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자료/구약신학

[스크랩] 고엘제도의 신학적 의미

에반젤(복음) 2021. 8. 27. 13:46
var articleno = "164";
고엘제도의 신학적 의미




I. 들어가는 말


A. 문제 제기


  구약에는 사라, 드보라, 한나, 에스더 같은 훌륭한 여인들이 종종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과 못지 않은 여성으로 비상한 관심을 끄는 한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룻'이다. 룻이 구약의 훌륭한 여인으로 특별한 관심을 끄는 이유는 그녀가 비록 모압 출신의 이방 여인이지만 사사시대라는 어두운 시대와 가부장적 문화권 속에서 과부가 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희생적인 사랑으로 홀로 된 시어머니를 효성스럽게 봉사하며 함께 어려운 고난의 역경을 지혜와 용기로 헤쳐나가는 비범한 행동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야웨를 쫓는 그녀의 결단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선조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룻기는 비록 4장으로 된 작은 책이지만 성서의 세 단편 소설 중 가장 매혹적이고 훌륭한 작품으로 꼽힌다.  바이저(A.Weiser)의 말에 의하면 괴테는 룻기를 "윤리적인 논문이자 전원 문학으로서 우리에게 전해진 가장 사랑스럽고 완벽한 단편"이라고 일컬었다고 한다. 또한 괴테는 이 책에다가 '소품'이라는 칭호를 붙여주기까지 했다. 이처럼 룻기는 세속적 문학 작품으로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다. 게다가 정경으로서도 또한 구약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있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룻기의 의도에 관해 갓월드(N.K.Gottwald)는 룻이 자신과 나오미의 생계와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수혼'(levirate marrige)이라는 남성적 제도를 통하여 남성 주도하의 사회구조 속에서 남녀가 공히 득을 보는 그런 방식으로 기쁨을 성취할 수 있다는 행복한 일치가 바로 룻기의 의도라고 보았다.  반면 궁켈(H.Gunkel)은 룻기는 룻의 효성과 충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또 이와는 달리 루돌프(Rudolf)는 룻기 2장12절을 핵심으로 간주하여 개종에 대한 신의 응분을 나타내려 한다고 보았다.
 이렇듯 근래의 학계는 룻기에 대한 통일된 관점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점은 구약을 너무나 구약 자체로서만 보려는 의도들이 많다는 점이다. 물론 구약의 본래 의도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과의 연관성에서 룻기의 또 다른 의미도 동일하게 중요시 해야 할 것이다.
 룻기에는 고대 이스라엘의 다양한 생활과 법적 의무와 관습들이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관련된 제도가 나온다. 다시말해 그 자체의 제도로만 말하자면 그저 고대 이스라엘의 한 풍습에 지나지 않지만, 신약의 관점에서 보자면 하나님의 구속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는 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엘(   )이라는 제도이다. 이 고엘이라는 제도는 룻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본 소논문은 룻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고엘'이라는 제도를 연구 분석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법을 삶 속에서 어떻게 이해했으며,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살펴보고 이 속에서 나타난 고엘의 구속 신학적 의미를 밝혀보고자 한다.



B.연구 방법


 이 소논문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룻기 안에 나타나는 모든 사고들을 다 취급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본 논고자는 다음의 두가지 사항을 전제 하고자 한다.
 첫째, 룻기가 말하고자 하는 관점은 여럿일 수도 있겠으나 정경이 통일된 관점에서 본다면 한가지 곧, 인간에 대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구원활동을 말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룻기를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둘째, 룻기 속에 나타나는 '구속'의 개념을 설명함에 있어서 필자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조직신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순수히 성서 신학적인 입장에 서서 룻기 전반에 깔려있는 제도인 '고엘'(   )을 가지고서 해석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다음 II장에서 고엘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어원적인 의미와 그 내용을 살펴보고, 제 III 장에서는 룻기에 나타난 고엘 사상과 그 안에 나타나는 구속신학에 대해 고찰해 보고,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본 룻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Ⅱ. 고엘제도


  구약의 가정은 가족의 결속과 유대 강화를 위하여 가정의 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보호하도록 레위기의 성결법전(레 17:1~26:46)속에 일정한 제도를 규정해 놓았는데 바로 그것이 go'el 제도이다. 그런데 가족법의 영역에 속하는 이 go'el제도가 단순한 세속적 의미를 뛰어넘어 구약 신학에서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의미를 가진다.


