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 신학 >>>/- 신 론(하나님)

5. 신론(하나님의 속성)무소부재하심

에반젤(복음) 2020. 2. 21. 15:20


.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예레미야 23 : 23, 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지 않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즉 환경, 시간, 공간에 제한 받지 아니하시고 초월적으로 활동 하시는 하나님을 말할 때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 혹은 편재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와 같이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되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139:7).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은 그 사실을 믿는 성도들에게 큰 힘이 되어 주시고, 불신자들에게는 엄중한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 사실을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께 대한 그릇된(잘못) 생각들

 

 하나님께서 어느 곳, 어디에서도 활동하고 계심을 증거하는 성경의 증언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그릇된 신관을 지적해 줍니다.

먼저 이상주의 신관. 이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은 오직 하늘보좌에만 계시고 지고(더할 수 없이 높은)하신 분으로만 여기는 생각입니다. 이와 같은 이상주의 신관은 자칫하면 하나님을 비인격적이며 비윤리적인 우상으로 격하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즉 오직 자기세계에만 머무는 하나님, 그래서 인간의 세계와 그 문제에는 냉담하며, 인간들이 울부짖어도 인언반구의 대답도 없는 하나님, 바로 모리아 산에서의 바알 신과 같은 하나님입니다(왕상18:26-28). 또 하늘세계에만 계시는 하나님을 주장하는 자들 중에는 초대교회에서 영지주의 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인간 세계는 악이요, 하나님 세계는 선이기에 선이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간 세계와 직접 연관을 가질 수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일종의 환상이라고 했던 것입니다(요일4:1-3). 그러나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증언 할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은 사랑의 인격자로서 창조하신 만물과 인간 세계의 문제에도 동참하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으로 증언합니다(28:15, 20:1, 28:20).

 다음은 범신론 주의적 신관. 즉 이상주의적 신관과는 아주 반대의 생각으로서, 하나님께서 무소부재 하신다면 모든 사물이나 사람 속에도 원래적으로 임재해 계시다는 신관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나무나 바위 속에도 신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인간의 깊은 영혼 속에도 신이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불심, 혹은 철학 세계 속에서 나타나는 순수 이성도 이 범신론의 신관의 일종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상주의적 신관 및 범신론 주의적 신관은 성경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는 배치(반대)되는 극단적 신관임을 기억합시다.

 

2. 무소 부재하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이해

 

 

 그렇다면 성경의 무소부재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여기에서 주의할 것은 어떤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합니다. 즉 인간의 유한성과는 달리 전능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환경, 시간, 공간을 초월하심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첫째로 환경에 무소부재하십니다(11:7-10, 145:3). 인간은 환경에 따라 제약을 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떤 악한 세력이나 환경에도 제한 받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둘째로 시간에 무소부재하십니다(90:2, 102:12). 인간은 시간에 제한 받는 존재이기에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인간적 시간은 의미가 없습니다. 영원자 이시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시간에 제약 받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셋째로 공간에 무소부재하십니다(왕상8:27, 66:1, 17:27, 28). 이와 같은 무한성을 편재성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보좌에서 자신의 신적인 본질을 지키시면서도,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고전12:28) 계시는 분이십니다. 이 또한 신비에 속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비는 인간 편에서 볼 때나 신비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 뿐입니다.

 

3. 무소부재하신 하나님과 인생들

 

 1) 불신자들에게는 엄중하신 섭리주요 심판주가 되십니다.

  하늘, 음부, 바다 끝, 흑암(139:8,9)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피하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오직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길밖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1:20).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무소 부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예입니다. 그리스도는 환경과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셔서 만유와 관계를 맺고 계시는 하나님의 실체요, 증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정하신 사람으로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17:30,31).고 했습니다. 이 때 인생들은 불가지론이나(인간은 신을 인식할 수 없다) 범신론을 주장할 수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 안에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영접해야합니다.

 

2) 성도들에게 보혜사기 되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물 가운데 …불 가운데”(2:10) 지날 때도 한께 하사 보호해 주신다고 하셨으며,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18:20) 곳에도 함께 계실 것이며, “세상 끝날 까지”(28:20) 곁에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때로는 고집쟁이 야곱처럼, 루스 광야에서 고난의 돌 베게를 베고 공포와 슬픔에 젖어 있을 때 바로 그 환경과 장소마저도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의 전(28:17)임을 고백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