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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0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2. 10:38

 

30주(월)

찬송 :(새)288장, 204장

■ 에스겔 15-19장: 유다의 심판에 관한 비유들

15장 무익한 삼림

16장 음란한 아내

17장 두 마리 독수리

18장 두 부자

19장 두 사자

☞ 줄거리

에스겔은 예레미야처럼 극적인 비유들을 사용해서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죄악을 행하는 유다는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열매 맺지 못하는 포도나무처럼 버림을 받고 쓸모없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유다는 자기를 키워주고 사랑한 남편을 배신한 음녀처럼 신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두 마리 독수리 비유를 통해서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과 동맹을 맺은 유다의 멸망에 대해서 경고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현재 당하는 고통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버지의 죄로 인해 자녀가 고통을 받지 않을 것이며, 각자가 자기 행위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죄에서 떠나지 않는 유다의 방백들이 곧 포로가 되어 애굽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물가에 심긴 큰 나무가 뽑혀서 광야에 심겨진 것처럼, 유다에서 흩어져서 다른 나라에 가서 비참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18:1-32)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31)

무섭게 죄에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악인이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혼이 회개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압도적 심판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주 말하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2절)고 했습니다. 이 말은 아비, 즉 윗세대의 범죄의 결과로 자신들이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숙명론에 빠지면 아무 할 일이 없어집니다. 아비 세대의 범죄로 아들 세대는 할 수 없이 형벌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숙명론을 교정해주십니다

.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20절) 아무리 의인의 아들일지라도 죄를 지으면 죽게 되고, 아무리 악인의 아들일지라도 의를 행하면 살게 됩니다. 우리도 재앙과 심판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대상에 돌리므로 숙명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에게 오는 모든 악은 당사자의 죄로 인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자꾸 다른 곳으로 원인을 전가할 때,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과 원망은 많아질지언정 진실된 회개로 나아가지 못함으로 새로워지거나 달라질 수 없는 것입니다. 숙명론에 빠지지 말고, 회개함으로 새로워지기 바랍니다.

“나 주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23절) 하나님은 악인이 돌이켜 사는 것을 진심으로 원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함으로써 그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악인일지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살게 될 것이며, 또 아무리 의인일지라도 돌이켜 악을 행하면 죽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은 살고 죽는 것이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들에게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꾸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25,29절)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너의 길이 공평치 않다하시면서 자발적인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31절) 무섭게 죄에 대한 진노로 일관하셨던 하나님께서 소망의 메시지를 주십니다. 지금까지 불경건과 세상적 가치의 숭배, 그리고 자유의지의 남용이라는 범죄 속에 살았을지라도 ‘회개의 문’앞에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원함으로 ‘회개의 문’을 열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여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십시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1. 12

살며 생각하며 : 강도의 회개

안양 교도소의 죄수를 찾아 들어가려면 철문을 7개 지나서 죄수를 면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살인 죄수로 죽을 날만을 고대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흥비를 마련하려다가 자기 친척 아주머니를 목졸라 죽인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성경책을 넣어주었습니다.

독방에서 하는 일이 없이 성경을 집었다가 던지곤 했습니다. 마태복음 1장 족보를 읽으니 볼 맛이 없어 책을 집어 치웠습니다. 그러다가 심심해서 마태복음 2장 예수 탄생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의 십자가 곁에 강도에 관한 기사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자기와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던 것입니다. 강도가 구원을 요청했을 때 예수는 책망하지 않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에 감동되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열심히 전도를 하여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성서 연구사/「기독교 문장 대백화사전, 22권」p785-

 

