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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9장

에반젤(복음) 2021. 12. 27. 05:47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9장

음녀의 최후, 어린양의 혼인잔치, 백마 탄 하늘군대

 

19장에는 약 3가지 즉 음녀의 심판, 어린양의 혼인잔치, 그리고 백마 탄 하늘의 군대 등의 내용이 나타납니다. 1절부터 할렐루야로 가득 찬 승리의 찬양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이 용어는 무려 4번이나 나타납니다. 그만큼 음녀의 심판과 아울러 어린양의 신부가 준비됨이 중요한 사항으로 이는 그동안의 모든 사역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찬양은 승리와 복됨만이 아니라 이토록 찬양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무엇이었으며 성도가 취한 믿음이란 어떤 것이었는가가 찬양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음녀 즉 세상의 멸망이 어린양의 신부로 준비됨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봅니다. 나아가 승리자로서의 어린양의 신부는 이 땅에 악을 처단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그리스도의 백마 탄 하늘의 군대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음녀의 최후 (계 19:1-5)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이 찬양은 음녀 심판에 대한 회고조의 찬양으로 음녀 심판에 대한 총결론에 해당합니다. 1절은 하나님께 영광, 2절은 음녀에 대한 심판 선고, 3절의 “그 연기”가 원문에 ‘그 녀의 연기’이듯 음녀에 대한 화형식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음녀의 멸망은 우리에게서 세상이 제거된다는 감격 외에도, 그만큼 영적으로 자랐고 변화되었으며, 나아가 그만큼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준비되어졌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복음에 굳건한 섰을 뿐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만큼 수준 높은 사랑을 지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믿음과 사랑이 없이는 매혹적인 세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버릴 수 없어 일생 그 경계선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과 멀어짐을 이처럼 기쁨과 감사로 영광 돌릴 수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임이 틀림 없습니다.

 

큰 음녀의 심판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었습니까?

 

1. 하늘에 속한 자가 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절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 찬양하는 하늘의 허다한 이 무리에 대해서 천사의 무리, 성도의 무리라는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구속사역의 협력자들인 천사들과 세속에서 승리한 영에 속한 성도들의 합창으로 보는 것이 본 사건의 문맥에 부합합니다. “하늘에 허다한 무리”는 흔히 천사를 암시하는 표현입니다(눅2:13, 계5:11). 그런데 단순히 성도의 무리를 가리킨다면 천사를 암시하는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다는 애매한 표현을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내용으로 볼 때 계5:10에서 성도들이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불렀는데 본 절에도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앞 장인 18:20절에서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했듯 여기 하늘이 천사들을 암시한다는 점에서(눅15:7, 10, 눅15:10), 그리고 본 찬양이 음녀의 멸망에 대한 총결론이라는 점에서 이 사역에 참여한 천사들과 함께 부른 승리한 성도들의 찬양으로 보입니다. 즉 음녀의 심판은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의 공로와 성령의 은혜로 하늘에 속한 자(계12:5, 엡2:5-7, 골3:2-3), 즉 영에 속한 자가 됨으로 이루어집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큰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이르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할렐루야”는 찬양을 의미하는 '하랄'과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의 합성어로서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본 장에 할렐시가 3편이나 나오는데 할렐시란 할렐루야로 시작되거나 마치거나 전후가 할렐루야로 되어 있는 시로서 시편에 많이 나타납니다(104-106, 111-113, 115-117, 135, 146-150). 특히 본문처럼 빈번한 할렐루야나 전후의 할렐루야로 된 시들은 온전한 감격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즉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찬양의 내용으로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했듯이 이 모든 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말미암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 음성”은 하나님의 큰 은혜에 대한 화답입니다. 이 같은 논조로 “큰 음녀”였기에 큰 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믿고 더 온전한 감사와 경배를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들이 큰 은혜 받는 일입니다(시50:23).

 

3. 간절한 기도와 간구와 감사로 이루어졌습니다.

