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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3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2. 10:14

 

43주 (월)

찬송 :(새)250장, 182장

■ 요한복음 18: 1-19:42 체포, 처형, 장사(1)

18장 체포와 심문

19장 십자가형과 장사

☞ 줄거리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시고, 자진해서 군사들에게 체포되셨습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이 보낸 군사들에게 제자들은 해치지 말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군사들에게 체포되어 대제사장(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 끌려갔습니다. 안나스는 예수님을 보고 심문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멀리서 주님을 쫓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예고대로 안나스의 집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서 크게 통곡했습니다.

안나스는 주님을 심문헀지만 아무 혐의도 찾지 못하고 다시 주님을 대제사장 가야뱌에게 보냈습니다. 가야바는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고 회의를 열어서 예수님의 사형을 확정했습니다. 그러나 산헤드린 공회에는 사형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의 사형 집행을 허락받기 위해서 주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보냈습니다. 빌라도는 주님을 심문했지만 주님이 죄를 지었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놓아주려고 노력했지만,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키려고 하자, 예수님의 사형 집행을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고 속죄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을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그 시체를 자기의 새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재판받으시는 예수님(18:28-40)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자가 아니었더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하였겠나이다'(18:30)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재판을 요구합니다. 재판이 진행될수록 예수님의 무죄가 드러납니다. 반면 유대인들의 위선, 빌라도의 진실치 못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진리 되신 예수님을 재판하는 그들의 더러운 모습이 무엇입니까?

위선적인 유대인들

새벽부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의 관정으로 끌고 가서 재판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이방인의 집인 총독의 관정에 들어가지 않고 예수님만 보내어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이렇게 외형적으로는 종교생활을 잘하고 거룩해 보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은 더러운 마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억지 조건을 만들어 예수님을 행악자로 고발합니다. 그들은 진실하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목적의식으로 집단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는 빌라도의 말에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나이다.”고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은 죄 없는 예수님을 죽이려는 살인적인 마음을 가득 품은 채, 겉으로는 더없이 거룩해 보이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가증스런 일입니까? 우리가 마음을 깨끗케 하지 않고, 신앙적인 형식만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먼저 마음을 거룩하게 해야 거룩한 행동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유대인들처럼 가식적인 신앙생활의 모습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는 빌라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나라이며, 영원한 나라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혁명가가 아니라, 진리와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37절)고 하심으로 빌라도를 진리로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권세자 앞에서도 너무나 당당하십니다. 또한 생명이 위협당하는 상황에서도 진리를 증거 하시고, 한 영혼을 진리로 초청하십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기만 했지, 진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아는 진리대로 행동하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신속하게 예수님을 무죄 석방시켜야 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민심도 얻고 정치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타협점을 찾다가, 끝내 그는 크나큰 죄악을 범하고 맙니다. 진리에 관심이 없고 이익에만 관심을 가졌던 빌라도는 가장 크게 실패한 인생이 되고 맙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6, 08, 03-

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이 웃으시지 않겠는가?

가난을 미덕으로 삼던 수도원의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수도원 기물은 낡고 끼니를 잇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젖소를 먹이는 목동이었던 고셰는 약초를 이용하여 술을 만들게 됩니다. 그가 만든 ‘불로 장생주’가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수도원은 활기를 띱니다. 고셰는 그 공로로 신부가 되나 계속하여 술을 만들며 시음하므로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고셰는 미사 중에 술주정을 하여 귀신들렸다는 말을 듣고 감금되어 술만 제조합니다. 고셰는 젖소만 키우게 해달라고 애원하나 거절당합니다.

저녁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는 고셰의 영혼을 위하여 합심기도를 드리자고 합니다.

그 시간에 술 만드는 낡은 건물에서 술에 취한 고셰의 슬픈 노래와 고함 소리가 들어옵니다. 이때 신부들은 염려하며 말합니다. “이를 어쩌나! 교구의 신도들이 알면 큰일인데….

