫째로 언급한 방언은 고린도 교회에서 황홀경을 경험하는 천사들의 언어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랑이 결핍된 방언은 헬라의 신비종교에서 쓰였던 도구들처럼 소리 나는 구리나 꽹과리에 불과하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대한 지식인의 예언이나, 기적적인 믿음이 있어 불가능한 것을 이루었다 하여도 그 동기가 순수하지 못하고 자기 과시용으로 사용되면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최상의 윤리적 행위인 구제활동이나, 스스로 몸을 던져 헌신하는 경우도 저차원적인 동기로 행한다면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를 가져오게 합니다. 형식적인 관례나 의례적인 격식으로 사랑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있을 때만 모든 것의 가치는 살아납니다. 주변과 공동체에게 책임이나 의무가 아닌 사랑으로 다가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사랑의 본질:사랑이 없는 은사는 덕스럽지 못한 태도나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신 은사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있을때 은사는 덕 있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사랑은 너무 뜻이 깊고 넓어서 어떻게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바울은 본문에서 15가지 동사들로 사랑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사랑의 속성을 말해 줍니다. 먼저 사랑은 오래참고, 온유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며, 모든 것을 견디어야합니다. 반면 사랑은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은 철저히 인간의 본성적 욕구나 이기심과는 원수지간이어서 자기부인이 요청됩니다. 온전히 자기 본위의 삶에서 타인 위주의 삶이어야 가능하며 오직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을 통하여만 얻을 수 있는 성령의 열매입니다(갈5:22).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6,11,27- 살며 생각하며 : 사랑은 흐르는 것 ▶ 사우스다코타주의 ‘로비타 에센씨가 겪은 실화. 로비타는 시골길을 달리다 고장 난 차 운전자를 도와주었더니 돈으로 사례를 하려 했습니다. ‘다음에 다른 차가 고장 나면 도와주라’고 말했습니다. 두 주일 후 로비타의 아버지의 차 타이어가 펑크나 곤경에 처하게 됐을 때 어떤 운전자가 수리해주며 “2 주일 전 어느 사람의 말대로 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 시골교회를 시무하는 어느 목사님의 아들 강남의 한 교회에서 장학금을 주어 대학을 마칠 수 있었는데, 학생 때 고마움보다는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았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 고마움을 깨달았습니다. 직장 동료의 어린 아들이 중병으로 고생할 때에 병원비를 도와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료도 자신의 교회에서 장학헌금을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랑은 흐름이 있기에 그 감동의 물결에 사은 커갑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 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당신은 정말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까? 지금 내가 받는 여러 행동들을 당사자에게는 아닐지라도 언젠가는 다른 누구에게 베풀므로 갚아야 합니다. 한편 베푼 사랑은 그 사실을 잊는 것이 좋으며 베풂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닙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344- 46주 (목) 찬송 :(새)160장, 150장 읽으며 묵상하며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4-57) "사망아 너를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15:55)
어떤 부유한 상인이 하루는 자기 하인을 시장에 보내면서 그 집에 필요한 양식을 사오라고 했습니다. 그 하인은 시장에 갔다가 금방 돌아왔는데 다리는 절뚝거리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그를 보고 상인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방금 시장에서 죽음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를 보더니 팔을 들고 치려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너무 두려워서 이렇게 도망쳐 왔습니다. 주인님 제발 부탁입니다. 저에게 주인님의 가장 빠른 말을 빌려주십시오. 곧 사마라로 도망을 가야겠습니다." 마음씨 좋은 상인은 이를 승낙했고, 그 하인은 서둘러 말을 타고 사마라로 도망갔습니다. 하인이 나간 후 그 상인이 직접 시장에 가보았다. 그런데 그도 역시 죽음의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담대하게 사망에게 물었습니다. "죽음의 사자야, 너는 왜 조금전에 시장에 온 나의 하인을 치려 했느냐?" 그러자 죽음의 사자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나는 절대 그를 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놀랐기 때문에 팔을 휘저었던 것뿐입니다. 나는 여기에서 그를 보고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밤 사마라에서 그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망은 누구에게나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사망이란 것은 살아나서 단 한 번 밖에 체험할 수 없으므로 누구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취미 생활을 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고 다른데다 정신을 집중하여 어떻게든 죽음의 존재를 잊으려 애쓰며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좋다는 약은 다 사먹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은 더 이상 사망을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들지 않아도 됩니다. 사망이 이기는 것, 사망이 쏘는 것은 오직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히려 사망이 하나님께로 더 가까워지는 통로요, 안식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스펄젼 선생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망, 이것은 무엇일까? 사망은 우리가 불멸의 옷을 입기 위해 기다리는 대합실입니다. 사망이라고 하는 곳에서 우리의 육체는 주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몸이 됩니다." 사단의 가장 큰 무기인 사망까지도 넉넉히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 주석 신약 7권 ,QT」, p315- 살며 생각하며 : 무덤없는 예수 오래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한 회교도와 기독교인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자신이 갖고 있는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회교도가 말하기를 “우리 회교도는 당신네 기독교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라비아 메카에 가면 우리 회교도의 교주 마호메트의 분묘가 있는데 그 안에 마호메트의 시신이 있어서 그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지만, 당신네 기독교의 발생지 예루살렘에는 예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라며 큰 소리로 자신이 믿고 있는 회교를 자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기독교인은 겸손히, “예,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독교와 회교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말합니다. 