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설교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4장

에반젤(복음) 2022. 9. 17. 07:13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4장
구원사역의 본부 (계 4:1-3)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본문은 사도 요한이 하늘에 열린 문으로 들어가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를 예고 받고 하늘에 펼쳐진 하나님 보좌의 전경을 본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구원과 섭리를 총괄하시는 통치의 보좌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없이 지상의 어떤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에서 보좌는 구원사역의 본부라고 칭할 수 있습니다.

구원사역의 본부는 무엇입니까?

1. 지상교회의 배경이 됩니다.

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이 일은 2장과 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계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다시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1절)이라고 2번이나 강조 되는 것을 보면 이 문구가 낱말을 잇는 단순한 관용구라기보다 이후에 될 일들이 지상교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합니다.

 

우리는 앞서 2장과 3장에서 불완전하지만 세속과 싸우며 믿음 지키고 구령운동하는 지상교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남겨진 이 지상교회를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진행하시는데 이 지상교회의 배경이 바로 천상의 구원사역의 본부요, 그 구체적인 소개가 바로 4장부터의 내용입니다.

 

2. 구원의 방주는 열려 있습니다.

1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요한이 올라갔던 이 하늘 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공로로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입니다.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의 문이 활짝 열려 있음을 확인한 셈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들이 이 문을 통해 구원의 방주인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요14:6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3. 예수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요한을 천상의 세계로 부르시는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은 1:10에서 7교회에 보낼 편지와 요한계시록을 수여하실 때 들렸던 그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나팔이 복음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먼저는 예수 믿고 열린 천국으로 들어간다는 것과 다음은 4장부터의 계시가 어떤 내용일지 강하게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4. 죄인 구원이 그 중심사역입니다.

여기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은 이 땅에 일어날 구원사역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제 이 땅에 구원의 놀라운 사역이 펼쳐지는 것이 마땅히 나타날 일들입니다. "마땅히"는 행3:21에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하신 말씀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듯이 만물의 회복의 중심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이 그 중심이기에 이 일은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악을 척결하시고 온전케 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 “마땅히 일어날 일”은 어떤 미래 역사의 전개라기보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는 바와 같이 죄인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시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고 성령을 주셨으니 거기에 따라 죄인들이 구원을 받는 일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입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그 부흥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이며 우리가 날마다 기도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행2:33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였고, 5절에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셨으며, 37절에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들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1. 죄인을 의롭다 하심입니다.

3절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 같았습니다. 벽옥은 영어로 jasper인데 석영의 변종이나 푸른빛 나는 고운 옥입니다. 이 벽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며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실 것을 시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이루신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칭의의 은혜입니다. 칭의란 죄인임에도 죄가 없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 법정적 선언입니다.

 

즉 나를 위해 피를 흘려 죄 값을 치루신 예수님의 속죄 공로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죄를 범치 아니한 의인처럼 대해주십니다(롬4:5-8). 우리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의 엄청난 희생이 치려졌기에 사죄의 확신을 가져 진정한 양심의 평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롬5:1).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보혈의 공로를 담대하게 믿음으로 양심의 자유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의 내용은 성결입니다.

3절 “앉으신 이의 모양이 - 홍보석” 같았습니다. 붉은 홍보석(carnelian)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심판의 일반적인 의미는 벌이나 징계를 의미하지만, 심판의 복음적인 의미는 우리의 죄와 옛사람을 성령으로 소멸하시는 성결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그리스도의 초림이나 성령강림을 의미하는 여호와의 날에 대한 예언은 한결같이 두려운 심판의 모습입니다(말4:5, 욜2:30-31). 우리의 죄와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죄가 심판 받는 모습입니다. 애굽에 내려진 열 재앙이나 홍해에서 내려진 애굽군에 대한 심판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심의 예표입니다(고전10:2).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은 사9:7과 같이 우리 인간의 구속사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구원의 내용은 영생입니다.

3절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무지개는 영원히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이요(창9:12-13), 녹보석의 녹색은 생명이나 영생을 상징합니다. 무지개가 녹보석처럼 보였음은 믿는 자에게는 심판이 없고 영생이 있다는 표시입니다.

