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회복함[아 6장] [내용개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정지된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하여 온전한 사랑을 형성해 나간다. 본장은 사랑이 더욱 견고해지는 본서의 마지막 부분의 도입부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신랑과 신부가 첫사랑을 다시 한번 고백하는 장면과 함께 신부의 잘못에 대한 완전한 용서가 드러난다. 이같이 시련을 극복한 사랑의 회복이 나타나는 본장은 예루살렘 여인들의 질문과 술람미 여인의 대답이 들어 있는 부분(1-3절), 신부에 대한 솔로몬의 사랑 고백이 감각적 언어를 통 해 드러나는 부분(4-9절), 신부의 탁월함에 대한 여인들의 합창이 들어 있는 부분(10절), 신부의 독백이 이루어지는 부분(11-12절), 신부의 춤 솜씨를 구경하고자 희망하는 부분(13-14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술람미 여인은 오직 신랑의 은혜로 인하여 놀라운 위치를 소유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과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왕의 은혜로 놀라운 신분의 소유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그리스도로 인하여 값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영적 교훈을 아주 생생하게 전달해 주고 있다. [강 해] 전장에서 잠시 갈등을 빚었던 부부간의 사랑이 본장에서는 완전히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소한 부주의로 시련을 당한 술람미 여인은 떠나가 버린 왕을 다시 찾아 나서는 적극성으로 인해 사랑을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이들의 사랑은 더욱 아름답게 무르익어 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1. 신랑을 향한 신부의 지극한 사랑 1) 신부에게 감동된 여자들 떠나버린 신랑에 대한 술람미 여인의 애틋하고도 열정적인 설명은 신부를 비난하던 예루살렘 여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여인들은 신부를 통해 신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랑에게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을 통해 떠나가 버린 신랑을 찾아 나서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찾는 모든 자와 함께 가야 하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일깨웁니다. a.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음(아2:2) b. 여인 중에 어여쁜자(아1:8) 2) 자기 동산에서 양 떼를 먹임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자신의 신랑이 자기 동산에 거하고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곳에서 신랑은 양 떼를 먹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신부의 이 말은 신랑이 변함없이 신부의 사랑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암시해 줍니다. 양 떼를 먹이는 것은 왕인 신랑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양떼를 돌보는 신랑의 모습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연상케 합니다. 성도들을 돌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버리는 선한 목자의 모습 바로 그것입니다. a. 아름다운 실과가 풍성한 동산(아4:16) b. 하나님이 세우시는 목자(겔34:23) 3) 서로에게 속한 사랑 술람미 여인은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자신은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사랑하는 자는 자신에게 속하였다고 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이러한 표현은 당시의 풍습을 고려할 때 매우 파격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신부의 이러한 고백은 이들이 완전한 사랑으로 연합하였음을 나타냅니다. 고대 사람들은 신부는 물론 신랑의 소유이지만 신랑이 신부에게 속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술람미 여인의 신랑은 최고 권위자인 왕이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인격과 인권에 있어서 동등합니다. 결코 어느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지배하거나 억압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a. 사랑하는 자를 사모함(아7:10) b. 주 계신 곳에 함께 있음(요17:24) 2. 신부를 칭찬하는 신랑 1) 신부를 맞아들임 신랑은 찾아온 자신에게 문을 열어 주지 아니했던 신부의 잘못을 용서하고 다정하게 맞아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부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칭찬하였습니다. 신랑이 보기에 신부는 디르사같이 어여뻤으며 예루살렘같이 고와 보였습니다. 디르사는 즐거움을 주며 경치가 좋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 민족이 흠모하는 도시로 매우 특별한 아름다움과 매력을 지녔습니다. 따라서 신부에 대한 이 같은 비유는 최고의 예 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부의 아름다움을 격찬한 신랑은 계속해서 신부의 엄위함이 기치를 벌인 군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a. 아무 흠이 없이 아름다움(아4:7) b. 검으나 아름다움(아1:5) 2) 변치 않는 사랑 신랑은 신부와 결혼했을 당시 칭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신부를 칭찬하였습니다. 이같은 고백을 함으로써 그의 사랑이 변함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부의 냉정함으로 비롯된 갈등과 방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의 사랑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신랑의 이 같은 사랑은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의 전부는 크고 영원하다는 것 뿐입니다. a. 왕의 우편에 섬(시45:9) b. 주의 베푸신 모든 은총(창32:10) 3) 하나뿐인 완전한 자 솔로몬은 무수한 비빈과 왕후가 있었지만 술람미 여인과는 그 누구도 아름다움을 견줄 수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여인들의 흠모를 받을 만한 지위와 용모를 지녔지만 그 자신이 마음을 다해 사랑한 것은 술람미 여인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왕후와 비빈들조차도 술람미 여인을 칭찬할 정도였습니다. 술람미 여인에 대한 왕의 칭송은 본질적으로 그의 간절하고 지극한 사랑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의 힘은 매우 커다란 효력을 미칩니다. a. 자줏빛이 있는 머리털(아7:5) b. 시종하는 동무 처녀들(시45:14) 3. 