마호메트의 무덤은 그가 죽어서 그 육체가 썩었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은 예수는 죽었으나 다시 부활하여 승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회교는 이미 죽은 종교이지만 기독교는 살아있는 종교인 것입니다.” 라고 말하였고, 이에 그만 회교도는 풀이 죽어 가만히 듣고만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덤이 없는 예수!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 부활의 전파도 , 우리의 부활의 소망도 헛되지 않은 것입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5권,예화」p280- 정리하며 확신하며 : 부활이 없다 할 때 일어날 일들(고전15:12-19)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5권, p256 46주 (금) 찬송 :(새)457장, 510장 읽으며 묵상하며 : 환란 중에서 위로하시는 하나님((고후 1:1-7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1:3-4)]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고린도전서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거짓 사도들의 미혹을 받아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음은 물론 바울의 사도권마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여행 일정을 변경하면서까지 고린도를 먼저 방문하였으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디도라는 사람을 통해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고 그들 속에 남아 있는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다시 편지를 써서 디도편으로 보낸 것이 본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의 편지 형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편지 형식을 따르면서도 그 속에 복음을 담아서 은혜와 평강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단순히 시대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담아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제 환난 가운데서도 넘치는 위로를 베푸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을 돌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주시는 구원과 축복뿐만 아니라 고난과 핍박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성도들이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큰 위로를 아끼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으로 온전히 알 때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나는 이런 위로의 하나님을 늘 경험하고 있습니까?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2001년 11월 01일- 살며 생각하며 : 고난을 통과한 위로 미국에 돈 많은 어느 부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정말 어느 것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세 딸을 데리고 구라파와 성지를 구경하기 위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매우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들이 타고 있던 배가 목적지를 향해 가다가 풍랑을 당해서 많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이 부인도 세 딸을 모두 잃고 자기만이 겨우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당한 부인은 실의에 빠진 채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극한 회의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이 부인은 이웃집에 사는 크리스챤으로부터 전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한숨과 눈물로 시간을 보내는 이 부인을 위해 평소에 이웃집의 크리스챤은 기도해왔던 것입니다. 결국 그 부인은 참 위로 자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고, 이에 한 가지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가 없어서 바르게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내 딸을 잃었다고 마냥 슬픔에 빠져 있을 순 없지, 이제 딸 대신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기르도록 하자.“ 그 부인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성지 예루살렘에 ‘아메리칸 캐론’이란 유명한 고아원과 탁아소를 세웠습니다. 이 부인이야 말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무엇인줄 알며 그 위로로써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을 돕는 삶을 산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수많은 고난은 단순히 고난을 위한 고난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그 고난은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게 하는 고난이며,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당신에게 어떤 고난이 있습니까? 고난이 클수록 위로도 커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5권,예화」p 328- 46주 (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주제 : 전도자의 권리와 성도의 의무(고전9:1-14) 말씀 묵상 : 전도자의 권리와 성도의 의무(고전9:1-14) 바울은 사도로서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받아 살 권리와 자유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위하여, 효과적인 복음의 선포를 위하여 이러한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고 자비량 선교를 합니다. 모범적인 삶을 산 바울의 모습을 생각해 봅시다. ☞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 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한다면 아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으로 자유자가 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복음 선포를 통하여 믿음으로 불러 모은 공동체로 자신의 사도직의 열매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로부터 생계유지를 위해 지원을 받고 대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과 더불어 먹고 마실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갈 6:6). ☞ 아내를 데리고 다닐 수 있는 권리 입니다 당시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은 전도의 여정 가운데 아마 아내를 데리고 다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그냥 아내를 데리고 다닌다는 얘기만이 아니라 같이 다닐때 부부가 재정적인 후원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사도들처럼 결혼할 권리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생의 즐거움까지 포기하고 혼자 산 것은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효과적인 복음 선포를 위하여 스스로 자발적인 