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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십계명/7 강

에반젤(복음) 2020. 2. 14. 10:11



살인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찌니라.” (출20:13)

 

 

I. 6 계명의 의미

 

  앞에서 살핀 것처럼 5-10 계명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문제를 다룬다. 다시 말해서 더불어 사는 인간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5계명은 그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가까운 인간이라할 수 있는 부모를 공경함으로써 이웃 사랑의 기초를 놓아라는 명령이다. 이제 6계명은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으로써 이웃 사랑에 대한 최소한의 한계를 설정해 놓고 있다. 즉 이웃을 사랑하는 최소한의 행동으로 이웃의 생명을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면 본문의 의미를 보다 깊이 살펴보면서 이 계명의 구체적인 내용을 탐구해 보자.

 

 

II. 본문 연구

 

  1. 살인의 의미

  살인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나 외의 이웃의 생명을 해치지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허락해 주신 생명을 내 뜻대로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것 이것이 살인이다. 더 넓은 의미로 이 살인은 인간 생명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생명공간의 모든 생명을 해치거나 상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살인의 형태를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직접적인 살인/

  의도적으로 생명을 해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인 동기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폭력으로 생명을 해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자살도 포함된다. 자기의 생명을 의도적으로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 간접적인 살인/

  우리가 직접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우리로 인해 다른 사람의 생명이 상함을 입는 것을 말한다.

  우선 우리의 실수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 손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교통사고나 우리의 부지불식간에 저지른 행동으로 다른 생명이 손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다음으로 우리의 직무유기로 다른 사람의 생명이 손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마땅해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생명이 손상을 받는 것을 말한다.

  생명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이 땅에 존재한다. 생명치고 저절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 생명치고 이 생명공간에서 불필요하게 존재하는 것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뜻 안에서 존재한다. 그래서 저들의 존재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생명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더더욱 생명이 풍성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누려지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찬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대 자연이 그 자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까지 노래했다.

  살인이란 바로 이런 생명 존재를 해치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거역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그 자체로 방해하는 것을 말한다.

 

  2.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의 뜻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의 뜻은 한 마디로 이런 살인으로 다른 생명을 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명령 안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있다.

 

  1) 생명 창조를 방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있으라” 말씀하셔서 생명들이 존재한다. 특히 인간은 흙으로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존재하게 되었다. 살인은 이런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존재케 하신 것을 존재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이니 반창조적 행동인 것이다.

  어찌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창조주의 창조행위를 거역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2) 생명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창조하셨고, 그 생명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존재한다. 그뿐 아니고 그 생명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 그리고 그 생명 안에는 하나님의 비전이 그려져있다. 때문에 생명은 그 자체로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을 한 없이 존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슈바이처처럼 “생명에의 경외”를 느끼며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찬양을 부른다.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워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3) 생명을 구하라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는 이 계명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분의 사랑을 바탕으로 이웃을 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떤 곤경 속에서도 이웃을 도우며 격려해 주어야 한다.” 즉 그는 이 계명을 적극적인 의미로 바꾸었다. 살인을 금하는 금령을 생명을 구해주는 계명으로 바꾼 것이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보듯이 생명이 죽어가는 상황에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하고 구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4) 살인의 예외 규정도 있다.

  하나님께서 몇 가지 경우에는 생명을 해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첫째, 제사를 위해서 제물의 생명을 해하도록 허락하셨다.

  둘째, 식용으로 사용할 생명을 해하도록 허락하셨다.

  셋째, 자기 방어를 위해 생명을 해하도록 허락하셨다. 전쟁 중에 정당방위로 살인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허락하셨다.

  넷째, 처벌을 위해 생명을 해하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형을 집행하는 것, 죄를 청산키 위해 죄인들을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III. 제 6 계명이 주는 오늘의 메시지

 

  1. 생명을 사랑하라

  마 5:21-2에 보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주님께서는 살인보다 살인하게 되는 동기조차도 금하고 계신다. 생명을 죽이고 싶고, 생명을 해하고 싶고, 생명을 무시하고 싶고, 생명을 욕하고 싶은 욕망 그 자체까지도 없애라는 것이다.

  창 4장에 최초의 살인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자 가인은 질투가 생겼다. 창 4:5을 보면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몹시도 미워하게 되었고 질투하게 되었다. 자기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우선 자기 제사 자체로 돌아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는 하나님께 왜 자신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았는지 묻거나 항의하더라도 하나님께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 그 원인은 질투요 미움이다.

  결국 미움은 잠재적 살인이다. 아직 행동으로 그 생명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이미 그 생명을 해친 것이다. 그래서 살인하지 않으려면 미움을 없애야 한다. 상대방의 내게 대한 죄도 용서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생명을 사랑해야 한다. 그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그 생명을 아름답게 보고, 나아가 그 생명을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어야 하겠다.

 

  2. 생명을 구하라

  오늘 우리 시대에 생명이 신음하고 있다. 이 신음하는 생명을 구하는 일에 우리가 앞 장을 서야 할 것이다.

  구약 시대에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계명이 통용되었다. 당시에는 이것이 생명을 구하는 한 방편이 되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는 무절제하고 감정적이며 불법적인 보복이 성행했다. 예를 들어 창 34을 보면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서 강간을 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디나의 오라비 시무온과 레위가 세겜 성 안에 있는 모든 남자를 할례를 받게 유인한 뒤에 몰살을 시켰다. 이런 잔인한 보복에서 그 생명을 구하기 위해 눈을 다쳤으면 눈만 보복하라는 하나의 고대적인 정의의 표현인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수많은 생명이 여러 가지 형태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일들을 해결하고 극복하는데 우리가 앞장을 서야 할 것이다.

  갖가지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불의한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이 다치고 있다. 피치 못할 전쟁은 최소화시켜야 하겠지만 이런 불의한 전쟁은 막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여 나가야 한다.

  낙태 문제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질병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낙태도 있을 수 있겠으나 불의한 낙태는 막아야 한다. 향락과 음난한 환경 가운데 저질러지는 낙태는 막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순결 운동을 지켜가야 할 것이며 낙태는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

  안락사 문제 또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뇌사라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대두되면서 고통으로부터 생명체를 구원하겠다는 명분으로 안락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생명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고,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서만 거두실 수 있다. 안락사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그 외에 사형제도 문제, 생태계 파괴 문제 등 생명 살리기 운동과 직결된 문제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적극 나설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인간 생명이 진정한 의미에서 구원받고 영생을 얻도록 도와주는 일 이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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