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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2주 성경통독 묵상 자료(월-토)

에반젤(복음) 2020. 9. 22. 10:35

 

32주(월)

찬송 :(새)459장, 514장

■ 열왕기하 25:22-26, 예례미야 40-44장: 예루살렘 멸망 후의 참화

40 장 예레미야의 석방

41 장 이스마엘의 반항

42-43장 애굽으로의 도망

44 장 애굽에 대한 예언

☞ 줄거리

유다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망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를 통해서 계속 전파되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 성을 떠나면서 꼭두각시 통치자 그다랴를 총독으로 세웠습니다. 그때에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성에 남아서 동족들에게 여러 가지 필요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꼭두각시 통치자 그다랴를 거부하고 그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그다랴를 죽인 후에 하나님의 권고를 무시하고 애굽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곧 애굽이 파멸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그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애굽을 의지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애굽을 의지하다가 여호와의 징계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백성들의 중보기도 요청(렘42:1-6)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고하리라 (42:4)

애굽으로 이주하려고 계획했던 요하난과 군대 장관 그리고 유다의 남은 백성들은 예레미야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합니다(2). 그들은 매우 공손히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3).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할 것”이라고 말하고(5),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좋고 좋지 아니함을 물론하고” 모두 청종하여 들을 것임을 고백합니다(6상). 그리고 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6하)라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태도는 매우 공손하며, 깊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애굽으로의 이주를 결정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중보 기도를 부탁한 것은 자신의 결정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것은 공손을 가장한 오만이며, 신앙을 가장한 불신앙입니다. 그들이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애굽으로 간 것(43:6-7)은 그들의 기도 요청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를 잘 알게 해줍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 태도는 어떠합니까?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해 놓고 적절히 말씀을 인용하여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라고 말하지는 않습니까? 혹 이미 마음에 확고한 결정을 해 놓고도 기도라는 형식을 빌려 자신의 결정이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합리화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것은 나의 모든 생각과 뜻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 1999 10, 21-

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이 웃으시지 않겠는가?

가난을 미덕으로 삼던 수도원의 재정이 바닥났습니다. 수도원 기물은 낡고 끼니를 잇기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젖소를 먹이는 목동이었던 고셰는 약초를 이용하여 술을 만들게 됩니다. 그가 만든 ‘불로 장생주’가 날개 돋친 듯 팔리자, 수도원은 활기를 띱니다다. 고셰는 그 공로로 신부가 되나 계속하여 술을 만들며 시음하므로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고셰는 미사 중에 술주정을 하여 귀신들렸다는 말을 듣고 감금되어 술만 제조합니다. 고셰는 젖소만 키우게 해달라고 애원하나 거절당합니다. 저녁 미사가 끝날 때마다 사제는 고셰의 영혼을 위하여 합심기도를 드리자고 합니다.

그 시간에 술 만드는 낡은 건물에서 술에 취한 고셰의 슬픈 노래와 고함 소리가 들어옵니다. 이때 신부들은 염려하며 말합니다. “이를 어쩌나! 교구의 신도들이 알면 큰일인데….” 이것은 알퐁스 도테의 단편 「고셰 신부의 불로 장생주」의 줄거리로 신앙인의 위선과 독선을 잘 깨우쳐 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이 나옵니다. 웃음은 기쁨에서 나오는 웃음도 있으나 그 반대로 너무나 기가 막혀서 나오는 웃음도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물론 성경엔 주로 악인(불신자)들의 행태를 보시는 하나님의 비웃음입니다. 그런데 나는 신앙인들의 불신앙적인 행태에 대한 비웃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교회 안팎의 생활에 이중성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보며 웃으시지 않겠는가?-

- 박찬규 /「한 날라리 집사의 격려」-

32주(화)

