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에스겔 강해

심판의 날이 옵니다 (겔 7:1-13)

에반젤(복음) 2019. 7. 12. 15:35



심판의 날이 옵니다  (겔 7:1-13)

 

 ▶ 오늘 우리는 구약의 예언서 중의 하나인 에스겔서 7장의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성경
66권 중 에스겔서 만큼 읽어 나가기에 답답한 책도 없습니다. 지루하리 만큼 집요한 우상들
과 심판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서는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고 특히 이 시대의 한국 사람은 반 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스겔서의 메세지는 우리 시대의 고민,

▶ 우리 조국의 아픔을 어쩌면 그렇게 뼈 저리게 대변해 주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서는 나의 책이요 우리 모두의 책입니다. 우리 모두의 위선과 죄악을 낱낱이 폭로하
시는 심판자이신 하나 님 앞에 일찌감치 서는 사람, 서는 민족에게 복이 있다고 절규하고
싶습니다. 얼른 보면 에스겔서는 우리에게 절망을 안겨 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읽
어보면 에스겔서는 결코 절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절망의 밤에 주신 메시지가 에스겔서의
선율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절망의 밤이야말로 소망의 목소 리를 들어야 할 때입
니다. 그러나 참된 소망을 위해서는 절망의 이유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 하나님이 한 시대, 한 역사, 한 개인, 한 민족을 심 판하신다고 하면서 그 심판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거스틴 은 하나넘의 심판 때문에 역사가 진행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심판'이란 말을 하면 '마지막'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심판은 심판
자체에 목적과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판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행해지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최후의 심판도 엄격한 의미에서는 마지막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심
판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 영원한 하늘과 영원한 땅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 기 때문입니
다.

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 하나님은 심판의 역사를 진행하십니다, 더 이상 역사를 방관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역
사의 궤도 수정을 위해서 한 시대를 청산하고 새로 운 시대를 여시기 위해서 심판을 행하시
는 것입니다. 성경에 '끝'이라는 말이 나오 는데 그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낡은 시 대의 끝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인
류의 역사는 작은 심판들로 말미암아 진행됩니다. 그리고 역사의 궁극에는 최 후의 심판이
있고, 이 최후의 심판을 통해서 새 하늘과 새 땅인 영원한 나라가 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심판을 왜 하십니까?

▶ 하나님의 백성이 그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5장 5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
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방인 가
운데 두어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둘러싸게 하 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가 악을 더 행하였습니다. 하나
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셨습 니다. 물론 이스
라엘 백성들은 지리적으로 보아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나라에 둘러 쌓여 있었습니다. 그
런데 이것은 지리적인 이유보다 사실은 사명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방인들
가운데 거하므로 이방 사람들에게 빛을 발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나 타내어,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음
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들에 게 압도당해서 그들처럼 악을 행했다는 말입니다. 아니, 이방
인들보다 더 무서운 죄 가운데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
용될 수 있 는 메세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움 가운데 두시면서 우리를 향해서 선포하셨습니다. '너회는 세
상의 빛이라' 우리는 우리 주변이 너무 어둡다고 불평합니다. 너무 어두워진 세상을 보고 '
하나 님이 정말 살아 계신가'고 의심하거나 불평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 알 았
습니다. 이 세상이 어둡기 때문에 우리가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시는군 요'라고 반
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도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빛을 발하며, 하나님을 어
떻게 가르치며,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빛의 자녀들의 아름 다움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
가를 고민하기 보다 이 어두움 속에 동화되거나 이 어 두움을 불평하며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그 당시 유다 백성 들의 모습과 얼마나 비슷합니까? '너희는 세상
의 소금이다' 소금이 어디에 필요합니까? 부패한 곳에, 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곳에 필요합
니다. 썩고 오염된 곳에 소금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이 썩었다고 말합니다. 그 래
서 이 세상의 부패함을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나님 이렇게 더러운 것을 어떻 게 그냥 두
십니까?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 세상이 더럽기 때문에,

▶ 죄악의 성난 파도 속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에 두셨고 나를 통해서 오염된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께 속해 있는 거룩함을 보여 주도록 촉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
고 있는 우리의 모습 을 보세요. 그처럼 우리는 이방인에 대한 소명적 존재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지적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 오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 하나님 없이 살면서 더러움과 죄악가운데 처해있
는 이 수 많은 이방인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십니 까? 이렇게 우리 주변에 믿지 않는 사
람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를 향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
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내 셨구나'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이 사람들에게 압도당
해서 하나님에 대해 의심 하며 회의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
니까?

하나님이 심판을 왜 하십니까?