” 이것은 알퐁스 도테의 단편 「고셰 신부의 불로 장생주」의 줄거리로 신앙인의 위선과 독선을 잘 깨우쳐 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웃음은 기쁨에서 나오는 웃음도 있으나 그 반대로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오는 웃음도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물론 성경엔 주로 악인(불신자)들의 행태를 보시는 하나님의 비웃음입니다. 그런데 나는 신앙인들의 불신앙적인 행태에 대한 비웃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교회 안팎의 생활에 이중성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웃으시지 않겠는가? - 박찬규 /「한 날라리 집사의 격려」

 

예수의 수난

성도의 복

 

수난

성구

 

1

수치

요19: 1- 3

영광

롬 8:17,18

2

수고

마27:31-34

안식

마 11:28

3

슬픔

마26:38

기쁨

요 16:20,22

4

버림받음

마27:46

구원 받음

행 16:31

5

저주

갈3:13

축복

갈 3: 9

6

피 흘리심

요19:34

사죄됨

히 9:22

7

죽으심

요19:30

영생 얻음

요 3:16

정리하며 확신하며 : 십자가 구속의 결과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3권, p970

43주 (화)

찬송 :(새)521장, 253장

■ 마태복음 26:36-27:66 체포, 처형, 장사(2)

☞ 줄거리

마태는 주님께서 한 밤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셨던 기도를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주님은 인성을 가지셨기 때문에, 죽음이 다가오게 되었을 때에 큰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피땀을 흘리면서 기도를 하여 그 일을 감당할 힘을 얻으셨습니다.

주님은 체포되어 안나스와 가야뱌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은 가야바에게 자신이 약속된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다가 구름을 타고 올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분노하여 신성모독 죄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처형을 허락받기 위해서 주님을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로마 황제에게 반역을 시도했다고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주님의 무죄를 확인하고 주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은 백성을 선동해서 민란을 일으키려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이를 보고 정치적인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주님을 처형하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주님은 인류의 죄를 지시고 속죄양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주님께서 임종하실 때가 되자 여러 가지 징조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에 주님 주변에 있던 바위가 터졌으며, 무덤에서 자던 자들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징조를 통해서 주님께서 메시아라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신 후에 대제사장들은 제자들이 주님의 시체를 훔쳐갈 것을 연려하여 군사들을 통해 주님의 무덤을 지키도록 지시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찢어진 휘장 사이의 새 길 (27:45-6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27:50,51)

 

제 육시에서 제 구시까지 어둠이 임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는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입니다.이 어둠은 하나님의 임재와(신 4:11) 진노를 드러냈습니다(암 8:9). 제 구시쯤 예수님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우리를 대속하시는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소리였습니다(시22편).

예수님은 다시 한 번 크게 소리 지르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이는 주님의 의지적인 행동으로 누구에게 목숨을 빼앗기신 것이 아니라 그분 스스로 목숨을 버리심을 뜻합니다(요 10:17-18). 이때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집니다.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동시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히 10:19-20). 인간의 범죄 이후 닫혔던 그 길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는 하루를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장사되시기 전 무덤 안에서 ‘자고 있던 성도의 몸’이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마지막 때 일어날 부활이 시작되었고(사 26:19, 단 12:2), 부활한 성도들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백부장과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이들, 즉 이스라엘의 완악함으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백성으로 들어올 것입니다(롬 11:25).

한편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좇아온 여자들과 사람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날이 저물자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인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당돌히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했습니다(막 15:43, 사 53:9). 예수님의 장사가 존귀하게 예비 되었듯 (26:12) 그분의 부활도 정결하게 준비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부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의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나는 하나님이 이루신 놀라운 증거를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2007,03,18-

살며 생각하며 : 최악의 범죄자, 최고의 조문객

1921년 남편 루이스가 싱싱 감옥의 소장이 되었을 때 캐서린은 어린 세 딸을 둔 엄마였습니다. 그녀는 감옥 내에서 농구 경기가 열리자 세 딸을 유모차에 태우고 가서 죄수들과 함께 외야석에 앉았습니다. “남편과 나는 여러분을 돌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나를 돌볼 것을 믿어요.”

