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주(월)
찬송 :(새)395장, 450장
■ 마태복음 12:22-13:53 - 바알세불 논쟁과 천국 비유 ☞ 줄거리 주님은 귀신에 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사람들 중에서 주님을 다윗의 자손 메시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명백한 신적 영광을 보고도 주님을 믿지 않았으며, 오히려 주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서 이런 일을 행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보시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주님에게 또 다른 표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음 없는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시고,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주님을 반대하고 거부하는 것을 보시고, 비유를 통해서 천국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은 씨앗과 땅을 통해서 천국 진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지키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또한 주님은 천국 백성과 사단의 백성을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통해서 설명해 주셨으며, 겨자씨와 누룩, 보물과 진주, 그리고 어부와 그물 비유를 통해서 천국 진리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율법의 정신과 안식일의 주인(12: 1-8)
“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12:8절)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은 시장기를 느껴서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1). 율법에는 굶주린 사람이 이웃의 밭에서 연장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허용하고 있습니다(신 23:25).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이 율법을 어겼다면서 예수님을 추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은 행위가 안식일에 금지되고 있는 노동인, 추수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2). 이 같은 억지에 대해 예수님은 성경의 예를 들어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성전에 들어가 제사장만 먹도록 되어 있는 진설병을 자기뿐 아니라 함께한 무리에게까지 먹게 했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인해 다윗을 정죄치 않으셨음을 지적했습니다(3-4). 왜냐하면, 그들은 피난길에 심히 굶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21:1-6). 또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억지 논리로 보면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은 항상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들이라고 지적했습니다(5).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마다 번제를 드리는 노동을 하기 때문입니다(민 28:9-10). 예수님은 이 같은 반론을 통해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이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6). 사실 예수님은 성전의 본체가 되십니다. 구약의 성막과 성전은 모두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선언은 성전의 주인 되신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 역시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라는 점을 밝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안식일을 비롯한 모든 종교제도를 제정하신 이유가 자비와 긍휼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히셨습니다(7). 그리고 이 같은 해석의 확실함을 보증하기 위해, 자신이 바로 안식일 제도의 제정자임을 선언하셨습니다(8).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은 인간이 거저 받은 은혜를 묵상하며 그 자비를 이웃에게 나누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이 안식일을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종교제도로 바꾸어 놓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신자의 고정관념이나 교회의 종교제도들이 자비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는 달리,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는 또 하나의 덫과 짐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GTM/「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해석 도움」,2006, 11, 14-
살며 생각하며 : 그것은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갈 곳이 없어요. 저의 부모님께서는 계속 교회에 나갈 것이면 집을 떠나라고 하세요.그래서 거처할 수 있는 곳을 생각하다가 이곳이 떠올랐습니다. 저를 좀 도와주세요."
혜란씨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동안 자원 봉사로 아이들을 돌보아 왔던 고아 보호시설인 '은광원'에 찾아와 이곳에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고 원장님께 간청하고 있었습니다.
'은광원'은 기독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시설로서 규모에 비해 꽤 넓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어서 혜란씨의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혜란씨가 은광원에서 정한 보호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을뿐더러, 이곳에 머물면서 다른 직장으로 출퇴근을 한다는 것입니다.
