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설교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8장

에반젤(복음) 2022. 9. 17. 07:18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8장
일곱 천사의 나팔 (계 8:1-13)


계시록에서 세 가지 재앙 즉 일곱 인과 일곱 나팔, 그리고 일곱 대접재앙이 나타나는데 세 가지 모두 그 내용은 여호와의 날에 대한 구약적 표현처럼 겉모양은 극심한 재앙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이 열리고 말씀과 성령으로 악이 처리되고 변화되어져 가는 과정을 묘사한 것입니다. 즉 일곱 인 재앙에서 성경이 열리므로 율법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죄인이며 따라서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점에 구원의 무리인 십사만 사천의 인침 받은 사람들이나 세속을 벗어난 무리인 셀 수 없이 많은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등장함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제 8장에서부터 전개되는 일곱 나팔 재앙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성령의 능력으로 선포될 때 새롭게 변화되어져 가는 그 모습을 상징과 비유로서 묘사한 것입니다. 나팔재앙의 특징은 첫째 나팔부터 계속하여 3분의 1이 파괴되는 것인데 그것은 복음의 나팔로 인한 인식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복음나팔의 말씀 준비 (계 8:1-2)


1.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간 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본문은 나팔을 불기 전의 준비과정입니다. 계8:6에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는 말씀과 같이 복음의 나팔수가 되려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준비의 과정이 있었고(눅3:23), 제자들도 예수님에게서 직접 3년 반 동안 보고 듣고 배웠을 뿐 아니라 경건이 베도록 반복되는 훈련으로 준비시키고 오순절을 앞두고 찬송과 기도에 전무하여 성령으로 무장시킨 후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습니다(행1:8).


복음의 나팔은 어떻게 준비되어질까요?


1.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1절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일곱째 인을 떼시면 이제 성경이 다 열리는 것입니다. 이 때 일곱 나팔재앙이 시작되는데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일곱나팔재앙 역시 구원의 복음을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성경을 충분히 깨달아야 복음의 나팔수가 됩니다. 여기서 일곱째 인의 7은 완전수라는 점에서 완전하신 성령의 조명 아래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인은 마지막 인으로 계시의 최고봉입니다. 이 최고봉에서 나팔을 불었듯 성경을 복음 안에서 충분히 알아야 합니다.


2. 전달법도 익숙해야 합니다.


“하늘이 반시간 쯤 고요하더니” 하늘의 무대가 열렸는데 한 시간도 아니고 반 시간이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무언가를 나타내시기 위한 분위기 준비입니다. 이것이 일곱 나팔을 소개하기 바로 전의 상황이라는 점에서 설교로 말한다면 무엇을 전할 것인지 그리고 청중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서론은 청중의 수준이나 심령상태에 따라 달라집니다. 대상이 불신자이거나 초신자들이라면 일반적인 관심사에서부터 마음문을 열어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기도회나 부흥회와 같이 교인들의 은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는 서론에서 무엇을 말할지 제목 소개 정도만 하고 바로 본론에 들어가도 됩니다.


3. 내용이 잘 정리되어야 합니다.


2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여기 “내가 보매”라는 표현을 보아 일곱 천사의 정렬된 모습 역시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일곱 천사의 정렬된 모습처럼 본론 역시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전해야 할 메시지가 일목요연하게 그 내용이 조리 있고 충실하고 호소력 있게 전하는 자나 듣는 자의 마음속에 내용이 구체적으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논리도 없이 왔다 갔다 무엇을 말하는지 산만한데다 음성도 분명하지 않고 음향기 사용도 서툴다면 은혜를 끼칠 수 없습니다.


4. 하나님 편에서 전해야 합니다.


