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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1장. 특별섭리 영역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

에반젤(복음) 2023. 2. 2. 16:05
제11장. 특별섭리 영역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


  우리는 이 장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섭리 영역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다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정립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현대 기독교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크게 와전되고 오류 되어진 상황에서 각종 비 진리들이 난무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성도들의 신앙이 심히 오류, 왜곡, 변질되어 있기 때문이다.


1. 1.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성경의 증거.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11:13>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2:38>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행19: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행5:32>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행8: 15-18>


(1) 1) 성령의 역사하심에 대한 성경의 해석.


  위와 같은 성경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성령 하나님은 <주는 것>이 되고 <받는 것>이 된다. 그러나 이미 앞장에서 정립한바 있듯이 성령 하나님은 <보내어지는 성령 하나님>이 아니시며 또한 <받아지는 성령 하나님>도 아니시다.
  하나님의 주권적 차원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정립하면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에 의하여 파송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의하여 정립하면 성부 하나님이 성령 하나님을 파송하실 때에 성자 하나님께서도 동시에 성령 하나님을 파송하게 된다. 반면에 하나님의 속성적 차원에서 정립할 때에는 성령 하나님은 누구에 의하여 파송되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성령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이라는 독립적 인위<位>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존재로부터의 보냄<파송>을 받을 수 없고 받아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보내지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니시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실제적으로 보내심<파송>을 받아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보내다, 주다> 등등으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표현한 것은 실제적인 보내심<파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반면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정립할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작정된 모든 계획을, 그리고 성자 하나님에 의하여 완성된 모든 것을 실제적으로 적용하시는 집행주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때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이나 또는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명령, 지시, 간섭, 영향을 받지 아니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부 하나님의 주권으로 모든 것을 집행하시고 또한 성자 하나님의 영으로서 성자 하나님의 만왕의 왕권으로 모든 것을 집행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독자적인 역사하심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삼위의 하나님들은 각각 독립적인 위<位>로 존재하시면서 독립적인 권위와 역사를 진행하시지만 세분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각각 혼자서 역사를 진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함께 역사하시며 한분 하나님으로서 홀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에는 <연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위의 성경구절들은 문자적으로 직역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해석해야 한다.


(1) 보내심과 받는 것에 대한 해석.


  성령 하나님께서는 임재<臨在>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심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성경이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임재, 내주, 내재하심으로 표현하지 않고 <보내는 것> <주는 것> <받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당시의 성도들이 임재, 내주, 내재하심을 통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계시<啓示>이며 고지<告知>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계시<啓示>와 고지<告知>를 하실 때에 그것을 받는 자들의 수준을 고려하시어 그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차원으로 낮추어 하셨다.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을 이해할 수 있는 신학적 경륜이 없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가시<可視>적 임재<臨在>, 느낌적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심은 이해되거나 납득될 수 없었다. 신학적 경륜이 어느 정도 정립된 현대 기독교에서도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신학적 정립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당시의 상황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현실적으로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을 <보내는 것> <주는 것> <받는 것>으로 표현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을 통한 역사하심이 조직신학적으로 정립되어 있으며 성도들의 신학적 경륜도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있다. 따라서 이제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는 것> <주는 것> <받는 것>으로 이해하여 <성령 받아야 한다.> <성령 받아라> <성령 받았다> 등등으로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 대한 불경이며 무례이다.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신학적 무지이다.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표현함에 있어 그것을 성령 하나님께 적용할 때에는 임재, 내주, 내재하심으로 표현해야 하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에게 적용할 때에는 임재, 내주, 내재하심과 영접<迎接>으로 표현해야 한다.


(2) 강림에 대한 해석.


  성경은 하나님의 임재<臨在>하심을 강림<降臨>으로 표현한다. 강림이라는 용어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신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전이오리이까-왕상8:2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볔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시139:7-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사66: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24>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행7:48-49>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시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행17:27-28>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시,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시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오심이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표현은 하나님의 무량<無量>하신 존재하심과 편만<遍滿>하신 존재하심을 위<하늘>로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말했다고 하여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것은 아니다. 하늘이란 용어는 지구가 원형<圓形>으로서 자전<自轉>과 공전<公轉>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에 우주 공간에 적용하던 용어이다. 성경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가르친 것과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말한 것과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말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늘에 대한 개념을 고려하신 하나님의 배려였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말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임재<臨在>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심이라고 표현해야 한다.


가. 4. 성령 하나님 역사하심의 범위.


1) 시간적 영역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에게 처음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신 순간부터 그의 임종시까지 내주, 내재, 역사하신다.