▶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의 율례를 범했기 때문입니 다. 5장 6절 말씀을 보세요.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죄을 더 행하 며..."라고 말씀했슴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고 있
없던 그 당시 백성들의 범죄를 우 리는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도덕적인 차원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의 불신자들의 도덕적인 수
준을 능가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가 도덕을 지킴으로써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
다. 다만 믿음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백성으로써 우리는 이 세상의
불신자들을 능가하는 삶의 수준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복음 5장 20절에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 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아닙니
다. 그러나 그리 스도를 믿는 사람은 당연히 이 새상이 요구하는 율법이나 도덕의 수준을
능가해야 한다는 하나의 도전입니다.

여러분,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들과 다른 우리의 삶 때문에 층격과 도전을 받
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내가 없는 곳에서 나를 가리켜 '저 친
구 예수 믿어도 별 수 없구먼, 믿지 않는 우리보다 못하지 않 아?'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습
니까? 어쩌면 에스겔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 받았던 그 지적과 책망의 이유가 바로 오늘 우
리가 받는 조롱의 이유일는지도 모릅니다.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 에스겔 5장 11절 말씀을 보새요.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 즉 나도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며 미약하게 하리니."그들
이 어떻게 하나님 의 성소슬 더럽혔습니까? 이것은 우상 숭배에 대한 책망입니다. 그 당시
의 유다 백성들은 심각한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
들어 놓고 그것들 앞에서 그들의 삶의 행복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 하나님이 내 눈앞에 당장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 에 실감나지 않는 하나님을 의존하
는 대신 오늘 나를 당장 실감 있고 행복하게 만 들 수 있는 물질이나 육신의 정욕이나 쾌락
에 더 매달리고 있다면 우리도 우상숭 배자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엇이 내 삶속
에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 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있는 모든 것', 그것이 다 우상입
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그 옛날 이 우상 숭배 때문에 진노하
시면서 채찍을 들고 자기 백성을 징계하려 는 심판의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그 하나님을 우
리가 믿고 있으면서도 우상 숭배 에 빠져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다면
그 하나님은 오늘도 우 리에게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그 심판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 전역에 걸친 것입니다.

▶ 오늘 주신 말씀 2절을 보세요. "너 인자야, 주 여호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
라. 끝났도다 이 땅 사 방의 일이 끝났도다',했습니다. '이 땅 사방'의 일이란 이 땅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전국 혹은 전세계에서 들려또는 소식을 뉴스라고 합니다. 영어로
NEWS라고 합니다. NEWS라는 단어는 North, East, West, South의 합성어로 말 하자면 동
서남북 사방에서 들려오는 온갖 소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신 말씀 11절 이하를 보시
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포학
이 일어나서 죄악의 몽둥이 가 되었은 즉 그들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
고 그 중에 아름다 운 것도 없어지리로다" 했습니다.

26절에 보면 종교계에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 한 시대 속에서 종교가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할 때 한 시대를 청산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사명을 끝까
지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결국 역사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소금이 만일 그 맛
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 이니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한 시대가 심판을 받게 될 때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그 부패가 드러나지
만 특 별히 그 부패가 가장 드러나는 분야가 종교계입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 니
다. 한국 동란 이전에 한국 교회가 병들어 있었습니다. 교파가 나눠지고 교회 안 에는 싸움
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종교계의 부패는 한 시대의 심판의 중요 한 원인이 되는 것
입니다. 26절에 보면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며,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없어질 것이 요, 장로에게는 모략이 없어질 것이
라"고 했습니다. 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무력한 상태에 있는 것을 볼 수
가 있습니다.

정치계에도 심판이 임합니다.

▶ 27절에 보면 "왕은 애통하고 방백은 놀람을 옷 입 듯하며 거민의 손은 떨리라" 했습니
다. 이 심판은 어느 한 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걸려서 임했다는 사실 을 이
말씀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심판하십니까? 에스겔서
7장에 보면 다섯 번씩이나 거듭 비슷한 말씀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 말씀 은 네 행위를 따라 심판한다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의 심판
에 대한 개념을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행위를 따라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 나 구원
은 '행위를 따라' 얻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를 따라 구원하신다면 우리에게 는 구원의 희망
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만일 행위를 따라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면 우리 가운데 구원받
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선을 행하는 자 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선언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도록 내어
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 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위를 따
라서가 아니라 은해를 따라 구 원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구원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 의 원리는
예외 없이 '행위를 따라서'입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여기에서 가장 적절하게 적용
됩너다. 그러면 유다 왕국이 심판 받게 된 원인이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무슨 죄 때문에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우상 숭배의 죄입니 다.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민
족의 우상 숭배의 죄를 보셨습니다. 그런데 우상 숭배 외게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
었던 몇 가지 죄가 있었습니다.


