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설교

[스크랩]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8장

에반젤(복음) 2021. 12. 27. 05:46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18장

큰 성 바벨론 (계 18:1-24)

 

바벨론성은 느부갓네살 왕이 건설한 것으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성이 크고 높고 두꺼운데다 깊은 강물이 성을 두르고 있어서 무너질 수 없는 성이었습니다. 수많은 나라들을 노예로 잡고 세계의 부요가 이곳으로 집중되었으니 어느 정도 강한 나라였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 왕이 그 큰 성 안에서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시며 하나님의 이름을 능멸하다가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에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노예생활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1차 2차 3차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바벨론에 대한 학설이 많지만 그 학설을 모두 포괄하고도 어느 시대나 적용할 수 있는 답이 바로 세속을 의미하는 세상입니다. 큰 음녀와 바벨론은 동의어입니다. 17장에서 세상을 큰 음녀로 표현했다면 18장에서는 바벨론으로 표현함으로 다각도로 세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멸망의 선언 (계 18:1-5)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바벨론에 대해 대환난 때 배도하는 교회, 적그리스도의 수도, 상업화된 종교, 로마, 천주교, 세상 등의 학설이 있지만 이 학설을 모두 포괄할 뿐 아니라 어느 시대나 유혹의 중심 역할을 하는 맨 마지막에 소개한 세상입니다. 죄에서의 구원은 곧 패역한 세상에서 구원이요(행2:40), 거듭난 성도의 마음에서 세상이 멸망을 당한다는 점에서 계시록에서 세상에 대해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바벨론의 멸망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1. 옛사람과 함께 무너집니다.

 

1절 “이 일 후에” 이 표현은 앞과는 다른 장면이 전개되는 것을 알리는 관용구적인 접속사임과 동시에 어떤 연관성을 암시하는 단어입니다. 앞의 17장에서 새롭게 된 자아가 육신과 힘을 합하여 세상을 미워하고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태웠던 것처럼 새 사람이 등장함으로 옛사람과 함께 무너지는 것이 세상입니다(갈6:14). 이처럼 세상은 거듭난 사람에게 원수입니다.

 

2. 방법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상대적으로 세상은 땅에 속한 것이며(약3:15-16), 세속에서의 구원은 오직 위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요3:13-15, 요3:3, 요3:16).

 

3.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멸망했습니다.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천사란 하늘과 땅의 복음을 맡은 자의 총칭이라 할 수 있는데 큰 권세는 바로 복음의 권세입니다(마28:18-20).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이 큰 빛입니다(마4:12-16, 요16:33). 신령한 출애굽의 비밀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4. 성령으로 말미암는 복음의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절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여기 힘센 음성은 복음에 대한 성령의 확신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예수 안에서 세상이 무너졌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살전1:4-5). 천사의 힘찬 음성은 그 만큼 세상이 인간에게 힘겨운 상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는 이미 해결된 일입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 반복법에는 과거형 감탄형 강조형 증거형 등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바벨론의 무너짐은 모두의 숙원이었음과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사건이란 점, 그리고 이 진리를 성령으로 받아들여 해방될 때 하나님과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세상이 싫어지고 관계가 없어집니다.

 

5. 세상의 정체를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죄인의 눈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럴싸해 보이지만 실재는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입니다(유1:7-8). 거기에는 진리가 없습니다(눅11:24-26, 벧전3:21, 요14:17). 마치 부정한 짐승과도 같습니다(레 11장). 마음이 세상 것으로 더럽혀져 있다면 그만큼 악한 영으로 가득 차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정체를 깨달음이 출애굽의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6. 세상을 가까이 함이 곧 영적간음입니다.

 

3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바벨론의 음행의 대표적인 것은 황제숭배입니다. 그리고 태양, 바람, 폭풍을 주관한다는 벨(Bel)신, 천지의 질서를 회복한다는 므로닥(Merodach)신, 므로닥의 아들 격이고 문학과 과학과 농사를 주관한다는 느보(Nebo)신 등을 섬겼습니다. 이처럼 음행은 물론이고 세상과 짝한 것이 음행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7. 세상과 함께 하면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여기에는 서로 다른 2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바벨론의 악행을 진노의 포도주에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죄악의 풍조로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또 하나는 바벨론의 이러한 악행을 발로 짓밟아 포도주를 만들 듯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사63:1-6, 골3:5-6,약4:4).

 

8. 이것을 처리하지 못하면 믿음이 무너집니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만국은 바벨론의 지배를 받는 모든 나라를 가리키지만 좁은 의미에서 만국은 우리 마음 전체를 말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무너뜨립니다. 계15:3에 하나님을 "만국의 왕"이시라 한 것과 반대 의미입니다. 마음을 지키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잠4:23-27, 딤전1:18-20, 딤전5:6).

 

9. 영에 속한 사람은 세속에 물들지 않습니다.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음행의 대상은 땅이 왕들입니다. 땅의 왕들은 자아 혹은 육에 속한 혹은 육신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는 세상에 빠지지 않습니다(고전2:15-16, 요일5:18, 롬6:14-22).

 

10. 세상을 전하는 홍보대사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사치의 세력은 7절에 언급했듯 바벨론을 가리킵니다. 즉 모든 부요가 바벨론 왕국으로 집중하다 보니 바벨론의 사치는 극에 달했고 바벨론을 상대로 장사하는 상인들도 큰돈을 벌었습니다. 이처럼 죄악의 풍조를 확산시키는 홍보대사가 되거나(고전5:6, 갈5:7-9), 마음에 가득한 죄의 부자는 심판의 대상입니다.

 

11.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4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내 백성”이란 소유권과 아울러 하나님을 여러 차례(5, 8, 20)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강하게 암시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요, 그의 창조물이요, 또 예수 안에서 우리를 피로 사셨기 때문입니다(사43:1, 딤전1:11-12, 사52:11).