 A.  고엘의 어원적 의미
 
   고엘은 가족법의 영역에 속하는 순수한 히브리어로서 이 어근의 원뜻은 친족의 역할을 통하여 자기 친족을 곤란과 위험에서 되찾아 오는(to redeem)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어근 ga'al은 학자마다 원래적 의미를 조금씩 다르게 해석한다. 드보(de Vaux)는 '되사다', '반환을 요구하다', 특히 '보호하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존슨 (A. R. Johnson)은 ga'al의 이형(異形)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그 원래적 의미를 '덮어 가리는 것' 또는 '보호하는 것'이라고 한다. KBL에서는 그 의미를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에 대해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프락쉬(O. Procksch)는 '되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스탐(J. Stamm)은 그 의미를 '되사는 것'으로 시작한다. 링그렌(H. Ringgren)은 ga'al의 원래적 의미를 어원적으로 결정 내릴 수 없으며 원래적 의미를 추정하는 것보다 실제 언어상의 용법에서 출발하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이렇듯 ga'al의 원래적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음에도 그 해석들이 모두 상충되지 않고 서로 일맥상통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이 단어가 가족법의 영역에서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ga'al의 의미는 추상적이 아니고 구체적인 공동체의 삶의 영역으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사용된 ga'al의 원래적 의미는 혈연공동체 속에서 친족끼리 서로의 재산과 생명과 권리를 보호하고 만약 한 가족이 어떤 재난이나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가장 가까운 친족이 그 가족이 당한 재산과 생명과 권리를 되찾아서 회복시키는 구원행위를 의미한다.
   고엘은 '구속하다', '원수를 갚다', '원한을 풀다', '보상하다', '친족의 역할을 하다'라는 의미의 동사의 현재 능동태 분사형으로서 '구속자'라는 뜻이다. 또 어근과 가족이라는 말이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룻 2:20, 4:1에서처럼 '집안간으로서 맡아야 할 사람' 또는 '집안간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으로도 번역될 수 있으며 go'el이  행하는 역할에 따라 '복수자'(신 19:12), '피를 보복할 친족'(민 35:19)으로도 번역되었다.



B. 고엘의 내용


  go'el 제도는 고대 히브리 사회에서 공동체의 결속을 위하여 친족들 사이에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일종의 상보(相保)제도로서 그 안에는 저당 잡힌 것을 돈을 주고 되찾는 즉 속량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이 제도는 구약의 여러 상황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성경에 나오는 것들로서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토지의 상환자
레 25:23-25에는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하여 생계를 유지하거나 또는 진 빚을 갚기 위하여 자신의 재산(땅,집)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판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다.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돠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땅 어디에서나, 땅 무르는 것을 허락하여야 한다.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레 25:23-25).
  이 경우에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판 것을 무를 go'el이 되어 산 사람에게 그 값을 대신 치루고 동족의 재산을 되찾아 줌으로 동족의 재산을 보존시켰다.


2. 종의 속량자
 go'el의 권리는 재산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적용되었다. 레 25:47-49에는 어떤 이스라엘 사람이 가난하여 부자인 외국인에게 종으로 팔렸을 경우에 대하여 설명한다.
   
    너와 함께 사는, 나그네 신세 된 외국 사람이나 임시 거주자 가운데는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는데, 마침 그 이웃에게 너의 동족이 살고 있다가 가난하게 되어서, 그 외국 사람에게나, 너와 같이 사는 임시 거주자에게나, 그 가족 가운데 누구에게, 종으로 팔렸다고 하자, 종으로 팔려 간 다음이라 하더라도, 그는 종으로 팔릴 때에 받은 값을 되돌려 주고 풀려날 권리가 있다. 그의 친척 가운데 누군가가 값을 대신 치르고 그를 데려올 수 있으며 (레위기 25:47-55).

 이 때에도 가장 가까운 친족이 go'el이 되어 그를 자유롭게 해주는 구원자 역할을 하였다.


3. 피의 복수자
  go'el에게 있어서의 가장 엄중하게 부과된 책임중에 하나는 바로 '피의 복수'였다. 민 35:16-19에는 만일 자기 친족중의 한 사람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 되었을 경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만일 쇠붙이 같은 것으로 사람을 쳐서 죽게 하였으면, 그는 살인자이다. 그러한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을 들고 있다가, 그것으로 사람을 쳐서 죽게 하였으며, 그는 살인자이다. 그러한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만일 사람을 죽일만한 나무 연장을 들고 있다가, 그것으로 사람을 쳐서 죽게 하였으면, 그는 살인자이다. 그러한 살인자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그 살인자를 죽일 사람은 피해자의 피를 보복할 친족이다. 그는 그 살인자를 만나는 대로 죽일 수 있다(민 35:16-19).

 피의 복수는 사막의 원주민들(베두인들, 아라비아인들)의 법과는 달리 반드시 수행되어야 했다. 이스라엘의 율법은 돈으로서 보충하는 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근거로서 종교적인 원인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살해 당하여 흘린 피는 여호와께서 거주하시는 땅을 더럽혀 놓았기 때문에 그 땅은 피를 흘린 자의 피로서 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형 집행 방식은 피의 복수와는 구별되었다. 왜냐하면 go'el은 무죄한 사형 집행이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친족이 그를 다시 죽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피의 복수에도 두 가지 예외가 있었다. 하나는, 동일한 공동체의 내부에서는 피의 보복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고, 또 하나는 살인이 고의가 아닌 과실의 경우에 예외가 적용되었다. 이 경우에 그 살인자는 도피성에 피신하여 피의 복수자로부터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었다.