 

2절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본 절에서는 음녀에서의 구원이 얼마나 놀랍고 숙원적인 일이었던가 보여줍니다. “자기 종들”이라 하심은 그동안 음녀의 종이었음을 시사하며(롬6:6-7,13-14,19-23), “갚으셨다”는 말씀에는 원수에 대한 보응의 판결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마치 눅 18장에 나오는 억울한 일 당한 과부가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끝없이 요청한 것처럼(눅18:3), 그리고 바벨론에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간절한 해방의 소원과도 같습니다. 그들이 바벨론에서 회개와 아울러 신앙을 기르며 70년을 기다렸듯(렘25:11-12, 29:10) 우리의 믿음과 사랑과 기도와 간구가 비로소 찰 때 죄에서 온전한 자유와 해방을 누리게 됩니다(롬8:1-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는 정의롭고 실재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실재를 누리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믿을 뿐 아니라 그것을 믿는 믿음에서 자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복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아울러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 역시 방법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그 방법은 우리가 처음에 받았던 이 복음에 서서 아버지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날마다 감사 찬양하며 몸과 마음을 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가 보여준 성령 충만의 비밀이요, 구원의 실재를 누리는 길입니다.

 

4. 죄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3절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서론에서 언급했듯 본 절은 큰 음녀의 종식선언에 이어 할렐루야와 함께 음녀에 대한 화형이 진행됩니다. 여기 “그 연기”는 원문에 ‘그 녀의 연기’라 하여 불로 태우고 있습니다. 계17:16에 음녀를 불로 아주 살랐는데 그토록 세상을 미워해야 합니다(롬8:7, 골1:21). 여기서 세상이란 죄에 대한 포괄적인 의미입니다. 세상을 원수 시 함은 상대적으로 하나님을 그만큼 사랑함을 의미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6:24).

 

5. 견인의 은총으로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바벨론에 세세토록 탈 인화물질이 있을까요? 그래서 비유에 맞게 계시록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처럼 세속의 문화는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불탈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불타는 현상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죄악에 대한 증오의 불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척결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셨을 뿐 아니라 지옥을 만드시는 등 끝까지 가시는 것처럼 죄악을 죽도록 미워하시기 바랍니다(히12:4, 삼하18:7-8). 이 죄에 대한 증오의 불길이 우리 중심에서 세세토록 불탈 때 그 마음이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견인의 은총입니다(시37:24).

 

6. 하나님이 내신 교회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4절 “또 이십사 장로와”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아멘 할렐루야로 하나님께 경배했는데 먼저 24장로의 역할입니다. 24장로는 신구약교인의 대표인데, 1절에 성도를 암시하는 “하늘에 허다한 무리 같은 것”이 이미 나왔는데 다시 24장로가 등장한 것은 성도의 관점이 아니라 사역자의 관점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서 이만큼 승리하게 양육시켜 주셨다는 의미입니다(엡4:11-16).

 

7.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네 생물”은 구룹천사이기도 하고(겔10:14,20),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사복음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4:7에서 설명했듯 둘은 구별되지만 그 특징에 있어서는 같습니다. 이처럼 사복음서는 비록 천사처럼 물리적인 움직임은 없는 책이지만 구룹과 같이 4가지의 다양한 관점에서 역동성 있고 영구불변의 하나님의 뜻인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의 증거를 위해 온갖 기사와 이적과 말씀으로 나타나 죄인을 구원하는 복음이라는 점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세주라는 것을 알려주시고(요20:31) 제자로서 믿음에 장성하도록 자라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경의 양육을 받아 구원 받고 온전히 거룩함에 이르시기 바랍니다(딤후3:16-17, 딛2:12-14).

 

8. 징계로서 얻어진 절대 순종의 새 자아 때문입니다.

 

또 이십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이 모습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나타냅니다(계4:10). 그리고 보좌 앞에 엎드림의 모습은 그 주권에 절대 순복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내 뜻대로 살아왔던 모습과는 다른 새 자아의 모습입니다. 자기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가 나를 온전히 못 박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질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가 아니요 나를 죽음에 넘기는 자기 십자가입니다(마16:24, 고후4:10-11).

 

9. 끝까지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를 지속하시기 바랍니다.