혜란씨가 돌아간 후, 원장님은 그녀의 부탁에 대한 직원들의 의견을 들어 보기 위해 임시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갑자기 열린 회의에 참석한 직원들은 원장님께서 말씀하시는 혜란씨의 사정을 다 듣고 나서 두 가지 의견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혜란씨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사정은 딱하게 되었습니다만, 우리는 나름대로 지켜야 할 질서와 규칙이 있습니다.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은 분명히 구별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안됐지만 우리가 도와 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의견은 "물론 우리가 지켜야 할 전체의 질서와 규칙은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갔습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마음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꼭 도와드려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라며 처음의 의견을 반박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의견은 좀처럼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원장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관례대로 다수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손을 들어 자신의 의사를 표시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8명, 반대 5명으로 다행스럽게도 혜란씨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만일 ' 은광원' 직원들이 자비로운 마음보다는 질서와 규칙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혜란씨의 청을 거절했었다면 그녀는 아마 그리스도인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떠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기독 지혜사/「호크마 종합주석, 신약 1권 , 예화」p474-
밭 종류 |
의 미 |
결 과 |
길가 밭 |
✱ 말씀을 깨닫지 못함 ✱ 사단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 ✱ 완고하여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음 |
✱ 사단이 말씀을 빼앗아 감 ✱ 천국의 기쁨을 맛볼 기회를 완전히 상실함 |
돌 밭 |
✱ 천국 복음의 새로움을 인식함 ✱ 말씀을 진실되게 받지 않음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함 |
✱ 환난이나 핍박 시 천국 복음을 의심케 됨 ✱ 곧 넘어져 말씀을 떠남 |
가시떨기 밭 |
✱ 천국과 세상의 쾌락을 동시에 얻으려 함 ✱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김 |
✱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성장 하지 못함, ✱ 천국 복음의 기쁨이 없음 |
좋은 밭 |
✱ 말씀을 듣고 잘 깨달음 ✱ 말씀을 지켜서 결실을 맺음 |
✱ 30,60,100배의 결실을 맺음 ✱ 이런 자들에 의해서만 천국이 확장됨 |
정리하며 확신하며 : 씨뿌리는 자의 비유 이해(마13: 3- 9)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2권, p372
38주(화)
찬송 :(새)459장, 514장
■ 누가복음 8:1-21, 마가복음 3:19(하)-4:34 - 씨 뿌리는 비유 ☞ 줄거리 본문은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농부가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길가에 떨어진 씨는 흙이 단단해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새가 먹거나 사람들에게 짓밟힙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는 싹이 나오다가 흙이 깊지 않아서 햇볕이 나면 말라 버립니다. 가시밭에 떨어진 씨는 자라나다가 가시에 막혀서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진 씨는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천국 복음을 전할 때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듣고 마음을 열지 않아 말씀이 사라져 버럽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복음을 기쁘게 받지만 시험이 오면 넘어져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기쁘게 받았지만 세상 염려로 인해 넘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좋은 마음으로 복음을 받고, 인내로 그 말씀을 실천해서 마침내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된다”라고 . |
읽으며 묵상하며 : 제자들을 세우신 예수님(막3:13-19)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3:13-15)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하시기 전에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산에 오르사'라는 단어는 원어로 '산으로 들어가사'라는 뜻입니다. 누가의 기록에서 보는 바와 같이(6:12-13) 예수님은 산으로 들어가 밤이 새도록 기도하시고 난 후에 열 두 제자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마다 기도의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지파 숫자와 같은 열둘을 제자로 세우신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새 이스라엘을 일으키신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또한, 심리학적으로 열둘은 상호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의미 있는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최대치의 숫자라고 합니다.
한편, 예수님이 '원하셔서' 선택한 이 열둘 중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은 전부 낮고 비천한 갈릴리 출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이들 중에는 마태와 같이 세리가 있는가 하면, 무력으로 독립을 쟁취하려 했던 열심당원 출신의 시몬도 있었습니다. 또 베드로(반석)라는 새 이름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좌충우돌형의 시몬과(16), 우뢰의 아들이라고 불릴 만큼 성급하고 직설적인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있는가 하면, 우울질 타입의 도마와 바돌로매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사람들을 선택하여 사용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있을 때 그들 속에는 아름다운 일치가 생겨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할 일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세움 받은 제자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14). 주님과 동행하는 것의 위력은 단 하루만 그런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지식전수를 통해 듣고 배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역할모델이 되어 주심으로 보고 배우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전도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그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진리는 아는 만큼 자기 것이 아니라 전하는 만큼 자기 것이 됩니다. 마지막은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입니다(15).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적 전쟁의 일에 부르셨습니다. 영적 전쟁은 예수님께서 악한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음을 선포하는 중요한 사역입니다(요일 3:8).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가 당신과 온전히 동행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사랑을 온전히 알고 그 사랑을 알리기를 원하십니다. 악한 영의 실체에 대항하여 싸우는 영적 전쟁에 능한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GTM/「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2005 ,07,14-
살며 생각하며 : 평생가는 교훈
한경직 목사님이 오산학교 학생 때의 일입니다. 저녁 공부하는 시간에 졸음이 와서 하품을 길게 소리 내어 하였는데, 곧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문이 열리자 고당 조만식 선생님이 문 앞에 서 계셨습니다. 조만식 선생님은 오상학교의 교장이면서 스스로 기숙사 사감일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조만식 선생님은 방을 둘러보면서 물으셨습니다.
“지금 하품한 학생이 누구냐?”