 

 

바벨론에 대한 진노 (계 18:5-11)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에덴동산에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들을 미혹하여 믿음에서 떠나게 하고 지옥 백성 만들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본문에서 보듯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란 하나님을 떠나 독립을 선언한 인간들의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보내셨고 성령을 주셔서 믿는 자를 구원하시고 계십니다.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것일까요?

 

1. 하나님은 세상 죄에 대해 분노하십니다.

 

5절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죄악이 쌓이고 쌓여서 하늘에 닿았다는 것으로 이 표현은 노아시대와 소돔 고모라시대의 죄악상을 표현할 때 썼던 용어입니다(창4:10, 창6:12, 창18:20-21). 바벨론의 죄악이 하나님의 마음에 사무쳤던 이유는 하나님을 대적할 뿐 아니라 무수한 인생을 지옥 멸망에 빠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죄가 사무치도록 밉습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시는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사43:25, 사38:17). 그러나 바벨론의 불의는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죄인은 용서해도 죄는 용서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속에서 벗어나 거룩하길 원하십니다(벧전1:15-16, 히12:14, 레20:26). 이처럼 성령이 임하시면 마음에 더 이상 죄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습니다.

 

3. 하나님은 세상의 죄를 반드시 벌하십니다.

 

6절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율법에는 해를 준 것만큼 보상 혹은 보복하는 동해보상법 혹은 동해보복법이 있습니다(출21:23-27). 그러나 신약에서는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38-44)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동해보복법이란 세상을 용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용납한다면 보복이 아닌 회개를 위한 징계가 주어질 것입니다(욥7:17-19).

 

4.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크게 응징하십니다.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섞은 잔이란 칵테일처럼 술을 섞어 미각을 높이면서 취하게 하는 독주로서 세속의 미혹성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에게도 갑절이나 주라는 것은, 성경의 갑절의 용법은 2배가 아니라 물리적 정신적으로 시간적 등 손색이 없도록 보상하라는 의미입니다(출22:4, 슥9:12). 이는 죄를 미워함은 물론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치를 배설물로 만드십니다.

 

7절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이 말씀 속에서 바벨론의 영화와 사치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많은 사람들의 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 14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예언인데 얼마나 강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사14:3-11).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세상의 모든 것이 구더기보다(사14:11) 못하고 배설물보다 못하게 여겨집니다(빌3:7-8, 벧전4:1-3).

 

6. 하나님께서 우리가 세상을 추종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여왕이라 한 것은 황제숭배처럼 사람들이 그렇게 세상을 떠받들고 추앙하기 때문입니다(골3:5). 그리고 과부가 아니라면 누구와 결혼한 것입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과 결혼했습니다. 죄와 결혼한 사람들입니다(시14:2-3, 롬3:10-12). 그토록 세상이 장담하는 것은 역사 이래 한 번도 인간 스스로 죄악을 성공적으로 배척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으로 성전에서 장사꾼들을 몰아내심과 같이 성령 받은 성도들이 세상을 배척하고 몰아냅니다.

 

6. 하나님께서 세상의 활기를 꺾으실 것입니다.

 

8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여기 하루는 은혜의 역사를 시사하는 용어입니다(고후6:2, 히3:13). 하루 지금 오늘 홀연히 등의 말이 은혜와 관련이 깊습니다(행2:2, 행9:3, 눅2:13, 마17:5). 그리스도의 재림도 홀연히 이루어집니다(고전15:51).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초림과 성령강림과 재림 등 여호와의 날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이 날 세상은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에 처해져 활기를 잃고 말 것입니다.

 

7. 성령의 불로 잔재조차 남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이처럼 세상을 성령의 불로 사르셔서 죄악의 잔재조차 남지 않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살전5:22-23).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다고 하신 것은 상대적 의미에서 그만큼 세상을 떼어내 버리기가 어렵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주로 삼을 때 다 이길 수 있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사9:5-6, 민33:3).

 

8. 세상에 빠졌던 것을 후회하며 가슴 치게 됩니다.

 

9절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땅의 왕들은 자기 백성들을 압제하여 조공을 바쳐 바벨론의 비호 속에 권세를 누리던 왕들입니다. 그런데 그 영광이 사라졌으니 울며 가슴 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세상에 대한 아쉬움이 아니라 10절에 나타나듯 얼마나 멸망할 것을 따랐는지 깨닫고 회개하고 애통하는 모습입니다(행2:37-38, 약4:8-10).

 

9. 죄를 멀리하며 심히 두려워하며 멀리하게 됩니다.

 

10절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바벨론의 심판을 바라보는 왕들의 두려운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은혜 받은 성도는 하나님 두려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죄를 두려워하는 것은 죄를 심판하실 하나님이 두렵기 때문입니다(고전10:6-11). 그들이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했듯이 두려움을 가지고 죄와 멀어져야 합니다(마23:13-33).

 

10. 성령이 임하시면 안 되던 회개도 되게 됩니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여기 한 시간을 개역성경에서는 “일 시간”으로 번역했던 단어입니다. 즉 난공불락의 도성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니 한 순간에 무너지더라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바벨론이 상징하는 이 세상은 지금도 무너질 줄 모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죄란 강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무너졌고 또 무너지고 있습니다. 회개가 되지 않던 사람도 성령이 임하면 회개가 됩니다.

 

11. 하나님께서 세상 것을 추구하지 않게 하십니다.

