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시록 설교

[스크랩]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20장

에반젤(복음) 2021. 12. 27. 05:48

복음으로 본 요한계시록 20장

천년왕국 (계 20:1-6)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천년왕국은 계20:1-5에 근거를 두고 예수님과 함께 성도들이 이 땅에서 천년 동안 다스린다는 내용인데, 천년왕국에 대해서 설도 많고 논쟁도 많은 주제입니다. 크게 세 가지의 설이 있는데 그것은 무천년설, 전천년설, 후천년설입니다. 전천년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천년동안 왕 노릇한다는 설입니다. 이 설도 교회가 7년 대환난을 통과한다는 역사적 전천년설과, 반대로 대환난을 겪지 않고 휴거한다는 세대주의적인 전천년설로 나뉩니다.

 

후천년설은 반대 순서로 천년왕국이 먼저 있고 뒤에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이어서 대종말이 있을 것으로 보는 설입니다. 후천년설에서 말하는 천년이란 복음전도와 인류문화의 발달로 세계가 완전히 개화하여 낙원을 꾸미며 발전하다가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설로 거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천년설은 천년이라는 기간이 따로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예수 믿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는 성도들의 승리적 삶을 가리킨다고 보는 복음 안에서 영적으로 이해하는 학설입니다.

 

이 중 정통교회에서 지지하는 설은 역사적 전천년설과 무천년설입니다. 이 두 설은 역사적이냐? 영적이냐? 할 만큼 다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그 시제에 있어서 현재적이고 미래적일 뿐 아니라 영적이고 실재적인 면이 함께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 강조와(눅17:20-21) 아울러 베드로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성은(벧후3:10)은 엄연한 성경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오셨고, 지금도 성령 안에서 임하고 계시고, 또 온전히 재림하실 것이라고 믿는 재림의 시제와 함께 예수님께서 임하시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을 수 없다는 두 가지 기본 틀 안에서 생각할 때 천년왕국은 예수님 초림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도 성령 안에서 풍성함을 누릴 수 있으며 장차 재림으로 더욱 온전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확실한 진리라고 믿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임할까요?

 

1. 하나님 나라는 복음으로 임합니다.

 

1절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천년왕국에 관한 말씀이 나오자마자 마귀 잡는 일부터 나타납니다. 마귀가 마음껏 활개 친다면 하나님 나라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눅11:20).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예수님이신데(계1:18) 본문에는 왜 천사가 이 일을 진행할까요?

 

여기에 대해서 천사는 하나님의 대리자요 구원 얻을 후사들을 섬기라고 세워졌다는 점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 활동의 상징입니다. 천사의 손에 무저갱의 열쇠가 있었는데 사탄을 가두기 위한 지옥의 열쇠입니다. 이 열쇠는 예수의 복음입니다. 예수의 복음은 양면성이 있어 우리에게는 생명의 복음이지만 원수 사탄에게는 사망과 지옥의 저주입니다(고후2:15-16).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러 오심과 동시에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심과 같습니다(눅11:20, 눅5:32, 요일3:8).

 

2. 하나님 나라는 성령으로 임합니다.

 

큰 쇠사슬을 그의 손에 가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여기 두 가지 도구가 나오는데 무저갱의 열쇠가 권세를 가리킨다면 큰 쇠사슬은 권능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승리의 조건으로 권세도 필요하지만 권능도 필요합니다(막9:1, 롬14:17).

 

하나님의 왕국이 임하면 어떤 일이 있나요?

 

1. 사단의 활동이 사라집니다.

 

2절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천사가 내려와서 용을 잡는데 아주 쉽게 잡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겨 놓으신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내려왔다는 것은 위에 있다는 것으로 승리자라는 의미입니다. 사탄은 하늘의 전쟁에서 쫓겨난 존재입니다(계12:7-9). 우리들도 예수 안에서 승리자임을 믿고 승리의 복음에 서서 나가야 합니다(계12:10-12). 우리가 하늘에 속한 자가 되어 믿음으로 나가면 아무도 해할 수 없습니다.

