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주 (월) 찬송:(새)204장, 379장 읽으며 묵상하며 : 비전을 이루는 우리의 순종 (사도행전 13: 1-1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13:2,3)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바나바는 레위 지파 출신이었고, 시므온와 루기오는 북아프리카 출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나엔은 귀족출신이었으며, 사울은 교회를 핍박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를 통해 이루실 주님의 비전에 순종함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이 주님을 예배하며 금식하고 있을 때 성령의 말씀이 임했습니다(2절).살아 있는 예배 안에서 우리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말씀을 받은 이들은 다시금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우시고 부흥케 하신 분이 성령이심을 믿으며 바나바와 바울을, 그리고 그 두 사도가 없는 안디옥 교회를 온전히 성령께 맡긴 것입니다. 이들의 순종은 전 세계를 향한 주님의 비전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최근 내가 들은 성령의 음성은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 음성에 순종하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는 무엇입니까?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구브로로 갔습니다(4절). 믿는 자들은 “내가 여기에 왔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다”라고 말합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첫 선교 여정의 출발지에서 ‘바예수’라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를 만나게 됩니다. 이 마술사는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습니다. 선교는 영적 전쟁입니다. 이때 바울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대적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주목했습니다. 성령 충만하여 정면 돌파하는 것, 이것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총독은 바울이 마술사를 이긴 것을 보고 복음을 믿게 됩니다. 동시에 바울을 통해 주님의 가르침을 듣고 놀라워합니다. 영적 전쟁의 승리로 바울은 한 영혼을 추수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지금 나의 영적 상황은 어떠합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2005,07,05- 살며 생각하며 : 사람을 이끄는 꿈 미국의 학자들이 미국 역사에 공헌한 사람들을 뽑아서 출신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미국 동북부의 작은 지방인 뉴잉글랜드에서 특별히 많은 인재가 배출된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학자들은 그 이유가 궁금해서 그 지역을 여러 가지로 조사해 보았습니다. 얼마 후 학자들은 그 지방의 부모들이 특별한 말로 자녀들을 교훈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특히 자녀가 잘못하여 책망할 때에도 같은 말로 교훈을 한다고 합니다. “얘야, 꿈을 가지거라.” “얘야, 커다란 포부를 가지거라.” 큰 꿈을 가지고 큰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비전을 품고 비전은 사람을 만듭니다. 큰 비전을 품은 사람은 큰 사람으로, 훌륭한 비전을 품은 사람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669- 45주 (화) 찬송 :(새)436장, 493장 읽으며 묵상하며 :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행15:12-2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행15:19) 예루살렘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은 베드로의 연설에 공감했습니다. 야고보 역시 이방 선교가 하나님의 뜻임을 선언하는 최종 결론을 내립니다. 야고보는 먼저, 베드로가 고넬료를 전도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방문하신’(14절, ‘권고하다’) 사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이방인들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모든 민족을 백성 삼고자 하셨으나, 이스라엘의 배타적 선민의식과 불순종으로 인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 다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 백성은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 외에 다른 어떤 것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나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루살렘 교회에 모인 지도자들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만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과 피, 음행, 목매어 죽인 것만은 피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음행과 같은 윤리적 요구는 이방인 성도들이라도 당연히 지켜야 할 것이지만, 나머지 세 가지는 제의적 성격이 강한 조항들입니다. 그러나 당시 지도자들은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이러한 네 가지 조항을 이방인들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을 담은 편지를 이방인 교회를 대표하는 안디옥 교회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유대인을 대표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다와 실라 편에 보냈습니다. 이는 양 교회의 단합 의지를 보여 준 것입니다. 교회의 일치를 위한 아름다운 협력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안에 분열의 위험이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2005,07,12- 살며 생각하며 : 아름다운 일치 오늘의 본문에서 야고보의 윈윈(Win-Win) 플레이가 참으로 돋보입니다.그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생각해 보면 세도를 부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얘기하는 것의 근거를 구약의 예언에서 끌고 옵니다. 결코 자기 상식이나, 학식이나, 혹은 자기 논리와 목적을 위해서 진리를 왜곡하거나 선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살고, 이방인도 살고, 유대인도 사는 해법을 찾습니다. 