교만의 죄가 있었습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 어떤 것을 가리켜 교만이라고 합 니까? 오늘 주신 말씀 10절을 보세요. "볼지어다. 그 날
이로다, 볼지어다. 임박하도 다. 정한 재앙이 이르렀으니 몽둥이가 꽃 피며 교만이 싹났도
다." '몽동이가 꽃피 며'라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감적으로 한 사건을 생각나게 합
니다. 그것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 사건입니다. 민수기 17장에 나타난 이 아론의 싹난 지팡
이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세우셨던 지도자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이 인정하지를 않
았습니다. 이것은 결국 모 세를 지도자로 세우신 하나님에 대한 거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거역 이요 반항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해서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하고 불신 앙한다는 것
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무서운 즐 모르고 하나님의 권위를 거절하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
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은 교만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교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이란 하나님의 권위를, 또 하나님이 주신 모든 권위를 결국 부인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만이란 죄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심판하십니
다. 24절 말씀을 보새요.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으로 이르러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로 교만을 그치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엔 포학의 죄가 있습니다.

▶ 오늘 주신 말씀 11절에 보니까 '포학이 일어나서'라고 말씀했습니다. '포학'이란 말을 현
대어로 말하면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사이 젊은 사람에게 가장 인기 있는 TV
프로가 무엇입니까? 폭력 영화입니다. 이런 것을 보는 동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이
익숙해지고 하나의 습관처럼 되어 버립니다. 이 얼마나 무 서운 일입니까? 에브겔 당시 유
다 백성들의 포학함이 하나님이 심판의 중요한 원 인이 되었습니다. 교만은 나와 하나님 사
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학은 사람과 사 람사이에서 다른 사람을 향한 잔
인한 감정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에 대한 냉대, 질시, 그리고 사람의 가
치를 가볍게 보는 것 같은 것은 잔인성 올 유발하게 합니다. 그래서 점점 포학해지는 것입
니다. 사치도 그렇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0절에 보면 '그들이 그 화려한 장식으로 인 하여
' 하는 말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자기를 아름답게 가 꾸기 위한 최
소한의 것을 사치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어
느 시대 어느 역사을 보아도 백성들이 사치와 향략속에 빠 져 있을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
한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심판하셨습니까?

▶ 가령 백성들을 경제적으로 궁핍하게 했습니다. 1절 말씀을 보세요, "포학이 일어나서 죄
악의 몽둥이가 되었은 즉 그들 도 그 무리도 그 재물도 하나도 남지 아니하고 .."라고 했습
니다. 재물이 없어집니 다. 경제 난국에 처하게 됩니다. 부도가 나고 도산이 되고 파산됩니
다. 이럴 때 우 리 그리스도인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고나 심판의 징조는 아닌가 하고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질병이 생깁니다.

▶ 15절, 17절을 보세요. "온역이 생기고 모든 손이 피 곤하고 모든 무릎은 물과 같이 약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점진 적입니다. 처음에는 약하게 됩니다. 갑자기 내
몸이 허약해지면 이것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허약해져도 깨닫지 못하면 그 다음 단계로 병이 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
까? 잠자는 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잔다는 것은 육체적인 죽음을 의미합디다. 이처럼
하나님 은 육체의 질병을 심판의 방법으로 자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왜 피의 백성을 심판하십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 첫째로, 하나님은 행위에 대한 처벌로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위, 악한 행위에
대한 형벌로 심판을 하십니다. 오늘 주신 말씀 9절을 보세요.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
며 긍휼히 여기지도 아니하며 네 행위대로 너를 벌 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회 중에 나타
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하나님은 그의 백성일지라도 그들의 행
위가 악하면 그 죄에 대한 형벌로서 하나님 의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 그보다 더 중한 것이 있습니다.
♣ 둘째로, 하나님은 자신이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기 위해서 심판하십니다. 오늘 주 신 말씀
4절을 보세요.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흘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 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회 중에 나타나게 하리니 너회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 라"
했습니다. 심판을 통해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존재를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 입니다. 한 개
인이나, 한 가정, 한 민족이나, 인류역사에 심판이 임할 때 '아, 하나 님이 살아 계시구나'하
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9절 말씀을 보세요 "내가 너를 아껴 보지 아니하며 긍흘
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네 행위대로 너를 벌하여 너의 가증한 일이 너회 중에 나타나게 하리
니 나 여호와 가 치는 줄을 네가 알리라." '내가 너를 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아주
생생 한 말로 표현했습니다. 매맞기 전에 께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를 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사랑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 사랑만
너무 강조하다 보니까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 님은 우리를 사랑하
심과 동시에 우리를 치십니다. 치시는 하나님, 진노하시는 하나 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십
니다. 27절 말씀에 "내가 그 행위대로 그들에게 갚고 그 죄악대로 그들을 국문한 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나님이 왜 심판하 십니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리기 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을 두려워 할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알아야 경건에 이르게 됩니다. 하
나님들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 악 속에 빠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움 속
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의 채찍 으로 겸손히 받으시면 성공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지
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이 난국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받는다면 우리 나라, 우리 민족이 새
로 거듭나는 축복 의 기회로 역사가 새로워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 심
판을 피할 길은 하나님밖에 안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