그녀는 한 살인범이 눈이 멀었다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점자를 가르치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귀가 잘 안 들리는 죄수들을 위해 수화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16년 동안이나 캐서린은 싱싱 감옥의 죄수들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캐서린이 출근하지 않자 죄수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감옥 안에 퍼졌습니다. 그녀의 시신은 감옥에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그녀의 집에 안치되었습니다.

한 교도관이 순찰을 돌 때 감옥 문 입구에 많은 죄수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고 얼굴은 엄숙했습니다. 그 교도관은 놀라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좋아요, 여러분. 가십시오. 다만 오늘밤 안으로 감옥에 돌아와야 합니다.”

싱싱 감옥의 죄수들은 살인범, 어린이 강간범 등 국가에서 평생 격리시킨 미국 최악의 범죄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도관은 감옥의 문을 열었고 죄수들은 아무런 감시 없이 캐서린의 집까지 걸어가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감옥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온 세계는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켰는지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살았습니까? 학위와 자격증 취득에 급급해 복음 사역에 소홀하지는 않았습니까?

나의 자부심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세상의 업적과 직업이 주는 위상에 도취되거나 실망하진 않습니까? - 맥스 루케이도 /「아주 특별한 사랑」

 

기도의 특징

참 고 성 경 귀 절

1

마음의 짐을 토로함

마 26:38

2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함

마 26:39

3

자신의 뜻을 내세우지 않으심

마 26:39

4

확신을 위해 거듭 기도하심

마 26:39-44

5

하나님 뜻에 복종하며 구하심

마 26:42

6

자신을 낮추며 겸손히 구하심l

마 26:35

7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심

막 14:36:

8

혼자 외로이 기도하심

눅 22: 4

9

하나님께 기도 응답 받음

눅 22:43

10

힘써 간절히 기도하심

눅 22:44

정리하며 확신하며 : 예수 겟세마네 기도의 특징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2권, p641

43주 (수)

찬송 :(새)341장, 367장

■ 마가복음 14:32-15:47 누가복음 22:39-23:56 체포, 처형, 장사(3)

☞ 줄거리

마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체포 과정, 그리고 심문받는 장면을 기록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 속에서 살인자 바라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라바는 당시에 민란을 주도하고 살인을 하여 사형을 선고받은 사형수였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이 계속해서 자신을 압박해오자, 주님을 석방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석방하려고 무리들에게 주님과 바라바 중에서 유월절 특사로 한 사람을 선택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이 사형수보다 죄 없는 주님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와는 달리 무리들은 대제사장의 충동을 받고 바라바를 석방을 요구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무리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빌라도는 할 수 없이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고, 죄 없는 예수님을 처형하도록 허락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라바처럼 죽을 수박에 없었던 우리들을 위해서 친히 죄인이 되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이것까지 참으라(눅22:49-51)

“ 그 중에 한 사람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오른 귀를 떨어뜨린지라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눅22:50,51)

여러 해 전 화제가 되었던 영화 미션의 내용입니다. 18세기 남미 이과수 폭포 상류에 살던 원주민 과라니 족은 폭포를 기어 올라와 전도하려는 예수회 신부들을 오는 족족 폭포 밑으로 떨어뜨려 죽입니다. 그러다가 가브리엘 신부가 이들을 감화시켜 천주교로 개종시키고 정글에서 끌어내어 새로운 교구를 이룹니다. 그러던 중 포르투갈이 이곳을 무력으로 점령하려 하자 교황이 추기경을 파견하여 타협을 시도합니다. 추기경은 신부들에게 포르투갈 군인들에 의해 모두 몰살당할 테니 원주민과 정글로 돌아가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신부와 원주민들은 한결 같이 새롭게 하나님을 받아들인 이곳을 떠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원 주민들은 가브리엘을 따르는 무저항 순교파와 멘도사 신부가 이끄는 무력 대항파로 갈라집니다.