요6:47-48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했습니다. 믿을 때 가집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하신 것처럼 풍성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롬6:22에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이처럼 성결의 은혜를 입어 거룩해질 때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만들어주신 새 자화상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보좌만 봐도 하나님의 하시는 일과 구원의 내용과 목적과 방법을 소상하게 엿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1:6에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했고, 살전5:23-24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했습니다.

 

 

구원의 기본 환경 (계 4:4-8)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하신 사실은 놀라움을 금할 길 없습니다. 따라서 구원의 방법이 너무도 간편해서 그것을 파악하기까지 그것이 사실인지 도리어 방황하기도 합니다. 1-3절에서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천상에 올라가 구속사역의 본부인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문 4-8절의 보좌를 중심으로 펼쳐진 천상의 환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줍니다.

구원을 위해서 예비 된 천상의 환경은 어떤 환경입니까?

1. 복음의 환경입니다.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여기 24 장로는 신구약 교회의 대표들입니다. 즉 24는 12+12이까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는 신구약 성도를 대표하는 자들입니다. 요한이 보니까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 이들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이 모습은 구원의 모습이요 성도의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엡2:6에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했고, 골3:3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에 앉은 24장로는 구원 받아 아버지의 우편에 오르신 승리의 그리스도의 안에 있는 성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둘러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무지개가 하나님의 보좌를 둘렀던 것처럼(계4:3), 24장로가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성경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히12:1-2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는 24장로처럼 흰옷을 입은 존재입니다. 흰옷을 입었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롬8:30에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신득의는 칭의 만이 아니라 방편이 필요하기는 하나 기본적으로는 성화 영화까지도 해당합니다.

그런데 장로들은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면류관은 승리와 권세를 상징합니다. 이처럼 성도는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여 왕 노릇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 안에서 승리자입니다. 예수 안에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나를 이기고 환경을 이긴 승리자입니다.

롬6:11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고 했습니다. 엡2:5-6에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를 들러싼 24장로들에게서 복음의 환경을 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나는 구원을 받되 영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 받았다. 나는 예수 안에서 이기고 이긴 승리자다. 나는 예수와 하나 된 한 몸이라’는 확신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4장로와 같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면 늘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2. 연단의 환경입니다.

5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이 장면은 모세가 율법을 하사 받을 때 엄위한 시내산의 광경과 같은 두려움의 환경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역 침범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히12:18-21에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은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기를 구하였으니 이는 짐승이라도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그 보이는 바가 이렇듯 무섭기로 모세도 이르되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이 시내산을 배경으로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2:25-29에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바로 이 환경이 하나님의 보좌에 나타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의 본부인 천국에 올라가 보니 엄위한 그 환경이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율법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 백성을 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고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징계로서 훈련시키십니다.

그래서 히12:5-13에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했습니다.

 

3. 성령의 환경입니다.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여기 일곱 등불은 성소와 성전에서 등대를 연상시킵니다. 이 일곱 등불은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한대로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일곱 영일까요? 7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완전케 하시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를 믿게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와 슬픔이 달아납니다. 온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성령을 등불로 비유했을까요? 본래 등대는 하나님 계신 곳인 지성소로 가는 길을 밝혔습니다(출25:31-40). 이처럼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요16:13) 우리 심령을 밝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게 하시고 죄를 떠나 하나님을 향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조명만큼 우리가 온전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그 은혜의 수준만큼 회개하고 그만큼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임하심 자체가 완전함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심만큼 우리는 구원의 성숙 속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임하심이 중요한데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는 이 은혜 주실 환경이 다 마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주시고 교회를 주시고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시고 성령께서 친히 우리에게 임마누엘로 다가와 계시고 성령의 각종 은사로 역사하시고 징계의 도구가지 합세하여 언제든지 은혜 받을 환경이 다 구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후6:2에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사모하면 누구든지 얼마든지 은혜 받을 영적 환경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고 하면 못 받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1:16-7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했고, 시81:10에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셨습니다.