4.속전의 수납자
 민 5:6-8에는 남에게 잘못을 범하여 생긴 결과에 대하여 피해자가 죽고 보상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남자나 여자나 가릴 것 없이, 남에게 어떤 잘못이든지 저질러서 그 일로 주를 배신하였을 때에, 그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대로,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본래의 값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그 피해자에게 대신 보상을 받을 근친이 없으면, 그 배상액은 죄를 속량하고 바치는 속죄양과 함께 주께로 돌아가, 제사장의 몫이 된다(민 5:6-8).
  이 경우에 go'el은 죽은 피해자를 대신하여 가해자의 속전을 수납할 수 있었다.


5.서원 예물의 되찾기
  레 27:13,15,19,31에는 하나님께 바쳐진 서원 예물들 곧 짐승이나, 집이나, 밭이나, 땅의 십일조를 되찾을 수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소유자가 그 짐승을 무르고 싶으면, 그는 그 짐승값에 오분의 일을 더 보태서 내야한다(레 27:13).
 
     자기 집을 바쳤다가, 그 사람이 집을 도로 무르고자 하면, 그는 본래의 그 집값이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 집은 다시 자기의 것이 된다(레 27:15).
     밭을 바친 사람이 그것을 다시 무르고자 할 때에는, 매긴 값의 오분의 일을 더 얹어 물어야 하고, 그렇게 하면, 그 밭은 다시 그의 것이 된다(레 25:19).

     땅의 십분의 일, 곧 땅에서 난 것의 십분의 일은, 밭에서 난 곡식이든지, 나무에 달린 열매이든지, 모두 주에게 속한 것으로서, 주에게 바쳐야 할 거룩한 것이다. 누가 그 십분의 일을 꼭 무르고자 하면, 그 무를 것의 값에 각 오분의 일을 더 얹어야 한다(레 27:30-31).
  하나님께 바친 서원 예물들을 되찾을 때는 부정직한 교환을 피하기 위해 다소 추가 요금이 붙었으며 이 경우에 구속자는 친척이 아니고 원래의 소유주였다.


6. 후손의 계대자(繼代者)
 go'el이 행해야 할 중요한 사항 중의 하나로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경우에 가장 가까운 친족의 순서에 의해 죽은 형제의 미망인과 계대결혼을 하여 그 가문의 후사가 끊어지지 않게 해야했다. 그런데 룻의 결혼은 신명기의 수혼법(嫂婚法 :신 25:5-8)과 유사하여 룻의 경우를 go'el의 한 역할로 볼 것인지 아니면 수혼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혼란을 야기시킨다. 여기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룻의 결혼을 확장된 수혼법으로 보고 있다. 이것을 규명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문제를 제4장의 '룻기에 나타나는 go'el제도의 특징'이라는 항목에서 결혼 문제를 다룰 때 자세하게 논하기로 한다.


C. 이스라엘 토지법과의 관계


 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땅과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땅은 성서 신앙의 유일한 중심 주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중심 주제들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땅에 대한 약속은 오경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하나의 커다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은 또한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하나님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실제로 그러하듯이, 특별한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관계하고 계시다면 그는 역사적인 공간으로서의 땅과도 특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계신다.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땅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과도 관계를 밎고 있다. 이처럼 성서에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만 따로 떼엇 생각할 수 없다. 특히 go'el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 생긴 토지법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므로 go'el을 연구하려면 먼저 땅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1. 선물로서의 땅
 성서의 땅은 이스라엘의 역사 이해를 도와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항상 땅으로부터 땅 상실로, 땅 상실로부터 다시 땅으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도상에 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땅이 없었다. 그들은 가장 초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땅으로 가는 '체류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자들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도달했고, 하나님은 그 땅을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가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땅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거저주신 선물이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너희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너희를 이끌어들이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너희가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너희가 파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너희는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이다(신 6:10-11).
 