(2) 공간적 영역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삶의 현장 전체에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신다.


(3) 이데아적 영역에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모든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신앙, 사상, 이념, 개념, 정신, 심령, 지혜, 지식, 재능, 능력, 등등의 영역에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신다.


나. 5. 성령 하나님 역사하심의 방법.


(1) 1)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심.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에게 직접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시어 역사하신다.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하나님 자녀들에 대한 것과 하나님 종들에 대한 것으로 구분된다.


(1) 하나님 자녀에 대한 역사하심.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들의 신앙적 삶에 내주, 내재하시어 그들의 신앙적 삶을 때로는 지원하시고 때로는 조절하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게 한다.


(2) 하나님 종에 대한 역사하심.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종들의 사명 현장에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시어 그들에게 신학, 능력, 재능, 은사, 사명감, 등등을 부여하시며 동역자들을 보내주시고 주변 여건을 조성하시는 등등 철저하고 완전하게 지원, 후원, 인도하심으로서 그들이 하나님께 부여 받은 사명을 진행할 수 있게 하신다.


(2) 2) 부르심<소명-召命>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에 대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그들을 부르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인치신 성부 하나님의 자녀, 성부 하나님의 종들을 성부 하나님 앞으로 불러내신다.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을 신학적 용어로 <소명-召命>이라고 하는데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은 인간의 요청이나 서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역사이며 또한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따라 진행되는 역사이다.


  한편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은 곧 성령 하나님의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하심의 시작이다. 성령 하나님의 내재, 내주하심은 각자의 심령에 느낌이 발생하거나 또는 실제적 행동으로 나타날 때부터 시작된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고 작정된 자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첫발을 내딛고자하는 마음이 발동하는 순간이 곧 성령 하나님의 내주, 내재하심의 출발인 것이다. 처음 소명을 받은 자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따라서 그것이 곧 성령 하나님의 내주, 내재하심인 것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성령 하나님의 내주, 내재하심의 시작이다. 즉, 일반적으로 말하는 <성령을 받은 것>이다. 예를 들면 아직 교회를 한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 길을 가다가 교회의 간판이나 종탑을 보고 한번 교회에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거나 또는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찬송소리를 듣고 교회에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거나 했을 때에 그는 아직 교회문턱을 넘어서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것이며 따라서 그 순간이 곧 성령 하나님의 내주, 내재하심을 영접한 것<성령을 받은 것>이다.


(1) 소명의 구분.


  소명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일반 소명>과 하나님의 종들 <특히 지도자들>을 부르시는 <특별 소명>이 있으며 그것은 다시 <외적 소명>과 <내적 소명>으로 구분된다.


① 외적 소명.


  외적 소명은 신체적, 영적, 외부에 행하여지는 것으로서 <문서, TV, 라디오, 설교, 권고,> 등등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 소명은 선택받은 자와 선택받지 못한 자들 모두에게 일률적으로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다.


②. 내적 소명.


  내적 소명은 심령에 행해지는 것이며 오직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내적 소명은 반드시 유효하기 때문에 <유효 소명>이라고도 한다. 내적 소명은 성령 하나님께서 소명한 자의 심령을 주장하기 때문에 절대 거부할 수 없게 되는 특별한 소명이다.


(2) 부르시는 방법.


①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방법.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방법은 한편의 문학적, 예술적, 드라마이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부르시는 방법은 그들의 인격과 개성과 특성에 따라 각각 다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들을 부르실 때에 강제적으로 부르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인격과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시어 그들을 자연스럽게 부르신다. 때로는 사람들을 통하여 부르시고 때로는 문서, TV, 라디오, 설교, 찬송, 등등을 통하여 부르시며 때로는 마음에 직접 감동을 주시어 부르신다. 반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주변에 다양한 사건을 조성하시어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한다. 그러나 부르시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모든 자들은 성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맞추어 하나님 앞에 나오게 되어 있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맞추어 때로는 서두르시며 심지어는 강제적인 방법까지도 동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었는데도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고 머뭇거리거나 또는 불응하면 성령 하나님께서는 각종의 극단적 조치를 내리시어 그들이 굴복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게 하신다. 그리고 이때의 극단적 조치는 매우 다양하여 어떤 경우에는 감동적이고 아름다운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심한 어려움이나 환란적 사건일 때도 있다.


② 하나님의 종들을 부르시는 방법.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들을 부르시는 방법은 자녀들을 부르시는 방법보다도 더욱 차원 높은 예술적 드라마이다. 하나님의 종들은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 다시 부름 받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을 때보다 더 많은 시간과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것은 대체적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A. 개인적인 이유.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 받는 자들은 겸손함, 두려움, 고난적 삶에 대한 거부감, 분별력, 등등의 다양한 이유에 의하여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않거나 또는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자들이 소명의식과 소명감을 가지고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과정들을 거치게 된다.