그것은 구원에 있어서는 율법과 할례가 무용하지만 유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모세의 율법 가운데 윤리적인 몇 가지 부분을 구원 받은 자의 생활윤리로 가지고 들어옴으로써 율법우위론자들이 복음 안으로 들어오는 길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습니다(20-21). 이처럼 참 진리 안에 사는 자는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며, 사람들과의 관계 면에서도 참으로 유연(柔軟)합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결코 타협이 있을 수 없지만 구원받은 자로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바울과 같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싶습니다(롬9:19-23). 요즘도 내 안에는 [틀린 것과 다른 것 구별하기]에 대한 묵상과 몸부림이 계속 진행중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해 버리려는 못된 죄의 근성들을 하나 둘 버리고 있습니. 그럴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사도들은 지금 예루살렘회의의 화두와 다르게 사는 사람들을 겨냥하며 뭔가를 결정하고 선언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정죄하지 않습니다. 단지 믿음 안에 들어온 이방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주목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내가 옳다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괴롭게'(19b) 할 수 있다는 야고보의 권면이 내 마음에도 조용히 자리를 잡습니다. 모인 목적이 이끌어가는 회의의 전체 분위기에서 사랑의 법이 흐르고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이런 회의와 모임이 사도행전 교회를 향기나게 만듭니다. 다툼과 변론 때문에 모였지만 말과 말이 오가면서 차츰 모임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열매를 맺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내가 선 곳도 이처럼 세워져가기를 꿈꾼다. 나도 예루살렘 총회에 모인 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김충만 목사/「 말씀, 묵상, 설교, 큐티(QT),부스러기 묵상」- 45주 (수) 찬송 :(새)505장, 179장 읽으며 묵상하며 : 권리를 포기하며 전하는 복음 (사도행전 16:25-40)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16:25) 바울과 실라는 많은 매를 맞고 깊은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을 드렸습니다. 어쩌면 감옥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제단이고 영성수련의 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감옥에 울려 퍼지는 그들의 기도와 찬양은 동료 수감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음과 불평이 쏟아져 나와야 할 상황에서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자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풀렸습니다. 이로 인해 간수는 자결하려 했으나 바울이 제지합니다. 그 후 간수와 그의 집안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간수가 바울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바울이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탈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역사는 이렇게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는 자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고난 가운데 있는 내가 하나님께 드릴 찬양은 무엇입니까? 나를 괴롭힌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내게 포기하도록 요구하시는 권리는 무엇입니까? 다음 날, 바울과 실라를 수감한 상관들이 그들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히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사람들에게 매를 맞을 때에는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때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밝혔더라면 그는 매를 맞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때 사실을 밝히지 않았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모든 것을 맡긴 것 같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고전 9:12, 18~19).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마땅히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의 권리포기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님을 닮아가는 행위입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권리주장과 권리포기의 구분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나는 나의 어떤 권리를 주님을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2005,07,16- 살며 생각하며 : 종소리 남북전쟁에 휩쓸고 간 뒤에 버지니아의 마을들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학교들도 오랫동안 문을 닫았습니다. 그중 하나인 윌리엄대학(College of Wiiliam and Mary)도 7년을 폐교했습니다. 학생이 오지 않으니 교수도 울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 오전 9시만 되면 종이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웰(Ewell) 학장이 빈 학교에서 7년 동안 매일 아침 종을 울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그는 마을 마을을 찾아다니며 어려운 때일수록 교육의 중요함을 역설하였던 것입니다. 이웰 학장이 울린 이 끊어질 줄 모르는 종소리가 미국을 건설한 신앙의 투지였습니다. -성서연구사/「기독교 문장대백화사전 21권」p968- 45주 (목) 찬송 :(새)428장, 488장 읽으며 묵상하며 : 범사에 감사하라( 5:12-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심한 환란과 핍박 가운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거룩한 삶을 견지하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바른 모습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고 방종하며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려 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근본적인 죄성 때문입니다.