 요단강에서 선포된 이 메시지는 그 땅이 순전한 선물이요, 철저한 은총에 속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말에는 이스라엘의 업적이나 공로 또는 계획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폰 라트(von Rad)는 구원사적 입장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땅의 수여를 여호와의 구원행위로 보며 그것을 여호와의 구원 업적들 중에 최종적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땅의 주인이 여호와임을 확실히 믿었다. 땅이 여호와의 것이라는개념은 매우 옛 것이며, 제의적(祭儀的)인 것이다.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소유라고 하는 개념은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난 다음, 시내산에서 알게 된 사막의 여호와가 농경지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서부터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神은 그 숭배자들이 거하는 지역의 모든 땅과 포도원과 과수원 등 토지의 주인이라고 하는 생각은 고대 근동세계에 널리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의 7년마다 땅을 묵히는 일(출 23:10, 레 25:1), 첫 열매를 제물로 바치는 일(출 34:26, 레 23:10), 새로 심은 과일나무 열매를 3년간 따지 않는 일(레 19:23), 추수 때 밭에 이삭을 남겨 두는 일(레 19:9)등의 모든 제의(祭儀) 관습은 모두 여호와가 땅의 주인이라는 점과 직결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기에 이스라엘은 그 땅을 '기업'이라고 불렀다. '주다', '수여하다'라는 뜻을 가진 'nahalah'의 개념은 '재산', '소유물'과도 같은 뜻으로, 가나안 땅을 여러 지파에게 분배해 준 사실과 관련해서 '분할받은 땅(토지, 영토)'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좀더 일반적인 뜻은 '과거로부터 상속받아 소유한 것'을 의미하고, 성서의 문맥에서는 아버지나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것,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리킨다. 성서에 나타나는 많은 예를 볼 때 이 말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법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법률적 차원과는 달리 자비로운 하나님이 자기의 약속 이행으로, 또는 백성들의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나 재산을 뜻한다. 폰 라트에 의하면 'nahalah'란 말은 처음에는 어느 가문이나 지파의 소유를 나타내던 말이었는데, 이것이 신명기 계통에서 '이스라엘의 기업' 이란 말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소유권이 나타나 있다. 그 외에 이 땅은 '여호와의 기업'이란 말로 표시했는데 이것은 이 땅이 여호와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거룩한 땅이란 것을 의미한다 . 따라서 그 땅 경계 밖에 있는 자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이며, 여호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은 '여호와에게서 땅의 분깃'을 소유함과 같은 것이다. 폰 왈도우(von Waldow)는 이스라엘 땅이 거룩하다는 개념은 여호와가 땅의 주인이라면 다른 나라 땅은 다른 신들의 소유이니까 가나안 땅에서만 여호와를 섬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본다.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기에 공평하게 분배되어져야 했고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다. 또한 제비뽑은 땅은 후손들에게 영속적으로 물려주어야 했다. 또한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므로 일단 토지가 분할되거 할당되면 그 받은 몫은 그것을 받은 가족 혹은 가문내에 영속적으로 남아 있어야지, 남에게 양도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토지는 절대로 개인 소유가 되어서는 아니되며 현소유자의 후손의 모든 세대의 소유이어야 한다. 따라서 소유자는 땅의 소유권을 남에게 넘겨서는 안되며 또한 그가 아무리 남의 땅을 탐낸다 하더라도 잠정적으로밖에 많은 토지를 끌어 모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 땅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선물로 주신 기업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나그네며 임시 거주자'로 불리워졌다(레 25:23). 여기에는 모든 국가가 '혈연과 땅'의 범주로서 소유주 관계를 생각하려는 그릇된 사고가 산산히 부서져 있다. 히브리어로 나그네는   이며 임시거주자는     이다. 'ger'는 본질적으로 이방인(외국인,낯선 사람)이다. 그는 자기를 수용해 주고, 또 일정한 권리를 누리도록 허용해 준 어느 다른 공동체 안에서 다소 영속적으로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이와같이 정착자가 된 나그네들은 자유인들이었고, 이 점에서 그들은 노예와 구별되었다. 그런데도 토지 소유권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은 어쩔 수 없이 날품팔이꾼이 되었다(신 24:14).'gerim'은 일반적으로 가난하였고, 곤궁한 자들과, 과부들과, '경제적인 약자들'의 축에 끼였으며, 이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선을 베풀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줄 때는, 자기들도 애굽에서 gerim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출 22:20,23:9,신 24:18).
  'ger'라는 단어와 나란이 사용된 'toshab'는 자주 쓰이는 단어로(창 23:4, 대상 29:15, 시 39:13) 출 12:45, 레 22:10, 25:40에서는 toshab가 품꾼과 나란히 나타나며, 레 25:6에서는 종들과, 품꾼과, 함께 사는 나그네와 같이 나타난다.
  따라서 에 25:23의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들은 단지 나그네로서 그의 땅에 붙어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ger와 toshab로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역시 그들 가운데 있는 ger와 toshab들을 도와 주고 보호해야 하는 강한 윤리적 요청 앞에 서 있게 된다.