B.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다양한, 그리고 많은 훈련과 연단의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중대한 사명을 받은 자일수록 그가 거쳐야 할 훈련과정과 연단과정은 더욱 많고 다양하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시기 전에 수많고 다양한 연단과 훈련 과정을 거치게 하시며 일단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신 후에는 더욱 강도 높고 차원 높은 연단과 훈련과정을 거치게 하신다. 하나님의 종들은 때로는 길 없는 험산 준령을 밤낮없이 오르내리는가 하면 때로는 눈보라 휘몰아치는 허허벌판을 속절없이 헤매야 하고 때로는 사나운 태풍과 비바람이 휘몰아쳐서 산더미같은 파도가 솟구쳐 오르는 망망대해를 일엽편주로 건너야 하고 때로는 오아시스도 없고 끝도 모르는 뜨거운 사막을 맨발로 건너야 한다. 한편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자신들의 환란과 고난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다만 하나의 인생역경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때로는 절망하고 때로는 슬픔과 괴로움에 심지어는 인생을 포기하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단과 훈련의 과정이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항상 함께 하시면서 견딜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고 끝까지 보살피시며 인도하심으로 그들이 그 모든 과정을 헤쳐 나가게 하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종들은 비록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결국은 모든 연단과 훈련의 과정을 마친 후 강하고 담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진다.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단련하심을 통하여 정금이 되는 것이다.-욥23:10>


(3) 소명의 시간.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에 의하여 소명을 받는다. 때문에 각자 소명 받는 시간이 다르다. 어떤 자는 모태에 있을 때에 이미 소명을 받는가 하면 어떤 자는 임종<臨終> 때에 소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소명 받는 시간의 다름에는 하나님 섭리가 적용되는데 그것은 자녀로 부름 받는 경우보다는 대부분 종으로 부름 받는 경우에 해당된다. 자녀로 부름 받는 자들은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자 본인들의 상황이 고려된다. 예를 들면 일찍 부름 받는 것이 본인에게 유익하면 일찍 부르시는 반면에 늦게 부름받는 것이 본인에게 유익하면 늦게 부르신다. 그러나 종으로 부름 받는 경우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의 입장이 고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가 적용된다. 하나님의 종들은 개인적인 신앙적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위하여 사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진행하게 되는 동역자들과의 관계가 특별히 고려된다. 따라서 그들의 소명과 연단의 과정은 하나님의 섭리에 맞추어 조절된다. 그리하여 하나님 섭리의 진행과정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소명과 연단의 과정이 늦추어지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소명과 연단의 과정이 오히려 재촉된다.


(3) 3) 인도하심.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종들이 진리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고 충성하며 살아가도록 그들의 신앙적 삶의 현장과 사역현장을 돌보시며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면서도 현세에서는 아직 성화를 이루지 못하였고 또한 사단의 집요한 공격과 유혹으로 인하여 진리적 삶으로부터 이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심령을 주장하시어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섭리 안에 살도록 인도하시며 저들을 사단의 유혹과 공격으로부터 지키시고 보호하신다.


(1) 도우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 앞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하나님 자녀의 반열에서기 까지에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또 필요하게 된다. 어떤 성도는 즉시 깨닫고 하나님 자녀로서의 삶을 사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오랫동안 의심과 불신을 반복하면서 따지고 불순종하고 삐지고 토라지고 수없이 방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시고 그러한 자들을 책망하거나 징계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이 스스로 깨닫고 감동받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시면서 그들에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주변정리를 하시고 다양한 사건들을 일으켜 주심으로서 결국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반열에 서게 하신다.


①. 부여하시는 도우심.


A.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모, 형제, 자녀, 재물, 건강, 직위, 권위, 권세, 등등이 필요할 때에는 그것들을 부여하시어 그들의 신앙적 삶을 아름답게 하신다.


B.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부모, 형제, 자녀, 재물, 건강, 직위, 권위, 권세, 등등이 필요할 때에는 그것들을 부여하시어 그들의 사명적 삶을 아름답게 하신다.


② 불허하시고 거두시는 도우심.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주시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은 때로는 주시는 것인가 하면 때로는 불허하시며 심지어는 있던 것을 거두실 때도 있다.


A.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모, 형제, 자녀, 재물, 건강, 직위, 권위, 권세, 등등이 있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의 신앙적 삶에 이상기류가 발생하게 될 때에는 그것들을 불허하시거나 또는 있는 것을 거두심으로 그들의 신앙적 삶을 아름답게 하신다.