2절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그동안 보좌 앞이라는 표현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하나님 앞"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설교자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전해야 합니다. 사람 비위 맞추면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갈1:10). 쓰임 받는 순간 100% 공인입니다. 하나님의 사자, 그리스도의 대사라는 믿음 가지고 전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5. 진리에 견고히 세워야 합니다.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여기 서 있음에 대한 다른 의미입니다. 섰다는 것은 단순히 기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섰듯이 청중들 역시 진리에 선 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이는 결론에서 해야 할 중요한 사항으로 믿고 결심하고 실천하도록 유도하고 설교를 마친 후에는 뜨거운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함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말씀의 열매 맺는 자들이 됩니다.


6. 메시지를 받아 전해야 합니다.


2절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여기 받았더라는 표현도 독특합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성경 모두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지만(갈1:11) 다 전할 수는 없습니다. 핍박 시 공회 앞에서 성령께서 할 말씀을 주시듯(마10:20) 기도하며 성경을 연구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전해야 할 말씀의 힌트를 주십니다. 그렇지 않으면 1주일 내내 준비해도 내가 전할 설교 한 편도 잡히지 않아 끝나고 말 것입니다.





복음나팔의 기도 준비 (계 8:3-5)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베드로의 한 번 설교에 무려 3,000명이 회개했는데(행2:40-42) 이런 놀라운 결과를 불러온 복음의 나팔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3절부터는 “또 다른 천사”가 나오는데 이것은 앞과는 다른 새로운 준비를 시사합니다. 즉 앞에서는 말씀의 준비였다면 여기서는 기도의 준비입니다. 두루마리의 인을 떼기 전에도 기도가 필요했지만(계5:8), 메시지를 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나팔을 위한 기도의 준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기도에 바빠야 합니다.


3절 “제단 곁에 서서” 천사가 선 위치가 제단 곁입니다. 성막에 번제단과 분향단이 있는데 3절에 “금 제단”이라 했고 “성도의 기도”라고 한 걸 보니 이 제단은 분향단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제단 곁에 섰다는 것은 제단 앞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음을 시사합니다. 기도의 시즌을 맞아 천사도 바쁩니다. 성도들이 드린 기도의 향을 모아 하나님께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대한 설교는 이런 기도의 배경에서 이루어집니다.


2.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금향로를 가지고” 천사가 금향로를 가졌는데 계5:8에서 금대접이라 했는데 금대접이 담는 것을 강조함이라면 향로는 피우는 것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금’은 먼저 신성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기도가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 안에서 드려져야 하고, 성령으로 진심이 담기게 드려져(요일5:14, 롬8:27) 향의 연기처럼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합니다(요일5:14-15).


방언도 도움이 됩니다. 칼빈은 방언에 대해 일관성이 없지만 후기에 다듬어진 결정판 기독교강요에서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통 때는 방언이 필요 없지만 마음이 산만하여 기도 줄이 잡히지 않거나 성령에 사로잡혀 격렬하게 방언행위가 저절로 이뤄질 때는 예외라고 했습니다(기독교강요 제3권 제20장 33항). 칼빈 박윤선 박형룡 차영배... 나중에는 신성종 박사도 방언을 인정했고 목회자의 90% 이상이 방언을 하고 있는데 왜 방언을 부정하는 풍조가 생겼는지 의문입니다.


3.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금향로”의 금의 두 번째 의미는 보배로운 믿음입니다(벧후1:1).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막11:22, 약1:6-7). 완고한 심령을 깨뜨릴 수 있도록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4.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천사가 “많은 향을 받았” 다는 것은 기도를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기도로서는 입술은 복음일지라도 그 설교로는 생명을 살릴 수 없습니다. 영국의 스퍼전이나 미국의 찰스 피니의 배후에 많은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복음의 운동은 기도운동의 밑받침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5. 기도부대가 필요합니다.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전도자의 기도도 중요하나 모든 성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인은 설교자를 위해 기도할 의무가 있으며(고후11:11) 예배모범에도 그렇게 교훈합니다. 교회마다 기도특공대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요한 웨슬레는 “죄 짓는 걸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는 사람 100명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지옥문을 흔들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6. 희생적인 기도가 필요합니다.