2. 땅의 보존
 가나안 정착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상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사회였으며 유목민들에게 사회적 불의나 불평등은 사막의 거친 생활 땐문에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가나안 정착 이후 공평하게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공동체는 평등한 삶을 누렸던 사막의 관습들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근과 홍수 또한 여러 질병들의 재해와 전쟁들은 가난한 자들을 생기게 하였고 갑작스런 문화변동과 사회변혁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부의 불균형을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많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심은 이스라엘 기업 보존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현상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는 레 25:24-28에 땅에 대한 탐심의 유혹을 제어하고 토지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을 규정해 놓았다.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땅 어디에서나, 땅 무르는 것을 허락하여야 한다.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무를 친척이 없으면, 형편이 좋아져서 판 것을 되돌려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판 땅을 되돌려 살 때에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이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그 나머지를 산 사람에게 치르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땅을 판 그 사람이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땅은 산 사람이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한다. 희년이 되면, 땅을 판 사람은, 그 때에 가서야 유산 곧 분배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다 (레 25:24-28).
 이 법에 의할 것 같으면 첫째, 근족인 go'el이 그 기업을 무를 수 있다. 여기서는 가족이 속한 씨족이 팔리 토지를 되사서 씨족에게 속한 기업이 외부로 매각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천덕은 go'el의 뜻이 한자어로는 '구속'이며 한국어로는 '되무르다'는 말로서 원래 이 말이 토지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서인석은 이스라엘의 토지법이 사막의 유목민의 관습법을 보존하려 한데서 나온 것이라 본다. 유목민의 시회조직에서는 사유재산이 별로 큰 의미가 없으며, 재산 사유의 최종적 권리가 씨족에게 있었으므로 토지를 관리하는 가족은 그 땅을 '외국인들'(가나안 사람들)에게 팔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유목민적 관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착 후에도 그대로 잔존하게 된 것이다. 둘째, 판 사람이 돈을 모아서 판 땅을 스스로 무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을 경우에 땅을 판 헷수를 계산하여 남은 값을 산 사람에게 주고 그 땅을 되무를 수 있다. 셋째, 희년이 되었을 때에 그 기업은 원소유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 희년이라고 번역하는 이 해의 히브리어는     (yobel ; 수양, 수양의 뿔)로서, 이 해가 시작될 때에 양각(羊角)을 부는 관습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이 해를 '자유의 해(the Year of Liberty)', '나팔의 해(the Year of Trumpet)'라고도 한다. 히브리어     (yobel)은 앞 뒤 문맥에 따라 '나팔(Trumpet)'또는 '기쁨(Tubilee)'이라고 번역된다. '나팔의 해'는 7년마다 한 번씩 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거듭되어 일곱 번째 안식년, 즉 49가 되는 다음 해, 곧 50년째가 되는 해이다. 희년은 전국의 모든 주민들에게 해방(##18, 석방)을 안겨 주었고 매각되었던 농토와 집들이 본래의 소유주에게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규정들의 동기는 종교적인 사고에 있었다.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지를 판 후에도 그 토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다 내어줄 수가 없었다. 넷째는 안식년의 경우인데, 안식년에 관한 것은 출 21:1-6과 23:10-11, 레 25:2-7, 신 15:1-18 에 나타나 있다. 안식년에 관한 보도들에 의할 것 같으면 계약법전인 출 23:10-11과 성결법전인 레 25:2-7은 농경지의 휴경에 관한 규정이며, 출 21:1-6과 신 15:1-8의 내용들을 보면 계약법전에서는 노예가 해방될 때 단지 몸만 해방될 뿐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나 신명기 법전에는 빈 손으로 내어 보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신 15:12-18). 또 신명기 법전에는 부채를 탕감하여 주는 것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명시하고 있다(신 15:1-11).
  이 모든 규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안식년에는 농토를 쉬게 하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아야 하며, 빚은 저당 잡힌 것까지 포함해서 탕감되어야 하고, 노예나 종들은 놓아주어야 했다. 저당잡힌 땅은 안식년에 저당이 말소되나 정직하게 거래된 것일 경우에는 남은 임대료를 지불해야하고, 무르지 않는 한 희년까지 본 소유주에게 땅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에서 go'el제도, 안식년, 희년법들은 모두 기업 보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법들의 실천 여부에 대해서 go'el제도와 안식년은 그 흔적이 나타나나 희년이 실천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go'el제도의 실천 사례는 렘 23:1-10에서 볼 수 있으며 안식년은 법률적인 본문들 이외의 부분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있으나 외경인 마카비서(Ⅰ마카 6:49,53)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헬라시대까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 안식년은 역사가 요세프스(F. Jesephus)의 보고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희년의 규정들이 언제 적용되었다는 것에 대한 흔적은 실제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편 레 25:25-28에서 go'el과 희년법이 기업을 되무르고 소유권을 회복한다는 내용이 같은 점으로 보아 go'el과 희년 사이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go'el과 희년의 차이는 go'el이 가정의 땅을 친척의 범위 안에 보존시켜 놓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면 희년은 그 땅을 본래의 소유자였던 개인이나 가정에게 반환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드보는 희년에 대하여 go'el제도와 관련하여 볼 때 규정들이 새로운 것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유토피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희년에 관한 규정들은 정의와 사회적인 공정성의 이상적인 상태일 뿐, 어느 시대에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기업보존에 대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이 토지법들 안에는 땅은 이스라엘이 선물로 받은 기업이며 땅의 임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그래서 땅은 이스라엘 왕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아합은 땅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생각하지만 나봇에게 있어서의 땅은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양도할 수 없는 유업'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땅을 잘 보존하는 관리자라는 사고에 철저해 있다.
  폰 왈도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땅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의 제의와 준법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본다. 첫째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땅에 대한 탐심의 유혹을 물리치고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며 또한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 계명의 준법행위는 곧 가나안 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반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며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토지법은 소극적으로는 땅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며 또 약자를 보호해 주는 기능을 하며 적극적으로는 선물로 받은 땅에서 이스라엘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축복으로 주어진 법적인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go'el제도는 이러한 상관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D.    제도의 문화적 배경