B.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부모, 형제, 자녀, 재물, 건강, 직위, 권위, 권세, 등등이 있음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들의 사명적 삶에 이상기류가 발생하게 될 때에는 그것들을 불허하시거나 또는 있는 것을 거두심으로 그들의 사명적 삶을 아름답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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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면 하나님께 더욱 순종하고 충성하는 삶을 살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형편과 입장에 따라 때로는 주시는가 하면 때로는 불허하시고 때로는 있는 것까지도 거두신다. 그러나 이 모든 조치들은 모두가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을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다. 반면에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은 이러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안주시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고 거두어 가시는 것에 대하여 항의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게 된다.


다. 6. 성령 하나님 역사하심의 완전성.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영적, 육체적, 영역에 <시간적, 공간적, 이데아적>으로 완전하게 내주 내재하시어 그들의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 사명적 삶의  전체를 주권적으로 장악, 통제, 통치, 지도, 인도, 보호, 관리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로부터 일순간도 떠나 계시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며 조금도 부족함이 없이 완전<충만>하게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시는 것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은 성령 하나님의 완전<충만>하신 역사하심을 힙 입어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게 된다.


(1) 1) 성령 하나님 역사하심의 완전성에 대한 보증.


(1) 하나님의 주권에 의한 보증.


  성령 하나님의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 의하여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완전<충만>하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기기 때문에 그의 역사하심은 곧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므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완전함을 보장받는 것이다. 만약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부족함, 미완성, 등등의 어떤 하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이 될 수 없다.


(2) 하나님의 속성에 의한 보증.


  성령 하나님의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에 의하여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완전<충만>하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의 역사하심은 곧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므로 하나님의 절대적 완전성에 의하여 완전함을 보장받는 것이다. 만약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부족함, 미완성, 등등의 어떤 하자가 있다면 하나님은 절대적 완전성을 가지신 하나님이 아니다.


(3)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보증.


  성령 하나님의 내주<內住-內主> 내재<內在> 역사하심은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에 의하여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완전<충만>하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에 그의 역사하심은 곧 하나님의 절대적 섭리에 의하여 완전함을 보장받는 것이다. 만약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부족함, 미완성, 등등의 어떤 하자가 있다면 하나님의 섭리가 무너지게 될 것이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무너짐이 되는 것이다.


(4) 성경의 증거.


  성경은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하심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4>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행4:8>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행7:55>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행9:17>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 하니라-행13:52>


  위의 성경들은 문자적으로 보나 하나님의 섭리적으로 보나 하나님의 속성적으로 보나 결국은 한가지다. 즉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전체적인 영역에 완전(충만)하게 내주 내재하시어 그들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신앙과 불타는 사명감과 신비한 능력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리고 그 말씀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약속과 연계되어진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은 그 성경들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하심을 보장받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신뢰하면서 강하고 담대한 신앙적, 사명적 삶을 살게 되며 다른 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삶을 살수 있다고 가르치고 그러한 삶을 살라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충만>속에서 각종 방언으로 복음을 증거 하였으며<행2:4>, 자신들을 핍박하는 유대의 관원들과 장로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변증하였고<행4:8><행7:55> 사울은 바울이 되었다.<행9:17>


라. 7. 성령 하나님 사역의 완전성에 대한 오류.


(1) 1) 성령 받는 문제.


  현대 기독교 성도들 중에 많은 이들이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하심을 불신한다. 이와 같은 불신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비롯되어졌다. 하나는 <성령 하나님께서 과연 자신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시는가?> 하는 의심과 다른 또 하나는 <성령 하나님께서 때로는 자신으로부터 떠나 계신다.> 라는 오해에서 비롯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차원의 불신은 신학을 모르는 기독교 지도자들 <특히 부흥 강사들>에 의하여 조성되었다. 기독교 지도자라면 마땅히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음과 같이 가르쳐야 한다.


(1) 모든 기독교 성도들은 창세전에 이미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으로 예정되고 작정되었으므로 법적, 행정적으로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의 신분을 부여받은 자들이다.


(2) 그러나 성도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부르심<소명>을 받기까지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3) 성도들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부르심<소명>을 받게 되는데 이때의 부르심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다.


(4) 성도들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는 그 순간은 곧,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임재, 내주, 내재하시는<성령 받는> 순간이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은 하나님의 주권, 속성, 섭리에 의하여 영원히 완전무결<충만>하다.