성령 충만 받는 방법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그 앞에 겸손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늘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함과 바른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 자세로서 찬송 한 곡만 불러도 은혜가 넘칩니다. 몇 마디의 기도만 해도 눈물이 쏟아집니다. 하나님 나라가 천국일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입니다. 기본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3년 반 동안 온갖 기적을 베푸심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요20:30-31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과 은사는 조금 다릅니다. 성령은 충만할수록 더욱 겸손하고 안전하지만, 은사는 선물로서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면 먼저 나를 믿음으로 이끌어 구원 받고 진리에 바로 세워 온전케 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지 못하고 다 된 줄 알고 악하고 무지한 속성 그대로 드러내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환경을 생각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 정화의 환경입니다.

6절에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라 했습니다. 죄인을 온전케 하시려면 씻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를 죄 없다 하실 법정적 사죄와 아울러 우리에게 있는 악성을 제거하고 새 성품으로 변화시킬 씻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씻음의 환경이 필요한데 천국에 보니 이 환경이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6절 말씀처럼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성전 앞의 놋바다를 연상시킵니다. 성전에는 큰 규모의 놋바다와 10개의 물두멍이 있었는데 이 물두멍은 성소의 물두멍과는 달리 제물을 씻었고 놋바다는 성소의 물두멍처럼 제사장이 퍼서 몸을 씻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 유리 바다는 정결케 하시는 성결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유리 바다, 유리로 된 바다에서 어떻게 씻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원문을 참고해야 합니다. 원문대로 번역하면 “수정 같은 유리 바다 같고” 입니다. 유리 바다가 아니라 유리 바다와 같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정과 같이 맑았음은 유리 바다의 정화 작용을 암시한 표현입니다.

사1:18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세마포 흰옷처럼 희게 씻어 주십니다.

그런데 유리 바다의 위치가 보좌 앞에 있었습니다. 여기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깨끗하게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회개의 과정에 깨달음 고백 애통 죄와 단절 결심 확신 감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만 나가도 우리의 죄악은 눈 녹듯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요일1:7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랬습니다. 그런데 바다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용납하시는 사랑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요, 또한 깊어서 어떤 죄라도 다시 꺼내올 수 없다는 용서의 완전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미7:19에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했습니다. 사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용서는 해도 기억은 나는 법인데 하나님께서는 죄를 더 이상 기억조차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시103:10-12에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합니다. 사38:1에도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했습니다.

우리의 영적 환경은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씻고 또 씻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히10:22). 성도는 영원한 속죄를 받았지만 죄악 된 환경 속에서 묻는 심령의 부패는 늘 씻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정 같은 유리 바다에서 씻음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5. 도우심의 환경입니다.

6-8절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여기 네 생물은 그룹 천사입니다(사6:2, 겔1:5, 겔9:3, 겔10:14,20). 이 천사는 하나님을 보필하고 찬양하며 어린양의 심판을 보필하기도 하며, 거룩을 수호하는 천사로 특히 부정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천사입니다. 이 그룹 천사는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중심을 알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마치 하나님의 손길처럼 존재하는 특별한 천사입니다.

그런데 이 네 생물은 다른 곳에서는 사 복음을 상징하는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복음을 분류하면서 마태복음을 사자복음이라, 마가복음을 소복음이라, 누가복음을 사람복음이라, 요한복음을 독수리복음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 그룹천사를 통하여 일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참고로 구룹천사와 사복음서는 구별되지만 그 특징에 있어서는 흡사합니다. 그룹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 신속하게 역사와 우주와 환경 속에서 정확하게 기적과 이적과 섭리를 펴는 하나님의 탁월한 섭리적 도구로서 타협하거나 돌이키는 법이 없이 곧바로 가며(겔1:9, 12)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이 쓰시는 견고한 섭리의 손길을 상징하듯, 이처럼 물리적인 움직임은 없는 책이지만 4가지의 다양한 관점에서 역동성 있고 영구불변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의 증거를 위해 온갖 기사와 이적과 말씀으로 나타나 죄인을 구원하신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리고 그 특수한 모습은 그들의 사역이 어떠함을 상징적으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그 사역은 어떤 것일까요? 답부터 말씀드리면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중심을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신속하게 역사와 우주와 환경 속에서 정확하게 기적과 이적과 섭리를 펴는 하나님의 탁월한 천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네 생물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손길을 암시합니다(시103:20-21).