 

11절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여기 땅의 상인은 세속의 상품을 거래하던 자들을 가리킵니다. 세상풍조를 사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데 예수 믿고 성령 받아 변화되고 나니 세상을 추구하는 마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인기 있던 돈사랑 명예 권력 사치 탐욕 자랑 교만 등 찾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666의 상품에 대한 비밀이 더 뚜렷이 나타납니다. 666의 상품은 세속의 바벨론 상품입니다. 이마와 오른손에 666표를 받은 사람 즉 죄의 인격과 죄의 행동을 가진 자만 산다는 상품이 무엇이겠습니까? 바꾸어 말해서 성령의 인 맞은 사람은 살 수도 없고 팔지도 않다는 그 상품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상품은 어떤 물건이라기보다 각종 죄나 탐욕 같은 세속의 바벨론 상품입니다. 이건 사지 않거나 못 살수록 좋은 것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던 것은 옛날로 족합니다. 변화 받은 성도는 더 이상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지도 않고 전파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바벨론의 상품 (계 18:12-15)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던 바벨론의 상품이 무엇인지 푸는 중요한 힌트는 11절의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한 말씀입니다. 즉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 받은 사람들은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오직 육신에 속한 사람들만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의 상품이란 사탄이 그럴듯한 온갖 거짓으로 사람들의 코를 꿰어 일생 세상에 붙들어 두려는 속된 미끼 즉 죄악에 속하는 세속적인 모든 것들을 일컫습니다(롬1:29-32). 마치 라반이 야곱을 두 딸 등을 미끼로 해서 20년을 부려먹고도 모자라 삯을 변역하고 최후로는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가치가 없는 것이지만 사탄의 상술이 뛰어나서 온 세상이 미혹을 당합니다.

 

세상이 현혹하는 바벨론의 상품의 특징은?

 

1. 절대 가치 있어 보입니다.

 

"그 상품은 금과" 여기서부터 가치와 관련된 것들인데, 먼저 금은 신성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막이나 성전에서 많은 기구 등이 금이었습니다. 금 옷감이니 하나님처럼 보이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와가 뱀에게 꾀어 하나님 같이 된다는 말에 보암직 먹음직 지혜로울 듯 탐스러워 보여 선악과를 먹었던 것처럼 사람에 따라 자기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다른데 돈 명예 권력 등이 될 수 있습니다(롬1:22-23, 빌3:18-19, 요일2:15-16).

 

2. 무엇이라도 팔아 사고 싶은 것들입니다.

 

"은과" 은은 대개 화폐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상징으로 쓰입니다. 우리를 귀히 여기셔서 자기와 맞바꾸셨습니다. 이처럼 은이란 상업적 개념으로 무엇이든지 팔아 추구하는 것을 사려는 마음인데 문제는 세상 것을 위해 영적 가치를 포기하는데 있습니다. 에서는 식욕 때문에(히12:16), 가룟 유다는 돈 때문이었습니다.

 

3. 하늘 영광보다 더 귀해 보입니다.

 

"보석과" 보석은 원석을 깎아 만든 것으로 고난을 통과한 영광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고난 없이 영광을 준다고 말합니다(마4:8-10). 칭찬 듣기 바라고 내 이름 내고 자랑하기 원하는 것들이 그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요12:42-43).

 

4. 한이 맺힐 만큼 갈망하는 것들입니다.

 

"진주와" 진주는 조개 속에서 고통 속에서 체득되는 아름다운 신앙이나 참 지식을 의미합니다(히5:8-9, 잠3:15). 세상 역시 진주를 만들어줍니다. 사랑에 한 맺히고, 돈에 한 맺히고, 인간관계에서 한이 맺혀 나름대로 진주가 만들어집니다. 돈에 한이 맺히면 자신도 쓰지 않고 헌금도 하지 않습니다.

 

5. 죄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상품도 있습니다.

 

"세마포" 여기서부터 옷감에 대한 소개입니다. 옷은 신분과 관계가 큽니다. 세상이 입혀주는 세마포란 무얼까?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행실의 세마포를 빨면서 생명나무에 나아가는데(계22:14) 세상도 죄와 관계없이 생생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세속에 뒹굴면 죄악에 단련되어 죄의식이 사라집니다(벧후2:14-15). 소돔의 관원들이 만든 법 때문에 죄가 죄인 줄도 모르고 뻔뻔하게 사는 때가 오고 있습니다(딤전4:1-2).

 

6. 귀족이나 자유인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준다고 합니다.

 

"자주 옷감과" 자주 옷감은 고가라서 주로 로마 귀족들이나 공을 세운 장수들만이 입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천민이 아닌 귀족으로 신분 상승시켜 준다고 말합니다. 자색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던 부자와 같이 세속이 들어갈수록 자유로워지지만 그런 자유는 방종이지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7. 의무감에서 해방시켜 편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비단" 비단은 부드러운 옷으로 윤택하고 편하게 살던 사람으로 헤롯이 있습니다(마11:7-8). 헤롯은 다윗의 정통성과 거리가 먼 이두매 즉 에돔 사람으로 로마에 가서 돈 주고 아부하고 왕위를 받아온 사람입니다. 편법으로 참 편하게 사는 자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편하게 살라고 유혹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길은 넓고 편안합니다(마7:13-14). 그러나 멸망의 길입니다. 신앙생활도 편하게 하면 그 영혼은 죽습니다.

 

8. 환난도 고통도 잊게 해준다는 상품입니다.

 

"붉은 옷감이요" 붉은 옷은 왕이 입는 홍포인데, 겨울을 이기는 따뜻한 옷의 상징이기도 합니다(잠31:21). 이처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나와 도움과 위로 받으려 않고 어떤 것에 도취되어 환난을 잊고자 합니다. 노래 춤 술 마약 여자 오락 노름 등, 고통을 아주 잊기 위해서 자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9. 인간답게 살게 해준다는 상품입니다.

 

“각종 향목과” 여기서부터 나무 그릇에 관한 상품입니다. 향목은 아프리카의 향기 좋고 색깔 좋은 시트러스 나무에서 나온 것으로 품질이 뛰어나서 값비싼 사치품에 활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나무는 연약한 인성을 가리키며(눅23:31, 막8:24), 향기는 고통의 상징이요, 그릇은 쓰심의 상징입니다(딤후2:20-21). 그런데 향목은 보통 나무가 아닙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기계로 쓰임 받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닌데도 세상에 속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올인하며 짐승인지 기계인지 모르게 살아갑니다(마6:31-32). 일에 빠져서 믿음도 거부하거나 믿더라도 영혼의 문제에 관심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10. 존귀하게 쓰임 받게 하겠다는 상품입니다.