 

2. 온갖 흉악한 일이 사라집니다.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탄이라.” 이 다양한 명칭에는 사탄이 온갖 술수를 다 부린 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탄을 잡아야 평안합니다. 용의 이름 중 옛 뱀은 에덴동산에서 그랬듯이 미혹을 강조한 이름이요, 사단은 대적자란 뜻으로 파괴를, 마귀는 ‘디아볼로스’라 하여 고소자, 비방자입니다. 그리고 용은 ‘드라콘’이라 하며 ‘뱀’이라는 뜻인데 유혹하는 존재요, 그 활동력이 지칠 줄 모르기 때문에 용이라고 했습니다. 종합적으로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입니다. 이 순간에도 성령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사단과 사단적인 악의 요소에서 놓임 받습니다.

 

3. 평화 가운데 살아갑니다.

 

3절 “무저갱에 던져 넣어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이 기간에 대해서 문자적 천년이냐? 영적이냐? 등의 설이 있지만 우선 신앙적으로 본다면 1,000은 모두 혹은 만수인 10수의 3승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충만하고 참된 안식을 상징합니다(롬14:17). 그리고 무저갱에 가두고 인봉하여 열지 못하게 했는데 이처럼 우리 마음에도 성령의 인침이 있어야 어떤 시험이 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것으로 간수될 수 있습니다(딤후2:19, 히13:9). 그래서 무천년설에서는 무저갱을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해 속박되어 있는 상태라고 해석합니다.

 

4. 누구나 말씀 안에서 삽니다.

 

천 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천년왕국에는 사탄의 미혹이 없습니다. 그런 시대가 분명히 올 것인데 영적인 원리도 동일합니다. 여기 "만국"은 '타 에드네'로서 나라들, 거민, 세상 모든 사람을 뜻하는 용어이지만 좁게는 우리 마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사탄의 미혹이 없으니 우리를 미혹할 수 없고 모두 바른 정신으로 살아갑니다(엡5:18).

 

5. 끝까지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절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 천년이 찬 후에는 잠깐 놓입니다(계17:10, 눅4:13). 성경에서 찬다는 표현은 시간적 개념보다 경륜의 때를 가리는 단어입니다(막1:15, 갈4:4). 이 땅에 언제일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경륜은 개인의 종말에도 적용됩니다(요9:4). 계17:10에 잠시 머무르는 왕이 늙음의 왕이었듯 이 때 잠깐 놓이는 놈이 사탄입니다. 달리 말하면 큰 시험의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도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났는데(눅4:13) 언제 다시 다가왔습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입니다. 계 11장의 두 증인들도 사명을 마치자 죽임을 당합니다. 성경에서 잠시 잠깐 얼마동안 등의 표현이 인생의 날이나 임종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계20:3, 눅4:13, 고후4:17-18, 욥21:13, 약4:14, 벧전1:24) .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이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다가 영원한 천국에 가기 전에 한 번은 큰 믿음과 용기를 내야 할 때가 다가옵니다. 사탄이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여 성도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 공격하듯, 노년에 몸과 마음이 쇠약할 때 고통과 두려움 등 큰 시험이 다가옵니다. 성도의 진은 사탄과 악을 대적하는 마음, 사랑하시는 성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인데 사탄이 이걸 공격합니다. 그래서 노년기와 임종을 앞두고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으니 얼마나 계시록이 복된 책입니까?

 

천년왕국의 복을 누릴 자는 누구입니까?

 

1.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입니다.

 

4-5절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했습니다.

 