멘도사는 악명 높은 노예 상인으로 여자관계로 동생을 살해한 뒤 죄책감에 시달릴 때 가브리엘의 도움으로 죄를 회개하고 신부가 된 사람입니다. 한편 무력 대항 파를 이끌고 나가려던 멘도사가 가브리엘을 찾아가 자신을 위해 축도해 줄 것을 요청하자 가브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 거절합니다. “힘이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설 자리는 어디란 말이요?”

우리는 때로 커다란 악의 세력과 대항해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떠한 방법을 써야 합니까? 멘도사 처럼 무력 저항을 해야 합니까? 아니면 가브리엘처럼 무저항으로 나아가야 합니까?

본문에서 예수와 12제자도 이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즉 대제사장들이 보낸 무리들이 예수를 체포하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 중에 하나가 칼을 빼어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칼을 도로 집에 꽂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것까지 참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주님은 무리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결코 그 힘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결박을 풀고 도망칠 수 있는 충만한 힘을 지니셨지만 그대로 결박에 묶인채 서 계셨습니다.이는 당신의 운명에 무력하게 복종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의 사역을 완수하고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조용히 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정의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까가? 혹시 제자중의 한 사람처럼 검을 빼어 들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너희는 이것까지 참아야 하느니라.”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주석, 신약 3권」 p656-

살며 생각하며 : 가장 위대한 학자

일본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학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서슴치 않고 모로바시 데쓰지(諸橋轍次,1883-1982)라고 할 것입니다. 모로바시는 1922년 경에 한문 사전의 편찬에 착수, 각고의 세월 11년이 지난 후에야 그는 겨우 제1권을 편찬할 수 있었지만 태평양전쟁이 발발함으로써 원고가 모두 불타고 절망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전 작업에 착수한 지 24년이 지나자 그는 과로로 인하여 우측 눈을 완전히 실명하게 되었고, 왼쪽 눈도 겨우 사물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더구나 모로바시로서는 자기를 지성껏 도와주던 제자 4명이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그야말로 절망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로바시가 눈도 잃고 제자도 잃고 낙심하고 있을 때에는 그 어린 세 아들이 아버지를 돕겠노라고 나섰습니다.

큰 아들은 고등학교를 마친 후 바로 사전 작업의 조수가 되었고, 둘째와 셋째 아들도 대학을 마치자 곧 아버지 곁에서 일을 했습니다.

이와 같이 2대의 4부자가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끝에 사전이 완수된 것은 1955년이었으니 착수한 지 무려 33년만의 탈고였습니다.

이 책은 현재 우리나라 백과사전 크기의 13권으로 되어 총 페지는 15.000에 이르고 있는데 이 지구상의 그 숱한 책 중에서 한 사람이 저술한 것으로는 가장 방대한 책입니다.

-성서 연구사/「기독교 문장 대백화사전, 18권」p685-

정리하며 확신하며 : 교회의 7대 사역

 

7대 사역

참고 성경구절

1

예배

마태복음 4:10

2

말씀을 가르침

사도행전 2:42

3

복음 전파

사도행전 5:42

4

성도의 교제

사도행전 2:42-46

5

성만찬과 세례식

고린도전서 11:23-34

6

권징

마태복음 18:17

7

봉사와 구제

사도행전 6: 1- 3; 에베소서 4:12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4권, p 64

43주 (목)

찬송 :(새)595장, 372장

■ 마가복음 16: 1-20, 마태복음 28: 1-20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최후의 명령(1)

☞ 줄거리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제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놀랍게도 주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한 사람이 당시에 천대받던 여자들이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을 바르기 위해서 새벽에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무덤에서 주님의 시체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에 여인들은 천사를 통해서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의 부활 장면을 목격한 군사들이 대제사장에게 가서 그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대제사장들은 군사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누가 와서 주님의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에 넘어졌던 베드로를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 모든 족속을 내 제자로 삼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아버지 거기 계세요(마 28::20)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0)

 

어느 날 한 어머니는 그녀의 어린아이 둘을 아랫 층에 남겨 놓고 윗 층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과 장난감을 주며 말했습니다

"엄마는 윗 층에 있을 테니까, 염려 말고 여기서 놀고 있거라, 응?"

