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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영들은 생각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에반젤(복음) 2020. 3. 1. 14:26



악한 영들은 생각을 통해서 들어옵니다        

 

 

오늘날 영적으로 둔하고 무지한 그리스도인들은 '귀신'이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호들갑을 떱니다. '지금 당신에게 귀신이 역사하고 있는 것 같군요.' 혹은 '당신은 지금 귀신에게 속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그럴 리가 있느냐고.. 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대체로 이런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반응은 무지의 소치입니다. 영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악한 영들의 공격이 아주 보편적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이를 지지해주는 많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악한 영들은 언제나 그리스도인이건 아니든 상관없이 사람들의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언제든지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움직이는 원리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 하며 이에 대하여 방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사람들의 안에 들어오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생각입니다. 생각과 감정이 그들이 움직일 수 있는 문이며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 귀신들은 육체가 아니며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체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영의 법칙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람의 안에 들어오기 위해서 어떤 생각을 집어넣으며 그 생각이 그 사람의 마음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그 생각을 사람들이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인다면 조금씩 좀 더 깊이 그 사람의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몇 푼의 돈에 팔아서 대제사장의 무리에게 넘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성경은 아주 명백하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요13:2)


예수를 팔려는 그 생각은 가룟유다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그 생각은 마귀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그 생각을 가룟유다에게 집어넣었는데 유다가 그 생각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생각은 가룟유다의 것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 사실은 분명합니다. 즉 악한 마귀는 사람들에게 악한 생각을 집어  넣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 속에 더럽고 악한 생각과 충동을 넣어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거절하느냐 하는 것은 사람의 책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미안합니다.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마귀의 책임입니다.'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아무에게나 그런 악한 생각을 넣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갑자기 속삭이기를 '저 사람을 죽여라.' 하는 식으로 속이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아무도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충분히 그럴듯한 상황에서 일합니다. 화가 날 상황에서 분노를 가져다 줍니다. 가룟유다에게 그러한 생각을 넣어준 것도 그가 그러한 생각을 받아들일만한 요소가 있으니까 그에게 그런 생각을 넣어준 것입니다.

 

또한 중요한 사항이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마귀의 생각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갑자기 마귀의 모습으로 바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는 모든 사람이 마귀가 무슨 짓을 하는지, 귀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영들은 그렇게 일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전히 가룟유다의 모습을 가지고 일합니다. 그는 마귀의 생각을 받기 전에도 가룟유다였고 마귀의 생각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가룟유다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 중에 아무도 그의 그러한 내적인 변화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만 주님만이 그의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마귀의 움직임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생각을 아시며 영의 움직임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이가 없고" (요13:27,28)

 

오늘날에도 영이 민감한 이들은 사람의 생각 안에서 움직이는 영의 흐름을 느끼곤 합니다. 그것은 악한 영의 움직임은 어두움에 속한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의 감각이 있는 이들은 그러한 특성을 분별해내는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마음 속에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일반적으로 일하는 방식입니다.


마귀에게 생각과 충동을 받은 것은 가룟유다 뿐이 아니었습니다. 수제자 격이었던 베드로도 순간적으로 악한 영이 주는 생각에 빠져서 주님께 야단을 맞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니이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16:21-3)   

 

지금 이 시대에 어떤 성도가 영적 지도자에게 이렇게 야단을 맞는 다면 아마 심하게 실족하고 상처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님이 여러 제자들 앞에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마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그 말과 생각이 사단에게서 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가룟유다의 경우와 많이 달랐습니다.
가룟유다가 받은 마귀의 생각은 누가 보아도 명백히 잘못된 악한 생각이었습니다. 그 동기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은밀하게 돈을 받고 자기의 스승을 팔아서 넘긴 행위는 정말로 악한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그의 의도는 주님을 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제자가 사랑하는 스승이 죽는다는데 '아, 그러십니까. 그럼 잘 죽으십시오'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용기가 없어서 말을 못했을 뿐이지 그 자리에 있었던 대부분의 제자들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 상식적인 말과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도 악해 보이거나 이상해 보이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이 사단에게서 나왔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옳아 보이고 좋아 보이는 생각 중에도 악한 영들이 넣어주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생각이 악한 영이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 우리는 그러한 부분을 좀 더 살펴볼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생각을 집어넣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할 수가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그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사람의 안에 있는 생각을 빼앗아가기도 합니다. 즉 망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씨뿌리는 비유에서 주님은 길가에 떨어진 씨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마13:2,3)

이 말씀에 대하여 제자들이 묻자 주님은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해주십니다.


"그런즉 씨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 가에 뿌리운 자요" (마13:18,19)


여기서 악한 자란 악한 영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악한 영들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때 그것을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그 말씀이 그의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그 말씀을 새들이 씨를 먹어버리는 것처럼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 사라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악한 영들이 사람의 마음 속에서 하는 일입니다. 즉 그들은 사람의 안에 악한 생각이나 충동적인 생각, 감동을 집어넣으며 복음이나 진리에 대한 생각은 빼앗아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마음 속에 생각을 집어넣거나 뺍니다.
 
우리는 자주 은혜와 진리에 관한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환란이 오거나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도우신 다는 사실을 깜박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어떤 때는 마치 불신자처럼 원망하며 좌절합니다.


우리가 정신을 차릴 때는 언제일까요? 그것은 주님 앞에 나아가서 기도할 때입니다. 갑자기 우리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시련은 아무 것도 아니며 이를 통해서 우리는 오히려 성장하며 주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기뻐 뛰게 됩니다. 그러한 느낌은 너무도 생생하여 우리는 마치 주님이 옆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오, 그런데 그러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진리들이 왜 어려울 때는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요? 왜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만이 떠오르는 것일까요?


그것은 악한 영들이 복음과 진리를 잃어버리도록, 망각하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릴 때 다시 하늘이 열리며 악한 영들은 떠나가고 진리와 감동이 다시 기억나고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상태가 길가에 속한 사람들은 항상 악한 영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집어넣고 영적이고 진리적인 생각은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므로 의식상태가 이러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은 본능적이고 육체적이고 욕망적인 수준의 생각만을 하게 되며 그러므로 낮은 차원의 비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길가에 속한 사람들은 그 의식이 가장 낮고 어리며 발전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길가에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데 이들의 생각은 정함이 없어서 영적인 세계도 모르고 아무 것도 가리지 않으며 세상의 유행을 좇고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에 대한 생각만이 그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어서 영혼의 발전과 의식의 발전과 정화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들은 언제든지 악한 영들이 들락거리며 그 마음과 생각을 지배할 수 있습니다.

 

악한 영들은 사람의 생각을 자극함으로써 일을 합니다. 이러한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악한 영들에게  쓰여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과 생각을 사용하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생각이란 영계에서 오는 것이며 언제든지 악한 영들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을 다시 분명히 인식하시기를 바랍니다. 악한 영들은 생각을 통해서 일합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이나 충동을 집어넣고 좋은 생각을 가져가 버립니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서 당신의 안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이나 충동이 악한 영들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지 분별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당신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기억과 감동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잘 관리하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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