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경건하며 거룩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본문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많은 교훈들 중에서 18절에 나타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의 감사 생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다음 몇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근거하여 볼 때 감사하는 생활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향해서 감사의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두 번째,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은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포함됩니다.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좋을 때는 누구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도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 프리셉트/「 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 2006. 11. 16- 살며 생각하며 : 눈물 젖은 감사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의 어느 교회 학생들이 수양회를 가는 중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많은 학생과 2명의 전도사가 그 자리에서 사망했습니다. '댈러스 모닝뉴스'를 비롯한 여러 신문이 이 사건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했던 어느 신문 기자가 죽은 학생의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심정이 어떻습니까?"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져 말할 수 없이 슬픕니다. 하지만 16년 동안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만날 소망이 있으니 더욱 감사합니다." 우리 삶은 항상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눈물에 우리의 눈이 잠기더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참 아름다운 삶일 것입니다./정승룡 목사(대전 늘사랑 침례교회) 국민일보/ [겨자씨] 눈물 젖은 감사 , 2008.08.15 정리하며 확신하며 : 예수의 초림과 재림 비교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5권, p926 45주 (금) (찬송 :(새)254장, 186장 읽으며 묵상하며 : 성령세례를 받았느냐?(행19: 1-10)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성령의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거쳐, 3차 전도여행 중 가장 큰 열매인 에베소로 되돌아왔습니다. 에베소 사역에 대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에게 하나님은 기꺼운 승낙을 주신 것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상업 중심지이자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에베소에 있는 아데미의 전각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입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바울은 열 두 명의 제자들을 만나 그들의 신앙수준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바울의 질문에 자신들은 성령이 있음을 들은 적도 없으며, 오직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같은 대답으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신앙은 아볼로의 초기사역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회개의 세례는 알았고, 자신이 죄인됨과 더 온전해져야 하는 의무는 알았지만, 그 후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은 신약시대에 있지만 아직 구약시대를 사는 신자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초보적인 신자들은 바울을 통해 온전한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비로소 신약, 곧 성령의 시대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란노 서원 바울은 회당에서 3개월간 가르치면서 에베소에 있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하지만 결국 유대인들은 마음이 굳어 말씀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고린도에서처럼 이방인에게로 사역의 초점을 맞춥니다. 이처럼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신의 소명에 순종하자 하나님은 또 다시 그에게 장기사역의 길을 열어주셨고, 약 3년간을 여기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사역의 거점이 된 곳은 두란노 서원입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더위로 인해 강의실을 비운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곳을 빌려서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두란노 서원의 사역은 그의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과 성도들의 배우고자 하는 열심이 하나되어 이루어낸 열매였습니다. 이렇게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아시아 전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되었고, 그 결과 아시아에서는 유대인, 헬라인 할 것 없이 모두 주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두란노 사역을 통해 세워진 교회는 골로새,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교회 등입니다. -2GTM/「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2004-09-29- 살며 생각하며 : 주변 사람 전도는 내 사명 회사는 경영하는 사장이 주일날이면 빠짐없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으나 전도는 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회사에 같이 일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도 다른 이야기는 늘 하지만 한 번도 교회에 가자고 전도를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은 설교를 듣고 나서 전도를 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회사의 사장 자리에 앉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비서였습니다. 