기도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

참고 성경 구절

1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기 때문

신 1:43-46; 막11:25,26

2

불의한 행실로 하나님을 노하게 했기 때문

신 3:26

3

교만하고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

삿 20:19-23; 슥 7:12,13

4

스스로 겸비하여 구하지 않기 때문

대하 7:14

5

교만해저 하나님을 버릴 수 있기 때문

대하 15: 2; 호 5:4-6

6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

시 40: 1; 합 2: 3

7

은밀한 죄를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

시 66:18; 사59: 2

8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 크기 때문

잠 1:24-30

9

다른 자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

잠 21:13

10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기 때문

잠 28: 9; 겔20: 8

11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

렘 7-16-18; 겔 20:31

12

아직도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기 때문

렘 14:12-12

13

열심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

렘 29:13; 마 7:7,8

14

외식하는 자와 같이 형식적으로 구하기 때문

마 6: 5

15

뚜렷한 목적이 없이 구하기 때문

마 6: 7

16

타인의 죄를 용서하지 않기 때문

마 6:14,15; 막 11:25,26

17

잘못 된 동기로 구하지 때문

마 7:11; 약 4: 3

18

믿음 없이 구하기 때문

마 17:20; 히 11:6

19

응답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

마 25: 1-30

20

낙망하고 염려하며 구했기 때문

눅 18: 1-8; 빌 4: 6

21

하나님의 이름으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

요 16:24

22

의심과 두 마음을 품고 구했기 때문

약 1: 5-8; 4: 8

23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있기 때문

벧전 3: 7

24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

요일 3:22

25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기 때문

요일 5:14

정리하며 확신하며 :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4권, p731

30주(화)

찬송 :(새)321장, 351장

■ 에스겔 20-22장: 유다의 죄

20장 죄의 유산

21장 죄의 값

22장 죄의 내용

☞ 줄거리

에스겔은 완고한 현재에서 과거로 시선을 돌려서 유다가 지었던 죄의 목록을 만들었습니다. 에스겔이 제시한 유다의 죄의 목록을 보면 유다는 10계명의 모든 계명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유다는 우상 숭배를 했고, 안식일을 범했으며, 자녀를 우상에게 드렸고, 여호와를 무시했다. 또한 유다는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토색을 하고, 과부와 고아들을 학대했으며, 불결과 간음, 근친상간과 부정직한 상거래를 자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동안 이러한 유다의 죄를 계속해서 참아주셨으며, 종들을 보내서 그들의 회개를 권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죄에서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죄악을 참지 않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유다의 죄에 대해 심판을 내릴 칼이 빼어졌고, 그 칼은 결코 다시 칼집에 꽂히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유다의 심판은 확정되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내 이름을 위하여(겔20:1-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20:44)

 

하나님께서 찾아온 장로들의 입을 닫으시고는 이스라엘의 과거와 장래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꼭 알아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패역함을 알아야합니다(20:1-32).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아마도 에스겔의 예언에 대해 어떤 항변을 하러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입을 막으시고는 마치 역사교육을 하시듯 애급에서의 불순종과 우상숭배, 광야에서의 율례를 행치 않음,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모든 패역함, 가나안 땅에서의 우상숭배를 신랄하게 고발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모든 가증한 행음과 우상숭배를 지적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원망하며 자기들의 처지에 대해 하나님께 항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악 됨을 까맣게 잊은 채,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대하시는 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우리가 언제 하나님께 불평하고, 또 감사하지 못합니까? 우리의 죄악 됨을 잊을 때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 사로잡혀, 죄의 종노릇하던 때를 너무나 쉽게 잊기 때문에 우리는 또 너무나 빨리 감사를 잊고, 불평을 터뜨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항변하기 전에 자기들의 패역함을 정직히 알아야 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죄악 됨을 여실히 알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아야합니다(20:33-44). 이스라엘은 자신에 대하여 알아야하고, 또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죄악 됨을 알아야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 은혜의 풍성함을 알아야합니다. 과거와 현재까지 일관되게 죄악 된 이런 패역한 족속이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을 택정하신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위하여” 보존하셨기 때문이지, 이스라엘에게 구원받을 만한 의로움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결코 자기 힘과 의로 큰 민족이 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더욱 겸손하여,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들도 자신의 패역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과거에 충분히 패역했고, 지금도 그 행실이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가운데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임마누엘로 역사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더욱 겸손하게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기독 대학인회, 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1. 14 -