 

5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작은 자나 큰 자나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여기 “큰 자나 작은 자”는 일반적으로는 누구든지를 의미하는 낱말이지만 당시 배경으로 보면 이 표현은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자나 종이나,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청년남자나 여자나, 풍부한 자나 궁핍한 자나, 높은 자나 낮은 자 등을 구분 짓는 낱말입니다. 이처럼 어떤 영적인 상황이나 체험이나 성공이나 실패의 여부를 떠나 나를 구원하신 복음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합3:17-18, 고전15:1-2, 유1:3). 체험이나 증거를 보면 용기백배하다가도 조금만 상황이 달라지면 낙심하는 것은 진리에 선 믿음이 아닙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아도 단번에 주신 복음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시기 바랍니다(계3:7).

 

 

어린양의 혼인잔치 (계 19:6-10)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본문의 6-8절은 3번째 할렐시로서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재림의 날 성도들이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영원히 함께 하는 것으로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피크(peak)가 될 것입니다(살전4:17). 그리하여 항상 주와 함께 있는 항구적인 임재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꼭 재림의 날만이 아니라 믿음이 신부의 수준에 이르면 이런 항구적인 임재를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은혜의 잔치 가운데 살고 있지 못한다면 더울 분발하시기 바랍니다(마25:10).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합당한 사람은 누굴까요?

 

1.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6절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혼인의 소식을 알리는 자의 목소리가 참으로 다양합니다.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 즉 그 음성이 수많은 천사와도 같고(눅2:13, 계5:11),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즉 예수님의 음성과도 같고(계1:15),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즉 하나님 아버지나(계4:5) 네 생물과도 같은(계6:1) 소리였습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은 14:2의 시온산에 선 십사만 사천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추가된 것이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은 1절의 많은 천사들과의 합창의 연속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신부의 영적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많은 물소리처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요1:16-17, 엡4:15), 큰 우렛소리와도 같이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 죄와 사탄에 대해서는 엄위하고(레19:2, 시97:10, 롬12:9, 히12 :28-29), 천사의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 같이 순복하고 충성하고 헌신적인 장성함에 이른 성도의 모습입니다(벧전3:5-6, 잠21:9). 아6:10에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한 것과 같습니다.

 

2. 하나님과 그 말씀에 순복해야 합니다.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이 찬양에서 어린양의 신부의 영적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주”, “하나님” “통치”이 세 단어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만 제일로 사랑하고(신6:4-5, 시73:23-25, 고후6:14-16)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고 절대 순복하는 모습입니다(엡5:22-23, 벧전3:5).

 

3.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함에 있어서 전능하신 이의 통치라 했는데 이 전능성의 통치는 여러 가지겠지만 체험적으로 다가오는 통치는 성령의 통치입니다. 이 통치가 우리 마음을 다스리고(잠21:1, 빌4:6, 눅1:35, 눅18:24-27) 우리의 삶을 다스려줍니다(눅12:6-7).

 

4. 신랑 예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7절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당시 풍습에 의하면 이 즐거워하는 사람이 신랑이나 신부 등 당사자일 수도 있고, 친구들일 수도 있습니다(요3:29, 마25:1-13). 신부 입장에서 볼 때 사랑하는 님을 만난 것도 행복이고 결혼하게 되는 것도 꿈꾸는 것 같은 기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랬듯이 신랑 예수를 생각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의 은사만 추구하지 말고 주시든 안 주시든 아버지와 예수님 생각하며 날아다니듯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현실에 찌들어 우리 마음에 주름이 간다면 신랑 예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의 신부의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질 일이지만 시제를 보면 이르러 머물러 있는 상태입니다. 즉 “이르렀고”의 ‘엘덴’은 ‘오다.’를 의미하는 ‘엘코마이’의 제1부정과거 능동태직설법으로 재림의 현재성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여기 '엘코마이'는 내가 "속히 오리라 ."(계22:7)하실 때 "오리라"를 가리키며 문법상 현재형입니다. 주님은 오셨고 임하시듯 오시고 계시고 온전히 오실 것입니다. 이 현재성이 장차의 재림까지 연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도 신부의 영적 수준을 갖추면 영적인 밀월관계를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부의 수준을 요구하고 있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6. 열심히 거룩한 모습으로 자신을 준비해야 합니다.