 

각종 상아 그릇이요” 상아는 코끼리의 앞니로 상품성이 좋아 옛날이나 지금이나 고가로 거래됩니다. 상아는 결이 곱고 단단하여 세공에도 알맞아 부요와 권세와 미의 상징이었습니다(아5:14, 7:4, 왕상10:18, 왕상22:39, 시45:8, 암3:15). 그런데 상아 그릇은 크기와 쓰임새에 비해 희생이 너무나 큰 산물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을 위해 가장 큰 희생을 치르는데 가령 정권을 잡거나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있습니까? 이 풍조가 교회에 침투하면 교회는 망합니다(막10:42-44, 마11:23-24). 하나님 나라는 섬김을 통해서 높아집니다.

 

11. 특별한 사람을 만들어준다는 상품입니다.

 

값진 나무와” 여기 바벨론 상품으로 계속하여 값진 나무 그릇을 소개합니다. 나무 그릇은 천한 그릇입니다. 그런데 값지다 했으니 특별한 나무입니다. 당시 값진 나무는 단풍나무 백향목 삼나무 흑단나무 등으로 백향목 잣나무 경우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수님처럼 특별하려면 특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하는 쓰임 받는 종의 자세를 가져야 하나님께서 모세처럼 귀하게 써주십니다.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인생을 망치는 바벨론 상품에 미혹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12. 더 순수한 자로 만들어준다는 상품입니다.

 

“구리와” 개역성경에는 구리를 “진유”(眞鑐)라 했는데 순수한 구리라는 뜻으로 그 순수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구리의 성경적 용례 역시 거울이나 악기나 물두멍 등 순수성에 집중되어 있습니다(겔1:7, 고전13:1, 출38:8). 구리 그릇이니까 순수한 일군인데 순수한 일군은 말씀과 성령의 씻음에서 되는 것이지(딤후1:3-5), 자기의 생각과 욕망과 감정과 모든 것을 여과나 가식 없이 드러내는데 있지 않습니다. 가령 히피족을 순수한 사람으로 볼 수 없습니다(전11:9).

 

13. 더 강하게 만들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철과” 철 그릇인데 성경에서 철은 강함에 강조점이 있습니다(단7:19). 그래서 가나안의 철병거는 청동기시대에 머물렀던 이스라엘에게는 대단히 힘든 상대였습니다. 강하게 쓰임 받으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렘1:17-19). 이처럼 세상도 강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러나 영웅이 그렇듯 잘못된 고집은 자아만 키웁니다(삼상15:22-23). 세상은 절대 진리를 거절하고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인본주의 사고로 접근하여 결국 자신을 하나님을 만들어놓기까지 합니다. 세속화신학이 그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14. 더 영광스럽게 만들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옥석의 기명이라고도 하는데 대리석 그릇입니다. 돌은 침묵과 비천의 상징인데(눅19:40) 빛나는 옥석은 그 반대로 찬양과 영광의 자재입니다(눅21:5).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처럼 세상은 천하영광 부귀공명을 가득 담아주려고 그것을 마음에 품어라. 가져라. 꿈꿔라.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하던 것과 같습니다(눅4:5-7). 그런데 세상이 주는 영광은 바라는 희망사항이나 정신승리일 뿐, 진짜 영광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노력 끝에 영광이 주어진다 해도 그것은 땅의 영광일 뿐입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내가 다 영광 받아버리면 하늘의 상이 없습니다(마6:1-4). 성경은 바벨론 상품을 통해서 실패하지 않도록 이렇게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15. 바벨론 상품은 쾌락의 상품입니다.

 

“계피와” 여기서 부터는 각종 향료에 대한 것입니다. 계피는 성소의 거룩한 관유를 제조함에 쓰였지만(출30:25), 부정적인 용례로는 음녀가 침구에 뿌리고 사람을 기다리는 향수로도 쓰였습니다(잠7:17). 이처럼 계피는 쾌락의 상징입니다(엡5:5-6, 잠5:3-6). 그러나 이 길은 우리 영혼이 죽는 길입니다. 다윗이 잠시 잘못된 생각에 넘어졌다가 가정에 환난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16. 지극히 위해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향료와” 인도나 아프리카의 관목에서 나는 것으로 값진 향료와 두발용 향유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에 부어드렸던 그 나드향입니다. 나드향은 휘발성이 강해 옥합에 넣어 밀봉했는데 그 향이 강해서 옥합을 깨뜨리면 실내는 나드향으로 가득했고, 가격 또한 비싸서 작은 향수병 하나에 300데나리온 즉 300일 품삯에 해당되는 값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드향은 신경안정제로서도 약효가 뛰어났습니다. 나드향의 성경의 용례를 보면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였고, 술람미가 신랑에게 부은 향유였습니다(아1:12). 나드는 부자나 귀족들만 사용할 만큼 귀중한 향이었고 신혼의 향취이기도 했습니다. 이 향유를 붓는 것은 지극한 대접이나, 최고의 주인공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예수님이 주인공 되고 예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인공 되고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추구하고 노력합니다. 믿음 생활 잘하면 내가 복 받고 영광스러워지고 은혜 받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목표가 된다면 세상종교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대접하셨으니(욜2:26) 우리도 하나님을 대접해야 맞습니다(마7:12).

 

17. 소원을 성취시켜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향과” 성경에서 향은 기도의 향입니다(계5:8, 시141:2, 계8:3). 이 향은 자기를 위해서는 만들 수 없습니다(출30:37-38). 그럼에도 이 향이 바벨론의 상품이라는 점에서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소원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세상은 자기 소원성취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소원성취 얼마나 매력적인 상품입니까? 기도를 해도 자기를 위한 기도만 한다면 세상 종교일 뿐입니다(마6:31-32).