살며 생각하며 : 미련한 타조에게 주신 은혜

타조는 날개가 달렸으나 날지 못하는 새입니다. 타조는 알을 낳을 때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타조는 여름날의 열기가 밀 이삭을 패기 전에는 결코 알을 낳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은 이 시기를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알아냅니다. 타조가 굳이 이때를 기다려서 알을 낳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워낙 금새 잊어버리는 성질을 가진 타조는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은 뒤에 모래를 덮어 두면 자기가 알을 낳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전혀 돌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운 계절에 알을 낳는 것입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타조 알은 저절로 부화되고 새끼가 제 꼴을 갖추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처럼 미련한 것 같아 보이는 타조에게도 가장 적합한 때에 알을 낳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얼마나 풍성한 것들을 주셨는지요.

- 피지올로구스/「기독교 동물상징사전」-

30주(수)

찬송 :(새)629장, 9장

예례미야 48-49장, 에스겔 23장: 예루살렘과 주변국들의 멸망

렘 48-49장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에 대한 심판 선고 및 유다 심판 예고

겔 23장 음란한 두 자매의 비유

☞ 줄거리

예레미야는 마지막으로 열국들에 대한 심판을 예고함으로 예레미야서를 마감했습니다. 예레미야는 동에서 서로 옮겨가면서 하나님께서 열방을 통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고, 여호와를 거부했던 유다의 주변 족속들은 이제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서 엘람까지, 그리고 다메섹에서 에돔의 영토까지 존재하는 모든 민족은 적에 의해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 뿐 아니라 하나님을 떠났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역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영적 음행(겔23:3)

“그들이 애굽에서 행음하되 어렸을 때에 행음하여 그들의 유방이 눌리며 그 처녀의 가슴이 어루만진 바 되었나이다”(겔23:3)

성경에는 음행에 대한 두 가지의 경고가 나옵니다. 그 첫째는 육적인 음행에 관한 것이고 둘째는 영적 음행에 대한 것입니다.

이 영적 음행은 육체적인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을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주님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의뢰할 때 이를 음행이라고 하셨을까? 이는 주님께서 그의 성도들을 신부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의 사랑의 대상으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성도의 관계를 표현하는 가장 아름다운 비유가 신랑과 신부의 비유일 것입니다. 이보다 더 깊고 아름다운 이야기도 있겠습니까? 아가서는 그 은밀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섬세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아2:10,11).

그러나 신부가 신랑이 아닌 다른 사람과 관계 가질 때에, 신랑의 사랑은 혹독

한 질투와 분노의 마음으로 바뀌게 됩니다. 질투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주님을 온전히 떠나는 것은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 남편은 여전히 두고 세상으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간통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 간통에 대하여 그토록 분노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린양의 순결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신랑을 위하여 아름답게 단장하고 그분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자신을 정결케 하며 깨어있는 신부들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신부들이 더렵혀 있으며, 더렵혀지고 있고 그렇게 되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과 행음하며 앗수르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행음하였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만을 의뢰하지 않고 그들을 의뢰한 것을 행음이라고 보신 것입니다.

오늘날 너무나 많은 주님 신부들이 돈을 의뢰하고 사랑하며, 세상을 의뢰하고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제 본남편에게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이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주고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9권 , QT」, p305)