(5) 따라서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영원하고 완전무결<충만>하신 임재, 내주, 내재하심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영원하시고 완전무결<충만>하신 인도 보호하심을 통하여 현세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사랑, 자비, 긍휼안에 복된 삶을 살게 되며 현세의 삶을 마친 후에는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가서 아직까지 경험하거나 상상조차 못한 영원무궁한 삶을 살게 된다.


(6) 그러나 성도들은 현세를 사는 동안은 완전무결한 성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고 수많은 욕심, 유혹, 등등을 절제하지 못하여 다양하고 수많은 죄를 범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잠시<때로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나는 삶을 살게 된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그러한 비 진리적 삶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또는 하나님 앞을 떠난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리시기 위하여 때로는 그들에게 시련, 아픔, 고통, 환란, 등등을 부여하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이 모든 환란고통을 이기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신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완전무결, 충만하신 은혜와 전폭적 인도 보호하심을 믿고 따르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아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과 기뻐하심>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 지도자들 중에 신학이 없는 자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다. 신학부재의 기독교 지도자들 <특히 부흥 강사들>은 <성령 받으라> <성령 충만> 등등의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여 성도들에게 <성령 받으라> <성령 충만하게 받으라>고 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저들은 <교회 수십년 다녀도 성령 받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 한다> <기도 많이 하고 은혜 많이 받아야 성령 받는다.> <성령 충만하게 받지 않으면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 범죄 한다> <성령 충만하게 받지 않으면 복 받지 못 한다> <성령 충만하게 받지 않으면 은혜 받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저들이 이와 같이 가르치게 된 배경은 성령 하나님 사역의 완전성에 대하여 증거하고 보장한 성경들을 괴상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저들은 성령 충만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하심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반 3류 종교들에 존재하는 개념인 <신비적인 영적 상태의 충만함>으로 해석하여 성도들이 그러한 성령 충만적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즉, 성령 충만의 성경 구절들을 기독교적 신학으로 해석하여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역사하심> <성령 하나님의 완전하신 내주 내재하심>으로 해석하지 않고 일반 3류 종교적 개념인 <성도의 영적 상태>로 해석하여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강조로 인하여 성도들은 상대적으로 자신에게 완전하게 내주 내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의심하게 되었고, 따라서 <성령 하나님께서 과연 자신에게 충만하게 임재하시는가?>하는 의심과 <성령 하나님께서 때로는 자신으로부터 떠나 계신다.>라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신앙적 상태가 때로는 바르지 못하다는 자각<自覺>과 연합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으로부터 떠나 계심으로 자신들의 신앙 상태가 바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자신이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까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성도들은 자신들이 <성령 충만하지 못함> <성령 받지 못함>의 상황 하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불안감을 갖게 되었고 자신들의 비 진리적 신앙의 삶,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이 모두가 <성령 충만하지 못함> <성령 받지 못함>으로 인하여 발생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성도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노력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거나 또는 자신에게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이 엄습하였을 때 성령 하나님께서 자신으로부터 떠나 계심으로 자신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 보호하심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신학적 경륜이 없는 목사들이 <기도를 쉬거나 게을리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시거나 또는 돌아보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사단이 그 틈을 노리어 공격하게 되므로 각종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따라서 항상 기도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떠나시지 않게 하라>고 가르쳤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으로 믿고 있다.
  때문에 성도들은 <성령받기 위하여> <성령 충만하게 받기 위하여> 부흥 집회 참석, 각종 은사 집회 참석, 새벽기도, 철야기도, 등등에 전념하게 되고 심지어는 기도원, 산기도, 헌금, 사회봉사, 등등을 전전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신앙이 성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기독교적 신앙으로 변질되거나 또는 아예 3류 무속 종교적 신앙으로 타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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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 신학적으로 정립하면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성령 받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일률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 내주하심, 내재하심>의 역사이다.


2. 그것은 <성령 충만하게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완전, 무결, 영원>하게 <임재, 내주, 내재>하신 성령 하나님의 역사이다.


3. 그것은 우리가 요청하고 서원하고 기도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당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 내주하심, 내재하심>의 역사이다.


4. 그것은 우리가 장차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 내주하심, 내재하심>의 역사이다.


5. 그것은 상태적인 것으로서 성도들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 보호, 관리, 조명, 등등의 역사하심 하에 진정과 신령의 신앙적 삶을 사는 것이다.


6. 그것은 기능<능력>적인 것으로서 하나님의 종들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 보호, 관리, 조명, 등등의 역사하심 하에 부여받은 사명을 능력있게 그리고 강하고 담대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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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부재자들이 말하는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


신학 부재자들이 말하는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은 다음과 같다.