  go'el제도의 문화적 배경을 살피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 제도에 대해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곳이 없고 단지 도피성 제도나 토지법에 관련한 기업 무르기 등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밖에 증명해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go'el제도가 가나안 정복과 토지 분배 후 농경 문화속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go'el의 문화적 배경은 성경에 나타나 있는 go'el제도의 여러 상황들을 하나하나 역추적하여 그 삶의 자리를 알아내는 수 밖에 없다.
  먼저 go'el의 내용중 가장 오래 된 것으로 보이는 것은 민수기 35장 16-19절의 혈수제도(血讐制度) 즉 피의 복수이다. 그런데 이 혈수제도는 가나안 정착 이후 농경문화의 가족법 보다 훨씬 앞선 광야의 유목민들의 생활 속에서도 나타난다. 곧 고대 근동 아라비아인들의 '타르'법칙은 곧 어느 친척들의 유혈 피살은 반드시 그 피를 흘린 자의 죽음을 통하여 보상되거나, 그 대신의 경우에서는 그의 가족 중에서 어느 식구가 역시 피살을 당함으로써 속죄되어야 한다.
 이와같은 피의 복수는 라멕의 노래(창 4:23-24)와 가인의 '표(창 4:15)'에서도 보게 된다. 가인의 이 '표'는 저주받은 자의 표시가 아니라, 가인이 엄청나게 가혹한 피의 복수를 하는 집단에 속한 자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이다. 피의 복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노아홍수 기사에서도 나타나는데 노아 홍수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최초로 이 혈수 제도를 명령하신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다(창9:6).
  이상과 같은 보도에서 혈수제도는 최초의 형제 살인을 저지른 가인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보게 된다.
  다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후손의 계대자(繼代者)로서 의무이다. 이것은 유일하게 룻기에서만 나타난다.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바로 신명기 25장에 있는 수혼법인데 이것은 룻기의 결혼과는 외형적 불일치한 점이 있다. 그러나 법의 형식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법의 정신인 죽은 자의 이름과 집을 세운다는 데는 같다고 하겠다.
  수혼법은 이스라엘 외에 고대 근동에서도 그 자료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 바, 앗수르와 헷족속과 우가릿에서도 확인되었다. 구약에서 수혼법의 실례는 창세기 38장의 유다와 다말의 사건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을 보면 수혼법은 족장시대 이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go'el의 의무중 하나인 후손의 계대자로서의 의무는 수혼과의 관계가 밝혀지기까지는 논단할 수는 없지만 수혼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가나안 정착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go'el의 나머지 의무들인 토지의 상환과, 노예의 속량자, 속전의 수납자, 서원 예물의 되찾기 등은 모두 토지 분배 이 후에 생겨날 여러 상황들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하는 것들로서 가나안 정착이후에 토지법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법들이다.
  이상과 같은 내용들을 종합하여 볼 때 go'el의 삶의 자리가 가나안 정복 이후 생긴 농경문화 시대의 산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go'el의 기원은 가까이는 가나안 정복 이후 토지법이 실시된 시기로부터 멀리는 가인의 시대까지도 올라가는 오랜 시간적 간격이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므로  go'el은 가인의 시대로부터 광야의 유목민 시대를 거쳐 정착된 농경문화 시대까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전통과 관습법으로서 계속적으로 보존되고 발전되어 온
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으니, 누구든지 사람을 죽인자는 죽임을 당할것이다(창 9:6).


III.룻기의    제도
 
  룻기는 시기적으로 이스라엘 왕정시대 이전의 사사시대에 그리고 역사적 배경으로는 부족 동맹의 사회구조 속에서 베들레헴 출신의 유대인 나오미와 그녀의 며느리이자 모압 사람인 룻이라는 두 여인이 과부가 된 후에 그들이 어떻게 현명하게 삶을 유지해 가면서 대(代)가 끊긴 가문의 이름을 이스라엘의 한 관습법을 통해 계속 이어지게 했는가를 보여 준다. 그 관습법이란 바로 룻기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go'el제도이다. 그러므로 룻기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go'el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A. 룻기에 나타난    사상


 룻기의 중심적인 사건은 go'el제도의 수행이다. 이 go'el제도는 룻기에서 점진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룻기 1:11-13에 go'el의 수행 가능성에 대한 암시가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아직, 내 뱃속에 아들들이 들어 있어서, 그것들이 너희 남편이라도 될 수 있다는 말이냐?(1:11).
      
    오늘 밤 내가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게 된다거나 하더라도, 너희가 그것들이 클 때까지 기다릴 셈이냐?(1:12-13).