 

18. 다 잊게 해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향유와” 여기 향유의 성경적 용례는 부활하신 새벽에 여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부으려고 가져갔던 그 향유로 보입니다(눅23:55-56). 이 향유는 시체에 바르려고 한 것을 볼 때 몰약으로 추측됩니다. 몰약은 마취제 역활을 하는 몰약입니다(막15:22-23). 이처럼 세상은 마취를 약속합니다. 다 잊어라. 잘못된 길 가면서도 그걸 잊고자 합니다. 양심이 아니라고 채찍하는 데도 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도리어 잊지 말고 하나님 앞에 꺼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19. 치료와 용기와 낙을 준다는 상품입니다.

 

유향과” 유향은 성막에서 쓰는 향품이요(출30:34), 왕에게 드려지는 보물이며(마2:11), 소제와 함께 불살랐고(레2:1-16), 진설병 위에 얹어졌으며(레24:7), 창상 치료제이기도 했습니다(렘51:8, 렘8:22 ). 그러나 속죄제나 의심의 소제에는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몰약이 고난을 예표하는 개념이라면, 유향은 부활과 성령강림의 적극적 개념입니다(아3:6, 4:6). 유향이 보스웰리아인데 사용해 보면 염증 치료에 효과가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위로를 위해 춤추고 노래하고 오락을 즐깁니다. 그러나 세상은 거짓말장이입니다. 그 다음에 오는 허무가 더 큽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믿고 바벨론을 배반했지만 애굽은 이스라엘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달리야 총독을 죽이고 애굽으로 도망친 이스마엘 역시 애굽의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게 세상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만족과 위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말입니다.

 

20.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주겠다는 상품입니다.

 

“포도주와” 여기서부터 고급 식료품들입니다.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 나오는데 이것은 상고들이 취급하던 식료품들로 부자들이 먹던 고급식품이요, 성전에서 전제나 소제로 드려지던 제물의 목록들이기도 합니다. 포도주는 중요한 음료로서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전10:19), 사사기 요담의 비유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도취에 빠지게 하는 취미 도박 세속음악 우정 사상 학문 물질 건강 권세 명예 세상종교 등 사람들의 혼을 빼 가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며 즐거워해야지 세상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인생의 목적에서 이탈됩니다.

 

21. 인생의 소망하는 꿈을 이루어주겠는 상품입니다.

 

“감람유와” 성경에서 감람유는 성령의 상징으로 쓰였고, 성별의 상징으로 발랐으며(민3:3, 7;1, 삼상10:1), 제물용, 조리용, 등화용, 접객용, 치료용, 화장용, 관유용 등으로 쓰였습니다. 감람유는 성령의 기름의 상징으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하면 귀한 직분을 주시고 사명과 꿈이 주어지고 그것을 위해 자신을 불태웁니다. 그런데 세상도 세상 것을 위하여 우리의 정열을 불타게 합니다. 목표를 이루고 열심히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추구하는 대상이 세상의 허망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같은 착한 일이지만 나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서 한 것이라면 하늘의 상이 없을 것입니다.

 

22. 인격을 더 온전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고운 밀가루와” 하나님께 드릴 고운 가루가 되려면 맷돌로 갈고 또 갈고 갈아 채로 치고 또 쳐서 고운가루를 만듭니다. 곡식의 어떤 형체라도 남아 있어서는 고운 밀가루가 되지 않듯 내 인격의 온전함 신학적으로 성결 혹은 성화라고 부르며 이 의는 하나님께서 입혀주시는 의입니다(사61:10). 그런데 세상도 도덕 수양 고행 교육 등으로 부수고 빻고 채로 치듯 부드럽고 착한 의를 입혀주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의는 시험이 오면 불타고 말 자기 의일 뿐입니다. 이런 수련들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 하나님께로 가는 길까지 막고 있습니다.

 

23. 더 많은 열매 맺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밀이요” 밀은 가공 단계를 거치지 않은 살아있는 곡식입니다. 성경에서 밀의 교훈은 밀을 뿌리면 땅에서 썩지만 싹이 나서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요12:24). 내가 죽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도 구원이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마 4장). 십자가를 지지 않고도 대성할 수 있는 목회의 비밀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봉사 구제 이적 품격 시설 등 선교사역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내가 온전히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권능을 받는 일이 무엇보다 선행되지 않으면 쭉정이는 가능하지만 알곡 성도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말씀대로 믿고 절대 순종하는 것이 죽는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도 열매 맺는 비밀을 알지 못하고 화려한 외형적인 허황된 꿈만 가지고 맘몬의 신을 섬기고 일생 돈 마련의 노예가 되어 동분서주합니다.

 

24. 더 큰 일군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소와” 여기서부터는 귀히 여기는 짐승들입니다. 소처럼 다양하게 유익한 짐승은 없을 것입니다. 소가 주는 가장 큰 유익은 노동력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예수님 혹은 쓰임 받는 주의 일군을 예표하기도 합니다(고전9:9-10). 그런데 소가 유익한 것은 주인의 뜻대로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상품에서 소의 품목이 있다는 것은 충성은 다하되 세상 방법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충성되게 희생하고 열심하고 준비 많이 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도 맞지만, 하나님께 쓰임 받으려는 자세는 없고, 성령에 붙잡혀 하지 못하고, 내 열심으로 내 꿈과 내 계획과 방법이 앞서는 그런 모습이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귀히 쓰실 수 없습니다. 모세도 처음에 그런 실수를 범하다가 깨닫는데 40년이 걸렸는데 지금도 무수한 사람들이 범하고 있는 실수이기도 합니다. 모세처럼 다윗처럼 상황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하나님의 지도하심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시123:1-2).