찬송 :(새)535장, 325장

■ 예례미야 50-51장, 시편 79편: 바벨론과 예루살렘의 멸망

50장 바벨론의 장송곡

51장 바벨론의 딸

☞ 줄거리

하나님은 유다를 바벨론의 손에 붙여 심판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장차 유다를 친 바벨론 역시 멸망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갈대아(바벨론)가 약탈을 당할 것이라...온전한 황무지가 될 것이라. 바벨론에 거하는 자들은 그 모든 재앙을 보고 놀라며 비웃으리라!(50:10,13)"

그러나 예레미야는 심판에 대해서만 예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장차 하나님께서 유다에 베풀어 주실 구원에 대한 소망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은 구원에 대한 소망의 비젼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은 곧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야긴 왕은 바벨론에서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됩니다. 이 일은 장차 유다가 다시 회복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징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언약을 파기한 왕이 회복된 것처럼, 장차 언약을 파기했던 유다도 다시 회복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렘51 : 50 ~ 64)

“ 칼을 면한 자들이여, 서지 말라 행하라 ! 원방에서 여호와를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너희 마음에 두라”(51:50)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4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숱한 위험과 어려움이 가로놓여 있는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힘든 여행을 하는 순례자들에게 있어 한마다의 따뜻한 충고는 격려와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곧 도착하게 될 목적지와 그곳의 매력을 생각하면 여행의 지루함을 덜게 될 것이고 여행 중에 맞게 되는 위험에도 넉넉히 이길 힘도 갖게 되어 결국 성공적인 여행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당신의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더 높은 세상을 기억케 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3:2)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 삶이 천국과 비교한다면 덧없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잠시 이 땅에 머무는 이방인들이며 순례자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직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하늘나라에 진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관심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사방에서 위협을 받는 끊임없이 위태로운 생활입니다. 우리의 적들이 끊임없이 공격하므로 우리는 경계하여 그들을 막아내야 합니다.

신체적인 위험은 우리의 영적인 위험과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위험은 우리를 난처하게 속이기 위해 유혹물을 던지곤 합니다. 위험은 또한 신비하게 이쁜 모습을 한 친구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올가미에 걸려들고 맙니다.

그러면 위험이란 무엇을 뜻합니까? 이는 흔히 생각이 무디어지고 양심이 무력하게 됨으로 마음의 신선함과 영적 민감성 그리고 생활의 깨끗함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처럼 위험한 상황에 스스로 굴복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곳으로부터 구원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곧 예루살렘을 생각하십시오. 하늘의 빛을 이 땅으로 가져오십시오. 영원의 언덕에서 부는 신선한 공기를 이 탁한 환경으로 불어오게 하십시오. 천국의 음악 소리가 이 땅에까지 들려오게 하십시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재앙에 굴복하는 이유는 그들의 눈을 더 높은 곳에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눈을 들어 예루살렘의 영광을 보십시오.

-기독 지혜사/「 호크마 종합주석 구약 18권,QT」 p650-

살며 생각하며 : 영혼을 살리는 말

싸움에 지친 모든 하나님의 군사들에게는 격려의 사역이 필요합니다. 때때로 우리 모두는 긴 여행길에 지쳐서 5분마다 한 번씩 “아빠, 아직 멀었어요?”라고 물어보는 어린 자녀들과 같습니다. 인생은 여행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기나긴 여행을 막 시작한 것 같은 때에도 삶을 힘들게 만드는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인내가 필요한 싸움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매일 매일의 돕는 사역을 감당할 기회를 사용하는 방법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계속할 수 있어요. 용기를 내세요. 물러서지 마세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세요. 마음을 굳게 하고 계속 주님을 따르세요.”