 

7-8절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그의 아내 된 우리들이 준비할 것은 거룩한 단장입니다(요일3:2-3, 벧전3:3-5). 하늘나라로 시집가는 것을 싫어하고 세상에 집착해만 있다면 신부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준비하며 사모하는 자에게 예수님께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히시는데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계19:8. 마5:16). 재림의 날이 언제일지 예수님도 모른다 하신 것은 지금이라도 오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이 교과서이고 교회가 신부 수업 받는 곳입니다. 그리고 가정이 신부수업의 실습장입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기대해도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이 약속은 영원불변의 진리입니다.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여기 “기록하라”라는 말씀은 성경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그래서 “기록하라” 하시고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어린양의 혼인잔치는 하나님이 인간과 영원히 함께 사는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부터 계획하신 성경이 주제입니다. 이것이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이기도 하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부부로 묘사했으며(호2:19-20), 신약교회 역시 엡 5장에서 부부로 묘사했습니다.

 

2. 이 잔치는 참으로 복된 잔치입니다.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22:14) 하셨는데 계시록에서는 청함을 받는 자가 복되다 하신 것은 부르심에 응할 것을 전제로 하신 말씀입니다. 율법에는 결혼하면 일 년간은 신랑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아내를 즐겁게 할 의무가 있었고 전쟁이 나도 군대에 징집되지 않을 만큼 신혼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습니다(신24:5, 욜2:16). 이것은 신부에 대한 배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부는 이 배려를 힘입어 정든 가족과 고향을 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맞는 것을 잔치로 표현한 것은 주를 영접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하고도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3. 이 잔치야말로 감격 중의 감격입니다.

 

10절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요한은 너무나 감동하여 부지중에 천사숭배 하려는 실수를 범합니다. 이단 배격자로 유명한 요한이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것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그만큼 복되고 영광스럽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술람미가 솔로몬의 선택을 받아 수넴 산골에서 왕궁으로 가마를 타고 가 혼인을 합니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장면입니까? 이처럼 우리가 만왕의 왕 예수님의 왕후로 간택되었다면 놀라서 기절해야 정상일 것입니다.

 

4. 신부의 수준에 이르면 귀히 쓰십니다.

 

10절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또 다시 놀라운 사건을 봅니다. 천사의 신분이었는데(9절) 그가 네 형제와 같이 된 종이라고 자기 신분을 드러냅니다. 그의 감동적인 메시지 앞에 경배까지 할 정도였는데 그가 형제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걸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신부의 수준에 이르면 바울처럼 모세처럼 천사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고전3:9, 요14:12). 그것을 보여주시려고 다음 절부터 백마 탄 하늘군대가 나옵니다.

 

 

백마 탄 하늘군대 (계 19:11-21)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이어 백마 탄 하늘 군대입니다. 백마 탄 하늘군대에 대해서 다수의 학자들은 심판주로 임하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해석했고, 무천년설에서는 영적으로는 성령의 능력 받아 복음전파를 예표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임하시고 장차 온전히 재림하신다는 점에서 두 가지 모두 수용해야 합니다. 이 강해에서는 신앙과 관련성이 많기 때문에 영적 관점을 더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늘군대의 정체 (계 19:11-16)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백마 탄 하늘군대가 무엇일까요?

 

1. 하늘에 속한 군대입니다.

 

11절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요한은 땅의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을 말합니다. 하늘이 열려서 보니 백마 탄 군대가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의 군대입니다. 앞의 어린양의 혼인잔치 후에 나타났고,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하셨듯(살전4:17) 그리스도의 신부들은 한 편으로는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한 하늘군대입니다. 그러므로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승리의 군대입니다.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여기 백마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계6:1-2에 백마에 대한 모호한 면이 있지만 아무튼 승리의 상징으로 쓰였습니다.

 

3. 예수님의 군대입니다.