"정말 윗 층에 계실 거죠?

"그럼!"

그리고는 그 어머니는 윗 층으로 올라가 일을 시작하였다. 일을 하던 중 아랫 층에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거기 계세요?"

"그랴, 엄마 여기 있다 왜 그러니?"

"아니에요, 그럼 됐어요."

그리고 한 참 일을 하던 중, 다시 아랫 층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엄마 거기 계세요?"

"그럼 여기 있단다?"

"그럼 됐어요."

어머니가 윗 층에서 일하는 동안 이 대화는 계속 되었습니. 어린 아이들은 윗 층에 있겠다고 말한 어머니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식의 대화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해야 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존재가 확인되어야 마음 놓고 놀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과 하나님의 관계도 그렇지 않은가요?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심정을 다 알고 계시기에 영원히 변치 않을 약속을 말씀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이 약속으로 마음에 안정을 얻고 우리의 할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과연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지 불안한 생각이 들 때면 언제든지 물어보십시오.

"아버지, 거기 계세요?"

자, 하나님의 대답이 분명하게 들려오지 않습니까?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신약 1권」, p 966-

살며 생각하며 : 아빠의 목발

어느 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이 함께 여행을 하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자동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큰 사고였습니다. 어머니는 가벼운 상처를 입었으나 아버지와 딸은 모두 크게 다쳐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특히 딸의 상처가 깊어서 오랫동안 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치료를 했으나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신세가 되었습니다.

딸보다 먼저 퇴원한 아버지의 신세도 딸과 다름이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사고 당시 사춘기에 있었던 딸은 무엇보다 마음의 상처가 깊었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친구들이 조잘거리며 신나게 몰려다닐 때도 그 딸은 늘 혼자 목발을 짚고 외로이 집으로 와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같은 목발 신세인 아버지가 말동무처럼 딸에게 다가와 다정하게 대해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주어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딸은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투정을 부리는 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아버지가 나서서 말없이 그 투정을 받아 주었습니다. 딸에게는 아버지와 공원 벤치에 나란히 목발을 기대어놓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었습니다. 어려운 사춘기를 잘 넘기고 딸은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입학식 날 아버지가 학교에 같이 참석하여 딸을 껴안아 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내 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너는 나의 자랑이며 보람이란다."

딸은 정말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해 어느 날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나란히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와 딸은 목발을 집고 가야 했습니다. 길을 걷는 그들 앞에서는 작은 꼬마 하나가 공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공이 큰길로 굴러갔습니다. 꼬마는 앞뒤를 살피지도 않고 공을 주우러 큰 길로 뛰어들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큰 트럭이 전속력으로 달려 나오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딸의 아버지가 목발을 내던지고는 길로 뛰어들어 꼬마를 안고 딩굴어 위험의 순간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꼬마를 안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길을 건너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순간적인 행동은 너무나 날쌨고 자연스러웠습니다. 목발 짚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동작이었습니다. 딸은 자기 눈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가 다가와서 딸을 꼭 껴안고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얘야, 이제 말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사실 너의 아버지는 다리가 다 나았단다. 퇴원 후에 곧 정상이 되었거든. 그러나 네가 목발을 짚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버지도 목발을 짚고 다니기로 작정하셨던 거야. 내가 말렸지만 너랑 아픔을 같이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던거야. 그러니까 그게 벌써 오년이 되었구나. 이 사실을 아버지 회사원도, 우리 친척도 아무도 모르지. 나와 아버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드는 아버지를 보며 딸은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아빠의 목발'을 읽고에서 ..(백운초등학교 5-2 23번 백지연) 2008/10/05

정리하며 확신하며 : 예수 지상 대명 4대 강령과 그 의미

예수 지상 대명

의 미

가라

성도의 전도 사역 시 적극적이고 능동인 자세로 임하라는 명령

제자를 삼으라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라는 명령

세례를 주라

예수의 몸인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신앙생활을 함께 하게 하라는 명령

가르치라

말씀을 배우고 지킴으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케 하라는 명령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2권, p691