 

25. 더 의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양과” 구약에서 양은 소 다음으로 유용한 동물입니다. 양은 온유한 성격에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메마른 땅에서도 이동하면서 먹이를 찾고 털과 고기를 사람에게 제공합니다. 몸집이 적고 노동력이 없어서 소에 미치지 못하지 대단히 유익한 동물입니다. 특히 성전에서 귀한 희생 제물로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요1:29, 사53:5). 그런데 바벨론 상품에서 양이란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악한 옛사람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으셨는데 왜 예수 따로 의로움 따로 받으려고 하는지 믿음에 끝까지 서서 칭의와 성화와 영화까지 누리시기 바랍니다(롬8:30). 에스더는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왕이 주는 물품만 썼던 것처럼 내 방법 추가하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26. 더 능력의 사람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입니다.

 

말과” 당시 말은 전쟁의 도구로 사람을 태우거나 전차를 끌고 혹은 물품을 실어 나르는 등 기동성과 신속성과 정복력을 가능하게 한 동물이었습니다. 말은 약한 군대를 강한 군대로 만들었습니다. 애굽산 말이 가장 유명했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말을 의지하지 하나님을 의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신17:16, 신20:1, 사31:1-2). 이처럼 말은 능력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나 세상 일이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행1:4, 막16:20). 그러므로 은사의 나타남은 중장비를 얻은 것처럼 매우 유익합니다. 대부분의 은사는 우리가 몸을 드려 열심히 하나님을 경외하면 임합니다.

 

그런데 바벨론 상품인 말의 의미는 말을 부리듯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부리려는 태도가 그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능력 받아서 병을 고치려는 자세라면 하나님을 부리는 것이고 그러기에 능력의 사람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경외하면 능력이 임합니다(시84:11). 그런데 신비주의는 지나친 신비와 능력 추구로 나가 나중에 열매를 보면 귀신의 영을 받습니다. 바벨론 상품에서 말이 상징하듯 잘못된 성령론은 성도를 실족시키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기에 적합하다 하겠습니다.

 

28. 더 가볍고 편리하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수레와” 당시 수레는 짐을 실어 나르는 귀중한 도구였을 뿐 아니라, 제사장들이 성막에서 성물을 운반할 때 쓰였습니다(민7:3-5). 현대인들은 편리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까지 편해서는 안 됩니다. 바벨론 상품의 수레는 편의주의적 신앙생활을 의미합니다. '신앙 갖는 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적당히 해라. 가볍게 해라.' 이것이 사탄의 속삭임입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이 하시던 그대로, 사도들이 하던 그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바로 모실 수 없습니다(눅6:46).

 

29. 더 편하고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종들과” 여기 종들은 원문 상에 ‘몸들’을 가리킵니다. 겔27:13에 사람이 당시 무역품 중 하나였는데 그러니까 몸들은 노예들을 말합니다. 당시 로마의 3분의 1이 노예였는데 전리품으로 잡아 온 노예들을 경매로 사서 일하는 종들로, 술집 접대부로, 심지어 원형극장의 볼거리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침투하여 신앙생활도 남이 해주듯 편하게 하려고 하면 심령이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롭게 살아도 간섭하지 않고 부담 없이 예배할 교회를 찾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들의 행위를 정당화해 주기를 바랍니다(딤후4:3-4, 갈1:9-1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죄와 사망과 주저에서 놓이는 자유가 아닌 신앙생활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시험입니다.

 

30. 마음의 갈망을 더 많이 채워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들이라” 사람의 영혼들이란 주석에서는 노예의 생명을 가리킨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노예의 생명을 말한 것은 당시 검투사라든지 노예의 생명을 두고 벌인 원형경기를 연상시킵니다. 왜 이런 일을 할까요? 인간의 근본이 악한데다 더 찌릿한 것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은혜에 대한 갈망이 지나쳐 이단에 걸려서 영혼을 이단에 팔아먹는 일이 있습니다(잠14:12). 이런 이단들의 근원은 대부분 신비주의입니다. 성경을 넘어 신비를 추구하다 사탄에게 미혹되어 사탄이 가르쳐주는 성경을 가르치다 이단이 됩니다. 아무리 그럴 듯해도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정통신앙에 위배되면 버려야합니다. 이단 교주들의 사망의 유희에 속아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31. 인간의 변화는 곧 세상 바벨론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14절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바벨론이 그토록 탐하고 좋아하던 음식을 약 3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 맛있는 것들, 빛난 것들이 그것입니다.

 

먼저 바벨론의 기호식은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입니다. 이 표현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보일 만큼 탐스럽기도 선악과를 생각나게 합니다(창3:6, 요일2:16). 그런데 바벨론이 탐하던 과일이, 죄인이 탐하던 과일과 같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세상이란 인간의 타락한 마음이 모아져서 형성되는 것이기에 성도들이 회개하고 변화되니 세상에 대한 탐심의 에너지의 공급이 끓어지고 그 본질이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회개는 그만큼 세상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는 앞의 말을 강조형으로 되풀이하거나 보충하는 평행법 문장으로 세상이 죄인의 탐심 외에도 성도들을 잡아먹으며 유지 발전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즉 계17:6에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했듯 세상은 성도들을 시험에 넘어뜨려 잡아먹는 걸 즐기고 있었고, “빛나는 것”을 음식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빛나는 것이 없어졌듯 세상은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잡아먹기를 별식을 들듯 좋아했습니다(마5:16).

 

그러나 영적으로 장성한 성도들은 더 이상 세상의 요구대로 넘어가지 않으니 세상은 망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할 만큼 붕괴되었습니다. 이는 그동안 죄악의 바벨론을 유지 발전시켜 오던 죄인의 변화를 암시합니다(벧전4:3, 살전5:21-22, 벧후2:20-22).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변화된다면 하나님을 반역하고 죄인을 미혹하던 세상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우리들의 사명이기도 할 것입니다.