 

“탄 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하늘 군대의 대장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승리의 우편에 앉으셨을 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악을 심판하여 처리하고 계신 승리의 주님이십니다(롬5:9-11). 하늘에 속한 신부로 끝나지 않고 사는 동안은 끊임없이 죄와 싸워야 합니다(딤후4:10, 딤전5:15, 히6:4-6).

 

4. 위대한 대장의 군대입니다.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충신”은 ‘신실한 자, 충성된 자’를, “진실”이란 ‘참된 자, 진정한 자’를 뜻합니다. 이 두 단어를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충성하셨고 지금도 죄인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서 성령 안에서 구속의 공로를 적용하시는 쉬지 않으시는 진실하신 분이십니다(고전2:12, 룻3:18, 렘30:24). 군대에서 지휘관 잘 만나면 승리하지만 잘못 만나면 몰살당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것처럼 대장의 승리가 곧 우리 승리입니다.

 

5. 공의로운 대장의 군대입니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악과 싸우는 공의이지만 공의란 사랑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이 공의는 특별합니다. 재림 시에는 죽은 자까지도 부활시켜 선악 간에 심판하시지만, 현재적 관점에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악만 처리하시는 사랑의 심판을 진행하고 계십니다(마12:17-21).

 

6. 불의를 무찌르는 군대입니다.

 

12절 “그 눈은 불꽃같고” 계1:14에도 “그의 눈은 불꽃같다” 했습니다. 불꽃같은 눈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그리스도의 전지성과 통찰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불의를 용납지 않으시는 무섭고 두려운 눈을 가리킵니다. 이 심판주의 눈앞에 누구도 죄를 숨기지 못할 것입니다(롬14:10-12, 벧전4:5, 시139:1-4). 그러므로 이 불꽃같은 눈은 죄인으로 하여금 통곡하며 회개케 하시는 은혜입니다(계1:7).

 

7. 승리와 영광의 군대입니다.

 

그 머리에 많은 관들이 있고” 예수님의 머리에 많은 관들이 있다는 것은 당시 강한 왕들이 그러했듯이 수많은 전쟁에서 거듭된 승리를 암시합니다. 이처럼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그 날에 이 면류관을 충성된 군사들에게도 나누어주실 것입니다(눅22:29, 눅19:17).

 

8. 섭리와 주권대로 움직이는 군대입니다.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이 이름은 예수님만 아시는 이름인데 알 수 없는 이름을 왜 언급하셨을까요? 이름이란 본질의 표현이요 하는 일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무엇을 행하실지 우리는 알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총사령관의 군사기밀을 사병이 다 알고 있을 필요가 없고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전7:13-14, 롬11:33-34). 즉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대로 움직이는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부리려는 마음 가지면 하나님께서 하늘군대로 쓰시지 않으십니다.

 

9. 말씀으로 싸우는 군대입니다.

 

13절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이 피 뿌린 옷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보혈인지, 원수들을 진멸할 때 묻은 원수들의 피인지 두 견해가 있습니다. 성경적 근거인 출29:21과 사63:2-6을 들지만 신령한 관점에서 둘 다 거룩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확한 해석은 이어지는 말씀 즉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했듯 좌우에 날선 예리한 검인 하나님의 말씀의 결과라는 점에서 다름 아닌 말씀으로 싸우는 군대임을 보여준 것입니다(히4:12-13, 고후10:4-5).

 

10.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군대입니다.

 

14절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여기 희다는 것은 칭의를(롬4:5), 깨끗함이란 옳은 행실인 성화를(계19:8) 시사합니다. 세마포가 군복이라니 신기하지만 죄와 싸우는 군대이기에 자신과 많은 사람을 거룩으로 이끈다면 전쟁의 성공을 의미합니다(단12:3). 거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마포 군복은 이 싸움이 선한 싸움임을 시사합니다(딤전1:18, 딤후4:7).

