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직 신학 >>>/- 성 령 론

영성목회의 필요성

에반젤(복음) 2020. 2. 27. 11:43



영성의 신학적 이해와 영성목회의
          필요성과 개발에 관한 연구
목     차


제 I 장. 서   론          ...................................................  1
  제1절. 연구목적 및 문제제기 ......................................  1
  제2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  3
제 II 장. 영성운동의 개념        ..............................  5
  제1절. 영성의 개념과 정의 ......................................  5
  제2절. 영성 운동이란      .....................................  5
  제3절. 영성의 성서적 이해   ....................................  9
  제4절. 영성의 역사적 배경   .................................... 11
제Ⅲ 장. 영성운동의 실제 및 개발................................. 18
   제1절. 개인적인 영성훈련  ....................................... 18
   제2절. 공동체를 통한 영성훈련.................................. 19
   제3절. 한국교회 영성운동의 현황과실제................... 20
제 IV 장. 목회에서의 영성     ............................... 67
   제1절. 목회에서의 영성의 중요성......................... 67
   제2절. 목회자의 영성    ....................................... 67
   제3절. 영성목회의 필요성   ................................ 68
   제4절. 영성목회의 실제와 개발............................... 70
제 V 장. 결   론   ................................................... 87
< 참 고 도 서 >   .............................................. 91