이러한 권면은 단순히 상황에 직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판단이나 비판 혹은 정죄의 말도 아닙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우리는 승리를 얻을 때까지 영적 싸움에서 최선을 다하고 격려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그 은혜는 우리가 죄에 대해서 영적인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소망을 주는 유일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는 그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충만함을 입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사는 삶을 멈추고 그분을 위해 사는 삶을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나타내야 하는 격려와 권면의 사역입니다. (폴 트립)

-한태환 목사 /「설교 예화 자료집」-

32주(수

찬송 :(새)84장, 134장

■(수) 예례미야 애가 1-5장: 황무지에서 흘리는 눈물

1-2장 예루살렘의 황폐

3장 예레미야의 숙고

4장 예루살렘의 패망

5장 예레미야의 갈망

☞ 줄거리

예레미야 애가에서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비극적인 멸망을 비통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슬픔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시의 형식을 빌리고 있습니다. 애가서는 5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처음 네 장은 알파벳순으로 절묘하게 쓰여 졌습니다. 그 중에서 3장을 제외한 각 절은 히브리 알파벳 순서대로 시작하고 있고, 특히 3장은 알파벳의 각 글자가 3절씩 반복되고 있습니다.

애가의 글은 비참하게 짓밟힌 예루살렘 현장을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다가 그 모든 역사를 섭리하신 분이 여호와임을 기억했습니다. 그는 모든 배후에서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다시 소망을 발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장차 하나님께서 조국에 다시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점에서 "주의 성실이 크시다(3:23)"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포위 기간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마치고 있습니다. 그 후에 그는 마지막으로 멸망한 조국의 회복을 위해 기도를 드렸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소망(3:19-39)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3:32-33)

선지자는 본문 19-26절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속에서도 그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구원이 있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궁극적으로 회복시키신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이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다와 자신의 처절한 고통의 현실 앞에 깊은 좌절을 느꼈던 예레미야는 이제 심령을 하나님께로 향함으로서 격렬한 진노 중에 오히려 멸절되지 않음을 감사하며 자비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소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것, 즉 환란 중에 잠잠히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선하고’ ‘좋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합당한 성도의 모습입니다. 내가 소망이 있는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모든 환란에서도 의지할 대상과 이유가 있음입니다.

27-39절에서는 젊음의 때는 아직 실수가 많고 그로 인해 때로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징계와 연단 앞에 인내하며 순종하는 훈련을 통하여 아름답게 다듬어져 가는 것 또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온 우주와 세상을 당신의 주권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를 굽게 하고 죄악에 탐닉하는 인생에 대하여 엄하게 징계하시지만 그의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소망 중에 인내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죄로 인한 인생에게 있어서 고난은 있기 마련이며, 하나님께서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한 그에게는 회복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온전치 못한 매일의 삶 가운데서도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학생신앙운동,SFC)/「날마다 주님과 함께,본문 해설」2003. 12. 15-

살며 생각하며 :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동인, 동신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 여수 ▪ 순천에서 일어난 공상반란 사건에서 사범학교생과 고교생이었던 그들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공산 테러리스트에게 처형될 때 서로 감싸주고 대신 죽으려는 우애를 보였으나 결국 둘 다 ‘안재선’이라는 같은 또래 청년의 손에 주김을 당하였습니다. 이 지역은 국군에게 평정이 되고 안재선도 체포되었습니다.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고 슬픔에 잠겼던 손 양원 목사는 기독자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려고 각계 요로에 안재선의 용서를 탄원하였고 결국 이에 감동된 당국에 의해 안재선이 풀려나자 그를 양아들을 삼았습니다. 즉 아들을 죽인 원수를 아들로 삼는 원수 사랑의 도를 실천하였습니다.

안재선(손재선)은 예수 믿고 신앙을 고백했고 그 후 신학을 공부한 바 있으나 목회자가 ehjl지는 않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고백하기를 “사랑하는 두 아들 동인, 동신이 앉았던 그 밥상에 아들을 죽인 원흉 재선을 앉히고 조반을 먹을 때 내 입안에는 밥이 밥알이 아니라 모래알을 삼킨 듯했다”고 솔직하게 인간적인 고뇌를 표한 바 있습니다.