 

11.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한 군대입니다.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하늘 군대들이 대장 예수님처럼 모두 백마를 탔습니다. 군사까지 백마 탄 군대는 역사상 없을 것입니다. 백마는 승리의 상징일 뿐 아니라 대장이 탄다는 점에서 권세와 관계가 깊습니다. 이처럼 하늘군대는 성령의 권능까지 충만한 군대입니다(눅10:17-19).

 

12. 예수님께서 더불어 역사하는 군대입니다.

 

15절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보통은 대장은 명령하고 싸움은 군인들이 하는데 하늘 군대는 그냥 예수님을 따르고 모든 역사는 대장 되신 예수님이 하십니다. 그 결과 하늘군대가 가는 곳마다 예수님이 더불어 역사하셔서 놀라운 결과가 따라옵니다(막16:20). 그러므로 나는 감춰지고 예수가 나타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예리한 검은 하늘군대의 말씀의 권세를 말합니다. 예수님 손에는 만국을 부수는 깨뜨리고 부수는 철장이 있는데 만국은 인간의 완악한 마음을 가리킵니다(계2:26-27). 그래서 하늘군대가 가는 곳에 어찌할꼬 가슴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13. 강력한 회개의 운동이 일어납니다.

 

15-16절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15-16절) 여기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이 문장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여호와의 날을 시사합니다. 현재적으로는 성령의 부흥인데 이 때는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포도주 틀을 밟듯 깨어지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짓밟던 옷과 다리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쓴 것이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 주권에 대한 강한 표현으로 그 앞에 깨어져 순복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하늘군대는 베드로와 같이 영적 대부흥을 일으키는 능력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큰 잔치 (계 19:17-21)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백마 탄 하늘군대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대장으로 한 하늘에 속한 성도의 군대입니다. 타고 있는 말도 예수님과 같은 백마이니 예수님이 아니지만 사역과 권세에 있어서 예수님과 동격, 즉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니 그 역사는 바로 주님의 권세와 능력입니다(요14:12, 요일3:3). 그래서 본문을 보면 사탄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대 승리가 주어집니다. 하나님의 큰 잔치가 열려 천사가 공중의 나는 모든 새들을 초청하는 새들의 잔치가 벌어집니다. 이는 마지막 날에 있을 그리스도의 승리를 예시함과 아울러 현실에서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부된 성도들을 통한 대규모의 회개운동이 일어날 것을 말씀한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옛사람의 시체가 더미를 이루는 대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눅17:34-35에 예수님께서 재림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하실 때 제자들이 “주여 어디 오니이까?” 즉 어디로 데려갑니까? 라고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동서문답이라도 하시는 듯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셨습니다(눅17:37). 독수리는 짐승이 죽으면 어떤 짐승보다 빨리 알고 사체 위에 모여든다고 합니다. 주님이 하늘로서 강림하시면 성도는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영원히 함께 하는데 죽음의 현장이라니, 더구나 내가 오면 너희를 살육의 벌판으로 인도할 것이라니.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보다 현재성을 더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재림의 미래성만 생각했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은 것입니다. 정치적 메시야만 생각했던 유대인들과 흡사합니다. 이처럼 지금도 성령으로 임하시는 재림의 현재성에 비추어 보면 많은 사람들의 옛사람의 시체가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들이 변하여 하늘의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용례를 성령강림을 예언한 시110편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110:6에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을 쳐 그 시체로 더미를 이루게 한 삼손의 사건을 성령강림의 사건으로 말씀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오셨고 지금도 임하고 계시며 재림으로 온전히 오시는데 이 주님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늘군대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들의 잔치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쓰임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17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하늘 군대에 관한 말슴 중에 네 생물도 24장로도 예수님도 누구도 아니고 천사 나타납니다. 성령운동이 천사와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부흥운동에 쓰임 받으려면 천사가 되어야 합니다. 천사는 오로지 하나님이 뜻을 받아 움직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존재라는 점에서 쓰임 받는 일군의 모델입니다.