한 번도 예수를 믿으라고 전도해 본 적이 없었던 비서에게 교회에 다니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면서 전도를 하였더니 비서가 감동했습니다. “제가 사장님을 15년 동안 모셨는데 한 번도 전도를 안 하셔서 저 같은 존재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나보다 생각했습니다. 전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찬송가 263장 2절에 “멀리 가서 이방사람 구원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건질 죄인 많도다. 천사같이 말 못하고 바울 같이 못하나 예수께서 구속함을 힘을 다해 전하세.” 이 찬송가 가사처럼 주변 전도의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친해도 그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을 향한다면 진정한 친구일 수 없으며 가족일 수 없습니다. 그 책임은 결국 내가 저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296- 45주 (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어리석은 남편, 지혜로운 아내(삼상25 : 1-23) 말씀 묵상 : 어리석은 자, 지혜로운 자(삼상25 : 1-23)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크게 어리석은 자와 지혜로운 자로 분류됩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거장 사무엘의 죽음과 사울 왕의 몰락을 앞둔 시점에서 다윗 주변에서 대조되는 나발과 아비가일이 등장합니다. 이 두 사람을 통해서 무슨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 어리석은 자는 인색하고 자신의 쾌락을 일삼습니다. 나발은 큰 부자요 완고하고 행사가 악하고 불량한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마온 지방에서 큰 부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양이 3,000마리, 염소가 1,000마리나 되었고 창고에는 곡식과 건포도와 무화과뭉치가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는 양털을 깎는 추수기에 많은 재물로 인해서 행복해하며 왕의 잔치 같은 잔치를 즐기면서도 다윗의 도움을 거절할 뿐 아니라 다윗을 모독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곤핍한 망명생활 중에도 그에게 어떤 피해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나발의 종들을 선대하며 밤낮으로 그들의 담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발에게 인사도 할 겸하여 소년들을 보내서 약간의 도움을 정중히 요청했는데, 나발은 냉담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은 참을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며 칼을 차고 400명을 거느리고 응징을 하러 나서게 됩니다. 나발은 인색한 사람이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면서도 고마워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모르고 인색하게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색한 마음을 버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지혜로운 자는 분별력 있는 행동을 민첩하게 합니다. 아비가일은 나발의 아내이지만 나발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녀는 총명한 여인이었고, 분별력 있는 행동을 민첩하게 하였습니다. 그녀는 완고하고 거친 남편을 인내하고 살아왔으며, 남편의 어리석음을 지혜롭게 감당할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남편이 다윗에게 한 행동을 들었을 때 지체하지 않고 떡 200덩이, 포도주 두 가죽부대, 양 다섯, 볶은 곡식 다섯 세아, 건포도 100송이, 무화과 200뭉치를 급히 보낸 것은 그녀의 총명스러움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라고 무조건 감싸주는 여인이 아니었으며,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알고 경우에 맞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그녀의 행동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며 다윗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기적인 마음으로 무조건 자기편을 감싸줍니다. 자기와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잘못했어도 자기와 가까우면 무조건 두둔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지혜롭지 못하면 둘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분별력 있는 행동은 하나님 중심적인 생각에서 나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기독 대학인회,ESF. 2005. 9. 20 살며 생각하며 : 감사할 것을 발굴하십시오 1995년, 세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리브(Christopher Levee)가 말에서 떨어져 목뼈 골절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절망 중에 그는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지만 그때마다 아내 다나 리브(Dana Levee)는 뺨에 키스하며 말했습니다. “여보! 내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이 없어요. 저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내 곁에 살아있다는 것만도 감사해요.” 매일 들려주는 아내의 말은 그를 절망에서 일으켰습니다. 그는 얼굴만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형편으로 할 일을 찾았습니다. 1996년 11월, 그는 케이블 TV 드라마 ‘황혼 속에서’의 감독으로 휠체어에 앉아 모니터와 마이크를 통해 연기를 지시했습니다. 1998년에는 TV영화 ‘이창(Rear Window)’의 주인공으로 휠체어를 탄 사진기자 역을 맡아 최고의 표정연기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일할 때 해방감을 느낍니다. 많은 것을 뺏겼지만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2002년, 그는 손가락과 발가락을 약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대부분의 신체 부위에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뼈가 부러진 치명적 상황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전례가 없는 기적적인 일이었습니다. 