“많은 향을 가졌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계5:8에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했는데 여기서는 향을 기도와 합하여 드린다고 했습니다. 기도에 향이 더해진 기도향입니다. 향은 희생의 상징입니다(출30:34, 막14:3). 그래서 예수님이 무릎으로는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네 동산도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곳입니다. 이처럼 이 설교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간절한 기도로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7. 상달하는 기도여야 합니다.


4절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분향단에서 향연의 수직상승은 기도의 상달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기도가 상달되려면 외식이나 탐심이 아닌 진실한 기도여야 합니다(마6:5-8). 모세가 위대한 것은 하나님을 직접 대면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면의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8.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4절 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중보자도 아닌데 기도가 천사의 손으로 올라간다 했을까요? 손에 기도를 담을 금향로 혹은 금대접이(계5:8)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가 천사의 금향로에 담겨 올라간다는 것은 기도의 분량이 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9. 회개 역사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5절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향로에는 분향단 위의 금향로와 번제단의 불을 분향단으로 나르는 놋향로가 있는데(레16:11-12) 여기 향로는 놋향로입니다. 놋은 심판의 상징이요, 이 불이 속죄물을 태웠고 이사야의 입술을 정하게 했듯 성령의 불입니다. 불을 땅에 쏟았는데 땅은 변화가 필요한 육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전하는 메시지가 회개의 역사를 불러오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10. 기도의 결과가 놀랍습니다.


5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습니다. 천둥 번개는 누구든지 굴복시킬 수 있는 압도적인 감정이요, 항거할 수 없는 두려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기도가 뒷받침이 될 때 듣는 이들이 가슴을 치며 회개하거나 하나님의 음성에서 위로함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구원의 복음 나팔 (계 8:6-7)


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모두가 사모해야 할 것은 하늘의 나팔소리입니다. 나팔소리는 재림의 날에도 들려오지만 지금도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바로 복음의 나팔입니다. 요5:25에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을 때 죽은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런데 일곱 천사가 준비된(6절) 나팔을 불기 시작하는데 웬일입니까?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그래서 계시록을 문자 그대로 보면 안 됩니다. 본문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는 행2:17-21과 롬1:17입니다.


행2:17-21에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예언서에서 성령강림의 현상을 이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말씀처럼 복음 나팔이 차례로 울려 퍼질 때 각인의 심령은 놀라운 변화가 옵니다. 형제들아 어찌할꼬. 가슴치며 불신앙은 십자가 아래 사라지기 시작하고 예수를 주로 믿고 예수 안에서 이루신 복음에 섬으로 의롭고 영광스럽게 변화되어 갑니다.


구원의 복음나팔은 어떤 나팔일까요?


1.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 복음입니다.


7절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본 재앙은 하늘에서 살인적인 피 섞인 우박이 쏟아지고 또 하늘에서 내려온 불길이 땅을 휩쓸어 땅과 수목과 각종 풀들의 삼분의 일이 불타 없어집니다. 이 불우박의 융단폭격 앞에 피할 곳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습니다.


피 섞인 우박의 배경은 수 10장입니다. 기브온을 침공한 아모리족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여호수아 군대의 칼에 죽은 자들보다 하늘에서 떨어진 우박에 죽은 자가 더 많았습니다(수10:11). 진멸의 대상이었던 기브온족에게 베푸신 은혜로 볼 때 지나치게 과분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와 달까지 머물게 했던 전쟁 아니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아주셨습니다.


기브온족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처럼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언약의 약속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 나팔소리는 길거리에서도 울려 퍼져야 할 복음의 나팔입니다.


2.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 복음입니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피 섞인 우박 외에도 불이 나와서 함께 땅에 쏟아졌습니다. 시18:7-8, 렘5:14 삿9:20을 참고하면 불과 피는 진노의 상징입니다. 이런 진노가 원수들에게 쏟아졌지만 그들과 싸우는 기브온 사람들에게는 예외였습니다. 마치 애굽에 10재앙이 내렸어도 이스라엘이 거주한 고센에는 예외였던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으면 진노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엡2:3-8, 롬5:9). 
 
