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월) 찬송 :(새)597장, 378장 읽으며 묵상하며 : 마음을 찢고 돌아오라 (요엘 2장1- 17)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 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3절)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데서 빚어진 결과입니다. 따라서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장차 임할 여호와의 심판의 가공할 성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날은 이제 임박하였습니다. 나팔과 호각이 전쟁의 개시를 알리려고 합니다. 엄청난 파괴력으로 모든 것을 신속히 태워버리는 ‘불’의 심판의 위엄과 신속성을 보여 줍니다. 어둡고 두려움이 임하는 날이요, 이러한 것은 이제까지도 없었고 이후 세세로도 다시없을 큰 심판입니다. 민첩하고 조직적인 공격력 앞에서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는 그 심판의 주체가 누구도 대항할 수 없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지연은 계속되지 않습니다.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참된 회개입니다. 금식하며 옷을 찢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찢음으로 자신의 죄를 진실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통회하는 것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또한 금식일과 성회라는 적절한 절차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올 것을 명하셨습니다. 구체적 날과 장소를 정하여 회개의 의지를 드러내 보일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 회개는 모든 백성들에게 요구되는 민족적 회개였습니다. 본문의 13절은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핵심적으로 요약해서 나타내 주고 있는 아주 감동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경고하면서도 동시에 희망의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임박한 여호와의 날이 선포되어도 여전히 범죄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에 대해 요엘 선지자는 애타는 심정으로 그 재앙의 날의 고통을 생각하며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가혹한 날이지만 회개하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2004. 07. 28- 생각하며 살며 :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미국 헐리우드에 가면 헐리우드 크리스천 그룹이 있습니다. 이 집회를 시작한 사람은 텔레비전과 영화계의 유명한 3인조 가수 중에 한 사람인 팀 스펜서라고 합니다. 그는 명성도 있고 돈도 있으나 생활이 권태스럽고 불만투성이라 술로 세월을 지냈습니다. 그는 영적인 만족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자살을 하려고 어느 호텔에 들어갔습니다. 권총을 꺼내 머리에 대고 죽으려는 순간에 갑자기 “죽는 것이야 아무 때고 죽을 수 있으니 기도나 한번 하자”는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말로에 어렸을 때 유년 주일학교에서 기도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술을 끊게 해주소서. 앞길을 인도하여 주소서”라고 생각나는 대로 기도를 했습니다. 그 날 저녁 그는 평안히 잤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는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전 생활은 다 잊었습니다. 술도 끊었다. 전혀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동료에게 전도하기 시작해서 80여 명이나 되는 회원이 생기고, 그는 과거의 배우 생활을 청산하고 기독교 영화 제작에만 힘을 썼습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이렇듯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느 곳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바울을 새사람으로 만드셨던 하나님은 영화배우 스펜서도 회개시키고 또한 우리들도 새사람으로 만드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한면… -성서연구사/「기독교 문장대백화사전 22권, 회개」예화, p 785- 23주(화) 찬송 :(새)252장, 184장 읽으며 묵상하며 : 자기 행위대로의 보답(왕하9:30-37)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9:36-37) 우상 숭배의 괴수요 아합의 왕비였던 이세벨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참혹했습니다. 그녀는 혼례는 준비하는 신부처럼 안티모니로 눈을 그리고 머리를 장식 한 채 창가에 요염하게 기대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의 피로 붉게 물든 칼을 닫지도 않고 달려오는 예후에게 유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겉모습을 어떻게 단장하든지 스스로 지은 죄의 대가를 피할 수 는 없었습니다. 이세벨은 무죄한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피를 흘리게 하였으며 또한 그것을 즐기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죄악에 대한 대가를 치를 때가 온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그녀가 회개를 하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 결코 무릎 꿇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주 철저히 악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세벨이 맞게 된 종말은 너무나 몸서리쳐 지고 끔찍한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피가 담과 말들에게 튀었고, 심지어 성내에 떠돌던 굶주린 개들이 피 냄새를 맡고 그녀의 시체에 달려들었습니다. 악의 사신이었던 오만한 이세벨은 이제 두골과 손과 발밖에 남지 않은 처참한 죽음을 당했던 것입니다. “개들이 이스라엘 성 곁에서 이세벨을 먹으리라”(왕상21;33)는 하나님의 저주는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녀가 이 경고를 마음에 새기고 이 모든 것이 확실히 이루어질 것임을 믿었다면 그토록 철저히 죄악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되도록 죄의 흔적을 없애 버리기 위해 고심합니다. 