2003년 3월에는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는 수술까지 받아서 수술 후 15분~2시간까지 자신의 힘으로 호흡이 가능해졌고, 8년 만에 코로 숨쉬는 소리를 듣고 커피 냄새도 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희망의 메신저’로 가는 곳마다 말했습니다. “사고 후에 저는 사랑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아내의 사랑은 영혼의 치료제였습니다. 내게는 다시 일어서는 것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날마다 함께 함이 기쁨이고 기적입니다. 나는 삶을 헤쳐 나가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것’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 안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진 보물창고입니다.” 2004년 10월 11일, 망토를 펄럭이며 창공을 훨훨 날던 그는 심장마비로 52세에 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갔지만 그때까지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재활의 길을 개척하며 절망한 사람들에게 영화보다 더 큰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진짜 ‘슈퍼맨’이었습니다. 절망적인 때는 감사를 연습할 때입니다.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면 고난 중에도 감사할 것이 많습니다. 고난의 폭염이 농부의 입장에서는 풍년의 기약입니다. 감사는 ‘발견’입니다. 감사는 척박한 땅에서 보물을 발굴하는 일입니다. 삶이 힘들수록 감사할 것을 발굴하십시오. 감사를 발견하면 어느새 절망은 희망으로 변합니다. 행복을 주는 두 가지 천국 언어가 있습니다. “내가 못해줘서 미안해요!”라는 말과 “당신이 잘해줘서 감사해요!”라는 말입니다. 불평거리를 찾다보면 어느새 희망은 자취를 감추고, 감사거리를 찾다보면 어느새 절망은 자취를 감춥니다. -이한규 목사(분당 샛별교회 담임) 2006.09.21- 돌아보며 다짐하며 : 드림이 드림(꿈)을 이룹니다 닉슨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지내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후, 교도소 선교회(Prison Fellowship)를 조직해 활동하는 찰스 콜슨(Charles Colson)이 들려주는 머틀 하웰(Myrtle Howell) 할머니 얘기입니다. 하웰 할머니는 가난하게 자라 학교를 1년밖에 다니지 못했고, 일찍이 남편과 한 자녀를 잃고 혼자 두 자녀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습니다. 90세가 넘은 어느 날, 할머니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제가 더 살아 뭘 합니까? 저를 데려가 주세요.” 그때 마음속에 어떤 음성이 들렸습니다. 죄수들에게 편지를 써라(Write to prisoners).” 할머니는 “저 같이 못 배운 사람이 그 일을 어떻게 해요?”라고 반문했지만 그 음성에 순종하고 자신이 사는 애틀랜타의 한 감옥에 편지를 썼습니다. 수형자께!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할머니에요. 원치 않는 곳에 있는 당신께 사랑과 연민을 보냅니다. 당신과 친구가 되고 싶어요. 제게 편지 쓰세요. 꼭 답장할게요. 머틀 할머니로부터.” 그렇게 편지를 쓰며 한때는 17명과 펜팔을 했습니다. 그 일이 91세의 할머니에게는 힘든 일이었지만 결실도 많았습니다. 이런 편지도 받았습니다. “할머니! 편지 감사해요! 제게 편지가 왔다기에 믿질 않았는데 정말이었어요. 제게 관심을 주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요. 저도 항상 할머니를 생각할게요. 답장 주세요. 죠 드림.” 머틀 할머니는 죄수들과 펜팔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90이 넘은 보잘것없는 할머니가 좋은 일에 자신을 드리자 세월이 보잘 것없게 되었습니다. 세월은 두렵습니다. 미모와 재산과 능력도 세월 앞에서는 꼼짝 못합니다. 세월은 가진 힘을 과시하지 말라는 엄한 선생님입니다. 그처럼 두려운 세월 앞에서 활기차게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드림’에 있습니다. 이름 없는 들풀과 같은 존재라도 머틀 할머니처럼 소중한 일에 자기를 드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행복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은 아름답게 변화됩니다. (이한규의 사랑 컬럼) ‘남을 때리고 벼리는 시간’은 최대한 줄이고 ‘나를 드리고 벼리는 시간’은 최대한 늘리는 작은 몸짓이 희망의 싹입니다. 자기를 드리지 못하는 유능한 사람’보다 자기를 드릴 줄 아는 무능한 사람’이 더 유능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어깨를 움츠리거나 고개를 숙이지 말고, 그때 “내가 할 일이 없는가?”를 살펴보십시오. 자기를 드릴 줄 알면 초라한 인생에도 기적은 나타납니다. 헌신이 없으면‘헌신’이 되어 버려집니다. 받는 것을 좋아하는 기생 인생은 기막힌 인생’을 예고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는 희생 인생은‘희망찬 인생’을 예고합니다. 드림이 있어야 드림(dream)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한규의 사랑 컬럼’에서- 오늘의 기도 : 지혜롭게 하소서 내 인생의 목적과 기쁨 되신 하나님! 이 하루가 주님께 온전히 드려지길 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아는 우리가 하나님 경외하기를 멀리하는 어리석은 인생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법칙인데 너무나 짧은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말게 하소서. 하나님! 인간은 미련하고 완악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잘 만나지 못하고 고난의 아픔을 통해서만 주님을 만나는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재물을 다 잃어야만 교만을 꺾고 주님 앞에 다가서며 건강을 잃어야만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메어 달리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야만 주님 앞에 손들고 나가는 어리석고 고집스러운 마음을 지혜롭게 하시고 부드럽게 하옵소서. 하나님 !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람들이 한 번 뿐인 우리 인생을 고집부리다 낭비하지 말게 하시고 젊은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그 뜻 안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사 여호와 경외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임을 알게 하시고 내가 사는 목적과 이유가 오늘 하루도 땀 흘리며 애쓰는 이유가 나의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 되게 하소서. 내가 사는 이유요 목적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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