손양원의 일대기가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책으로 나왔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일제 때 신사참배를 거부해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엔 두 아들을 잃었으며, 한국 전쟁 때에 순교했습니다.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239-

■ 에스겔 32-34장: 파숫군 에스겔

32장 애굽의 멸망

33장 영적 파숫군

34장 거짓 목자와 참 목자

☞ 줄거리

하나님은 마침내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나타나셔서 에스겔을 유다의 영적 파숫군으로 임명하셨습니다. 에스겔의 임무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그 사명을 잘 감당하면 불순종에 대한 책임을 유다 백성들에게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일 에스겔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를 백성들에게 바로 전하지 않아서 유다가 멸망하면, 그 피 값을 에스겔에게 찾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 당시에 나라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외치던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32주(목)

찬송 :(새)93장, 93장

읽으며 묵상하며 : 선한 목자(34:1-3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찌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 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34:15-17)

 

이 시대는 ‘목자 같은’ 사람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목자 같은 사람 만 명보다, 목자 한 명이 더 필요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어려워도 하나님은 목자들이 바르게 서길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대조적인 두 부류의 목자들이 등장합니다. 나는 어떤 목자입니까?

이스라엘이 왜 포로가 되었습니까? 왜 흩어졌습니까? 그것은 양떼들을 인도할 목자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들을 먹이지 않고 자기만 먹었습니다(2절). 더구나 양들을 잡아먹고 털을 빼앗았습니다(3절). 그래서 이스라엘은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5~6절). 이스라엘의 비극의 본질은 목자(지도자)의 문제였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먹이는 것이 마땅합니다(2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양을 위해 자기를 드리기보다는, 자기를 위해 양을 착취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지 않게 되면, 그 공동체는 반드시 사라지게 됩니다. 외부의 어려운 환경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의 목자(지도자)들의 잘못된 자세입니다. 양 자체보다도 양털에 더 관심을 가진 삯꾼 목자가 되지 않도록 늘 나 자신을 살펴야겠습니다. 목자는 목회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녀의 목자이고, 선배는 후배의 목자이며, 공무원은 민원인의 목자입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가 목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양들의 필요를 알고 양들을 찾아서 고쳐주고 싸매주고 강하게 해 주는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16절).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질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처음에는 다윗 왕이라는 선한 목자의 모형을 기억하고 백성들을 잘 다스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양들을 다루면서 그들은 점점 양들로부터 취할 이익 앞에서 눈이 멀어져갔습니다. 선한 목자의 모형은 희미해지고, 돈과 권력의 지배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을 흩으심으로써 악한 목자들을 심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과 함께 긍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흩어진 그들을 향해,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우겠다’고 하십니다(23절). 그 목자는 이스라엘 왕 중에서 최고의 목자였던 다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라는 목자 모형을 통해 선한 목자 예수님을 보여주십니다. 결국 흩어진 양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목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양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심으로 선한 목자의 삶을 보여주셨습니다(요 10:11). 지난 날 동안 선한 목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까? 만일, 돈이나 권력과 같은 삯꾼의 관심사가 내 맘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가장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묵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양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는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6. 12. 17-

살며 생각하며 : 토마스 목사

“내가 서양 사람을 죽이는 중에 한 사람 죽인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할수록 이상한 감이 있다. 내가 그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는 두 손을 마주잡고 무슨 말을 한 후 붉은 헝겊으로 가죽을 싼 책을 가지고 웃으면서 나에게 받으라고 권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죽이기는 하였으나 이 책을 받지 않을 수 없어서 받아 왔노라.” 제너럴 서먼 호 사건 당시 대동강변에서 토마스 목사가 순교하던 장면입니다. 이 때 그를 처형한 군인은 평양성 수비대의 장교 박춘권으로 전하는데 이 때 받아 온 책이 한문성경이었습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박춘권은 물론 토마스가 죽음 직전까지 뿌리고 나누어 준 성경과 전도 문서를 받아 읽었던 사람들이 평양에 복음이 들어갔을 때 처음 믿은 초대교인들 가운데 여럿이 끼어 있었다고 합니다.