살며 생각하며 : 사탄 음악

어느 일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미국에서는 심각한 악마 숭배 현상이 급속도로 늘고 있는데, 숭배 예식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고문하거나 약물복용, 어린이를 상대로 한 변태 성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종교 운동가나 가족협회와 같은 단체들은 악마적이고 마술적인 주제를 사용하는 록음악과 저속하고 가학적이며 폭력적인 섹스를 노래하는 곡들로부터 10대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 과거에 ‘록 스타’였던 어느 복음전도자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로큰롤(Rock & Roll)은 하나의 음악 양식 이상의 것으로 그것에는 도덕을 파괴하는 힘이 들어있다. 그것들은 방종과 성욕을 찬양하도록 하여 인간의 모든 감각을 마비시켜 도덕적인 무관심과 냉담한 상태를 만들어 버린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처럼 부패하고 사악하며 관능적이고도 악마적인 음악이 1970년대부터 지구상에 쏟아져 나왔는데 그 정도는 해가 갈수록 더욱 심해져 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곡들을 살펴보면 “지옥의 종소리” “지옥은 나쁜 곳이 아니다” 등의 노래로 지옥을 아름다운 곳으로 인식시키고 있고, “나는 친구에게서 약간의 도움을 받음으로 인해 황홀한 기분이 되었다”라는 노래는 자살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또한 “젊어서 죽음으로 아름답데 남아 있으라”라는 노래는 자살을 권유하고 있으며, “처녀들은 누구나 엘리스를 사랑한다” “니키타”등의 노래는 동성연애를 비호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가수나 그룹들이 섹스, 마약, 폭력, 자살 등을 조장하는 노래들을 서슴없이 부르고 있습니다. 또한 복장이나 장식, 음반 재킷 등에도 전통적인 사탄의 상징 등을 사용함으로써 은연중에 사탄을 찬양하고 추종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사탄은 대중음악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고 있습니다. 죄악을 놀이처럼 인식하기 하여 죄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거룩한 찬양 소리가 널리 울리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로 세워지도록 열심히 복음을 선포해야 할 것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609-

정리하며 확신하며 : 성도가 경계해야 할 것들

 

성도가 경계해야 할 것들

참 고 성 경 귀 절

1

부드러운 유혹의 말

겔 13:10

2

우상 숭배

겔 23:48

3

위선

마 16: 6

4

시험

막 14: 38

5

양심의 무감각

눅 11:35

6

탐심

눅 12:15

7

교만

롬 11:20,21

8

영적 무감각

롬 13:10,11

9

다른 교훈

고전 3:10,11

10

육체의 힘

갈 5:18

11

방탕함

엡 5:18

12

세상의 교훈

골 2: 8

13

영적 게으름

히 2: 1- 4

14

악인과의 연합이나 교제

벧후 3:17

15

배교

요이 1: 8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0권, p976

30주(목)

찬송 :(새)278장, 336장

■ 에스겔 21장, 24장, 27-29장: 유다의 마지막 기사들

21장 심판 예고

24장 무화과 두 광주리 비유

27-29장 바벨론에게 항복 권유, 거짓 선지자의 심판과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

☞ 줄거리

유다를 위해 정해진 시간이 마침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의 침공을 받고 두려워 떨던 시드기야에게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두 개의 무화과 열매가 담긴 광주리를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갈 유대인들은 좋은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처럼 될 것이고,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썪어서 먹을 수 없는 무화과가 담긴 광주리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유다를 치러 온 바벨론에게 대항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냐라는 거짓 선지자는 결코 유다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후에 그는 거짓 예언을 한 일로 인해 죽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잡혀간 사람들이 70년이 지나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그는 포로가 된 유대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바벨론에 평안히 머물면서 때가 될 때를 기다리라고 전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흥망은 하나님께(28:1-26)

“내가 그에게 염병을 보내며 그의 거리에 피가 흐르게 하리니 사방에서 오는 칼에 상한 자가 그 가운데 엎드러질 것인즉 무리가 나를 여호와인줄 알겠고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그 사면에서 그들을 멸시하는 자 중에 찌르는 가시와 아프게 하는 가시가 다시는 없으리니 그들이 나를 주 여호와인줄 알리라 ”(28:23,24)

 