“예, 제가 했습니다..” 한경직 학생이 대답하자 조만식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학생이 그런 하품을 내는 것을 남이 들으면 게으름뱅이로 여길 것이니 이제부터는 조심하거라. 졸려서 하품이 나려고 해도 꾹 참고 혀를 깨물어서라도 잠을 쫓고 공부해야 한다. 열심히 공부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고 실례가 도는 줄 모르느냐?” 한경직 목사님은 그때의 교훈을 평생 잊지 않았고, 그 후로는 큰 하품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훌륭한 교훈을 들려주는 사람과 그 교훈을 실천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실로 아름다운 만남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스승과 아름다운 제자로 길이 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훌륭한 스승이 되셨습니다. 훌륭한 제자가 되는 것은 각자의 일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516-
38주(수)
찬송 :(새)259장, 193장
■ 마태복음 8:18-34, 9:18-34, 13:53-58, 마가복음 4:35-6:6, 누가복음 9:57-62, 누가복음 8:22-9:6 주님이 행하신 이적과 표적들 ☞ 줄거리 (마 5-7장)은 산 위에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교훈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 8-9장)에는 주님께서 베푸신 이적과 권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와 같이 교훈과 이적을 교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과 능력, 이론과 실천을 겸하셨습니다. 주님은 문둥병자를 고쳐주셨고,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으며, 또한 베드로 장모의 열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 후에 주님은 계속해서 침상에 친구들에게 들려서 누운 채로 왔던 중풍병자를 고쳐주셨으며, 혈루 증에 걸린 여인과 소경들도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풍랑이는 바다를 잔잔케 하셨으며, 죄인으로 감주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불러주셨습니다. 이러한 기적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질병을 담당하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이적과 기사들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시고,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말로 가르치실 뿐 아니라, 삶 속에서 신적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주님(마8:14-22)
“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마8:14-15)
예수님은 한동안 베드로의 집에서 기거하셨습니다. 이날도 베드로의 집으로 향하신 예수님이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운 것을 보셨습니다. 평소 같으면 예수님을 반가이 맞이하며 수종했을 여인, 예수님은 그 여인의 손을 만지심으로 열병을 고쳐 주십니다. 여자들을 철저히 무시하던 당시 유대 사회 속에서 예수님의 돌봄은 무척 감동적인 일입니다.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솟구친 그 여인은 이내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 듭니다. 일상의 삶이 기운차게 회복된 모습입니다. 날이 저물자 사람들이 귀신 들리고 병든 자를 많이 데려옵니다. 서로 아픔을 나누는 모습입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무리였지만 예수님의 치유는 바로 이들에게서 일어났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그분의 것으로 짊어지셨습니다(사 53:4). 사랑의 파동은 아픔을 지닌 사람들 안에서 더욱 크게 일어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리와 함께하셨지만 그들의 요구에 끌려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에워쌀 때 자신을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구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 관심은 있지만 그분의 관심사가 자신들과 다르자 되돌아가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중에 한 서기관이 열심을 품고 어디든 예수님을 좇겠다고 나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의중을 아셨습니다. 그는 많은 무리를 보고 이 선생을 따르면 유익을 얻겠다고 확신한 듯합니다. 한편 예수님을 이미 따르던 제자 중 한 사람이 자기 부친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실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예수님 따르기를 기한 없이 미루려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제자의 삶은 새 생명의 출발이기에 옛것은 이미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는 어떤 의도로, 어떤 태도로 믿음 생활을 합니까? 열심을 내기는 하나 순수한 믿음이 없고, 신앙생활은 하지만 소망이 없는 삶은 아닙니까?
-두란노 서원/「 생명의 삶, 말씀 해설」. 2007, 01, 18-
살며 생각하며 : 청소년 언어
수천 년 전의 글에서 ‘요즘 아이들 걱정된다’라는 글이 발견되었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오늘까지 끊임없이 청소년 문제가 이어져 오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것 또한 수천 년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오늘의 청소년들을 문제아로 보고 있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이 청소년기에는 그들의 부모나 어른들에게 문제아였을 것입니다.