미국 상선 제너럴 서먼 호의 무례한 행동이 결국 토마스 목사를 순교케 하였으나 그가 최후까지 전한 복음의 씨앗은 한국 예루살렘 ‘평양’으로 꽃피어난 것입니다.(한영제/한국기독교 인물100년) -성서 연구사/「기독교 문장 대백화사전, 9권」p671-

32주(금)

찬송 :(새)574장, 303장

■ 에스겔 35-39장: 새 언약과 영적부흥

35장 에돔의 멸망

36장 새 언약

40장 마른 뼈도 살아남

☞ 줄거리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에돔의 멸망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소망을 잃은 유다를 위해서 새로운 언약을 선포하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시내산에서 맺었던 옛 언약과 달랐습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돌 판에 새겨 주었지만, 새 언약은 성령을 통해 율법을 사람의 마음 판에 새겨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자원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유다가 미래의 다시 회복될 것, 즉 소망의 비젼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가셨습니다. 그 골짜기에는 오래 전에 죽어서 말라 흩어진 뼈들이 수없이 많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그 마른 뼈를 소생시켜서 거대한 군대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바벨론에게 멸망하여 소망이 없어진 유다가 다시 회복되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읽으며 묵상하며 : 마른 뼈들아 일어나라 (37 : 1-28)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37:5,6)

사람의 가장 큰 고통은 미래를 빼앗겨버린 것입니다. 마른 뼈 골짜기는 생명이 없고 미래가 없는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그 곳에는 미래가 회복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이루어 가실 미래는 어떤 모습입니까?

골짜기에는 뼈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 곳은 생명의 기운이 전혀 없는 땅, 소망이 사라진 땅, 미래를 빼앗긴 집단적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무너지고 성전은 불탔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와서 절망에 절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포로들은 공동체적인 절망 속에서 바짝 마른 뼈가 되어버렸습니다. 병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죽어서 말라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그 절망의 땅에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마른 뼈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도록 명하십니다. 뼈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마른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향하여 말씀이 선포되었을 때 뼈들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마른 뼈로 가득했던 죽음의 골짜기는 이제 하나님의 정예 군사들이 집결한 주둔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절망을 완전한 소망으로 바꿉니다. 절망과 죽음의 그림자가 있는 곳, 미래가 사라진 곳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그 곳은 강력한 군대의 주둔지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죽음이나 절망은 있을 수 없습니다. 무덤과 같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말씀 앞에 서십시오. 마른 뼈가 군대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이 갈라지고, 우상을 숭배했으며, 사회적 약자를 착취했었습니다. 음행의 죄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지도자들은 공동체적 운명보다는 개인적 영달에 집착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타락하고 멸망했을 때,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막대기 두개를 붙이게 하심으로 통일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약속을 주십니다. 그 나라는 한 임금이 다스리는 하나의 나라, 더 이상 우상을 숭배하지 않는 정결한 나라, 선한 목자가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성소가 영원토록 함께하는 나라가 된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마른 뼈가 군대로 일어선 그 땅은 이제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사상적 배교의 북쪽과 윤리적 배교의 남쪽으로 나뉜 한반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새롭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통일 되고, 음란과 우상이 사라지며, 다윗과 같은 목자가 지도자로 세워지길 소망합니다. 지금은 비록 강대국의 포로와 같은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선포를 통해 하나님의 생기가 이 땅에 불어오도록 기도합시다.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6, 12, 20-