포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진 권리를 악착같이 찾아 쓰는 모습과 얼마나 대조적인지 생각해 보시오. ☞ 생활비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입니다 군인이 나라를 위해서 싸우면 나라에서 월급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농부나 양떼를 키우는 사람도 열매를 누릴 권한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도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은 생활비를 받았고, 열심히 일하는 소도 먹을 권한이 있는 것인데 하물며 복음을 선포하여 교회를 세웠는데 경제적 후원을 받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권리까지도 포기하고 자비량 선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복음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회만 되면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 너무 어려서 무조건 얻어먹는 것을 좋아하는 자들, 모두 바울의 성숙함을 배워야겠습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6. 10. 8 살며 생각하며 : 목사를 도운 성도들 존 왓슨 목사는 원고 없이 설교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적은 메모지를 들고 강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중간에 설교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여러 번 당황했습니다. 그때마다 왓슨 목사는 “설교가 잘 생각나지 않는군요”라고 말했고, 잠시 후 생각이 나면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은 초조해하거나 짜증내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어느 날 주일예배가 끝났을 때, 어떤 교인이 목사에게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 설교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땐 우리에게 찬송가를 한 곡 지정해 주십시오. 목사님이 설교를 생각하는 동안 저희들은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저희는 목사님을 사랑하고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왓슨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내가 이렇게 목회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그 시골 교인들의 사랑과 친절 때문이었습니다.” 목사를 위해 기도하고 돕는 일은 교회에 유익이 되고 자신에게도 복이 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해 교회를 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648 돌아보며 다짐하며 : 영적인 사람들의 일곱가지 습관 첫째,영적인 사람은「행복」해지는 것보다는「거룩」해지는 것을 원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좀더 편안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지만 이러한 바람은 그 사람의 관심이 세상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둘째,영적인 사람은 주기도문을 고백할 때「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구절 바로 뒤에 「제게 어떤 희생이 뒤따르더라도」라는 조건을 덧붙이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결국 주님의 이름이 높여지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이 바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셋째,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사물의 겉모양만을 보기 때문에 쉽게 상처받고 흥분하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사물의 겉과 속을 한꺼번에 통찰하시는 하나님을 닮으려고 애쓰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흥분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넷째,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낮아지고 다른 사람이 높아지는 것을 기쁘게 받아 들일줄 압니다. 다섯째,영적인 사람은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릇된 모습으로 살기보다는 아름답게 죽기를 원합니다. 죽음이 두려워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사람들과 달리 영적인 사람은 불의와 타협해 가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보다는 단 하루라도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마련입니다. 여섯째,영적인 사람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초월하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거나 섬김을 받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애씁니다. 일곱째, 어떤 고난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로마서 8장 18절 = 장차 나타날 영광을 고대하는 사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무겁고 힘든 것이라는 생각에 짓눌려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도 전에 한숨과 탄식에 빠지게 됩니다.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그 십자가가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탄식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고난당하신 주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이미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 한다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엡 4:13~14) -최윤섭 목사(뉴욕 그리스도의 교회)/ ⌜Pinewood 칼럼⌟2007. 5.6- 오늘의 기도 :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를 받아 주시옵소서. 우리로 확고한 믿음 속에서 주님의 뜻만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시선이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우리의 손은 주님의 일에 동참하는 손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발 걸음은 주님과 동행하게 하셔서 주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옵소서. 주님! 여기 고난 당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외로운 자들에게 사랑을 나누게 하시고 세상 길로 가는 이들에게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게 하시고 방황하는 이들에게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며 병마로 힘들어 하는 이들을 일으켜 세워 주시고 마음이 약한 이들을 위로해 주시옵소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마음의 문이 열리고 믿음의 문이 열려서 진리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귀한 시간 되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손길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성도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 나라를 확장 하는데 크게 쓰임 받는 귀한 일꾼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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