첫째부활이 어떤 것이기에 순교자와 짐승의 표 받지 않는 자만 천년왕국에 들어간다는 걸까? 여기에 대해 무천년설에서는 첫째부활은 신자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이루어지는 중생을 의미하고, 둘째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부활하여 영생과 영벌의 심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단12:2, 계20:12-14). 전천년설에서는 첫째부활은 재림 시 성도의 부활이고, 둘째부활은 천년왕국 후에 악인들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전천년설은 성도의 육체부활을 첫째부활이라 함으로 다른 부활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첫째부활이라 했으니 어떤 부활보다 앞선 어떤 부활을 시사합니다(엡1:20, 2:1). 그 부활은 다름 아닌 예수 믿을 때 살아나는 영적 부활입니다(요5:25, 요11:25-26). 본문에서 말씀하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은 문자적으로는 순교한 자들이지만, 비유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복음의 말씀으로 죄에 대해 죽고 영으로 다시 산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천년왕국은 예수 믿어 중생한 자 즉 영적으로 부활한 성도라면 천년왕국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은 사람들은 세상 따라 몸과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사는 육에 속한 사람들이니 천년왕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2. 예수를 머리로 삼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4절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먼저 천년왕국의 대상으로 예수를 증거하다가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이 소개됩니다. 이들은 믿을 뿐 아니라 믿음 지키기 위해 순교까지 했으니 당연히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순교도 다양한데 왜 목 베임 당한 순교자만 언급했을까요? 그 표현이 필요해서 쓰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목 베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목 베임 받아야 천년왕국에 들어갑니다. 우리 머리는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머리부터 교체해야 합니다(골1:18, 골2:6-7,19). 내가 머리가 되면 그건 하나님의 왕국이 아닙니다. 사람이 왕 노릇하면 그곳은 교회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도 아닙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와 머리로 삼아야 합니다.

 

3. 진실로 회개하면서 씻는 사람입니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 이 부분은 앞에서도 반복적으로 설명했듯이 짐승처럼 육신에 속하여 우리가 동경하며 살았던 모든 탐욕들 즉 인격과 행위가 죄악으로 부패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그 가운데 살았습니다(엡2:3). 그러나 이제 예수를 주로 받고 성령을 받아 이마에 성령의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으므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 깨끗하게 씻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계22:14-15). 예수 믿으면 누구나 들어가지만 그러나 성막의 물두멍처럼 씻은 후에 들어갑니다(유1:17-21).

 

4. 말씀과 성령의 충만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5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불신자나 악인들로 천년왕국에 참여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천년왕국이 계속되는 한 그들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우리에게도 존재하는데 말씀과 성령의 세력이 강할 때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었다가도 게으르거나 방심하여 약해지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악이 살아나지 않으려면 성령충만한 강력한 왕국을 지속하는 것이 답입니다.

 

천년왕국의 1,000은 충만수입니다. 구비수인 10의 3승으로 3은 완전수입니다. 즉 그리스도 안의 충만하고 완전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는 늘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나님 나라 은혜 아래 삶이 가능합니다. 이 상태에서 살 때 진정한 구원과 행복과 악을 다스리는 심판의 권세를 가지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의 악이 다스려집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살 때 진정한 예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행1:8).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의 복은 무엇입니까?

 

1. 복 있는 부활입니다.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이 첫째 부활을 좁은 의미에서 예수 믿고 거듭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첫째부활이란 그 전에 죽었다는 것을 전제한 말씀입니다. 즉 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은 자였습니다. 그걸 편리상 첫째 사망이라고 불러 봅시다. 육체의 사망은 몸을 벗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기에 첫째 사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 믿으면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복을 받습니다(마16:16-17). 영적으로 성장하면 천국의 모든 아름다움까지 풍성하게 누립니다(빌3:10-11).

 

2. 거룩한 부활입니다.

 

6절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첫째 부활은 거룩합니다. 거듭나서 의롭게 태어납니다. 그것은 함께 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의로움이 되시기 때문입니다(고전1:30, 요일5:4,18). 예수 믿고 은혜생활하면 날로날로 새롭고 거룩해집니다(롬6:22, 요일3:10, 고후5:17).

 

3. 사망이 지배하지 않습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둘째 사망이란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입니다(계21:8). 둘째 사망이란 첫째 사망이 있었다는 건데 첫째 사망에 대해서 앞에서 설명했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 자였습니다(엡2:1). 그런데 예수 믿고 첫째 부활 즉 영의 부활로 거듭났으니 둘째 사망이 지배하지 않습니다(롬8:2). 주님을 멀리하여 심령이 성한 곳이 없다 해도 회개하면 그루터기처럼 남은 생명이 다시 자랍니다(사1:8-9). 그러므로 성도는 첫째 사망은 물론 지옥의 둘째 사망까지 사망의 권세가 해하지 못합니다.