 

쓰임 받으려면 본문이나 사 6장 등 천사에게서 배우시기 바랍니다. 천사는 자기 계획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뜻과 지시와 소원을 품고 움직입니다. 그리고 보낸 일에 충성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것이 천사입니다(시103:20-22). 소원 품는 것이 잘못이란 뜻이아니고 내가 품은 소원과 뜻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2. 자기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 천사가” 성경에는 두 천사도 나오고, 세 천사도 나오고, 허다한 천군천사도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 한 천사란 그 천사만이 갖는 고유한 사명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사역의 현장에서도 우리 각인에게는 각각의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자기 사명을 찾아야지 부럽다고 모방하다가는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찾고 발전시키시기 바랍니다(골1:28-29).

 

3. 말씀의 약속과 구원의 복음에 견고히 서야 합니다.

 

한 천사가 태양 안에 서서” 계 12장에는 해를 옷 입은 여자와 비슷합니다. 다른 점은 12장의 여자는 태양을 입었지만 여기는 태양 안에 섰습니다. 해는 좋은 의미에서 하나님이나 그의 사랑과 은혜를 가리킵니다(시84:11). 그는 태양 안에 섰습니다. 그 안에 있으면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복음에 견고히 서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큰 산이 놓여 있어도 믿음으로 전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독수리만이 아니라 모든 새라고 한 것처럼 살육의 대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잔치에 초청하는 천사의 음성이 컸습니다. 큰 음성은 단순히 크다는 것이 아니고 죄인을 구원할 좋은 메시지와 함께 큰 능력으로 증거 되어야 합니다(막1:22, 살전1:5). 즉 말씀 연구와 기도생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5. 회개하는 하나님 나라 운동이어야 합니다.

 

18절 “왕들의 살과 장군들의 살과 장사들의 살과 말들과 그것을 탄 자들의 살과 자유인들이나 종들이나 작은 자나 큰 자나 모든 자의 살을 먹으라 하더라.” 살은 생명체가 죽어야 얻어집니다. 살육의 벌판에서 살은 육신적인 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여러 죽은 대상들은 구체적으로 죽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가령 왕과 같은 교만도 죽고, 장군이나 장사 같이 죄에 대한 강한 의지나 범죄의 능력도 죽고, 말들이 두려움이 많듯 비진리나 사사로운 감정에 날뛰지 아니하고, 마병과 같이 죄악에 빠르지 않으며, 자유자처럼 안일과 방종하지 않으며, 종과 같이 피동적이지 않고 자유와 특권을 누리고, 무론 대소의 모든 사람들처럼 모든 생각을 다 모아 살든지 죽든지 예수만을 위해 사는 자로 바뀌게 하는 회개운동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전파의 제목인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신 것처럼 부흥운동은 회개운동이요 영적 대각성운동입니다. 그 일에 힘쓰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물질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축복 형통 신유도 허락해 주십니다. 부흥운동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물질이 없어 천막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 운동에 목적 걸고 나가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교회와 기도원이 될 것입니다.

 

 

하늘군대의 대적들 (계 19:19-21)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본문에 백마 탄 하늘군대와 싸우려는 땅의 군대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대해 제3차 세계대전, 공산주의와 같은 무신론의 군대와의 전쟁, 적그리스도 휘하의 열 왕과의 전쟁. 불신의 세상과 교회와의 영적 전쟁,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 혹은 동서양의 군대가 아마겟돈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하늘 군대의 침략을 받고 동맹하여 하늘군대를 대적한다는 등의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추측을 근거로 한 학설들입니다.

 

이들이 문자적인 땅의 군대라면 하나님께서 세마포 입고 백마 탄 군대를 동원할 필요가 있습니까? 스스로 싸우다 핵을 주고받다가 자멸하든지, 하나님께서 나서시면 한 주먹감도 되지 않습니다(왕하19:35-37). 우리의 씨름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엡6:12-13). 그러므로 이 전쟁은 일반군대와의 전쟁이 아닙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신령한 종들을 넘어뜨리려는 세력을 계시함으로 경종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늘군대를 대적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1. 인간의 육신적인 탐욕들입니다.

