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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론(스스로 계신 하나님)

에반젤(복음) 2020. 2. 21. 15:22



. 스스로 계신 하나님

 

출애굽기 3 :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아삽은 그의 시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성호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알려지셨도다.(76:1). 하나님의 칭호는 다양합니다. 그 중 제일 독특한 칭호는 오늘 말씀의 제목이 되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3:14). 이 하나님의 칭호는 여호와로서 특별히 은혜의 하나님 되심을 밝히는 자기 계시로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겸허한 접근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인지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구속의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계시에서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라는 제하에서 말씀을 상고할 때 운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유일하신 하나님

 

 1) 우상과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상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그 모든 우상들이 저 마다의 형상을 가지고 있음에는 예외 없이 누군가의 손에 의하여 조각되거나 만들어 졌음을 보여줍니다(19:23-26). 그러나 모세의 질문에 응답하는 하나님은 누구에 의하여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되심을 밝혀줍니다.

 

 2) 구속의 계약을 맺은 인격적 하나님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강요가 아닌 은혜의 계약을 하여 주십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상급이라”(15:1).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3:12). 또 중요한 것은 은혜의 계약을 주시는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3:6, 24:4). 이처럼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역동적이고 능동적인 자존자로서의 능력의 소유자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2. 역사적인 하나님

 

 가시나무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 사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모세는 창조역사를 포함한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입니다(3:13).

 

 1)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더욱 확고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3:15).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부터 시작한 선민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의 역사의 중앙에서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는 동일한 하나님이 되심을 적극적인 계시를 보여 주셨습니다(13:8).

 

 

 2)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드시는 하나님

  역사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관망자로 그치지 않으십니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2:16). 과거의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역사 선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 모든 성도들을 붙잡고 계십니다(4:16). 뿐만 아니라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성도를 떠나지 않고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믿음의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1:23).

 

3. 예배의 대상이 되심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홀로 예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전도서 기자는 전도서 1213절에서 이렇게 결론적 단언을 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2:13). 그렇다면 어떤 내용의 경배가 가능할 까요 ?

 

 1) 언약의 성취를 바라며, 언약의 성취됨을 기뻐함으로 경배해야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찬양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의 성취됨을 즐거워 찬양하였습니다(15:1).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송취를 그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1:39 - 5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술에서 ‘애굽에서 구원’을 베푸신 은혜의 노래가 끊이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32:1 - 47).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언제나 구속의 감격이 떠나지 않는 경배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나가서는 천국의 영생까지 성취될 것을 바라면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이것이 곧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라고 할 구 있습니다(13:15).

 

 2) 계명을 지킴으로서 경배해야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은 곧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13:16). 즉 계명을 지켜 사는 것이 최선을 다하는 삶임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12:30 - 31). 경배의 대상이 되셔서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은 계명을 지켜 사는 믿음의 사람들의 삶에 두 가지의 약속을 더하십니다. 하나는 이 땅 삶 가운데서의 은혜이며 또 하나는 천국의 상급으로 기억하여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19:28-29, 11:6).

 

 

맺는 말

모세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15:2 - 3).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되심을 깨달은 모세는 그의 삶 속에서 은혜의 계약이 성취됨을 기뻐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와 같고”(18:10). 그 이름은 이스라엘에 크시며(76:1). 여호와의 이름보다 아름다운 이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20:7).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150:6). 할레루야의 ‘야’는 여호와의 약어입니다. 오직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입술의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