 여기서 나오미의 말은 go'el의 의무를 행할 자를 낳을 가능성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절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룻기 2:1과 2:20에는 나오미의 구체적인 go'el로서 보아스가 등장하는데 그는 재력이 있는 사람으로 소개한다.
    그는, 엘리멜렉의 집안간으로, 재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보아스이다(2:1).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사이다. 그는 집안간으로서 우리를 맡아야 할 사람이다(2:20).

 그리고 3:9에서는 룻이 보아스를 go'el로 부르고 있으며 3:12-13에는 보아스가 자신을 룻의 go'el로 인정하면서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go'el의 의무를 행사하지 않을 경우 자신이 go'el의 의무를 수행하겠다고 약속한다.
    어른이야말로 집안어른으로서, 저를 맡아야 할 분이십니다(3:9).
    내가 집안간으로서 그대를 맡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소(3:12).

  여기에서 룻은 끊어질 위험에 처한 유다의 대통(代統)을 잇기 위하여 자신의 생과, 자기민족, 그리고 자기의 종교를 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젊음을 끊어질 위기에 있는 엘리멜렉의 가문 즉 정통 이스라엘의 가문을 이어가기 위하여 자신을 철저히 희생제물화 한다.
  룻기 4장에는 go'el의 구체적인 의무가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재산과 몸의 구속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보아스는 룻의 요구를 실천하기 위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법정구실을 했던 성문 어귀에서 룻을 통하여 유다 가문을 일으키실 그 하나님의 구원사적 사건을 위한 법적 절차를 정확하게 끝낸다. 그리하여 나오미와 룻의 구속은 법정적으로 공표되면서 모든 갈등과 긴장은 해소된다. 그리고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음으로 다윗왕의 고조모가 되고 나아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성취시킬 메시야의 선조가 된다.
 이상에서 보는바와 같이 룻기는 하나의 지향점을 행해서 나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모든 go'el의 의무를 수행하는데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룻기 1장에서는 go'el의 의무 수행의 가능성에 대한 암시가 나타나면서 2장에서 보아스의 등장으로 그것이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고 급기야 3장에서 룻은 보아스에게 대담하게 결혼을 요청함으로 go'el의 의무 수행은 구체화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4장에서 보아스에 의해 go'el의의무가 수행되고 동시에 모든 법적 조치가 취해짐으로 룻기의 문제는 해결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을 종합해 보면 룻기에 나타난 go'el제도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이 나타남을 알게 된다.
  첫째는 룻기에 나타난 go'el제도가 실제로 수행되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예표하고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룻기의 시대적 배경이 사사시대였다는 점에서 더욱 가중된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뜻에 맞는 대로 하였다"(삿21:25). 이 말은 무책임한 시기에 책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사기의 반복되는 주제이다. 이 시대에 살고 있는 보아스는 go'el의 의무를 행해야 할 아무런 법적인 부담이 없으며 또 그는 죽은 말론의 형제도 아니었고, 또 자기보다 더 가까운 근족도 있기에 그는 더욱 go'el의 의무에 대해 자유스럽다. 그럼에도 그는 의무에서가 아닌 인자에 근거를 둔 자발적인 행위로 룻을 구속하는 은혜를 베푼다.  그러므로 보아스가 실행한 go'el의 사상에는 육신적으로 보아스의 후손인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구속하는 go'el로서 자신을 바치는 은혜를 베품으로 하나님의 구속행위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인격속에 역사적인 초점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는 룻기의 go'el사상에는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관계를 통해서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관계를 맺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go'el제도가 특별한 것은 그것이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의 특별한 지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레겟트(Leggett)가 지적하듯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이 의무들을 여호와께서 그들을 부르셨던 언약 관계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런데 go'el에 나타나는 이러한 언약사상은 하나님과 백성관의 관계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백성과 언약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님은 또한 땅과도 관계를 맺고 있음을 말한다. 성서에서 여호와와 이스라엘 백성과 땅은 특별한 삼각 관계를 이룬다. 즉 여호와 없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또 가나안 땅 없이는 족장들에게 주어닌 큰 민족의 약속이 성취되어질 수 없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항상 땅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항상 땅으로부터 선물을 받으면서,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땅은 선물로서 주어진 땅이요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 속에서 주어진 땅이다. 룻기에 나타난 go'el이 특별히 흥미를 끄는 것도 go'el이 땅과 하나님의 백성을 함께 속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목적 안에서 친족 구원자는 개인적 영역과 마찬가지로 물질적인 영역에 대해서도 책임을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룻기에서 보아스가 땅과 룻을 함께 구속한 행위는 go'el의 기능이 언약 관게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땅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숙명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다.



B. 룻기에 나타나는 구속신학
 
  룻기의 결론을 담고 있는 4장은 룻의 요구를 실천하기 위한 보아스의 빈틈없고 완벽한 법적 조치가 취해지고, 그리고 신학적 의도를 담고 있는 룻과 나오미에 대한 찬양문과 보아스와 다윗과의 족보상의 연결을 입증하는 족보자료가 첨가되므로 끝이 난다.