 

4. 축복과 구령의 제사장이 됩니다.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여기 “도리어”라는 의미는 지옥에 가지 않을 뿐 아니라 제사장이 되어 지옥으로 향하는 사람들까지도 생명으로 이끌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냥 제사장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라는 이중적 수식을 썼을까요?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멜기세덱의 직분과 같습니다(창14:18). 아브람을 축복하고 십분의 일을 받은 대제사장 예수를 예표하는 제사장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제사장이란 축복에 그 초점이 있습니다(민6:22-27). 그리스도의 제사장이란 영혼 구원과 죄 사함이 그 초점입니다(유1:20-23). 이처럼 첫째 부활에 참여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영육 간에 축복하고 전도하고 기도하고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5. 그리스도와 더불어 다스립니다.

 

천 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이 왕 노릇은 재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는 죄와 사망과 저주와 사탄과 환경을 이기는 새 생명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딤후2:11-12).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음과 악을 다스리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천년왕국 기사의 중간에 첫째 부활의 복됨을 강조한 이유는 이 은혜 속에 살 때만이 둘째 사망을 피함은 물론 다로 뒤에 다가오는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왕국의 대적들 (계 20:7-10)

 

7.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9.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10.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이미 3절에서 천년이 차면 사탄이 반드시 잠깐 놓인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계20:2, 계17:10, 눅4:13). 성경에서 찬다는 표현은 시간적 개념보다 경륜의 때를 가리는 단어요(막1:15, 갈4:4), 이 경륜은 개인의 종말에도 적용되는데(요9:4), 성경에서 잠시 잠깐 얼마동안 등의 낱말이 인생의 날이나 임종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계20:3, 계17:10, 눅4:13, 고후4:17-18, 욥21:13, 약4:14, 벧전1:24).

 

하나님 나라의 은혜 아래 살던 성도들도 인생의 날이 다 찰 때 비록 영원에 비해 잠깐이고 그 행복에 비해서 경한 것이지만(고후4:7-8), 늙음과 약함과 질병과 임종이라는 시험이 다가옵니다. 이 때 잠깐 사탄이 놓이듯 성도에게 믿음과 용기가 가장 필요한 시험의 때입니다. 사탄이 땅의 사방 백성을 미혹하여 성도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둘러 공격하듯, 사탄이 노년의 쇠약 망각 고통 두려움 등의 약점을 총망라하여 공격합니다. 그 목표는 사탄과 악을 대적하는 진과 같은 마음(고후10:4-5, 엡6:10-11, 약4:7, 벧전5:9).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는 새 예루살렘성과 같은 마음을 공격합니다(히10:25, 신6:4-5). 이 성도의 최후의 전쟁을 온전히 승리하기 위해 오늘 본문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좀 더 자세히 이 최후의 전쟁은 무엇입니까?

 

1. 마지막 날에 일어납니다.

 

"천년이 차매"는 천년왕국이 끝나가는 때를 말합니다. 끝난 후가 아니라 아직 왕국 안에 살아가고 있을 때입니다. 좁은 의미로 우리 개인에게 적용한다면 예수 믿어 은혜 가운데 살다가 임종이 가까운 노년기를 가리킵니다(요9:4, 전11:8). 3절에 “그 후에는 반드시 잠깐 놓이리라”이라 했듯 이건 피할 수 없습니다(히9:27). 사람들이 자신은 죽지 않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탄이 하와에게 했던 최초 최대의 거짓말입니다(창3:4-5). 잔칫집 교훈보다 초상집 교훈이 더 귀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전7:2).

 

2. 사탄이 활개 치는 때입니다.