 

과연 그런지 살펴보면, 먼저 네 생물의 위치가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중심을 알며 그리고 주위에 있어 언제든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날개의 안과 주위에 눈(The eye)이 가득했는데 이것은 개인과 단체와 우주에 대한 정확한 통찰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전달될 대상까지도 정확하게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가장 이상적인 존재를 의미합니다. 즉 사자의 강함과 사람의 지혜와 송아지의 충성과 독수리의 신속이 그것입니다. 이 네 가지 성질만 있다면 이보다 더 강하고 탁월한 존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각각 여섯 날개가 있었는데 사6:2을 보면 둘로는 얼굴을 가렸고 둘로는 발을 가렸고 둘로는 날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모습은 천사의 겸손과 성결과 적극성을 상징함과 동시에, 이 천사의 활동이 하나님의 손길 되어 결국 우리들을 그런 겸손과 성결과 은혜와 자유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야 만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네 생물을 달리 표현한다면 역사와 개인과 우주 속에 하나님의 뜻대로 나타나는 이적과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이적과 섭리가 그래요. 하나님의 섭리는 얼마나 정확하면서도 적절한지 지구라는 한 배를 타고 있지만 개개인에 대한 각각의 섭리와 인도하심은 참으로 완전합니다(마10:29).

그러므로 이적과 섭리적 환경을 우연으로 돌리지 말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있는지 거기서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뭔가 필요해서이지 결코 우리가 신령해서 이적과 체험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해석하듯이 자기 환경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섭리와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어 영생 얻고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데 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온전하게 하실 완벽한 복음의 환경, 징계의 환경, 성령의 환경, 정화의 환경, 그리고 이적과 섭리의 환경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더 거룩하고 성숙한 성도로 장성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 (계 4:1-11)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천국은 인간의 상상으로 꾸며진 곳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곳입니다. 천국이 믿어지는 이유는 성경이 입증할 뿐 아니라 예수 안에서 성령으로 믿는 자의 마음에서 이미 시작되고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눅17:20-21에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역사 속에 천국을 다녀온 많은 간증들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본문의 요한이요, 또 한 사람을 들면 사도 바울입니다. 그가 셋째 하늘에 올라가 가히 이를 수 없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놀랍고 생생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본문에서 천국을 봅니다.

계시록에서 보여주는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요?

1. 천국은 언제나 열려 있는 곳입니다.

1절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사도 요한이 본 천국 문은 닫힌 문이 아니라 열린 문이었습니다. 요한이 가서 봤더니 천국 문은 닫혀 있더라 했다면 절망일 텐데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초청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셨고, 마9:13에도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오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행2:21에도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롬10:12에도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요6:37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2. 천국은 예수 복음으로 들어갑니다.

1절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여기 이리로 올라오라 했는데 그냥 올라오라 하지 않고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신 것은 그 상징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팔은 예수 복음의 상징입니다. 성경에 양각 나팔이나 은 나팔이 나오는데 양각 나팔은 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서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복음의 예표요, 은 나팔도 은이 금전의 개념으로 우리를 죄에서 사셔서 구원하신다는 구속의 복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팔 소리는 예수의 복음나팔을 상징합니다.

천국 가는 방법은 감사하게도 전도의 미련한(쉽고, 단순한, 보잘것 없는) 것으로 전해 들어 예수를 구주로 믿고 주님이 성취하신 복음을 믿음으로 받는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입니다(롬10:9-10, 고전15:2). 영적 위기에 빠졌던 마르틴 루터를 구원했던 성구는 바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7)한 로마서의 말씀입니다. 루터는 로마서를 주석하다 이 구절에서 감동을 받고 이 말씀이야말로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라고 확신했습니다.

3. 천국은 구속사역의 본부입니다.

1절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말씀에서 천국의 통치성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통치의 보좌를 베푸시고 우주와 만물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다스리시고 주관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라도 하나님의 통치와 간섭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마18: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셨고, 잠21:1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이란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시사하며, 또한 그 이전에 계시록의 신령한 내용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이루신 구속사역의 공로와 성령의 역사하심의 결과로 맺혀질 인생 추수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천국은 구속사역의 본부로서 바쁘게 움직이는 곳입니다.