우리는 문제가 많은 청소년조차도 문제아로 보기 이전에 그들에게 얼마나 관심과 사랑이 베풀어졌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만에 한둘은 어쩌면 밑바닥부터 악한 마음을 품고 있을지도 모르나 거의 모든 청소년들은 관심과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들 방식으로 손짓과 몸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줄어드는 관심과 사랑을 회복하려는 몸짓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얼마나 사랑을 찾아 헤맵니까? 청소년들은 어린이 때의 관심과 사랑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손짓 몸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바뀌는, 어른들을 향한 청소년들의 몸짓 언어(body language)를 배우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 p224-
38주(목)
찬송 :(새)450장, 376장
■ 마태복음 9:35-11:1 마가복음 6:7-13 - 12제자의 파송 ☞ 줄거리 주님은 밤을 새면서 기도하신 후에 12제자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내면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전도 여행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각 마을로 가서 병든 자를 고쳐주고, 죽은 자를 살려내며, 문둥병자를 고쳐주고, 귀신을 쫒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일을 행할 때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전도 여행을 떠날 때에 여비나 의복을 준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는 일꾼에게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각 성에 가면 합당한 사람을 찾아서 그 집에 머무르되, 그 집에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자는 자신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12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전도 여행을 떠났으며, 성공리에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주님께 자기의 사역에 대해서 기쁘게 보고했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복음 그 중대한 선택(마 10:24-11:1)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10:39)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고, 심지어는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능력을 행한다는 비난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조차 이러한 비난과 배척을 받았는데 하물며 그의 제자들이 비난과 핍박을 받을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거듭거듭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제자들의 목숨을 해할 수는 있지만 영혼을 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박해와 목숨의 위태로움으로 인하여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진정 두려운 것은 몸과 영혼을 모두 지옥에 던져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조그만 어려움과 박해 때문에 하나님을 부인하게 된다면 그는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모르나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일시적인 편안함을 위하여 영원한 평안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두려워 할 분을 두려워하는 지혜로움을 지녀야 합니다.
주님은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을 왕으로 영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심각한 불화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불화는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마저 영향을 미칠만큼 심각합니다. 이 불화의 원인은 주님께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떤 것보다 최우선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주님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전부이지 일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박해와 핍박만이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 사역자는 개인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은 후한 상으로 베푸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일을 누가 책임져 주십니까? 선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그 일을 책임져 주십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 2001, 01, 16-
살며 생각하며 : 빌 브라이트, 예수님과 계약하다
국제 CCC를 창시하기 전에 젊은 빌 브라이트(Bill Bright)는 촉망받는 사업가였습니다. 상당한 재산을 모았고 꽤 성공을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빌 브라이트는 신약에 기록된 제자로서의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계약서를 작성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모든 재산, 은사와 능력과 미래의 꿈을 포함한 그야말로 모든 것을 바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리고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지 24시간 만에 그는 CCC라는 단체를 창설해야겠다는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7년 크리스채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는 빌 브라이트의 재정 운영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해 CCC는 3억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는데 브라이트 부부는 개인 후원자들로부터 거둔 48,000달러의 월급만 받았습니다. 다른 CCC 스태프들과 똑같았습니다.
1996년 템플턴 상 종교 부문을 수상했을 때, 백만불의 상금을 받았지만 이내 기도와 금식에 관한 세계적인 사역을 일으키기 위해 투척했습니다. 또 은퇴 이후를 대비해 부어 오던 연금 5만 불을 모스크바 제자 훈련 센터에 기부했습니다.
그의 수많은 베스트셀러의 인세는 모조리 CCC 본부로 들어가며, 그는 강사료도 받지 않습니다. 별다른 저축도 없습니다. 차도, 부동산도 없고, CCC가 제공하는 콘도에서 월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날 밤,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노예가 되기로 결정하고 모든 권한을 위임한 증서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Touch Point 칼럼 / 데이비드 제레마이어 )
-두란노 서원/「생명의 삶,오늘의 묵상」2003. 08. 06 -
38주(금)
찬송 :(새)191장, 427장
■ 마태복음 14:1-36,막 6:14-56, 누가복음 9:7-17, 요한복음 6:1-21 - 세례요한의 죽음과 오병이어 ☞ 줄거리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왔던 세례요한은 자신의 사역을 모두 마치고 순교했습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을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서 헤롯이 보낸 군사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간주했기 때문에 죽이지 않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러나 간교한 헤로디아의 간계로 인해서 마침내 의로운 세례 요한은 순교하고 말았습니다. 헤로디아는 헤롯의 생일날에 딸 살로메를 시켜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게 했습니다. 헤롯은 딸의 춤을 보고 기뻐서 그녀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에 살로메는 헤로디아와 의논한 후에 세례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헤롯은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세례요한의 머리를 살로메에게 주었습니다. 주님은 세례 요한의 순교 소식을 들으신 후에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곳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주님은 제자들 앞에서 물위를 걷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서 제자들과 무리들 앞에서 친히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셨습니다. |
읽으며 묵상하며 : 오병이어의 기적(마14:13-21)
“무리를 명하여 잔디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와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14:19-21)
세례 요한의 처형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참담한 마음으로 배를 타고 따로 빈 들에 가셨습니다. 하지만, 무리는 이 소식을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먼저 그곳에 도착해 있었습니다(13). 이에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향해 뜨거운 연민을 느끼셨고, 가르침과 치유의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하고 부탁했습니다(15). 이것은 참으로 당연한 요청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16).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더 큰 믿음과 또한 목자의 심정을 심어주기 위한 테스트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 같은 도전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성인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거대한 군중에, 그 늦은 시간에, 외딴 빈 들에서 먹을 것을 준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가끔 예수님은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고,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숙제를 내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문제를 주실 때는 이미 그 답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테스트 앞에서 우리의 믿음과 사랑을 키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고백했습니다(17). 그러자 예수님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께 가져가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작은 것이라도 우리가 바친 것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과 함께 만유를 다스릴 상속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었습니다(19). 그러자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음식만 열두 바구니를 채울 정도로 풍성한 잔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20).