1. 그것은 구원의 증표이다. 성도들은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을 통하여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확인, 확신하게 된다.


** 구원의 증표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 내주하심, 내재하심>의 역사를 통하여 보증 받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약속에 의하여 실행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죄제를 통하여 보증 받는다.


2. 그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이다. 성도들은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을 통하여 방언, 예언, 신유, 등등의 은사를 받는다.


** 하나님의 은사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 내주하심, 내재하심>의 역사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은혜에 의하여 하사된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와 은혜에 의하여 각종 은사를 성도들에게 부여하신다.


3. 그것은 성도들의 영적 상태이다. 성도들은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을 통하여 신령한 영적 상태를 이루어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깨닫고 느낀다.


**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을 통하여 신령한 영적 상태를 이룬다는 것은 3류 무속 종교들의 교리이다. 즉 <신이 임재하여 사람의 영적 상태가 신령해졌다>는 3류 무속 종교의 교리인 것이다.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를 통하여 손상된 영적 기능이 회복되어 신령한 상태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의 영적 상태는 현세를 사는 동안은 여전히 손상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조명<역사>하심을 통하여 영적 기능을 발휘하며 순전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4. 그것은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은 성도의 간절한 기도와 사모하는 서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는 주장은 3류 무속 종교의 교리로서 <정성이 부족하여 호박떡이 설었다. - 정성이 부족하여 신이 강림하시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은 성도의 간절한 기도와 사모하는 서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한 절대필연의 역사이다.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은 성도와 하나님의 교제, 교통에 대한 오직 유일한 수단이요 방법이다.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이 없으면 성도와 하나님의 교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임재, 내주, 내재하심은 시작되는 그 순간부터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서 곧 저들이 말하는 <성령 받음> <성령 충만하게 받음>인 것이다.


마. 2) 성도들의 고난.


  성도들이 열심히 노력하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거나 또는 성도들에게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이 엄습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불완전하게 내재 내주하시거나 또는 성도들로 떠나 계시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은 법적 행정적으로는 <중생-거듭난 자>로서 <의인>이 되었지만 현세를 사는 동안에는 <완전한 성화>를 이루지 않기 때문에 때때로 실수할 수도 있고 욕심 유혹을 절제하지 못하여 범죄 할 수도 있으며 사단의 공격에 무너지고 넘어지기도 한다. 반면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자녀 하나님 종들의 삶과 사명 현장에 완전, 충만, 영원히 함께 하시며 그들을 절대적으로 인도 보호하심으로서 그들에게 승리와 영광의 삶을 살게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그들의 실수와 범죄와 고난과 고통과 환란을 허용하신다.


(1) 교육적 차원에서.


  성도들이 실수, 실패, 범죄,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이 전혀 없는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진보적 삶을 살게 되면 때로는 방심, 자만, 나태, 안주, 교만, 등등에 빠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신앙적 삶에 이상 기류가 발생하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다운 삶을 살지 않게 된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교육적 차원에서 그들의 실수, 실패, 범죄, 고난, 고통, 환란, 등등를 막아 주시지 아니하시고 허용하신다.


(2) 훈련과 연단적 차원에서.


  성도들이 실수, 실패, 범죄,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이 전혀 없는 일취월장<日就月將>의 진보적 삶을 살게 되면 때로는 방심, 자만, 나태, 안주, 교만, 등등에 빠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응, 순종하지 않으며 부응하거나 순종한다 하여도 실수, 실패, 범죄의 경험이 없으므로 방심, 자만, 나태, 안주, 교만, 등등에 빠지며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의 경험이 없으므로 사명 현장에서의 각종 난관을 헤쳐 나가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포기한다. 때문에 성령 하나님께서는 연단과 훈련 차원에서 그들의 실수, 실패, 범죄,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을 막아 주시지 아니하시고 허용하신다.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실수, 실패, 범죄, 고난, 고통, 환란, 등등을 막아주시지 아니하시고 허용하시는 것은 결국 그들의 보다 나은 유익을 위함과 그들의 더 큰 손해와 불행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에는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성도들이 하나님께 서운함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게 된다. 따라서 성도의 고난은 오히려 유익이요 감사의 조건이라고 선포하는 성경의 증거들은 한결같이 진리이다.


(1) 3) 성령 하나님의 내주 내재 방법에 대한 오류.