그러나 이 얼마나 무모한 노력입니까! 우리는 인간들의 심판은 피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도 미처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까? 혹시 그에 대한 징벌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고 안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답하겠다”고 선포하신 하나님의 징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을... 그런데도 아직 당신은 회개하지 않습니까?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9권, QT」p214- 살며 생각하며 : 프로메제우스의 비참한 최후 여러 신들이 살고 있는 올림푸스산에는 언제든지 불이 타오르고 있는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프로메데우스가 조심스레 올림푸스 산에 올라가 신들의 불을 훔쳐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곧 다른 신들에게 알려졌고, 그것으로 인해 그는 혹독한 죄과를 치러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즉, 그는 코카서스 산맥에 높이 솟아오른 바위 끝에 매달려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데, 그에게 있어 무엇보다도 가장 괴로웠던 것은 매일 한 차례씩 달려드는 독수리에 의해 그의 간이 뜯기워나가는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죽음 앞에 조차 편히 쉴 수 없었던 가련한 프로메데우스, 본문의 요람과 아하시아, 그리고 이세벨도 하나님을 거역한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6권,예화」p559- 23주(수) 찬송 :(새)93장, 93장 읽으며 묵상하며 : 퇴락한 성전(왕하12:5) “제사장들이 각각 아는 자에게서 받아드려서 전의 어느 곳이든지 퇴락한 것을 보거든 그것으로 수리하게 하였더니(12:5) 시간은 쉬지 않고 흐릅니다. 이 세상을 그 무엇도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없고 변하지 못하게 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몸의 모든 사물도 다 자연스럽게 변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을 보십시오. 처음 지었을 당시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이는 뛰어난 기술과 값지고 희귀한 자재를 동원하여 무려 7년 반이나 걸려 완성 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아름답게 하여 가장 높은 이에게 바치고 싶어 하던 솔로몬의 원대로 뛰어난 건축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솔로몬의 성전도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무기력 할 수밖에 없었는지.......160여년이 지난 요아스왕 시대에 와서는 처음의 그 우아한 모습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낡고 황폐한 모습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벽과 천정은 벌써 금이 갔으며 마루바닥은 썩어서 삐그덕 거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서 매우 보기가 흉하였습니다 이렇듯 자연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스스로 파괴되거나 마명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그 누구도 거부할 없는 자연계의 법칙입니다. 심지어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우리 인간의 육체도 처음엔 새롭게 세상에 나왔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쇠퇴해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흔히 우리들은 결코 낡고 허무하게 끝날 이 세상의 물건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볌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집이나 물건들이 영원히 존속될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우리가 의지했던 세상 것들이 퇴락하고 붕괴되는 것을 발견하고는 허무함과 공포 속에 휩싸일 것입니다. ‘이렇게 추하게 변할 줄이야......아. 허무한 세상이여! 당신은 무엇에 자신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혹시 언젠가는 황폐해질 솔로몬의 성전에 당신의 몸을 기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내가 너희에게 준 영생의 말씀이다. 이는 어떠한 불로도 태울 수 없으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결코 변함이 없는 진리이다. 자, 이 진리에 너희 자신을 기대지 않겠느냐?“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9권, QT」 p274- 살며 생각하며 :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 근대 실존주의 사상의 선구를 이룬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진리를 설명하기 위하여 든 예화 가운데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가을날 따뜻한 지방을 찾아 떼 지어 날아가던 철새들이 옥수수 밭을 발견하고는 그곳에 내려앉아 쉬면서 옥수수를 쪼아 먹었습니다.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나서는 다시 그대로 날아서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는 '이렇게 먹을 것을 많이 두고 왜 날아가나' 라고 생각하는 철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철새는 동료 새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그곳에 하루를 더 머물면서 배불리 옥수수를 더 먹었습니다. 날아간 새들은 모두 바보요 자신만이 똑똑하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그는 이 많은 양식을 두고, 이 좋은 자리를 두고 구태여 멀리 가려고 하는 새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한동안을 머물다보니 어느새 겨울이 다가 와 찬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보라가 휘날렸습니다. 결국 그 철새는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 이런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이야기입니다 -곽선희 목사 23주(목) 찬송 :(새)359장, 401장 읽으며 묵상하며 : 우리가 숭배하는 거짓 신들(왕하16:3-4) “또 산당들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왕하16:4) 우리는 아하스 왕을 가장 악한 우상 숭배자로 정죄하며 비난합니다. 