이것은 시편 23편에 나오는 푸른 초장에 누워있는 양떼들을 연상시켜줍니다. 사실 양떼들을 눕게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이 부족함이 없는 만족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GTM/「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2006,11,30-
살며 생각하며 : 하나님의 확률
프랭클린 그래함은 항공 면허를 얻자마자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앨라배마 주 모빌을 지날 때 악천후를 만났습니다. 항공 관제사들은 그에게 미시시피의 잭슨, 곧 북쪽으로 가라고 통보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구름 위로 올라가자 계기판이 깜빡거리더니 곧 통신장치와 계기판이 불통되었습니다. 프랭클린은 상황이 절박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개입해 주시도록 기도드리며, 구름 아래로 내려와 착륙할 곳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멀리 잭슨시의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빙빙 도는 신호소 불빛을 향해 날아가 관제탑을 돌다가 수동착륙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활주로의 비상착륙등이 켜졌고, 프랭클린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내리자 비상등은 곧 꺼져버렸습니다.
그가 내린 것을 알게 된 관제탑에서는 “누가 당신에게 착륙허가를 내렸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상공을 선회하고 있는 프랭클린의 비행기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그를 본 사실이 없는데 어떻게 비상등이 켜 그들이 조사 후 발견한 것은 한 관제사가 그 등을 켰다는 것이고, 그 관제사는 그곳을 방문한 한 목사님에게 통신장치가 망가진 조종사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프랭클린이 그 등불의 빛을 필요로 했던 바로 그 시간에, 그 관제사는 비행기가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 등불을 켰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개입이 아니라면 ‘수십억 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시면 ‘일 대 일’의 확률입니다.(내 영혼의 119」/ 켄트 크로켓) -두란노 서원/「생명의 삶, 묵상 엣세이」 2004. 10. 19-
전도자의 바른 자세 |
참 고 성 경 귀 절 |
|
1 |
모든 사람들에게 |
마 28:19,20 |
2 |
성령을 힘입어 |
행 1: 8 |
3 |
담대히 |
행 4:29; 빌1: 4 |
4 |
어느 곳에서든지 |
행 5:42 |
5 |
생명도 아끼지 않음 |
행 15:25,26 |
6 |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
행 20:24 |
7 |
부끄러워함 없이 |
롬 1:16 |
8 |
기도하면서 |
롬 15:30-33 |
9 |
상급을 확신하며 |
고전 3: 8 |
10 |
낙심하지 않고 |
고후 4: 1 |
11 |
사랑의 의무로서 |
고후 5:14 |
12 |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
고후 5:20 |
13 |
믿음과 착한 양심으로 |
딤전 1: 18,19 |
14 |
고난을 무릅쓰고 |
딤후 1:12 |
15 |
항상 힘씀으로 |
딤후 4: 2 |
정리하며 확신하며 : 전도자의 바른 자세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12권, p848
38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인생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삼상2:1-11)
말씀묵상 : 인생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삼상2:1-11)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깊이 만난 사람은 고백적인 찬양을 하게 됩니다. 한나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감동적인 찬양을 합니다. 한나의 기도와 찬양시에 나타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한 개인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삶 속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자신의 자부심이 높아졌으며, 자신의 입술이 원수들을 향하여 담대해진 것은 주의 구원을 인함이라고 고백합니다(1). 그녀에게 하나님은 미미한 자신을 돌아보신 분이셨으며, 자기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신 분이셨으며, 반석처럼 든든한 분이셨으며, 개인의 행동을 돌아보시는 분이셨으며,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거름더미에서 건져 내사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하시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한 개인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개입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계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고 계심을 알지 못하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다가 멸망의 길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 근원이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나오는 자에게 주권적인 은혜와 사랑을 베푸십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 어려운 때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다른 뜻이 담겨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더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게 될 것입니다.