43주 (금)

찬송 :(새)199장, 234장

■ 누가복음 24: 1-53, 요한복음 20: 1-21:25 주님의 최후 명령(2)

☞ 줄거리

누가는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 날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제자들은 심히 낙심하여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약 성경을 통해 메시아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그들의 집에 들어가셔서 함께 식탁에 앉아 기도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 제자들을 자기들과 함께 앉아 있는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이 있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깨닫고, 즉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가서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한은 그때에 사도의 소명을 포기하고 바다로 돌아갔던 제자들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낙심하여 사도의 사명을 포기하고 어부로 돌아간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자신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만나서 그의 직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부활의 예수(<눅 24 : 36- 49)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 24:48)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시고 주의 증인이 되어 살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부활신앙은 사람의 생각과 삶의 대 변화를 가져오게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놀라운 삶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신앙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부활을 확신하는 삶.(24:36-45)

제자들은 여러 증인들의 부활의 증언을 들었고, 부활하신 주께서 자기들 앞에 나타나셔서 인사까지 하셨지만 믿지 못하고 놀라며 무서워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영(유령)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제자들에게 상처가 난 손과 발을 보여주셨고 구운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시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하셨던 것처럼 성경을 가르치심으로 부활신앙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제자들은 참으로 미련하고 답답하였지만 주께서는 인내하시며 그들이 부활신앙을 갖도록 섬기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평소에 주님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었다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인데 그들은 주님의 말씀보다 이스라엘의 회복 같은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상 주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제자공동체는 공황상태와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부활을 확신하는 삶이 곧 제자의 삶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대로 주님은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의를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이제 죽은 자들도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부활할 것을 믿고 이 땅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부활을 확신하는 삶입니다(고전15:58).

주의 증인으로 사는 삶.(24:46-49)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주 예수의 증인으로 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주의 증인으로 사는 삶이란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주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고전15:58;고후5:15).

힘써야 할 주의 일이란

첫째, 부활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복음전도입니다. 주님은 죄 사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살라고 증거해야 합니다.

둘째, 주께서 맡기신 양을 먹이는 목자로 사는 것입니다. 목자는 제자양성에 헌신하는 자입니다. 일대일이나 그룹으로 영혼을 말씀과 기도로 섬겨 예수를 따르는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

셋째, 공동체를 이루어 주님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성 삼위 하나님을 예배하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은혜를 받아 평강을 누리는 모임이 되도록 애쓰는 것입니다.

넷째, 가정과 직장, 민족과 세계가 주의 구속의 은혜로 새롭게 되는 비전 가운데 기도하면서 자기가 처한 환경에서, 특히 직업을 통해 주의 구속의 범위를 넓혀가는 것입니다(고후5:19).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복을 받으십시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5, 8,30-

살며 생각하며 : 나에게 총을 겨눌지라도

1999년 4월20일 콜로라도 덴버의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의 총기 난사로 13명의 학생과 교사가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건을 저지른 이들은 히틀러의 생일을 맞아, 이런 광기 어린 학살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학생들을 캠퍼스의 한군데에 모아놓고, 한 사람씩 총구를 갖다 대며 이렇게 물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믿느냐?” 이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살기 위해서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음흉한 미소를 띠며 그들을 살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공포 분위기 가운데서도 확실한 신앙의 결단을 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캐시 버낼입니다. 그는 죽음의 총구 앞에서도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리고 너희도 역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만 한다.” 이 말을 들은 해리스와 클리볼드는 “네가 믿는 하나님의 곁으로 가라” 하며 총을 쏘았고, 결국 캐시 버낼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있은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압니까? 미국의 십대들 사이에서 엄청난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캐시 버낼의 순교 앞에서 자신들의 비겁함을 한없이 부끄러워했습니다. 얼마 후, 남아 있던 학생들 사이에서 자신들도 캐시 버낼과 같은 담대한 증인으로 서야 되겠다는 신앙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 미국 전역의 각 학교에서는 ‘우리도 캐시 버낼의 길을 따르자’라는 운동이 벌어지게 되었고, 캐시 버낼의 순교적 결단을 기념하는 국기 게양대 앞 기도회는 인산인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혹은 말씀을 묵상할 때 내게 좋게 들리는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진 않습니까? 절대자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할 만큼 내가 절대적으로 여기는 것 - 돈, 직장, 명예 등 - 이 있습니까? - 기독교문사,「이헌구,비교급에서 최상급으로」-