 

 

상인들의 애통 (계 18:15-20)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본문에 바벨론 상인들이 그 영화롭던 바벨론을 회고하며 그 멸망을 애통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상인들은 애통하며 두려워하는데 하늘과 성도들은 즐거워합니다(20절). 이처럼 우리에게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하늘과 땅의 대 잔치입니다(눅15:7,10). 한 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세상과 죄와 사탄과 저주까지도 못 박으셨지만 완악한 인간은 디 이루어놓으신 그것을 기뻐하며 믿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그렇게 힘드나 봅니다. 은혜 받아 죄를 버릴 뿐 아니라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경건의 자리까지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상인들의 애통을 통하여 은혜 받은 경건한 성도들의 모습을 봅니다.

 

은혜 받으면 어떤 마음이 있습니까?

 

1. 죄가 두려워 조심하게 됩니다.

 

15절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이 상품을 사고팔던 상고들이 무서워함에서 성도들의 마음속에 생겨난 경건의 속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란 바벨론의 고통을 말합니다. 상인들이 그 고통을 보고 두려워 한 것은 자신들에게도 그 고통의 불똥이 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죄가 두려워 조심하게 됩니다(욥38:15, 시32:10, 잠10:24, 잠12:21, 사3:11, 사48:22, 사57:21, 히12:28-29, 고후7:1).

 

2. 멸망할까 죄악을 멀리하게 됩니다.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17절에도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그들은 바벨론을 도와 악역을 하던 자들인데 이제는 모두 멀리 서서 함께 멸망할까 두려워합니다. 이처럼 멸망할까 두려워 죄악을 멀리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겠습니다(계18:4, 욥11:14, 창26:34-35).

 

3. 은혜 받으면 죄를 슬퍼하며 애통합니다.

 

울고 애통하여” 더 이상 장사할 수 없어 슬퍼하는 것이지만 이 모습은 은혜 받고 회개하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이처럼 주의 은혜를 경험한 자만이 가슴 치며 애통합니다.

 

4. 은혜를 받으면 세속관에 변화가 옵니다.

 

16절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화가 있음을 반복한 것은 탄식조의 문장이거나 강조형입니다. 즐거움과 기쁨이었던 세상을 화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큰 발전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체험하지 않고는 이런 소리가 나오지 못합니다. 이처럼 은혜 받고 나면 이 좋은 평안과 기쁨을 놔두고 더 이상 쓸데없는 데 빠져 고통 속에 살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화를 선언한 것은 그들 마음에 이런 세상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마23:13-16).

 

5. 은혜 받으면 세상을 떠받들지 않습니다.

 

16-17절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이 호화로운 옷과 보석들은 바벨론의 음녀가 자기를 여황으로 치장한 모습입니다. 음녀가 여황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사람들이 세상을 추구하고 떠받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 받고는 더 이상 떠받들지 않으므로 세상이 더 이상 여황이 될 수 없습니다. 여기 “한 시간”은 개역성경에는 ‘일시간’이라 했는데 이 단어는 은혜의 시간을 시사하고 있습니다(욜2:29-32).

 

6. 은혜 받으면 전 인격에 변화가 옵니다.

 

17절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여기 바다가 세상이라면 선장 선객 선원들은 세속화된 우리 인격 전체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모를 때는 세상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죄를 멀리하는 전 인격에 변화가 옵니다.

 

7.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17~18절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불타기 전의 그 견고한 성의 크고 견고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건 세상이 죄인에게 그만큼 강력한 존재였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세상에서 스스로 구원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이 가능함을 깨달으시기 바립니다(막10:23-27).

 

8. 진실로 슬퍼하고 회개하며 죄를 두려워합니다.

 

19절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여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며 애통했는데 이는 수치나 슬픔이 극에 달했을 때를 나타내는 히브리인들의 습관입니다. 죽은 자와 같다. 혹은 죽어 마땅하다는 낮춤의 표현입니다. 즉 바벨론의 슬픔을 히브리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바벨론에 대한 애정 같이 보이지만, 이 모습에서 회개의 진정한 모습이 어떤 것인지 힌트를 주고 계십니다.

 

9. 세상의 멸망을 은혜로 누리시기 바랍니다.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바벨론의 멸망을 바라보며 그 멸망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서 세상도 죄악도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의 은혜로 죄악에서 자유함을 얻는 그 실재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10. 예수 안에서 세상의 멸망을 늘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20절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이 음성은 18:4에 하늘로부터 난 음성으로 전후문맥을 보아 예수님의 음성입니다. 바벨론의 심판을 놓고 4부류의 대상에게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압박 받고 종살이하는 백성에게 해방만큼 기쁜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출 15장, 시 126편). 그런데 한 편으로는 그 복음을 듣고 믿고 감사하고 찬양함이 그 은혜를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롬10:9-10).

 

이 네 부류는 구원을 위한 사역자들이면서도 세 부류는 구원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구원에 기뻐할 4종류의 대상은 먼저 천사들의 기쁨입니다. 여기 “하늘”은 여러 의미 중 천사를 의미하는 표현으로도 쓰였습니다(눅15:7, 10, 눅15:10). 다음은 구원의 당사자인 성도입니다(요삼1:4, 벧전1:8-9). 다음은 사도들의 기쁨입니다. 사도란 기독교 교리의 초석을 놓은 자들로 이 모든 것이 진리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의 기쁨입니다. 선지자의 주 임무가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께로 돌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호14:4-8). 그 결과 아름답게 성취되었습니다.

 

 

바벨론의 최후 (계 18:21-24)

 

21.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계시록에서 황충, 땅에서 올라온 짐승, 큰 음녀, 바벨론 등의 이름으로 세상에 대해서 크게 다룹니다. 우리 역시 이 부분을 끝까지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하나님의 최대관심사요, 우리 구원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바벨론이 영원히 우리에게서 사라지기를 원하십니다.