 

그 짐승”은 계 13:1-10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킵니다. 넓은 의미에서 이 짐승은 교회를 박해하는 세상의 권세 등을 가리킬 수 있지만 하늘군대의 부흥운동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우리 안에도 있는 짐승 같은 속성 즉 육신이 인격의 중심이 되는 육신적인 마음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서는 우리 육체의 탐욕을 괴물로 표시합니다. 이런 육신적인 탐욕이 하늘군대를 대적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이 여기에 빠져서 혜성처럼 떨어지며 사역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근신한 이유도 그것입니다(고전9:27).

 

2. 완악한 고집 자아의 세력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땅은 세상이나 육신을 의미하고 임금은 권세와 의지의 상징으로 우리의 고집스런 자아를 상징함으로 보입니다. 자아의 문제점은 기록된 말씀을 벗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비단결 같은 마음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뜻 내 방법으로 완강해지는 일이 없도록 겸손하시기 바랍니다(고후12:7).

 

3. 세상적인 이론 이단 이설에 빠지는 것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땅의 임금들에게 군대가 없으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텐데 강력한 군대가 있으니 문제입니다(잠14:28). 왕에게 따르는 백성이 없으면 평민에 불과합니다. 압살롬이 반역할 때 다윗이 위기였던 것은 대부분의 백성들이 압살롬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세상적인 이론과 생각들이 백성이요 그들의 군대입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생각의 관리를 잘하시기 바랍니다(고후10:4-6).

 

4. 세상의 온갖 미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여기 거짓선지자가 누군지 친절하게 답을 해놓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 그러니까 이것은 계 13장의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킵니다(계13:11-15). 육신의 정욕을 부추기는 세상정욕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미혹력은 에덴동산에서부터 먹음직 보암직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게 유혹하는데 정평이 있어 거짓선지자라 부른 것입니다. 이 친절한 답변은 앞의 "그 짐승"까지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힌트를 줍니다.

 

계13:11-15에 나오듯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섬기라고 홍보합니다. 이처럼 세상정욕이 육체를 위해 살라고 미혹하고 부추깁니다. 짐승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이마와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는데 그것이 인격과 행위가 짐승화 되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666인 것을 계 13:14-18에서 설명했습니다. 아무리 하늘에 속한 성도일지라도 육이라는 약점 있기에 공격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섰다고 자만하지 말고 독수리 날 듯 하나님을 경외하며 앙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미혹에 넘어가면 하늘의 군대가 아니라 떨어진 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짐승, 임금들과 그 백성, 거짓선지자, 즉 육신의 탐욕과, 육신적 자아와, 세상적인 이론과 생각, 세상의 유혹 등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까지 남아 괴롭히는 대적입니다.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대적자를 위해 하늘군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산 채로 유황불 못에 던지십시오.

 

20절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둘이란 짐승과 거짓선지자 즉 육적인 탐욕과 세상적인 유혹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유황불 붙는 못은 넓게는 지옥을 의미합니다.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지옥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능력이 우리에게는 없고 지옥에 넣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마10:28).

 

좁은 의미에서 우리 마음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마음에 악을 미워하는 지옥 같은 마음입니다(아8:6).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원수를 향한 강렬한 불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곧 나의 원수입니다(롬8:7). 꿀벌이 침입한 장수말벌을 열로 죽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악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97:10).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21절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나머지란 자아 세상이론 이설 이단 악한 생각 등 이런 것들은 입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입의 검이니 음성을 내어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기록된 말씀으로 소리 내어 물리치셨습니다. 잘못된 생각이 나를 시험하고 지배하려 할 때 사탄이 넣어주는 생각이 아닌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상처 받은 서운한 생각이 다가오거나, 부지중에 클릭했던 도색 사진이나 영상들이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림이 부족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하늘의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저 천국의 백성들의 삶과 똑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싸움은 하늘군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만큼 영적으로 장성했으며 그만큼 성화에 이르렀고 온갖 시험과 유혹에 대처해 근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엡6:12에 영적싸움을 씨름이라고 한 것은 엎치락뒤치락 실패할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즉 여리고에서 승리했지만 아이성에서 실패했듯 각인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 반대의 결과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만하지 말고 예수님의 신부와 하늘군대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언제나 깨어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