 

중보 사역이 성도에게 미친 영향

참 고 성 경 귀 절

1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 간구할 수 있음

요 14: 6,14; 히 4:15,16

2

생명을 얻게 됨

요 20:31; 롬 6:23

3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됨

롬 1: 8; 엡 5:20

4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됨

롬 5:1,2; 엡 2:14,15

5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음

고전 6:11

6

승리의 생활을 하게 됨

고전 15:57; 히 2:17,18-

7

믿음으로 인해 담대 짐

엡 3:12; 히 10:19

8

그리스도 안에서 죄 용서를 받음

엡 4:32; 요일 2:2,12

9

하나님을 찬미하는 생활을 하게 됨

히 13:15

10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됨

벧전 2: 5

정리하며 확신하며 :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이 성도에게 미친 영향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3권, p995

43주 (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주제 : 아름다운 형제 연합(시133:1-3)

말씀 묵상 : 아름다운 형제 연합을 이루라! (133편1- 3)

본 시편은 언약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감사하며 격려하기 위해서 쓰인 다윗의 시입니다. 분열과 혼란이 많은 이 세상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비결이 무엇이며, 이런 공동체를 이루어야 할 이유를 배울 수 있습니다.

☞ 연합하여 함께 살아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시인은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보고 감격스러워합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에 흡족한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공동체의 모습은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에서 드러났습니다. 여기서 형제는 언약 백성들의 공동체나 신앙공동체를 의미하는데, 이들이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세 차례 예루살렘에서 절기를 지키면서 연합하고 공동생활을 하였는데, 서로 아낌없이 나누고 격려하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이 공동체 안에 들어오면, 놀라운 위로를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복스러운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공동체에서 배움과 교제와 나눔을 통해 자신의 가치와 비전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교회나 신앙공동체는 연합하여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알려지기를 꺼려해서 예배만 드리고 살며시 돌아가는 성도님들이 적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서로 서로를 지켜주고 서로가 복된 삶을 살아가는 모체가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 여러 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도 연합의 덕을 세우고 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드는데 협력하시길 바랍니다.

☞ 복되고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에 주어지는 복을 두 가지 비유로 말해줍니다. '머리에 보배로운 기름이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는 비유는 대제사장의 수염에 흐르는 향유를 비유한 것인데, 거룩하고 아름다운 축복을 상징하는 것이며,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는 비유는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풍요로운 복을 의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복을 명해주셨는데, 그것은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종적인 복은 영생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 공동체 안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은 개개인에게도 복을 주시지만, 공동체 가운데 더 풍성한 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복을 끊임없이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는 공동체 안의 연약한 지체들이나 교회 밖의 이웃들을 돌아보고 격려하는 일을 힘써야 합니다. 우리 속한 모든 공동체가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고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더 힘들고 어려운 곳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8. 10. 21

살며 생각하며 : 여왕을 손수레에 태운 남편

서울 변두리에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당신, 오늘.. 알죠?"

이른 아침, 아내의 머리 위에 옥수수가 담긴 함지를 올려 주며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으차! 알았어. 일찍 끝낼 테니 걱정 말라고"

남편은 시장 통에서 손수레로 물건을 실어나르는 짐꾼이었고, 아내는 옥수수를 쪄서 시장에 내다 파는 행상이었습니다.