모든 권력자나 모든 나라,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화려했던 두로의 왕과 시돈은 하나님 앞에서 멸망하고, 멸망했던 이스라엘은 회복됩니다. 이것을 통해 분명한 역사적 사실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망합니다(28:1-23) 두로의 왕은 점점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신이라고 칭했습니다. 누구도 자기의 강력한 위치를 위협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 즉 바다의 중심에 앉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로 왕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순종해야 할 위임 통치자입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잊고 스스로 교만해졌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반드시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겸손은 인격의 문제이면서도 동시에 생존의 문제가 됩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이 교만입니까? 하나님을 보던 눈을 돌려서 내가 가진 것을 보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교만입니다. 돈과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 때문에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가려질 때 교만해집니다. 나에게 있는 교만한 마음을 이 시간에 버리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면 회복됩니다(28:24-26)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기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하나의 종교적 권력과 영적 오만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도 섬기지만 다른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추악한 종교적 외도가 온 나라에 유행했습니다. 결국 바람 난 이스라엘은 강대국에 멸망당했습니다.

국가적 멸망은 정치적 충격보다는 영적인 충격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망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 이들은 철저히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거룩한 삶을 회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강대국의 포로가 되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되기 시작한것 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살아가기 시작했을 때(25절),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정치적 멸망이라기보다는 그들의 마음의 멸망이었고, 이스라엘의 회복은 정치적 회복이기 이전에 그들의 마음의 회복이었습니다. 지금 어떤 고통의 순간에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거룩한 삶을 써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회복이 부록으로 따라옵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2. 11-

살며 생각하며 : 아프레 쓸라

프랑스 파리의 어느 수도원 입구에는 큰 비석이 있습니다. 그 비석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Apres cela(아프레 쓸라), Apres cela, Apres cela.”

그 글자의 뜻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 그 다음은”입니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법과대학 졸업반에 다니던 어느 학생이 한 학기 수업을 남기고 학비를 준비하지 못하여 어느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학생의 사정을 들은 신부가 말했습니다.

“마침 조금 전에 한 사람이 좋은 일에 써 달라고 돈을 놓고 갔는데 이건 분명히 자네를 위한 것 같군.”

신부가 돈을 청년에게 건네 주자 너무 쉽게 돈을 얻은 청년은 오히려 당황했습니다.

“이거 정말 가져가도 되는 겁니까?”

“물론이지, 하나님께서 자네에게 주는 것일세.”

“감사합니다.” 청년이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려는데 신부가 불렀습니다.

“잠깐 내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을 가지고 가서 뭘 하려나?‘

“예, 물론 학기 등록을 해야지요.”

“그 다음은(Apres cela)?”

“공부해야죠.”

“그 다음은(Apres cela)?”

“졸업하죠.”

“그 다음은(Apres cela)?”

“변호사가 되어서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를 하겠습니다.”

“좋은 생각이네. 그런데 그 다음은(Apres cela)?

“돈 좀 벌겠습니다.”

“Apres cela?”

“결혼도 헤야지요.”

“Apres cela?”

질문이 계속되자 학생은 신부가 질문하는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학생이 머뭇거리자 신부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그 다음은 내가 말하지., 그 다음에는 자네도 죽어야 되네. 그다음은 자네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네.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청년은 신부와 헤어지고도 그 음성이 귓가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Apres cela, Apres cela”

학생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계속 들리는 소리에 고민을 하다가 학업을 그만두고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Apres cela’를 좌우명처럼 여기고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비석에 쓰여 진 ‘Apres cela’는 그 수도사가 평생 동안 좌우명처럼 여기던 그 글을 새겨 놓은 것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724-

30주(금)

찬송 :(새)401장, 457장

■ 열왕기하 25:1-21, 역대기하 36:1121(유다 최후의 날),

예례미야 39:1-18, 52:1-30, 에스겔 24,25장 예루살렘의 멸망

☞ 줄거리

예레미야의 예고대로 시드기야 왕 제 9년 10월 10일에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침공했습니다. 예례미야의 예고대로 시드기야 왕 1제 1년 4월 9일에 예루살렘 성은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그때에 바벨론에 반항했던 시드기야는 두 눈을 뽑힌 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시위대 장관인 느부사라단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기물들을 바벨론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다의 모든 귀족들을 포로로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 곳에서 70년을 지내야만했습니다. 이 70년은 그들이 7년마다 지켜야 하는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강제로 그들을 쉬게 하신 것이었습니다(대하 36:21). 그때에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가마 솥을 걸고 불을 지펴서 양고기를 삶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장차 예루살렘에 심판의 불을 내려서 유다 백성들을 삶은 고기처럼 만들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예루살렘의 함락( 렘39:1-18)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 날에 너를 구원하리니 네가 그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지 아니하리라”(17)