3. 죄에서 구원을 얻는 복음입니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하늘에서 쏟아진 우박과 불로 땅의 삼분의 일이 탔는데 땅은 하늘과 대비되고, 육신의 재료인 흙의 고향이고, 육신이 먹을 소산을 내는 근본이라는 점에서 세상 육신 옛사람 등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그리고 3분의 1은 완전수 3의 구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근본적 새로움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예수의 복음은 죄에서도 구원하셨습니다(롬6:1-11). 그래서 갈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고, 세상에 대해서도 죽었습니다(갈6:14). 이 복음을 믿고 늘 감사하고 찬양하면 성령이 임해 마음 속의 꿈틀거리던 죄악이 사라집니다. 복음을 믿는다 해도 경외함이 부족하면 성령충만하지 못하면서 시험이 틈타는 걸 볼 수 있습니다(잠16:6).


4. 연약함에서 구원을 얻는 복음입니다.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수목과 풀은 인성의 상징입니다. 수목은 성경에서 인성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이 역시 3분의 1이 탔으니 인생의 연약함은 파괴되었습니다. 마8:17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했고 온갖 저주까지 짊어지셨습니다. 이 신유의 복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유의 은사도 있지만 복음 안에 신유가 있고, 지혜의 우편에 장수가 있다 했듯 지혜로 쉽게 낫는 치유의 은사도 있습니다.


5. 삶에서 구원을 얻는 복음입니다.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각종 푸른 풀은 인생의 청춘과 꽃은 그 아름다움입니다(사40:6-8). 이 청춘 자체가 잘못이 아니지만 청춘이 상징하는 바가 자유분방한 삶입니다(전11:9). 예수의 복음은 이런 삶에도 변화의 역사를 줍니다. 이런 생활의 가르침의 나팔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서신의 후반부는 성도들의 삶의 지도입니다.




자유의 복음 나팔 (계 8:8-9)


8.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 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본문은 둘째 천사의 나팔을 불 때 불붙는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져서 3분의 1이 파괴되는 대재앙이 일어납니다. 첫째 나팔은 땅의 재앙이었는데 둘째 나팔은 바다의 재앙입니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바다의 오염으로 볼 수 있지만 나팔이 복음이라는 점에서 예수의 복음이 전파될 때 발생하는 어떤 긍정적인 결과로 봐야 맞습니다.


복음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 일어나는 일은 무엇일까요?


1. 율법의 문제를 깨닫게 합니다.


8절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여기 “불붙는 큰 산”은 모세가 율법을 받은 시내산을 연상시킵니다(히12:18). 불붙는 큰 산은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율법적인 신앙을 시사합니다. 율법은 선하지만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롬7:24). 율법적 신앙에서 자유하는 것은 복음을 아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밖에는 없습니다(롬8:1-2).


2. 복음은 율법적 방법을 폐합니다.


8절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그런데 불붙는 큰 산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다는 것은 폐기를 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모두 폐해진 것은 아니고 산상수훈에서 보듯 더욱 완전해졌지만(마5:17-19) 그러나 그 율법 자체로는 의롭게 될 수 없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그런 방법론적인 폐기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졌는데 이것은 미7:19의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는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잊으시듯 율법적 신앙을 잊으시기 바랍니다(롬3:27-28). 마18: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이처럼 율법은 구원하기는커녕 우리를 시험의 깊은 구렁에 빠뜨립니다.


3. 율법이 할 수 없는 생각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8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물은 생각과 사상, 그런데 바다의 물이니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이 세상적인 생각들이 복음을 만나면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 생각을 원수로 생각할 뿐 아니라 이기게 됩니다(롬8:7). 그리고 율법 안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복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을 알고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바뀌게 됩니다.