1)기원문
 룻기 4장에는 두 개의 기원문이 나오는데 첫 번 기원문은 4:11-12의 성문의 백성들과 장로들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는 것에 대한 축복이며 두 번째 기원문은 베들레헴 여인들이 나오미를 찬양하는 축복문인 4:14-15이다.
    그러자 성문 위 회관에 모인 온 마을 사람들과 원로들이 대답하였다. "우리가 증인입니다. 주께서 그대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그 여인을, 이스라엘 집안을 일으킨 두 여인, 곧 라헬과 레아처럼 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에브랏 가문에서 그대가 번성하고, 또한 베들레헴에서 이름을 떨치기를 빕니다. 주께서 그 젊은 부인을 통하여 그대에게 자손을 주셔서, 그대의 집안이 다말과 유다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베레스의 집안처럼 되게 하시기를 빕니다(4:11-12).
  이 기원문에서 보아스와 룻 그리고 그 가족에 대한 백성들의. 관심은 다음의 세가지로 나타난다.  먼저 아내에 대하여 백성들은 룻도 한 유명한 족속의 조상이 되기를 기원한다. 또한 그녀에게서 하나님의 가정과 목적 안에 있는 많은 후손이 나오기를 바란다.
  다음에 남편에 대해서 그들은 보아스 자신이 이 결혼과 그의 후사를 통하여 풍요해지기를 빈다. 룻과의 결혼을 통해서 보아스 자신의 가명(家名)도 확립됨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가정의 미래에 대해서 백성들은 보아스가 그의 조상 베레스처럼 무수하고 유명한 후손을 거느린 가정을 갖게 되기를 기원한다. 따라서 백성들이 빈 축복의 기원문은 여호와의 날개 아래로 안식처를 찾아 온 한 이방여인 룻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지적한다. 룻이 보아스의 가문에 들어오게 된 사건은 단순히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인생승리담을 전해 주는 그런 의미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가문을 일으킨 '라헬'과 '레아', 그리고 유다가문을 일으킨 '다말'과 같은 여인들이 가졌었던 그런 기능을 감당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세계 구원사로 부름을 받은 하나의 메시야적 사건임을 지칭하고 있다. 여기서 룻은 전혀 배타적으로 여호와의 구원사적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자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말하였다. "주께 찬양을 드립니다. 주께서는 오늘 이 집에 자손을 주셔서, 대가 끊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 늘 기리어 지기를 바랍니다.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며느리, 아들 일곱보다도 더 나은 며느리가 아기를 낳아 주었으니, 그 아기가 그대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것이며, 늘 그 막에 그대를 돌보아 줄 것입니다"(4:14-15).
 룻이 낳은 아들은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는 여인들의 기도에 둘려 싸여 있다. 여인들의기도는, 룻기 전체를 함축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섭리적인 다스림과 보호하심을 재차 선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오미를 향한 여인들의 축복에서는 가족의 연대성이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아이는 나오미의 생기를 되찾아 줄 아이이며 노년을 돌보아 줄 아이로 태어났다. 나오미에게 생기를 되찾아 줄 아이라는 말은 대가 끊어진 나오미에게 후손의 계대자로서 혈통을 다시 잇게 하였다는 말이며 노년을 돌보아 줄 아이라는 말은 양식 문제가 해결된 것을 말한다.



2) 족보
 룻기의 족보는 룻기의 종결 부분일 뿐만 아니라 그 책에 포함된 역사의 출발점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룻기는 이스라엘의 고대 역사에서도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 족보에 대한 내적인 면, 즉 영적이고 도덕적인 배경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아우벨렌(Auberlen)의 말대로 이 족보에 대해서 그다지 중요성을 부여하지를 않는다고 할지라도, 룻기는 다윗의 조상들의 가정생활을 통해서 그들이 경건하고 정직한 마음과 겸손하고 정결하게 생활을 함으로써 이 위대한 왕의 조상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어떻게 의로운 생활을 하였는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다위의 선조들의 삶으로부터 역사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룻기 전체의 목적이 다윗 왕의 가계(家系)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제언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의 적이었고 모압 백성이 한 이방여인으로서의 룻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온전한 사랑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전적인 신뢰 때문에 위대하고 경건한 다윗왕의 고조모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메시야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모압 여인 룻은 보아스에 의해서 그의 아내가 되었고 유다 족속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그녀에게서 육신으로 그리스도가 탄생된 것이다.
 보아스가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에게서 낳은 아이를 중심으로하여 전개된 룻기 4장의 마지막 부분의 족보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땅 위에 있는 자들을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심으로써 언약하신 바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고 그 역사를 대대로  행시켜 가신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된 그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사역으로 절정에 이르고, 다시금 신약 시대의 그리스도의 교회에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