 

7절 “천 년이 차매 사탄이 그 옥에서 놓여”그 옥이란 무저갱입니다(계20:3). 무저갱은 지옥이라 할 수 있지만 다시 놓였다는 점에서 사탄을 억제하는 영원한 흑암 같은 곳입니다(유1:6). 우리 안에도 사탄을 결박하는 면역력이 있습니다. 강한 믿음 생활입니다(벧4:7, 엡6:10). 그런데 노년기에 육체와 정신의 환난이 다가오면 약함과 망각과 두려움까지 겹쳐 우리 믿음도 취약해집니다. 교회 출석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사탄이 넘어뜨리기 좋은 때가 왔다고 쾌재를 부리는 때입니다.

 

3. 사방이 포위되는 때입니다.

 

7-8절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이 말씀의 배경은 겔 38장과 39장입니다. “곡”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왕국의 왕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마곡”은 곡이 다스리는 땅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땅의 사방 백성이 했으니 여기서 땅은 육의 상징으로 믿음 대적하는 육에 속한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사탄이 곡왕과 곡이 다스리는 마곡땅의 백성을 미혹하여 바다의 모래와 같이 모으는데 바다 모래는 셀 수 없이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창13:16), 인생의 연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상징합니다(계12:17). 그리고 성도의 진은 사탄과 악을 저항하는 성도의 견고한 마음, 사랑하시는 성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랑하는 예루살렘성과 같은 신앙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노년기의 온갖 육체와 정신의 약점을 총망라해서 성도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하나님 말고는 어느 것 하나 의지할 데가 없는 상황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때 사탄이 로마인과 유대인 가룟유다까지 동원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같습니다. 이 전쟁의 특징은 사방이 포위되어 빠져나갈 구멍이 없습니다. 때가 되지 않으셨을 때는 낭떠러지에서 죽이려 했으나 피하셨습니다(눅4:28-30). 우리들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할 수 있다면 아직 때가 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도 아버지 뜻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마26:39,42). 그러나 죽으심을 통하여 위대한 구속사역을 이루셨습니다.

 

이처럼 감사한 것은 곡과 마곡의 침략은 겔 38-39장에 나타나듯 하나님 백성들의 원수를 온전히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점입니다. 박형룡 박사 교의 신학에도 “죽음은 형벌이 아니며 훈련과 징계의 정점으로 영적진보와 천국의 최선한 이익에 도움을 준다. 이는 각 사람의 생의 완성이며, 다른 영역에로의 이전이며, 진정하고 완전한 생의 시작이며, 영원한 처소로의 고정이다.”라고 정의했습니다. 한 마디로 강력한 성화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건강할 때 늘 말씀을 읽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준비된 성도들에게 그 날은 소망이 맑아오는 날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신자일지라도 잠시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4. 육신의 문제가 편만한 때입니다.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앞에서 바다의 모래에 대해서 설명했듯이 바다 모래가 상징하는 것처럼 사탄이 인생의 육체와 정신의 온갖 약점을 총망라해서 성도의 믿음을 공격합니다(계12:17). 성경에 바다의 모래에만 비유된 민족이 있었습니다. 미디안 군대입니다(삿7:12). 그러나 비유는 모래에 비유하고서 성경은 그들의 군대의 수를 13만 5천으로 세고 있습니다. 이 미디안이 바로 우리가 연약할 때 다가오는 온갖 시험을 가리킵니다. 바울이 탄 배가 지중해에서 폭풍을 만나 모래톱에 걸리지 않게 수심을 재고 배를 가볍게 하는 등 최선을 다했듯이 육신의 문제에 걸리지 않게 힘쓰시기 바랍니다. 참 믿음은 이 때 진가를 발휘할 것입니다(고전3:12-15). 이 때 노년의 야곱과 같이 힘을 내어(창48:2) 신앙생활하시고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을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약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도와주실 것입니다(히2:14-16).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께서 믿음을 붙들어주십니다.

 

9절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노령이지만 아직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붙드심의 은혜입니다(시3:5, 시37:24). 그리고 “성도들의 진”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군사적인 진을 쳤던 것처럼 악을 대항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고후10:4-5, 엡6:10-11, 약4:7, 벧전5:9). 그런데 성도의 믿음은 하나님 보실 때 사랑하는 새 예루살렘성이기도 합니다(히10:25, 신6:4-5). 세상이 침투하지 않도록 오직 주님만을 위해 벽을 쌓은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하시는 성에 대한 공격이란 노년기의 기도와 예배하기 어려움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끊어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롬8:35-37).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시고 붙드셔서 다 잊어도 신앙은 잊지 않게 붙들어주십니다.