그런데 과연 오늘의 우리들은 그를 비난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전혀 우상 숭배에 물들지 않고 신앙의 순결을 지키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지니라"는 계명에서 다른 신들은 힌두교나 아랍의 이스람교 우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소유물이나 사람 등이 하나님보다 더 높게 취급될 때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마틴 루터는 우상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네 마음이 쏠려있고 의지하는 것, 바로 그것이 네 우상이다." 확실히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 나름대로의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국의 한 교수는 "나는 대학에 왔을 때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믿던 기독교를 당분간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후에 내가 기독교가 필요해서 찾으려 했을 때는 이미 거기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대학 교수는 '명예'라는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명예의 신을 섬김으로써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의식적으로 저버렸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수많은 보이지 않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는 일반적으로 명성, 힘, 세상적인 성공 등을 우상으로 열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나아가 음주, 호색, 남을 비판하는 것, 분노와 자만, 하나님의 뜻을 회피하게 함으로써 기독교인이 발해야 하는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바로 모두 우상 신들인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신들이 당신의 마음속에는 하나도 없는가? 실로 "너희는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 앞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바로 설 수 있는가? 혹시 지금 이 순간도 자만과 편견의 거짓 신을 숭배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나태의 우상에 빠져서 하나님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리지는 않았는가?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9권, QT」,p358- 살며 생각하며 : 전통을 깨뜨린 사건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회사 가네보에는 직원이었다가 죽은 사람들을 기리는 신사(神社)가 있습니다. 회사 간부들은 매달 한 번씩 참배를 하며 직원들의 안전을 빌었습니다. 오오가키 공장 인사과장으로 있을 때 나는 안전기원제의 책임자 역할까지 맡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1962년 10월 5일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되자마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하신 말씀이 마음속에 ‘콱’ 새겨졌습니다. 그 후로 나는 가네보 신사에서 하는 안전기원제에 더 이상 참석할 수 없다는 의사를 공장장에게 단호하게 선포했습니다. 가네보의 모든 공장 인사과장이 안전기원제의 사회를 보는 전통을 내가 거부했다는 소문은 금세 사내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것은 오랜 가네보 역사 속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각도에서는 공장 인사의 중심핵인 인사과장이 직무유기를 했다고 볼 수 있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날 본사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자네, 일을 택할 건가 아니면 신앙을 택할 건가? 만일 신앙을 선택하면 경우에 따라 사표를 쓰게 될지도 몰라.” 그 순간 확실하게 “저는 신앙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미 각오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이 일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 동안 오오가키 공장 인사과장으로 일했지만 단 한 번도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받게 된 어려움이었지만,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후로 하나님이 나를 가네보의 CEO 자리까지 오르도록 인도해 주셨으니 말입니다. - 미타니 야스또 /「역전 인생」- 23주(금) 찬송 :(새)360장, 402장 읽으며 묵상하며 : 아마샤의 일백 달란트(25: 5-10) “ 또 은 일백 달란트로 이스라엘 나라에서 큰 용사 십만을 삯내었더니(6절), 아마사가 이에 에브라임에서 자기에게 나아온 군대를 구별하여 본곳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니 저희 무리가 유다 사람을 심히 노하여 분연히 본곳으로 돌아갔더라“(10절) 모든 인간의 행동에는 이에 선행하는 결단의 과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언제 차를 타고, 어디로 일하러 가느냐 하는 것 등........ 그 가운데에는 영향력이 큰 결단도 있으며, 영향력이 작은 결단도 있습니다. 행정부가 국가를 위해 내리는 끊임없는 결단이나 교회와 같은 기관들이 내리는 결단들은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행정부의 잘못된 결단 때문에 인류는 전쟁을 겪기고 하며 그리스도의 교회가 내린 잘못된 결단이 성도들을 분열시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마샤 또한 중대한 결단의 상황에 처하여 있었습니다. 