사랑의 행진 1) 기뻐하는 신부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냉정한 거절로 돌아섰던 신랑이 또다시 사랑을 고백하자 한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그리하여 솔로몬 왕에게 처음 이끌릴 당시를 회고하며 신랑의 칭송에 화답했습니다. 그때 그녀는 전원 생활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 호도 동반으로 내려갔었다가 수레를 타고 온 솔로몬 왕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이 같은 모습은 그녀와 솔로몬 왕과의 사랑이 자발적인 갈망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a. 형제들이 어떤가 방문함(행15:36) b. 사랑하는 자들이 먹고 마시는 동산(아5:1) 2) 경의를 표함 동산에 있는 예루살렘 여자들은 술람미 여인에게 돌아오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돌아오라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부름은 술람미 여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의 표현입니다. 그들은 술람미 여인에게 돌아올 것을 간곡히 요청하면서 그녀를 보고 싶어하는 소망을 밝힙니다. 이는 단순히 술람미 여인을 보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과의 완전한 참된 사랑을 성사시킨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도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얼굴을 보고자 함(아2:14) 3) 겸손한 여인 술람미 여신은 다시 돌아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달라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요청에 어찌하여 술람미 여자를 모르느냐는 말로 반문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스스로를 낮추는 그녀의 겸손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교만이라는 것은 마치 풍선 속에 바람을 넣는 것과도 같아서 허망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 앞에서 자미를 낮추며 겸손히 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a. 두주인을 섬길 수 없음(마6:24) b. 기업의 후사가 된 기쁨(롬8:17) 결론 우리는 본장에서 시련을 이기고 다시금 성숙한 사랑을 회복한 솔로몬 왕과 술람미 여인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심각한 곤경도 찾기만 하면 반드시 해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편견을 가지거나 속단을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항상 온유한 마음과 겸손한 자세, 그리고 변치 않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단어해설] 1절. 돌이켰는가. 이 말은 '돌다, 돌이키다, 방향을 바꾸다'라는 뜻이다. 술람미 여인의 말을 들은 예루살렘 여인들이 처음에는 솔로몬 왕에게 자신의 처지를 전해 달라는 호소에 무관심했지만 돌이켜서 술람미 여인의 말에 착념함을 의미한다. 3절. 양 떼를 먹이는구나. '방목하다, 돌보다, 지키다'라는 뜻을 갖는데 본문에서는 솔로몬 왕이 왕궁에 있는 여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4절. 디르사 같고.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가진 디르사는 즐거움을 주며 경치가 좋다는 의미를 가진다. 6절. 쌍태를 낳은 양. 술람미 여인의 이를 털을 깍으려고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떼에 비유한 것은 아4:2에서도 언급되었다. 7절. 석류 한 쪽. 솔로몬 왕이 술람미 여인의 뺨을 석류에 비유한 것은 그녀의 볼이 홍조를 띠어 매우 아름답고 사랑스러움을 묘사하는 것이다. 9절. 나의 완전한 자. 완전한 이라는 단어는 '더렵혀지지 않은, 정직한'이라는 의미나 '순진한'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11절. 꽃이 피었는가. 푸른산으로 내려갔다는 것은 점점 더 깊어 가는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13절. 돌아오라. 본문에서 '돌아오라 돌아오라'를 반복적으로 말한 것은 술람미 여인을 속히 보고자 하는 열망을 나열한 것이다. [신학주제] 신랑의 큰 사랑. 사랑하는 남편의 요청을 거절한 사실로 인하여 죄책감과 두려운 마음으로 찾아온 신부에 대해 신랑은 진심으로 환영해 주었다. 솔로몬은 그녀를 자신의 수레에 태움으로써 자신의 변함없는 사랑을 공적으로 확인해 주었다. 이와 같이 사랑은 공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신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만인 앞에서 확증해 주었다. 예수께서도 만물 중에서 교회를 영광스럽게 선포하실 것이다. 우리도 주임과의 첫사랑을 기억하며 많은 사람 앞에서 영적 순결을 유지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확증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은 자랑하고 싶은 충동으로 연결된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춤 솜씨를 드러내 보이고 싶어하였다. 예수님도 교회를 자신의 면류관으로 생각하시며 기뻐하신다. 우리도 쓸데없는 인간적인 조건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자랑해야 할 것이다. 사랑은 기쁨과 찬양을 불러일으킨다. 사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신부가 남편 앞에서 춤추는 행위는 조금도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었다. 춤추는 여인의 아름다운 자태와 율동은 바로 사랑의 표현이 된다. 이와 같이 첫사랑을 회복한 성도는 온몸으로 자신의 감격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사랑으로 인한 기쁨과 찬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운 것이다. [영적교훈] 본장 3절에서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솔로몬과 온전히 하나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실로 깨어지고 비뚤어진 부부 관계는 몸과 마음의 진정한 합일에 의해서만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참사랑은 언제나 완벽한 결합을 의미한다. 우리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안에 계시 듯이, 우리 역시 그분 안에 거하고,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할 때 비로소 왜곡된 관계는 온전히 갱신되는 것이다. 그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수리는 제자들이 엠마오 도상에서 체험했던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서 항상 주님을 의식하며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본문의 술람미 여인의 체험이 곧 우리의 체험으로, 고백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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