4. 율법이 할 수 없는 자기 제어를 하게 합니다.


9절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바다의 생물이라 하면 포괄적인 의미지만 또한 창1:21의 바다의 용을 포함합니다. “큰 바다 짐승들”은 원문에 ‘길게 뻗은 것들’ 즉 공룡이나 해룡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괴물이 존재합니다. 우리 안에서 괴물 노릇하는 육체의 욕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욕망이 변화됩니다. 그래서 롬8:3-4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셨습니다.


5. 율법이 할 수 없는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9절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노아의 방주처럼 세파를 이기고 승리해야 할 배들이 깨어졌습니다. 그리고 3분의 1이란 분량 개념이 아니라 성립의 파괴를 말합니다. 즉 율법적 신앙으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반면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의 복음이 전파될 때 승리하신 예수님의 공로를 믿음으로 승리합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실 때 우리도 그 안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그 믿음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갈3:23-27).




십자가의 복음 나팔 (계 8:10-11)


10.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불 때 일어난 일입니다. 하늘에서 횃불 같은 불이 떨어져 강과 샘들이 쑥물이 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됩니다. 쑥물에 대한 학설을 소개하면 “말세에 식수가 오염될 것이라는 설, 위선자들의 혼잡케 한 말씀이라는 설, 공산주의 사상을 가리킨다는 설, 재난의 결과로 행악자들의 심령이 비참한 슬픔으로 가득해 질 것을 말한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은 계시록의 흐름을 모르고 한 주장입니다. 문자대로라면 난해한 내용이지만 나팔재앙에서 일어난 일로 복음나팔에 대한 묘사로 본다면 문제는 풀립니다.


여기 쓴물은 예수님의 고난의 쓴잔을 연상시킵니다. 즉 물은 말씀이요. 쓴물은 우리를 위해 고난의 쓴잔을 받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그 결과로 죽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십자가 복음을 믿음으로 죄의 옛사람이 사라지고, 그 감화력으로 주님을 본받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신실한 약속와 성취 때문입니다.


10절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여기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은 무엇일까요? 성경에 불이 여러 번 등장하지만(삿 20장, 출 3장) 횃불은 창 15장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실 때 불로서 나타나신 횃불언약의 불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유독 희생과 관계된 횃불은 창 15장의 횃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장차 그의 자손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약속하실 때 나타나신 불입니다. 언약을 체결하실 때 쪼갠 짐승들 사이로 여호와께서 불로서 통과하셨는데 그 의미는 약속을 안 지키면 이렇게 죽겠다는 생과 사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약이란 히브리어로 ‘베리트’인데 이 용어는 ‘자르다.’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로서 죽음을 각오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렇게 견고합니다(민14:28, 렘4:2). 이 견고한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셨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수없이 제물의 피로서 언약하신대로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즉 성경 속에 곳곳에 감췬 이 십자가 복음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천사의 나팔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듯 십자가 복음 나팔에 변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자기 비하이기 때문입니다.


10절 “횃불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큰 별이니까 구속사와 관련된 별입니다. 사 14장에 나오는 사탄을 상징하는 계명성이 아니고, 동방박사들을 인도하던 구주이신 아기 예수의 별입니다. 흔히 별은 왕을 상징합니다. 예수는 메시아 즉 왕이십니다. 그런데 큰 별이시듯 왕 중의 왕이십니다. 천상천하 영원한 왕이십니다(시24:7).


그런데 큰 별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존귀하고 영광된 하나님 자리에서 낮고 천한 이 땅에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의 자기 비하를 연상시킵니다(빌2:5-8). 성자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병인을 고쳐주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며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고,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 나팔이 울려 퍼질 때 변화 받고 감동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성경에 담긴 그 십자가 진리 때문입니다.