그는 유다 군대를 크게 강화시키고 있었으며 북이스라엘에서 원군까지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마샤가 일백 달란트의 삯을 주고 북이스라엘에서 십만의 용사들을 불러들였을 때, 이스라엘 군사들을 돌려보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하였던 것입니다 전쟁을 눈앞에 둔 마당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삯을 주고 사온 용벙들을 돌려보내라고 하니, 아마샤는 크게 당혹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에돔을 성공적으로 무찌를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로서는 군사들을 되돌려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스라엘 군대에게 삯으로 준 일백 달란트를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움이 가의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다시 말해 아마샤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이익을 고려하여 하나님을 거역해야 하는가 하는 갈등에 휩싸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아샤가 맞게 된 선택의 갈등과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희생을 치르지 않고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는가?' '고통 없이 그리스도의 종이 될수 있다면 누군들 신앙인이 되지 않겠는가?' 쾌락을 좆아 타락의 길을 걸을 것이냐,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하여 희생의 길을 걸을 것이냐를 선택하는 결단의 상화에서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수많은 신앙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찾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셔 들인다고 외치면서 자기 이해에 관계된 문제에 부딪히면 하나님의 명령이나 뜻을 외면하는 것이 현실의 모습은 아닙니까? 우리가 아깝게 생각하여 차마 버리지 못하고 연연해하는 재물, 쾌락, 혹은 허영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아마샤가 버려야 했던 '일백 달란트'가 아닌지 생각해보십시오 (F. Storr)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1권, QT」, p417- 살며 생각하며 : 시장(市長)의 믿음 대만의 대북시(市)에서는 심한 태풍으로 댐이 자주 무너지는 바람에 시민들이 심한 식수난을 겪곤 했는데, 몇 년 전 부서진 댐의 보수 작업이 한창이던 때의 일입니다. 규모도 크고 다급한 공사여서 대북시의 시장도 현장에 나가 직접 공사를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온갖 고생 끝에 간신히 댐의 보수 작업이 마무리되려는 시기였는데, 기상대에서는 대만 크기의 두배에 달하는 태풍이 대북시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불어오고 있다고 예보했습니다. 신실한 신앙인이었던 시장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공든 댐이, 무너져 버릴 까 조바심을 내며 그 자리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 댐 공사가 완전히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큰 태풍이 불어온다면 이 댐은 또다시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대북 시민은 다시금 식수난에 시달려야 하고......하나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시장은 기도하던 중에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겠다는 확신이 섰습니다. 그리고 이내 ‘하나님이 태풍의 방향을 바꾸실 것이요’라고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솟구쳤습니다.마치 주대한 전략을 전해야 하는 전령처럼, 기도를 마친 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릴까? 신문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하나? 그러면 틀림없이 그들은 나를 미쳤다고 조롱하겠지? 하지만 난 말해야 해.” 그는 하나님이 주신 세미한 마음의 움직임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한편, 큰 태풍이 몰려온다는 기상대 발표를 들은 기자들은 시장을 찾아왔습니다. “일 주일째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데 또 태풍이 다가온답니다. 이에 대해서 시장님은 어떤 대책을 세우고 계십니까?” 이러한 다급한 질문에 시장을 여유를 갖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께서 태풍의 방향을 바꾸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그러자 기자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기상대에서 태풍이 몰려온다고 예보했는데 시장님의 기도로 태풍이 진로를 바꾼단 말입니까?” 그러나 잠시 후, 비웃던 무리들의 웃음이 무색해질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태풍이 대만 가까이까지 와서는 진로를 싹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시장의 말을 상기하며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좋은 일들은, 그가 의심 없는 믿음으로 순종한 것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1권 , 예화」p416- 23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좋으신 우리 하나님(사40:1-31) 말씀묵상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사 40:1- 31) 세상에서 어렵고 힘든 일이 많아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 무한하신 창조자를 의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세계는 인간의 지혜로 다 측량할 수 없지만,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기에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고의적으로 거부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자신의 힘을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늘 도와주시길 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어떤 죄악이라도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이시며(2), 여호와의 영광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시는 분이시며(5), 사람은 풀이나 꽃처럼 유한하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말씀을 주시는 분이시며(6-8),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는 분이시며(11), 바다와 하늘과 산들과 짐승들과 산림들, 모든 피조물들을 지으신 분이시며(12-18), 어떤 우상들이나 지혜 있는 사람이라도 비교할 수 없는 분(19-26)이십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무한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창조주이십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힘과 지혜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모든 피조물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한한 피조물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고 의지해야 합니다. ☞ 하나님으로부터 위로와 새 힘을 덧입는 자입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억울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 자신의 사정을 하나님께서도 모르신 것 같고, 원통한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하기도 합니다(27). 