 

2.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악을 사릅니다.

 

9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버리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예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창19:24-25, 왕상18:38, 왕하1:10,12). 이처럼 악은 위로부터 임하는 불로 사라집니다(시45:7). 이처럼 오순절의 성령의 불을 성도에게 내려주십니다. 그 결과 초대교인들을 포위했던 대적인 마음의 공포가 사라지고, 마음속의 악이 사라지고, 나약이 사라지고, 불신앙도 사라졌습니다. 이 불을 내려주셔서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며 기뻐합니다. 주님이 직접 찾아오셔서 며칠 동안이고 곁에서 위로해 주시기도 하십니다(요14:3). 천국 가기를 준비하며 기도 많이 하여 붙드시는 손길과 함께 자손들과 교인들에게 은혜 많이 끼치시고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악의 세력이 한꺼번에 지옥에 던져집니다.

 

10절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좁은 의미에서 짐승과 거짓선지자는 우리 안의 짐승 같은 육신적 마음과 미혹의 빠지는 거짓된 생각까지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밖의 악은 물론 생각 속의 죄까지 다 사라져서 다시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천국이 있습니다. 지옥도 있습니다(마18:8-9, 막9:48-49).

 

가장 극심한 통증을 작열통이라고 합니다. 작열통이란 불에 태울 때 느끼는 고통입니다. 전신에 불이 붙은 고통을 영원히 당하는 곳이니 예수 믿고 구원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 끝까지 믿음 변치 말고 악을 대항하고 전도하는 하늘군대로서 임무를 다하고(계19:14, 고후10:4-5),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 새 예루살렘 같은 예수님의 신부로서(계19:7-8, 21:2) 주님께 영원히 사랑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크고 흰 보좌의 심판 (계 20:11-15)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백보좌 심판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영원한 징벌의 장소인 불못에 던져지기 위해 받는 마지막 심판입니다. 이 심판은 죽은 자들의 행위가 기록되어 있는 행위록과 구원 받은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생명책에 따라 진행 됩니다. 죽은 불신자들까지도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시키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강력한 정화의 우리 마음에도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 음녀 바벨론이라든지 육신적인 짐승 같은 마음 같은 것은 처리되었지만 죽은 행실이나 이사야가 제단불로 악을 제함을 받았듯이 입술 등 남은 죄악의 잔재까지도 처리되는 극도의 성화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법을 순종함에 부족한 것이나 혹 어기는 것입니다. 분량과 수준이 하나님의 요구에 충분한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현재적 관점에서의 이 심판대는 거룩의 완성을 보여주시는 극도의 성결의 은총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적 강화가 아니라 주를 위해 살고자 하는 강력한 소원으로 다가오는 성령의 은사입니다.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 앞에 옛 창조에 속한 것이면 땅과 하늘이라도 피하여 도망가듯이 제단 숯불로 태우시는 거룩의 불이 활활 타오르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백보좌 심판대의 심판의 핵심은 진리적이지 않거나 생명적이지 않는 것은 모두 불못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심지어 사망과 음부까지도 불못에 던져집니다. 의가 됐든 능력이 됐든 성품이 됐든 주님으로부터 나지 않는 것은 모두 처리됩니다. 이 심판 후에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납니다. 즉 백보좌 심판과 같은 옛 창조에 대한 심판이 없으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활활 타오르는 이런 강력한 정화의 은사가 필요합니다.

 

백보좌 심판대는 어떤 심판대입니까?

 

1. 큰 심판대입니다.

 

11절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이 심판대는 먼저 컸습니다. 그만큼 위엄이 있고 엄정한 심판대입니다. 그 앞에 옛 창조에 속한 것은 두려워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물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땅과 하늘마저 피하여 온데간데없을 정도입니다. 큰 보좌란 작아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예를 들면 사울왕처럼 어떤 부분은 빼놓듯 부분적이거나 형식적이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의 전체 그리고 남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그리고 의를 위해서 희생도 불사하는 그런 큰 믿음이어야 합니다.