살며 생각하며 살며 : 그리스도인의 D-day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의 롬멜이라는 명장이 있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44년 6월 1일 독일 군대에게 프랑스 서부 해안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에게 프랑스 상륙을 허용하게 된다면 독일군이 한층 불리해 질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악화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개가 프랑스 서부 해안을 덮고 있었습니다. 기상 상황을 본 롬멜 장군은 안개가 낀 며칠 동안은 아무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내의 생일을 축하하러 가도 되겠다고 판단해 6일날 비행기를 타고 베를린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러나 롬멜 장군이 안심하고 자리를 비운 그 다음날 연합군의 대대적인 상륙 작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역사는 그날을 가리켜서 ‘디데이(D-day)’라고 부릅니다. 연합군이 독일을 패배시키고 세계 대전을 결정적인 승리의 자리로 바꿨던 날, 결정적인 승리가 확보된 날을 ‘디데이’라고 합니다. 물론 디데이로 다 끝난 것은 아닙니다. 연합군이 프랑스에 상륙한 뒤에도 독일은 최후의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독일이 패배하고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합니다. 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나던 날은 ‘디데이’라고 안하고 ‘브이데이(V-day)’라고 합니다. 바로 승리의 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는 십자가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담당하여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그날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의 디데이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단의 모든 계교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새 시대를 활짝 열어놓았지만 아직도 사단의 격렬한 저항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단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최종적으로 완전히 패배하고,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바로 브이데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디데이’와 ‘브이데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초림과 재림 사이의 긴장 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골로새서 2: 15)

이동원 목사(지구촌교회)

정리하며 확신하며 :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

 

원 어

이 름

성 경 구 절

 

엘로힘

하나님

창 1: 1

엘 엘룐

높으신 하나님

창14:22

엘 로이

감찰하시는 하나님

창16: 3

엘 솨다이

전능한 하나님

창17: 1; 35:11

엘 올람

영생하시는 하나님

창21:33

엘 벧엘

벧엘의 하나님

창35: 7

엘로힘 차디크

의로우신 하나님

시 7: 9

엘 카도쉬

거룩하신 하나님

사 5:16

야훼 엘로힘

여호와 하나님

창 2: 4,5,7,8

야훼

여호와

창3:26; 출3:14,15

야훼 솨파트

심판하시는 여호와

삿11:27

야훼 체바오트

만군의 여호와

삿 1:9; 렘11:20

아도나이 야훼

주 여호와

창15: 2, 8

아도나이

주(主)

창18:27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0권, p60

32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믿는 자에게 주시는 복(전3:12-22)

말씀묵상 :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주신 복(전도서 3장12-22) 인생에는 반드시 죽을 때와 심판받을 때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사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 땅에서 해야 할 일들

오늘 본문 말씀은 전도서 3:1-11 내용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에는 때와 기한이 있음을 말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죽음이라는 큰 한계를 두고 살 수밖에 없음을 말하는 것이며, 그것은 허무를 넘어선 영원을 사모하게 하신 하나님의 배려임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유한한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합니까? 전도자는 12절에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고의 낙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수고하여 일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서 나온 ‘분복’이란 표현과도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물질이나 환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마음에서 느끼는 기쁨이 바로 선물입니다. 유한한 인생에 있어서 최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14절).

불의의 재판에 관한 경고

이어 16절부터 전도자는 불의한 재판에 관해 언급합니다. 그는 공의가 행해져야 하고 약자가 보호되어야 할 재판에 불의가 난무한 것을 보았습니다. 인류가 생긴 이래 부정적인 재판은 계속 되어왔고, 전도자는 이러한 인생의 폐단을 목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재판에도 때와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죽음이란 주제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심판하실 하나님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17절). 권력을 남용하여 불의의 재판을 한 재판관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행위에 대해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공의와 정직을 행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분복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 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프리셉트- 2006. 6. 3