4. 천국은 성령 충만한 곳입니다.

2절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1:10을 보면 요한이 이미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천상에 올라와 또 새롭게 성령의 감동을 입게 됩니다. 이처럼 지상에서 성령 안에서 천국을 경험하며 살지만 천국에 들어가서는 더욱 불가항력적인 강력한 성령에 압도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11:9에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임종하고 천국에 가면 더욱 신속하게 성화를 이룰 것입니다.

롬14:17에 “하나님의 나라는 -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천국은 성령 충만한 곳이고 반대로 성령이 임한 곳이 천국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로 다가오시는 성령이 임하시면 천국이 됩니다. 반면 악령이 임하면 지옥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고 하나님 열심히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5. 천국은 하나님이 그 중심이십니다.

2절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보좌 위에 앉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의 가장 높은 곳 그리고 중심부에 있었습니다. 이 위치가 중요합니다. 이처럼 마음의 천국도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우리 중심에서 가장 귀히 모실 때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마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하셨고, 막10:15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천국을 경험하려면 하나님을 높여 경배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 천국이 됩니다. 그러므로 늘 겸손하고 순복하며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높이 경배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6. 천국은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3절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벽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정결하심을, 홍보석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피조물의 부정과 저주를 보지 못하시기에 우리를 향해 구원의 손길을 펴십니다. 우리를 그냥 두시고는 보실 수 없는 속성을 지니셨습니다.

그래서 사43:25에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고, 롬3:25-26에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했습니다. 이런 좋으신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에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온전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7. 천국은 영원한 생명의 보장이 있는 곳입니다.

3절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에 둘린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노아 언약에서 인류와 맺으신 대로 영원히 변치 않을 언약입니다. 그리고 녹색은 생명을 나타내듯 녹보석은 영생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무지개가 일곱 색깔인데 전체적으로는 왜 녹보석 같다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보좌에 둘린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결코 자기 백성을 멸하시지 않고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창9:11에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언약하셨고, 12절에서는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창세기에 이미 무지개와 녹보석 의미를 말씀하셨습니다.

8. 천국은 영광과 승리를 누리는 곳입니다.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여기 24장로들은 12지파 12사도 신구약의 대표로서 우리 성도들을 상징하며, 그들의 보좌와 면류관은 성도에게 다스리는 왕권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성도는 예수 안에서 죽었다가 다시 사시고 높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함께 된 자들이기 때문에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이 승리와 권세와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금 면류관은 다윗이 암몬족을 정복하고 전리품으로 취한 정금 면류관(삼하12:30, 시21:3)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듯 예수님의 승리의 공로를 믿음으로 승리한 성도에게도 수여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24 장로들이 입고 있는 흰옷은 우리 성도가 의롭다함을 받았음을 시사합니다(롬4:5. 롬5:1). 그 뿐 아니라 롬5:2에서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2절) 한 것처럼 누리고 있는 온갖 은혜와 장차 누릴 영광까지도 믿음으로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9. 악의 세력이 침범 할 수 없는 곳입니다.

5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출19:16에 시내산에서 율법을 수여하실 때 “제 삼 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했습니다. 이 산에 접근하면 죽습니다. 거룩을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산을 침범하지 말도록 모세에게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2장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12:18-24에 “너희는 만질 수 있고 불이 붙는 산과 침침함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있는 곳에 이른 것이 아니라 -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천국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있었을까요? 계시록의 상징성을 잘 이해하고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천국이 두려운 곳이라는 뜻이 아니라 악의 세력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의 거룩의 속성을 시사한 것입니다. 사탄이 침범할 수 없고, 악이 침범할 수 없습니다. 죄도 세상도 음부의 권세도 천국을 침범할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의 천국에도 이런 경건의 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아는 사람, 즉 마음에서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들리는 사람은 범죄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내 맘대로 살았지만 은혜 받은 이후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역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게 됩니다.