"두 개? 하나? 글쎄, 찰옥수수라니까요"

초여름 뙤약볕 아래 죄판을 벌이고 옥수수를 파는 일은 참으로 고단했지만 아내는 한푼 두푼 돈 모으는 재미로 힘든 줄 몰랐습니다. 그날은 남편의 생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다른 날보다 일찍 장사를 끝낸뒤 남편을 위해 선물을 사고 고기며 찬거리들을 한아름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잠깐만요.. 아휴, 벌써 몇 번째야. 큰일 났네."

많은 짐을 머리에 이고 힘겹게 올라타는 아내를 버스는 번번이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집까지는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지만, 아내는 하는 수 없이 걷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습니다.

한편, 남편은 아내가 밤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속상했다가 화가 났다가 끝내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내가 보였습니다. 남편은 얼른 손수레를 끌고 달려가 짐부터 받아 실었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

왜 늦었냐는 다그침에 아내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짐이 많아서 차를 탈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은 가여운 아내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웃으며 아내를 번쩍 안아 손수레에 태웠습니다.

"자! 여왕님, 그럼 지금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이, 당신두.."

남편이 끄는 낡은 손수레. 퉁퉁 부은 발만큼 마음이 부어 있던 아내에게 그것은 세상 그 어떤 차보다 안락한 자가용이었습니다. 크로스 맵 자료실 목회 신학 예화 2005-06-13

돌아보며 다짐하며 : 가진 것은 언제든 잃을 수 있지만 ☜

나무가 자라기 위해서 매일 물과 햇빛이 필요하듯이 행복이 자라기 위해서는 아주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내가 가진 것이 없어 보이는 건 가진 게 없는 게 아니라 내 자신에게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사는 게 힘이 들 때면 내 건강함에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웃음을 행복으로 보고 아무 일도 없던 늘 그런 일상에도 감사합니다.

때론, 뉴스에 나오는 일가족 교통사고에도 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행복을 훔쳐보곤 합니다. 행복을 저금하면 이자가 붙습니다. 삶에 희망이 불어나는 거죠.

지금 어려운 건 훗날 커다란 행복의 그늘을 만들어 줄 것임을 믿습니다.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건 두려움이 아니라 행복의 자잘한 열매입니다.

썩은 열매는 스스로 떨어지고 탐스런 열매만이 살찌우게 됩니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마음의 밑바닥에서 시들어가는 행복을 꺼내고 키우셔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것 그것은 죄입니다.

누군가 나를 안타까운 맘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보여주셔요. 그게 행복의 시작이 됩니다.

할 수있습니다 그리고 해야만 합니다. 내 존재의 가벼움은 처음부터 없는 거죠.

사랑받고 있음을 잊었나 봅니다. 잠시 일상의 중독에서 벗어나 봄의 햇살과 만나보셔요.

세상은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유하기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요

사는 모습이 다 다르듯 보는 눈도 달라져야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가지의 눈은 하나만 보게 된다는 것 가진 것은 언제든 잃을 수 있지만 내 행복은 지킬 수도 느낄 수 있습니다. - ‘좋은 글’(2007.06.06) 중에서 -

오늘의 기도 : 가족 연합을 위한 기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고" (시 133:1)

우리에게 가족을 허락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서로 의지하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를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 가족이 있음으로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한 것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 되기를 원하시고 기뻐하신 주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여려움이 뭔지 헤아리고 중보해주는 기도의 동역자가 되게 하시고, 나의 필요를 위해서 가족이 존재해 주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가족의 필요가 되게 하시고, 비록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고, 차라리 없으면 좋을 것 같은 가족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소중한 가족임을 알고 그 가운데서 행복을 누리고 섬김과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비록 서로 간의 희생이 따른다 할지라도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나를 내어 줄 수 있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시고, 그것이 결국 가족의 참 행복이며 나의 행복임을 깨닫게 하시며, 주님의 안배하심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시간을 정해서 함께 예배드리며 주님을 섬기는 것을 우선할 수 있도록 하시고, 주의 향기를 나타내는 아름다운가정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사랑의 띠로 묶어 아름다운 능력을 발할 수 있는 가족 구성원 되게 하시옵소서.

가족의 연합을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