 

권위 있는 경고는 그 결과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경고를 무시하는 자는 매우 어리석은 자입니다. 예레미야의 경고대로 예루살렘은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의 함락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줄기차게 말씀하시며 경고하셨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 영적으로 바른 삶을 살아라. 그리고 바벨론에 대항하지 말라” 그러나 유다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각성과 회개보다는 오히려 우상을 숭배하고 더욱 타락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애굽을 의지하고 바벨론에 대항하였습니다. 결국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은 포위되고 함락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거짓된 신앙으로 무장된 채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 그저 인간적인 확신으로 무장한 신앙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확신에 따라 사는 자들은 결국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런 의미 없이 땅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되었고 성취되었으며 지금도 성취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성취될 것입니다(마5:18).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거절하였던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매우 단호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해 결국은 비참한 지경에 처하였습니다. 자신의 눈앞에서 아들들과 자신을 따르던 귀인들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고 자신은 눈이 뽑혔고 사슬에 결박된 채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차라리 자신이 죽었더라면 더 나았을 참혹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레미야와 그를 선대하였던 에벳멜렉은 참혹한 재앙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불신앙으로 반응하였던 자들에 대하여 매우 단호한 심판을 하시는 하나님, 그렇지만 신앙으로 반응하였던 이들에 대하여는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단호하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과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해 보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을 가볍게 여기거나 심지어 무시하기까지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를 빨리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0. 14-

살며 생각하며 : 엄숙한 하나님의 심판

‘로댕’하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조각상이 얼른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덕수궁에서 열렸던 그의 작품전에 가서 문제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을 소재로 해서 지옥문 위에 만들어진 조각품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 작품을 보며 제목을 누가 붙였는지는 모르지만 지옥문 위에 붙여진 글귀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옥문 앞에까지 갔다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지옥문에서 무슨 생각을 할 시간이 있으며 무슨 생각이 필요하겠습니까? 때가 너무 늦습니다.

그 작품을 감상하면서 약간의 모순을 느꼈지만 그것대로 우리에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나,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있는 모든 사람들 앞에 다가올 최후의 심판에 대해 마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처럼 우리도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깊이 머리를 숙이고 손으로 턱을 고이고 조용히 겸손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런 곳이 있단 말인가?’, ‘내가 비록 예수 믿고 교회에 다니지만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확신이 나에게 있는 것일까?’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요, 또한 엄숙한 과제입니다.

-옥한음 목사/「문밖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

정리하며 확신하며 :간이 전적 타락한 증거들

 

타락한 증거들

참 고 성 경 구 절

1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지 못함

로마서 3:11; 전도서 5: 1

2

하나님을 찾지 않음

로마서 3:11; 스가랴 11:26

3

도덕적으로 참 선을 행치 않음

로마서 3:12; 시편 14: 3

4

행하는 바 모든 것이 무익함

로마서 3:12; 이사야 53: 6

5

입으로 저주와 악독이 가득한 말을 함

로마서 3:13,14 시편 10: 7

6

악행을 저지르는 데는 빠르고 민첩험

로마서 3:15; 잠언서 1:16

7

파멸과 고생의 길을 자초함

로마서 3:16; 이사야 59: 7

8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므로 참 평안이 없음

로마서 3:17; 이사야 59: 8

9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음

로마서 3:187; 시편 36:1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No14 p708

30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참된 아내 상(잠12:4)

말씀묵상 : 나는 어떤 아내인가?(잠12:4)

성경에 보면 여러 부부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중 남편에게 욕을 끼친 여인들이 다수 있습니다.