10절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이 역시 복음나팔이 울려 퍼지는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물샘이 성경이라면 강물은 설교와 같이 그 말씀을 전파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십자가 복음을 알기 전에는 그냥 샘물이고 강물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열리고 복음을 알게 된 후에는 달라졌음을 시사한 말씀입니다. 그동안 평이한 말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언약의 말씀의 횃불이 여러분의 메시지에 떨어지기를 바랍니다(살전2:13).


4. 십자가 복음 앞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1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됨으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여기 쑥은 성경 배경으로 보면 독초입니다. 문자적으로는 환경오염으로 비치지만 공해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 하늘의 별이 떨어져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하늘의 큰 별이면 지구보다 수백 배 큰데 스마트탄처럼 전 세계 3분의 1의 강과 작은 물샘에만 어떻게 떨어지겠습니까? 이 역시 계시록적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강과 물샘이 쓴 쑥물이 되어 사람들이 죽듯이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함으로 나타난 십자가 복음이 울려 퍼질 때 우리 옛사람이 함께 못 박혔음을 믿어 거룩하게 되고, 또 주님을 본받아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그 사랑에 감화되어 주를 위해 살고 죽으며 고난도 함께 받는 거룩한 죽음을 당합니다(롬6:10-11, 고후5:14-15). 이 십자가 사랑에 중독되어 자신이 변하고 전도하여 모두가 변하되길 바랍니다.




변화의 복음 나팔 (계 8:12-13)


12.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넷째 천사의 나팔로 해와 달과 별들의 3분의 1이 어두워지고 낮도 밤도 어두워졌습니다. 나팔재앙의 특징은 첫째 나팔부터 계속하여 3분의 1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본문 역시 완전수 3이 파괴된 것은 광도의 낮아짐이 아니라 본질적 시각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의 복음이 그만큼 눈을 어둡게 하거나 변화시키는 부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나팔 앞에 또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1. 가치관의 변화가 있습니다.


12절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해와 달과 별들은 창 37장에서 가정을 비유할 때 쓰였습니다. 가정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잠17:6). 그러나 나팔소리에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었듯 복음을 진정 만난 사람은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하나님보다 그 어떤 것도 소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나친 가족사랑이 내 원수가 되기도 하고, 바울은 그리스도 외에는 모두 배설물 같은 해로 여겼습니다(빌3:7-9).


2. 삶의 목적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12절 하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성경에 낮은 형통의 때요 밤은 고통의 때입니다(시30:5, 사45:7). 이처럼 복음 안에서 낮이든 밤이든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언제나 예수 안에서 천국생활을 지향해 나갑니다. 예수 십자가 복음에 사로잡힌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죽든지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잃지 않았으면 잃지 않은 것이 됩니다(시73:24-25, 빌1:20).


3. 더 죽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13절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 땅에 있는 자들은 바로 복음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땅에 속해 살려는 우리의 완악한 마음을 가리킵니다(골3:5). 천국복음을 전했는데 아직도 하늘의 사람으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에 대한 반복된 선언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화를 연상시킵니다(마 23장).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땅의 것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독수리의 날아감은 마 24장이나 눅 17장에 나오듯 시체의 파티를 연상시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고 하시자 제자들이 어디로 데려가는지 여쭐 때 주님께서는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눅17:37) 하셨습니다. 동서문답 같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들이 더 죽어 아주 시체의 파티가 열려야 데려가시는 재림의 주를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여기서의 죽음은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고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히3:18-4:6). 


삿 15장에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쓰러뜨리고 시체를 두 더미나 이루었는데(삿15:16) 놀라운 것은 이 삼손 사건은 성령강림을 예언한 시110편에서 인용되었습니다(시110:6-7). 이게 성경입니다. 우리의 눈이 더 열리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땅에 속한 우리들이 온전히 죽고 죽어 시체더미가 되고 그래서 독수리의 잔치가 열리지 않고는 성령강림과 예수재림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3화는 3이 완전 완성을 의미하듯 다음 9장부터 아직도 땅에 속한 자들을 위해 강력한 성화의 방편 3가지가 있음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 변화되고 더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