10. 천국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5절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일곱 등불이란 성령의 조명으로 광명의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계21:23-25에도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조명 문제가 아니라 이처럼 우리 마음이 밝아진다는 말씀입니다. 마13:43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임하면 마음에 근심도 절망도 슬픔도 고통도 탄식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온전한 긍정 믿음 소망 사랑 기쁨이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를 찬양할 것입니다. 천국 간증자 박영문 씨가 천국에 갔더니 어두운 얼굴은 한 사람도 없더랍니다.

천국은 먹지 않아도 죽지 않지만, 먹으려고 하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고, 생각만 해도 풍성한 잔치가 벌어지고, 만나고 싶다면 언제고 만나질 수 있고 믿음대로 되는 완전 자동화된 세계가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살면서 그런 믿음으로 밝게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자동화된 기적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11. 천국은 온전케 하시는 곳입니다.

6절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는 성도를 정결케 하는 천국의 물두멍입니다. 물이 수정과 같다는 것은 그만큼 정결케 하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천국에 가서 이 유리 바다에서 목욕을 할 때 마음의 죄는 신비하게 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51:11에 “여호와께 구속 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했습니다. 죄악이 달아납니다. 저주가 달아납니다. 슬픔과 탄식까지 다 달아납니다.

여기에 대한 예표가 성막에서 부정을 씻는 물두멍이나 놋바다였습니다. 놋은 강한 쇠로 심판의 상징입니다. 악이 심판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을 받으셨으므로 우리의 악만 심판을 받습니다. 선지서의 심판의 메시지는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에 대한 예언이지만, 영적으로는 성령의 은혜로 죄악을 소멸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4:4에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했습니다.

12.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입니다.

6절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여기 네 생물은 구룹 천사로서 하나님을 보필하고 찬양하며 어린양의 심판을 보필하기도 하며 거룩을 수호하는 천사입니다. 이 그룹 천사는 기름부음을 받아 하나님의 중심을 알고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특별한 천사입니다.

그들의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등의 특수한 모습은 그들의 완전한 사역적인 특성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안과 밖의 수많은 눈은 보이는 세계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이르기까지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완벽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은혜가 그만큼 완벽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천국은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형통할 것입니다.

13. 천국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한 곳입니다.

8절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이 부분은 구룹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을 찬양하고, 또 하나님의 주되심과 전능성, 하나님 존재의 과거 현재 미래를 노래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능력과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찬양의 특징은 반복적이고 끝이 없는데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천국은 마음속에 기쁨과 행복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지상에서는 은혜를 받아도 사탄의 시험 때문에 머지않아 식고 말지만 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의인 아벨의 피의 호소와 예수님의 피의 호소도 계속되고 있듯이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이 끝이 없습니다. 배에서 영생수가 한없이 솟아오릅니다. 우리의 밝은 모습과 감격을 빼앗을 자 없습니다.

14. 천국은 온전한 영광 돌리는 곳입니다.

10절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네 생물의 찬양에 대한 24장로들의 화답입니다. 장로들은 만물의 창조 등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데 네 생물의 찬양과 연계해서 살펴보면 예수 안에서 우리를 거룩한 새 피조물로 지으셨다고 온전히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복음의 진수가 담겨 있는 모습입니다.

 

개역성경에는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이 모습은 고대의 한 나라의 왕이 다른 나라의 왕에게 굴복 당했을 때 완전한 항복과 복종의 표시로 자신의 왕관을 벗어 승자의 발 앞에 던지던 관습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24장로들이 보좌에서 내려와 엎드려 경배하고 썼던 면류관도 하나님께 드림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신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와 아울러 오직 하나님만이 이 영광을 받으셔야 하기에 우리는 그 영광을 받기에 감당할 수 없다는 겸손의 심정이 나타나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한 자들이 있습니다. 두로 왕(겔28:6-9), 느브갓네살 왕(단4:30-31), 벨사살 왕(단5:22-31), 헤롯(행12:23),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살후2:4)이 그들입니다. 교만한 자들의 말로는 모두 비참했습니다(행12:23). 이 교만한 자들을 처단하는 천사가 바로 미가엘 천사입니다. 그 이름의 의미는 “누가 하나님과 같으냐?”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영원한 영광과 함께 구원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 무엇인지 찾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천국의 영광 속에 들어와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