  많은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불> <뜨거움> <방언> 등등과 연관시킨다. 일부 몰지각한 부흥 강사들은 <성령 받아라> <불 받아라>를 외치면서 심지어는 <불, 불, 불, 불 - 불 받아라 - 불, 저기 간다, 불 받아라>를 외쳐 대는가 하면 <방언 은사, 신유 은사, 예언 은사, 받아야 성령 받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언행은 성령 하나님을 3류 무속 종교의 잡귀로 격하시키는 망령된 작태로서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행이다. 저들이 이토록 무분별한 악행을 범하는 이유는 성경을 잘못 해석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들은 <행2:1-3>의 성령 하나님 임재를 근거로 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뜨거운 불로 임재하시는 것으로 해석한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그러나 성령 하나님께서는 오직 불로만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며 성령 받은 자는 모두가 방언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진리를 다음과 같이 증거 한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13:22>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요1:32>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21:4>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하거늘-행21:10-11>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4-11>


  이와 같이 성령 하나님께서는 상황과 목적에 따라 구름 기둥, 비둘기, 능력, 말씀, 감동, 기쁨, 등등으로 다양하게 임재시며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종들은 사명에 따라 다양한 은사를 하사받는다. 어떤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직접 목격하거나 또는 환상, 음성, 꿈, 방언 체험 등등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체험한다.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기쁨, 후회, 평안, 감동, 느낌, 깨달음 등등을 통하여 성령 하나님을 체험한다. 반면에 어떤 성도들은 평생 동안 그러한 체험을 단 한번도 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하나님을 거부하거나 의심하거나 불순종하지 않고 절대 순종, 기쁨으로 순종,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의 선물로 임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리를 모르는 무지한 자들이 성령의 임재하심을 불, 방언, 등등으로 제한시킴에 따라 그러한 체험을 못하는 자들은 자신에게는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는 것으로 오해하여 근심, 낙심, 좌절을 하였고 심지어는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따라서 저들의 무지함은 하나님께만 악행을 범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신앙에도 많은 비 진리와 오류를 양산시켰던 것이다.


바. 8. 성령 하나님의 세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오류 중에 또 하나는 성령 세례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도 성경의 오류적 해석과 무지한 기독교 지도자들의 <성령 세례> 강조 때문에 발생하였다.


(1) 1) 성령 세례에 대한 성경의 증거.


  성경은 여러 곳에서 성령 세례에 대해 언급하는 바 그중에 몇 구절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막1:8>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1:5>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11:16>


(2) 2) 성령 세례에 대한 성경의 해석.


  성령 세례라는 용어는 신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비신학적 용어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여하는 것으로서, 그 세례에 성령 하나님께서 당연히 함께 하신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성령 하나님의 세례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즉 성령 세례가 따로 존재할 이유도 없으며 하나님의 신적 권위와 신적 속성,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적 차원에서 성령 세례라는 것이 따로 존재할 수도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세례에 있어서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는 다만 이름을 빌려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세례에 역사하신다. 교회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시여할 때에 삼위의 하나님께서는 각각 독특한 <위>에서 특별 하신 역사를 진행하시는 것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입법주, 주권주로서의 위치에서 그 세례를 인정하시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오직 유일한 중보주로서 그 세례를 보증하시며, 성령 하나님께서는 적용주 하나님으로서, 그 세례를 신성하고 거룩한 것이 되도록 실제적으로 역사하신다. 즉 성령 하나님께서는 수세자들의 마음을 조명하시어 그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하고 감사하게 하며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려는 충성과 순종의 신앙적 결단을 촉구시킨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내적, 외적 상태를 정결하게 씻으며 그들의 정결함을 보존하고 유지하게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가 시여되어질 때에 이미 성령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이 계시는 바, 성령의 세례라는 것을 따로 특별히 만들어 낼 이유도 없으며 함부로 만들어내어서도 안된다. 따라서 성경이 말하는 성령 세례는 성령 하나님께서 어떤 세례를 부여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1) 하나님 자녀에 대한 법적 행정적 신분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부 하나님의 신적 작정과 성자 하나님의 구속 완성에 의하여 법적, 행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과정에는 <소명-중생-회심-신앙-칭의-양자-성화> 등등이 적용되는데 그중에 <중생-거듭남> <칭의-의인> <양자-자녀>는 하나님 자녀에 대한 법적 행정적 조치이다. 따라서 <중생-거듭남> <칭의-의인> <양자-자녀>는 성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부여된다. 반면에 그것을 적용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 자녀들이 신분에 맞는 상태가 되도록 그들의 마음을 성부 하나님께로 불러들이시며<소명> 그들이 거듭난 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며<중생> 그들의 마음을 성부 하나님께로 돌이키시며<회심> 그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며<신앙> 그들의 삶을 의로운 것이 되게 하시며<칭의>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게 하시며<양자> 그들의 삶을 거룩하게 하신다.<성화> 이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성령 하나님의 세례로서 그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거룩하고 아름답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있는 자들<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은 법적 행정적으로만 <거듭난 자, 의인, 거룩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상태적으로도 <거듭난 자, 의인, 거룩한 자,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성경이 성도들에게 <성령 세례>를 준다고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들에게 어떤 세례의식을 행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성도들을 법적 행정적으로 <거듭난 자, 의인, 거룩한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는 것이며 하나님 자녀들의 삶이 <거듭난 자, 의인, 거룩한 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반면에 성경이 성도들에게 <성령 세례>를 받으라고 하는 것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실제로 어떤 세례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부하지 말고 철저하게 영접하여 <거듭난 자, 의인, 거룩한 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학적, 신앙적, 인격적, 사명적, 삶을 살라는 것이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내주 역사하시면서 우리의 영적 상태를 주관하시고 우리의 내적, 외적 상태를 정결하게 하시는 것은 그분의 특별하신 사역이다. 우리는 그것을 <성령 받았다>라던가, 또는 <성령 세례 받았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하심> 또는 <성령의 인도하심> <성령의 보호하심> 등등으로 말하는 것이 신학적인 표현이 될 것이다.