 

2. 성결의 심판대입니다.

 

흰 보좌와” 희다는 것은 악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흰 보좌는 판단기준이 불투명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가 있는 낱말입니다(사5:20-22). 마음 중심에서 불의를 용납지 않는 마음과, 죄를 미워하는 의로운 마음이 지옥불처럼 타올라야 합니다. 고전2:16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했듯 이 마음은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입니다. 죄를 영원히 미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지옥불로 나타났듯(시7:11), 우리 중심에도 죄인은 사랑하되 악은 미워하는 마음이 타올라야 합니다(사5:20-22). 이건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은사입니다.

 

3. 공의로운 심판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여기 죽은 자들에 대해서 불신자와 신자가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롬14:10, 고후5:10). 성도에게 심판이 없다는(요5:24) 말씀은 예수님의 공로로 정죄와 처벌이 없다는 뜻이지 심판대에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롬14:10-12).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그 보좌 앞에 서 있었는데 누구든지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은 큰 죄만이 아니라 작은 죄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미도 함께 들어 있습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고(살전5:22), 말이나 농담으로라도(엡5:3), 생각으로라도 용납지 않으며(마5:22,28) 의를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타오르시기 바랍니다.

 

4. 생명의 심판대입니다.

 

12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때 심판은 두 종류의 펴진 책들에 의해 이루어집니다(마23:15). 여기 “책들”은 복수이고, "생명책"은 단수입니다. 즉 책들은 행위록이고(말3:16) 다른 하나는 생명록입니다(눅10:20, 계3:5, 마10:32-33). 행위록의 수효가 많은 것은 그만큼 다양한 많은 죄를 시사합니다.

 

심판의 대상을 보니까 산체로 들림 받은 사람은 없고 모두 죽은 자들입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죽었다 살림을 받은 자들인데 생략기법이겠지만 시종 “죽은 자”라고 표현하는 것도 그 모습에서 뭔가 교훈을 주시려는 것 같고, 우리에게 적용해서 비유적으로도 생각해 본다면 죽은 자의 행위록이고, 생명록 역시 그렇다는 점에서 우리 안에서 생명적이지 않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생명이고 주님의 말씀이 생명양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이었고(요4:34), 그 뜻대로 살고 이루는 것이 생명적인 것입니다.

 

5. 살리는 심판대입니다.

 

13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이처럼 장차 불신자의 부활이 있을 것을 문자 그대로 믿습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피하여 간데없는데 어떻게 바다도 사망도 음부도 버젓이 나타나서 죽은 자들을 내어줍니까? 학자들은 이를 묵시문학적 기법이라고 합니다. 문자적으로 죽은 자들은 불신자들의 부활이지만, 우리 신앙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 안에서도 살려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은 행실입니다. 바다 음부 사망 이것들은 다 죽이는 것들입니다. 바다가 세상이라면 세상 때문에 죽은 우리 행실 살려내야 합니다(겔18:4, 계3:1, 마10:32-33). 율법적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도 못하는 죽은 행실 역시 피의 복음으로 살려내야 합니다(히9:14).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로 인해 죽은 행실도 다 살려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죽은 행실들이 살아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은 앞에서도 했지만 백보좌 과정은 더욱 심화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신앙의 심판대입니다.

 

14절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놀라운 일입니다. 악인과 불신자들만이 아니라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이처럼 성도에게는 더 이상 사망도 없고 무덤도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니 죄를 멀리하고, 생명이요 부활이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요11:25, 고후3:1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42:8, 시16:8-11).

 

7. 영원한 심판대입니다.

 

14-15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 이처럼 귀중합니다(눅10:20). 이런 의로운 불길은 하나님을 사랑함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원수인 죄에 대한 여지 없는 심판과 마음 속 깊이 타오르는 거룩한 불길은 마땅히 존재해야 합니다(아8:6-7, 롬13:10). 이 크고 흰 보좌의 심판대가 우리에게 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할 거룩한 사람으로 온전히 간수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