 

세상이 어느 정도 멸망하길 원하실까요?

 

1. 아주 멸망하기를 원하십니다.

 

21절 “이에 한 힘 센 천사가” 여기 한 힘센 천사의 등장은 이 구원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개입을 시사하며(마19:26), 그만큼 바벨론의 죄악이 무겁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세상처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벧전1:18-19, 마19:26, 롬8:1-2, 갈5:16).

 

2. 다시 실족시키지 못하게 처리하십니다.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큰 맷돌은 연자 맷돌로 올리브유를 짜기 위해 만든 3톤, 4톤이 나가는 대형 맷돌로 예수님께서 실족하게 한 자에게 대한 경고로 사용했던 맷돌입니다(마18:6). 이처럼 맷돌을 바다에 던지는 한 힘 센 천사의 포퍼먼스(performance)는 수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했던 세상에 대해 똑 같이 갚아주시는 보응의 의미입니다. 즉 세상으로 하여금 다시는 실족시키지 못하게 하십니다.

 

3. 세상의 잔재가 보이지 않도록 처리하십니다.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이르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보이지 않을 것이라 했듯이 자기 백성에서 세상의 모양까지라도 보이지 않게 끝까지 씻어주시고 처리하실 것을 시사합니다(살전5:22, 유1:23, 히4:12-13, 사43:25, 사38:17).

 

4. 세상의 악한 본질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비참하게 던져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여기 “비참하게 던져져”라는 용어는 이 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에 몰사했을 때에 쓴 동사와 동일한 어원입니다(막5:13). 그 비참하고 썩어서 냄새나는 흉측한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결코 품위 있게 죽게 하지 않으시듯 은혜를 받으면 세상은 배설물처럼 추한 존재로 인식됩니다(빌3:9, 계18:2).

 

5. 세상을 사랑하거나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또 거문고 타는 자와” 바벨론에 거문고 타는 자의 소리가 사라집니다. 거문고 소리는 바벨론의 태평성대를 말하듯 가락 자체가 흥겨운 소리입니다. 여기 나타난 악기들은 본래 모두 하나님을 위한 도구들입니다(계5:8, 계14:2, 왕하3:15-16).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바벨론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흥겨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세상을 숭배하거나 찬양하지 않게 됩니다.

 

6. 세상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됩니다.

 

풍류하는 자들과” 풍류(風流)란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것을 가리킵니다(눅15:25, 눅16:19, 전2:1). 그러나 은혜 받으면 세상 것으로 즐겁지 않고 하나님 때문에 기쁘고 즐겁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제일된 목적입니다.

 

7. 세상의 기쁨이나 슬픔 등의 감정도 사라집니다.

 

퉁소 부는 자와” 퉁소는 피리를 말하는데 당시 피리는 기뻐서 춤을 추거나 슬픔 등 극한 감정을 표시할 때 자주 사용된 악기입니다(마9:23, 눅7:32, 욥30:31). 은혜 받으면 우리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세상의 극한 감정에도 사로잡히지 않습니다(시46:1-3).

 

8. 세상의 소리 들리지 않고 말씀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당시 나팔은 중요한 사항을 선포하거나 신호하는 목적으로 자주 사용했습니다. 바벨론에서 나팔 소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국가의 정치 종교 군사 문화 등 모든 행위가 정지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은혜 받으면 인간의 생각이나 세상의 이론 등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하늘의 소리가 들려옵니다.

 

9. 은혜 받으면 세상에서 받은 상처도 치유가 됩니다.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보이지 아니하고” 바벨론의 사치를 주도한 세공업이 붕괴할 것을 언급합니다. 세공업의 특징은 만들거나 파고 새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마음에 상처를 내어 악감정을 파고 새깁니다. 죄악의 쓴뿌리입니다(히12:15-17).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쓴뿌리가 사라지고 어떤 경우에도 상처 받지 않습니다(고후4:7-9).

 

10. 세상이 원하는 육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고” 맷돌은 곡식을 빻는 기계로 사람의 기본적 수단이었습니다(신24:6). 바벨론에서는 이 맷돌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이 살지 않는 삶의 중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으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염려하는 맷돌소리가 그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살아갑니다(마6:31-33),

 

11. 마음에 세속이 기숙하지 않게 됩니다.

 

23절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비치지 아니하고”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 기숙을 암시하는 용어입니다. 불빛이 없다는 것은 바벨론의 폐허 즉 사람 사는 곳이 아닙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은 심령은 세상에 기거하지 않고 하나님의 궁정에서 살아갑니다(시84:10-11).

 

12. 세상과 짝하거나 사랑하지 않게 됩니다.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안에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인간의 공동체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멸망함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은혜를 받게 되면 더 이상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13. 세상의 정체를 알고 조심해야 합니다.

 

너의 상인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여기서부터 24절까지 바벨론의 결론 부분입니다. 23, 24 두 절에서 자만하지 말고 세상을 경계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일부 번역서에서는 ‘네 상인들이 권력자가 되었고’로 번역된 문장입니다. 즉 경제권을 가진 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권력구조가 되었습니다. 상인들이 바벨론을 이럭저럭할 만큼 실세들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서 옛자아의 구매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며 근신하시기 바랍니다.

 

14. 세상의 수법은 너무나도 교묘하고 강하기 때문입니다.

 

네 복술로 말미암아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여기 복술은 인위적인 각종 속임수나 악령들의 힘을 빌어 미혹하는 형태의 술수들입니다. 이처럼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한 세상의 미혹은 모든 사람을 미혹시키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그러므로 자만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15. 세상의 피해가 너무나도 광대하고 잔인하기 때문입니다.

 

24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그 성 중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여기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신 결정적인 이유가 나타납니다. 이처럼 계13:6에도 나오듯 세상이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 들게 하고 넘어뜨렸기에 항상 은혜 속에 강하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벧후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