사. 9. 성령 훼방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성령을 훼방하는 자의 죄는 영원히 용서하시지 않는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12:31-32;막3:28-29;눅12:10>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로 인하여 하나님의 죄용서 하심과 성도들의 구원 및 견인 교리에 대한 오해가 발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죄를 영원히 용서하시어 과거의 죄와 현재의 죄는 물론이요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이미 용서하셨다고 선포하셨으며 성도의 구원을 영원히 그리고 완전히 책임지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선포함으로서 하나님의 죄용서와 구원에 대한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특히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일생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심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이 때때로 성령 하나님의 인도 보호하심을 거부하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하게 된다는 사실 앞에 성도들은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어떤 자들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령 훼방죄는 성도들과는 무관한 것으로서 택함 받지 못한 자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지 않는 자들이 곧 성령의 역사하심을 훼방하는 자들이므로 성령 훼방죄는 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구원교리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알미니안적 개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그것을 고의적으로 거부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선택받지 못했으므로 성령의 소명과 조명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성령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훼방하는 죄와 아무런 관계가 없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이미 원죄에 대한 정죄로부터 사면을 받지 않았으므로 성령 훼방죄로 다시 정죄 받을 수도 없는 것이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유1:19>


  한편 성경은 성령 훼방죄에 해당되는 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던 자들임을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히6:4-8>


  이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을 근거로 할 때에 성령 훼방죄에 해당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도들 중의 어떤 자들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존재하므로 결코 정죄함을 받지 아니한다.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사면하신 것은 주권적 하나님의 공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으로서의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 훼방죄에 해당되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 반열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의 반열에 속한 자들이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또한 하나님의 종이다. 그러나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녀의 반열에 서느냐? 종의 반열에 서느냐? 하는 것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다.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녀의 반열에 서느냐? 종의 반열에 서느냐? 하는 것은 성도들의 개인적 삶에 의하여 결정된다. 성도들의 개인적 신앙적 삶에 대한 문제로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자녀의 입장이 되며 사명적 삶에 대한 문제로 하나님 앞에 설 때는 종의 입장이 된다.
  성도가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로서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모든 일을 공의<公義>로 처리하시지 아니하시고 아버지로서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처리하신다. 반면에 성도가 종<從>으로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법적 행정적 관계로서 하나님은 <주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이때에 주 하나님께서는 종들의 모든 일을 법적 행정적 주권에 의한 공의<公義>로 처리하신다.
  은혜와 자비와 사랑으로 처리하시는 것과 법적 행정적 주권에 의한 공의<公義>로 처리하시는 것 사이에는 극<極>과 극<極>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눅15장>의 자녀에 대한 경우와 종들에 대한 경우를 통하여 극명하게 나타난다. <눅15장>에서 하나님은 불의한 아들에 대하여 <아버지 하나님>으로서의 지극한 은혜와 자비와 사랑을 베푸신다. 그러나 불법을 행하는 종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주 하나님>으로서 공의의 심판을 내리신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13:41-42>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10:29>


  따라서 하나님 자녀들의 개인적 신앙에 대한 불순종, 불의, 불법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으로서의 지극한 은혜와 자비와 사랑에 의하여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용서받는다. 그러나 종들의 사명적 불순종, 불의, 불법들에 대하여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저항하고 불순종한 <성령 훼방죄>가 적용되어 <주 하나님>으로서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