☞ 세계 역사에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삶 속에서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온 세계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고 그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를 창조하시고 땅의 기둥들을 세우신 분이시며, 땅 끝까지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한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국, 다윗 왕국을 세워가시며 메시아 왕국을 높이 세우실 것을 노래하였습니다(10).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과거나 현재나 세계의 역사를 좁은 시야로 보면 불의와 모순이 뒤범벅이 되어 있지만 다 하나님께서 정리해가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독재자들이 득세하고 전쟁과 기근과 억압이 인류 역사를 어둡게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며 오만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개인과 온 세상에 회복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만과 불신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통치권으로 들어오면 개인이나 세계는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의 운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알고 더욱 하나님께서 자신과 국가와 세계를 다스리도록 기도하시며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기독 대학인회,ESF- 2005. 6. 15
살며 : 생각하며내 : 인생의 운행자 되신 하나님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형들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형들은 놀라고 근심하고 한탄했지만 요셉은 형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를 당신들이 이곳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인생의 주관자 되시고 운행자 되신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의 운행자가 하나님이심을 굳게 믿고 있는가요?
내가 내 인생을 운행하려고 생각하지 않는가요?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가요?
하나님을 인생의 운행자로 믿는 자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도, 원망하지도 않습니는다.
모든 사람을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운행자 되심을 고백하십시오 김영호 목사 (포항제일 침례교회 담임)
돌아보며 다짐하며 :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즐거웠던 일도 많았고 괴로웠던 일도 가끔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순간을 지나면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단어는 '감사'란 단어뿐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무수한 신세를 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지칠 줄 모르는 감사의 심령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성취하였을 때 그 원인이 '나의 능력'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겸허한 자세 속에서 하나님은 더 큰 성취를 이뤄주실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지 않았을 때 그 원인이 내가 의인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솔직한 자세 속에서 하나님은 더 큰 어려움을 예방해주실 것입니다.
유학 시절, 제가 미국 뉴욕의 중심가인 맨하탄의 한 세탁소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일하기 시작한 지 약 2주일쯤 지나서 밤새 그 세탁소가 있는 건물에 불이 났습니다. 불은 건물의 2층에서 5층까지 깡그리 태웠는데 1층에 있었던 세탁소는 약간의 피해만 입었을 뿐 거의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인 여자 분이 말했습니다. "평소 우리가 죄를 안 지어서 이렇게 무사하구나."
그 말이 저에게는 참으로 어색하게 들렸습니다. 그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한 마디의 말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의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는 그 말 한 마디 때문에 주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이유로 그날 세탁소에서 해고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분의 말대로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아서 무사하다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어떻게 감사한 마음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그 당시 저에게는 주인의 자존심을 깎으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들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했는데 그것이 본의 아니게 그분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끔 그때 세탁소에서 해고되던 날을 떠올립니다. 떠올릴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과 하나님의 은혜를 잘 깨달을 수 있는 감사를 아는 마음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는 가끔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40일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보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을 영적으로 높은 사람으로 보는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힘으로 섬기기 때문이 아니고 은혜로 섬기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에게는 어려운 기도제목들이 다가옵니다. 그 어려움 때문에 너무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사실상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 그 한 가지로도 우리는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쁜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생각하고, 슬픈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항상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라는 말이 나올 수만 있다면 그 삶이야말로 진실로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사랑칼럼(95). 2008.12.20
오늘의 기도 : 풍성한 은혜에 감사
주님!
매일 똑같아 보이는 하루를 시작합니다 또 매일 같은 모습으로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그러나 그하루 안의 시간들 속에서 매일 다른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보고 느끼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어둡고 긴 밤에도 사랑의 빛으로, 위로와 소망으로 새 아침을 주시는 주님!
나의 생각과 욕망,말과 행동을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할 수 있게 하여주시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행동하든지 주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것들이 악에서 선으로 변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육체는 정신의 종이 되게 하옵시고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모두 주님의 종이 되어 모든 일을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움직이며 주님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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