살며 생각하며 : 마음의 행복은 생활을 행복하게 합니다

어느날 한 교수가 학생들과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먼저 쥐들을 세 조로 나눈 뒤 학생들도 세조로 나누었습니다. 교수는 1조에 해당하는 쥐들을 1조 학생들에게 주면서 이 쥐는 천재쥐라 말했습니다. 2조 학생들에게는 보통쥐라고 했고, 3조 학생들에게는 바보 쥐이기 때문에 별로 기대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실험은 같은 조건에서 두 달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천재라고 소개한 쥐들은 진짜 천재처럼 우수한 행동을 보여 주었고, 보통이라고 소개한 쥐는 보통의 성과를 올렸고, 바보라고 소개한 쥐들은 형편없이 바보 같은 짓만 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재 쥐, 보통 쥐, 바보 쥐를 따로 구분해서 나누어 주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결과적으로는 천 재쥐와 바보쥐가 따로 있었던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이 쥐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천재쥐라는 학생들의 마음이 보통 쥐를 천재 쥐로 만들어 버린 것이고, 형편없는 쥐라는 마음이 보통 쥐를 바보 같은 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결코 추상적인 에너지가 아닙니다.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달라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수필가인 에머슨은 "사람이란 종일 자기가 생각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하였고,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는 "사람의 일생은 자기 생각 그대로 되기 마련이다."라고 했는가 봅니다. 성경 잠언 23장 7절에서도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이라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걸음걸이, 우리의 태도, 우리의 말, 우리의 옷맵시, 우리의 장래, 우리의 직업 등은 우리 생각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 미시간 호프대 데이비드 마이어스 교수는 행복에 관한 논문 1백46편과 39개국 1만 8천여 명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분석, 성별, 나이, 결혼 유무, 소득수준이란 네 가지 변수에 따라 인간의 행복 유무를 따져본 결과 기혼자가 미혼자보다 행복하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변수도 행복과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오히려 행복해지기 위한 심리구조를 지녔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행복의 열쇠로 작용한다고 마이어스 교수는 주장했습니다.

사람이 가지는 마음의 태도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바꾸어 보고 싶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인 마음으로, 소극적인 마음을 적극적인 마음으로, 비관적인 마음을 낙관적인 마음으로 바꾸고 싶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고 싶지 않습니까? 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행복해질 것입니다♣

-열린편지/이 가을 행복한 마음 가지고 있습니까? /김필곤 목사 글 중에서

돌아보며 다짐하며 : 영원히 들어도 좋은 말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힘을 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해 보도록 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푸근해 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감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해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요.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로 우린 기쁨을 얻기도 하고 깊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사이 언어가 가진 힘은 참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무심코 건네는 한마디의 말로 타인의 가슴에 영원히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무언가를 잃어버린 절망의 가슴에 파릇한 생명의 단비 같은 힘을 줄 수도 있습니다.

따스한 마음을 담아 잔잔한 사랑을 전하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진실 된 시간이 더 많아진다면 우리의 삶속엔 행복의 웃음이 항상 함께 할 수 있겠지요.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많은 칭찬과 용기와 깊은 이해의 말들로 기쁨 가득한 날이 되셨으면 합니다. 짙어가는 나뭇잎의 초록빛이 참 예쁜 아침에 따스한 커피 한잔과 행복의 느낌 가득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도 보람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용기와 희망이 있는 글(2007.04.22) -

오늘의 기도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

오늘도 우리가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를 드리길 원합니다.

하나님! 기도할 때 잠들었던 우리의 영이 깨어나게 하옵소서.

기도할 때 우리 자신이 새롭게 변화되는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서 자신의 행위를 다시금 돌아볼 수 있게 하시고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나아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소망과 용기를 갖게 하옵소서.

우리가 기도할 때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뜻대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선택된 백성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향해 우리 자신의 뜻을 바꾸게 하옵소서.

그러나 하나님!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바꾸려고 하는 노력이 전혀 없다면 하나님을 향해 드린 기도가 헛된 것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서 대신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우리의 의무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길 원합니다.

하루 중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다른 세상적인 일에 쓰지 않길 원합니다. 또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보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길 원합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가 되어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아름다운 향기로 올라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