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마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황금률이라는 별칭이 붙은 말씀입니다. 우리 기독신앙의 황금과 같은 율법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사실은
1. 대접을 너무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접 좋아하지 말라는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의미가 나올까요? 이 말씀도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해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섬기고 대접하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대접 받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주신 말씀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대접 받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대접 받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이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23:6-7)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높임 받기 좋아하고 대접 받기 좋아하면 수치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이웃을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그러므로”란 아주 오묘한 뜻이 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앞의 11절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러므로” 대접하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랬다면 누구를 대접하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럼 하나님만 대접하라는 소립니까?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했으니 이 말씀은 사람을 대접하라는 뜻도 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접하셨습니다. 욜2:26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를 기이히 대접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을 대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대접 받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서 만큼은 대접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듯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십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대접하십시다.
3. 그러나 대접이 나쁜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대접만 받거나 대접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 문제이지 대접 받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이 말씀에 대접받는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을 볼 수 없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 했는데 대접이 주는 것보다는 못하지만 복은 복이란 말씀입니다.
대접도 받으세요. 어떤 위치든 그 위치만큼은 대접을 받아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맡겨진 일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지도자가 일하려면 지위에 맞는 존경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사역하기 어렵습니다.
말세의 비극은 무질서입니다. 이 세대에는 존경이 없습니다. 세상이든 교회든 가면 갈수록 일하기 어려운 때가 옵니다. 모두 섬김만 받으려고 하고 또 어른들만 있지 십자가 질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세에 악한 세상을 살아가고 이 악한 세상에서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데 그 대책은 바로 먼저 사랑하고 먼저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지혜요 방법입니다.
그래서 마10:16에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3:35에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깊이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4. 대접을 받았으면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너희도"라는 용어가 갖는 의미입니다. "너희도"의 의미는 '대접 받기를 원한다면'의 뜻도 있지만 '대접을 받았으면 대접하라.'는 뜻도 있습니다. 대접만 받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빚은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사랑해야 합니다.
5. 대접은 곧 성경의 핵심이란 말씀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구약성경을 크게 나무면 모세오경과 선지서로 나눕니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는 성경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성경의 핵심은 사랑인데 대접은 바로 그 사랑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성경의 핵심이듯 하나님을 대접하고 이웃도 대접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 대신 대접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까요? 사랑보다는 대접이 더 실천적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먼저 대접하라는 황금 율법만 잘하면 세상 어디가든지 성공하고 누구에게도 버림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기독교가 세상을 정복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십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우리 모두 하나님을 대접하고 이웃을 대접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 받고 대접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agas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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