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세 어떻게 할 것인가? (마 5:33-37)
이 시간에 “맹세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제목입니다. 우리나라에 세계에 자랑할만한 좋은 식용유가 있습니다. 참기름입니다. 그런데 참기름의 이름이 순참기름, 그것도 모자라 진짜순참기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면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그만큼 부정이 심하고 사회에 거짓이 난무하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이처럼 성서시대 유대인들 사회에 맹세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입만 벌리면 맹세였습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거짓과 불신의 사회였는지 알게 합니다.
맹세란 무엇일까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거나 약속이 거짓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서 다른 방법이 없을 때 하는 방법이 맹세입니다. 그래서 히6:16에 보면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했습니다.
먼저, 성경은 맹세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할까요?
맹세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도 이따금씩 맹세하셨습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복 주실 것을 맹세하셨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북돋워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맹세까지 하시면서 말씀하시는 그 약속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친히 맹세를 하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맹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6:13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여러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합니다.
여러 경우를 종합해서 볼 때 몇 가지의 맹세의 원칙을 보게 됩니다.
첫째, 맹세는 제한적입니다.
맹세는 꼭 필요한 때, 중요한 경우에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출 22장에 나타나듯 결백한데 물증은 없을 때 맹세합니다.
둘째, 맹세는 엄숙합니다.
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맹세는 반드시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창14:22에 아브라함도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 한다고 했습니다.
셋째, 맹세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불경죄가 됩니다. 레19:12에 보면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맹세를 지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친히 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사기 11장을 보면 입다가 암몬 족속을 이기고 돌아올 때 자기가 한 서원 때문에 사랑하는 그의 무남독녀 외동딸을 바칩니다. 입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이렇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엄숙한 것이 맹세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언뜻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에 나타난 맹세의 세 가지 원칙을 모두 무시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맹세의 첫째 원칙을 무시했습니다.
즉 함부로 맹세를 남발했습니다. 그들은 헛맹세가 아니라면 어떠한 경우에도 맹세해도 괜찮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그냥 옳아요, 아닙니다. 그런 일상적인 말까지도 “맹세하건데 아닙니다. 맹세하건데 옳습니다.” 이렇게 맹세를 남발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37절) 책망하셨습니다. 즉 옳은 것은 옳다고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될 텐데 그런 사소한 일상의 말에까지 맹세를 덧붙이기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이건 당시 사회가 얼마나 거짓이 난무한 사회였는지 알게 합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맹세의 둘째 원칙도 어겼습니다.
즉 맹세를 하나님의 이름 외에도 했습니다. 그들은 본문에도 나오듯 하늘로도 맹세를 하고, 땅으로도 맹세하고, 예루살렘으로도 자기 머리로도 성전으로 성전의 제단으로 맹세하기도 하고, 제단 위에 있는 예물로도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 맹세하고 지키지 못할 때가 많아 하나님의 이름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맹세의 엄숙성을 완전히 손상시켜 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맹세의 셋째 원칙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즉 맹세하면 해로울지라도 지켜야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꼭 지켜야 되지만 그 외에 다른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범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33절에도 그 말이 나오지요.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그 외 다른 것으로 맹세하는 것은 범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기 이익에 따라 맹세를 해석했습니다. 마23:16에 "화 있을진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성전의 금보다 성전이 더 크건만 그들은 돈으로 맹세한 것은 자기들에게 이익이 오기 때문에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4-37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여기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는데 과연 하지 말라는 말씀일까요? 사람들은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 법정에서의 선서나 심지어는 결혼식에서의 서약조차도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잘못된 해석입니다.
하나님도 맹세하셨고 우리에게도 맹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대제사장 가야바 법정에서 간접적으로 맹세하셨습니다. 주님은 맹세를 결코 죄악 시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의미를 본문의 전후문맥에서 찾아야 합니다. 즉 서기관과 바리새인 식의 잘못된 그런 맹세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무엇보다 정직한 말과 행실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동안 맹세가 꼭 필요할 때는 정직하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엄숙히 책임지는 맘으로 하세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맹세를 적당히 자기 편리대로 변형시키는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의 삶이 맹세만큼 진실한 믿음의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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