남편에게 선악과를 주어 인류 타락의 길을 열었던 여인 하와, 쌍둥이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겠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면서도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 야곱을 축복하기 위해 거짓 꾀를 내었던 리브가, 세상의 정욕을 좇아가느라고 남편을 배반했던 고멜, 하나님께 헌금할 돈을 남편과 함께 공모해서 빼돌리고 거짓말을 했다가 남편과 같은 날에 숨진 아내 삽비라 등등.

반면에 남편이 면류관이 된 여인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행하지 않은 자식들의 할례를 긴급히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막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 어리석어서 결국 죽은 남편이었지만 현명하게 행동해서 큰 화를 막은 여인 아비가일, 남편 아굴라와 함께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신앙생활에도 모범을 보였던 여인 브리스길라 등등, 참된 아내의 모습은 여권이 신장되어 이혼이 급증한 현대 사회에서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경 속의 참된 아내 상을 이어나갈 아름다운 아내들이 많아 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살며 생각하며 : 하나인 듯 둘이고 둘인 듯 하나인 삶

부부라고 해서 싸우고 다투는 일이 왜 없겠습니까

어떤 시인은 '부부란 결코 하나가 돼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그것은 한쪽이 완전히 굴복하여 하나가 된다거나 자기 존재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삶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뿌리는 하나지만 머리는 둘인 콩나물처럼 상대방의 정신세계를 인정하면서 한 곳을 향해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한 몸이 되어 살아가면서도 두 사람의 존재가 각각 살아 있는 삶이 진정한 부부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상대방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분재처럼 만들어가려는 욕심, 상대방에게만 모든 것을 의지하려는 집착..모두 버리고 그가 살아 움직이는 그 모습 그대로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결혼 생활의 고통은 소유욕과 집착과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지나친 욕심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아보십시오 손의 따듯함이 전해져오거든 이 따듯함이 어디서 오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이 그렇게 따듯하게 살아있기에 내 손도 함께 따듯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보인다. 중에서-송기배

돌아보며 다짐하며 : 가장 멋진 인생이란

가장 현명한 사람은 늘 배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정치가는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이 되면 하던 일을 후배에게 맡기고 미련없이 떠나는 사람이며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개구리가 되어서도 올챙이 적 시절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장 좋은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이 가진 지식을 아낌없이 주는 사람이고, 가장 훌륭한 자식은 부모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는 사람이며, 가장 현명한 사람은 놀 때는 세상 모든 것을 잊고 놀며 일 할 때는 오로지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훌륭한 삶을 산 사람은 살아있을 때보다 죽었을 때 이름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삶 속에서) -‘뜻과 의미있는 있는 글’(2007.06.13)에서

오늘의 기도 : 부부싸움을 하고 난 후의 기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짝을 찾은 기쁨은 잠시 뿐이고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면서 고독하게 된 아담과 하와를 기억합니다.

저희 부부도 신혼의 즐거움은 잠깐 뿐이요 잠시의 실수로 서로를 원망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의심하는 부부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애정만 있다면 대부분 극복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의견의 충돌을 하였사오니 사랑의 주님, 서로에 대한 인내심과 애정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서로가 주어진 조건에서 성의를 가지고 바르게 이해를 하면 감추어진 애정이 싹트며, 잃어버린 화목을 다시 회복할 수 있사오니 자기중심을 벗어나 서로의 입장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옵소서.

결혼 전에 가졌던 아름다운 꿈과 자기의 현실과의 차이 때문에 걷잡을 수 없는 불만을 실감하게 되오니 상대방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기대하는 어리석은 태도를 피차 버리게 하옵소서.

내가 그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듯이 그도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그 기대를 찾아서 도와주려고 노력하게 하옵소서,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인간이기에 어두운 면도 있고 밝은 면도 있음을 알고 자신의 잘못을 찾아 반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성격의 장단에 있어서도 서로가 이해하며 그의 단점을 들추어내기보다는 그의 장점을 보고 서로 도우면서 사랑을 회복하여 화목한 부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