그러나 이사야는 그렇게 된 원인이 영원하신 하나님, 땅 끝까지 창조하신 하나님은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이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해줍니다(28).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때, 참된 위로를 받을 수 없으며, 힘이 펄펄 나는 청년이나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질 수밖에 없지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로와 새 힘을 덧입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고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좌절감이 들 때는 없었습니까? 이 때가 하나님을 깊이 만날 때입니다. 조용히 하나님께 위로를 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해보십시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 힘과 용기가 솟아오를 것입니다. -프리셉트/「 묵상하는 사람들」 2006. 6. 17- 살며 생각하며 : 불가능의 가능 1985년 5월 15일 미국 콜롬비아 대학의 학위수여석에 낯선 동양인 한 사람이 감격적인 눈물을 흘리며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전재경, 나이는 50세. 특별히 눈길은 끈 것은 그가 여느 사람과 달리 맹인아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전 박사는 충남 부여에서 목수였던 아버지의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으로 자랐으나 7살 되던 해 당시의 유행병인 안질(眼疾)을 앓다가 실명하게 되고 그때부터 고통과 불행의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서울맹아학교에 입학한 그는 좌절과 고통을 견뎌내며 열심히 공부했으므로 드디어 건국대 역사지리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4년의 과정을 무사히 마친 그에게는 여러 가지 장애요소가 많았지만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미국연수 1년 예정으로 도미하여 장학금까지 받는 행운도 얻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로 뉴욕의 복잡한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 타고 가야 하는 맹인전용도서관을 20년이나 왕복했고, 50세가 되는 해인 1985년 드디어 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는 공부하던 중 그의 아내 에드나와 결혼했는데 신앙적인 아내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연구가는 전혀 불가눙했을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역사상 승리의 월계관을 쓴 인물들은 모두가 자기의 운명을 저주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평정으로 대처하였던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선한 뜻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돌아보며 다짐하며 : 시한부 인생 미국의 오빌 켈리라는 사람이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가 절망에 빠져있던 어느 날 켈리 부인이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뿐만 아니라 나도 죽고 모두 죽게 되잖아요.” 오빌 켈리는 순간 암흑 속에서 빛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그렇다면 생각 없이 죽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무언가 좋은 일을 해야겠어.” 부부는 특별한 일을 계획하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모인 사람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이 모임은 ‘암 파티’입니다. 우리 부부는 MTC라는 단체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MTC는 Make Today Count(오늘을 보람있게)의 약자입니다. 암 환자에게 예수님을 전하여 천국의 소망을 갖게 합시다.” 이날 시작된 MTC는 오늘날 많은 암환자들에게 의미있는 소망을 안겨 주며 그들을 구원의 길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갑니다. 길어야 100년 안팍입니다. 이 땅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이 제한되어 있음을 기억하고 그 시간 동안 소중한 일들을 이루고자 노력한다면 사람들은 조금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6. 17 오늘의 기도 : 낙심치 말게 하소서 주님! 한 순간의 실수 앞에 낙심치 말게 하소서 지금의 어두운 환경과 좌절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나의 작은 신음소리까지도 듣기를 준비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심이 믿어지게 하소서 오늘의 고통이 내일의 소망이 되고 지금의 한숨이 내일의 푸른 꿈이 될 수 있음을 믿어지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연약하고 고달픈 인생들을 위로해주시며,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천지 만물을 주권적인 능력으로 창조하시고, 힘과 능력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을 평생토록 앙망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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