제 Ⅰ 장. 서   론

제 1 절. 연구 목적 및 문제제기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며 그 동안의 성장의 이면에 감추어진 여러 문제점들을 보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것은 그동안 양적으로는 한국교회가 성장하였으나 질적으로는 오히려 저하되었다는 자성과 함께 사회에 불어 닥친 IMF의 여파로 교회가 다시금 가난과 고난에 대한 영성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경제적인 성장과 그 그즐에서 너무나도 세상과 깊이 타협하여 교회성장주의로 치달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원래의 영성인 십자가 중심의 영성이 사라지고 오히려 영성에 대한 개념 조차도 모호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세 된 것이다. 또한 영성의 개발을 통한 기독교의 오랜 전통을 무시한 채 목회하다보니 목회가 신앙의 영성개발 중심이 아니라 세미나장과 같은 형태가 되어 바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 개발을 통한 영성 목회가 새롭게 조명되고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는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신앙고백을 바탕으로한 신앙 공동체요(마 16:16),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엡 4:12)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하여 지체인 성도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 유기적 공동체이다. 교회는 사회적 조직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힘을 얻고 존재이유를 갖는 공동체이다.  그 구성원인 인간도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나 유물론적 존재가 아닌 하나님과 교재할 수 있고 세상의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존재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신령한 생명체인 인간 생명은  정화, 극기, 순화, 자기 부정, 연단, 절제, 단순화를 통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딲을 때 신비한 빛을 발하고 능력을 얻는 존재이다.  그러나 과학이 발전하고 모든것이 물질 중심으로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교회도 어느사이엔가 하나의 사회조직 처럼 되고 말았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공동체가 아니라 하나의 인간의 조직이 되고 만 것이다.  교회에서도 모든 가치의 평가에 대한 척도가 물질이 되어 버렸다. 물질의 풍요가 축복의 표식이 되어 버렸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기대하기는 커녕 세상의 타락을 방관하거나 더욱 조장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까지 한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등한시 해왔던 영성의 새로운 조명을 필요로 하게 된다. 
유기적 공동체 속에는 교역자와 평신도로 구분되어 진다. 지금까지 교회하면 교역자 중심으로 운영되어 교회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는 평신도에 대해서는 양떼 또는 객체로 생각하며 그들이 교역자와 함께 소명과 책임을 지닌 주체라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회란 결국 평신도들을 대상으로하는 것인 만큼 영성목회의 목표는 평신도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어야 한다
오순절 성령체험 이후에 사도행전 4장 13절에는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모여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기록하고 있다.   놀란 이유는 그들이 학문없는 '범인'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시작은 평범한 사람들의 증거와 활동을 통해서였다. 사도들은 후에 성도에 의해 특수한 계급으로 구별되었으나 그들은 결코 사제들과 같은 귀족적인 지배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교회가 이 세상에 접촉하는 것은 교역자보다 평신도들을 통해서이다. 실로 평신도는 이 세상에 파송되어 있는 교회의 보이는 대표자이며 교회자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본 연구자는 영성목회를 통한 평신도의 영성훈련을 중심으로 한 연구를 진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을 향한 그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은 일부 교직자들에 의하여 교회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업을 가지고 이 세상에 날마다 보내져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 의해서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적성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둘째, 신앙의 바른 성장을 위해서이다.
셋째, 교회성장의 참된 원동력을 개발하기 위해서이다.
네째, 일부분의 영성훈련이 아닌 통전적인 방법 즉 개인 훈련, 관계성 훈련, 공동체 훈련을 통해서 훈련된 평신도가 교회성장의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연구하고져 한다.
제 2 절. 연구의 범위와 방법
연구범위는  I 장 서론에서는 연구동기와 목적 및 연구범위와 방법을 취급하며  II 장에서는 평신도 영성훈련에 대해 전반부에서 영성의 정의, 영성의 어원적 연구, 영성의 역사적인 연구등 기독교 영성의 일반적인 이해를 취급하고, 후반부에서는 기독교 영성훈련의 의미와 정의 그리고 영성훈련의 필요와 목적을 취급하려 한다.
III 장에서는 영성훈련의 실제 및 개발로서 영성훈련의 방법으로 개인 훈련방법과 관계성 훈련방법 그리고 공동체 훈련방법을 살펴 보려고 한다.
IV 장에서는 평신도 영성훈련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관계를 교회성장 이해와 교회성장과 영성훈련과의 관계 그리고 영성훈련이 교회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초대 교회와 오늘날 교회를 살펴보고, V 장에서 결론을 맺고져 한다.
연구방법은 문헌 연구방법을 주로하여 신구약 성경과 관계된 문헌을 찾아 연구하려 한다.
 제Ⅱ장. 영성운동의 개념
 제 1 절. 영성의 개념과 정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생기가 넘치는 영적인 삶을 사는 것에 관심과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 크리스찬들은 영적인 삶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조차도 분명하게 이해 내지는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영성이라는 말이 기독교에서만 쓰는 단어가 아니라 다른 종파에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영성은 "靈性(영성)"이라고 한문으로 표현하며, 영어로는 Spirituality 라고 표기한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종교적인 가치에 붙잡혀서 사는 영적인 삶의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영성이란 전인격적인 의미에서의 인격과 그의 소산, 학문, 문화, 시대정신, 주의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영성이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용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때, 스토아주의 영성, 불교의 영성, 도교의 영성, 실존주의 영성, 해방신학의 영성, 동양의 영성, 서양의 영성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영성이라는 말에다가 "기독교적" 이라는 형용사를 붙이면 기독교적인 영성이라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적 영성도 여러가지로 분류된다.   서방교회의 영성, 동방교회의 영성, 개신교회의 영성, 카톨릭의 영성, 루터교의 영성, 성결교회의 영성, 장로교의 영성 등으로 말한다.
일반적인 영성이 자기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정신을 자기의 정신으로 받아들여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거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성은 우리의 인생의 무엇과 같을 때 가장  이상적이 될까 ? 또는 인간 최고의 덕과 가치와 목표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과 연관이 있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한가지의 대답만 기대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자기 인생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의 최고의 덕과 가치와 목표가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다른 대답이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와 이상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이는 영성의 차이를 가져온다.
영성은 자기가 판단할 때, 가장 이상적이요 최고의 덕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분명한 인생의 목표를 제시해 주는 하나의 정신을 받아드려 그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살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영성을 가지고 산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유는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쾌락이나 육체적인 정욕을 따라서 사는 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영성을  오성춘 교수는  그의 책 "영성과 목회"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 영성은 역사적 예수의 삶과 인격과 정신을 본받아 살며 그의 성품을 그리스도인 속에 형성하는 것이다. 기독교 영성은 기독교 교육, 역사적 예수 연구등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상과 인격과 정신을 배우고 인간예수의 정신을 신자들의 삶가운데 내면화 시키려고 힘쓴다.
둘째, 기독교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작은 예수가 되어 살려고 힘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말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아 산다는 말을 동의어 비슷하게 사용할 때가 많다.
셋째, 일반영성이 엄격한 자기(自己)훈련을 쌓으며 자기가 최고 이상이라고 판단하여 받아드린 정신을 구현하듯이 기독교 영성도 훈련을 강조한다라고 하면서 일반 영성과 구별하여 기독교 영성을 말한다.
기독교 영성이 일반 영성과 구별되는 독특성은 첫째는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산다는 점이며, 둘째는 일반 영성이 역사적 인격의 정신과 사상과 삶을 본받으려는 인본적인 영성인데 반하여 기독교영성은 역사적인 예수의 정신과 삶을 계승하려는 인본적인 요소를  가질 뿐만 아니라 친히 하나님이신 예수와 수직적인 교제와 하나님 중심의 영성인 것이다. 즉, 일반영성이 일반적으로 수평적이요, 인본주의적인데 반하여 기독교 영성은 수평적이면서  하나님 중심의 수직적 영성이라는데 그 독특성이 있다.
기독교 영성의 정의는 학자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정의되는데, 영성이 여러가지가 있는게 아니라 보는 시각에 따라서 기독교 영성의 각기 다른 측면을 파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교수이면서 감리교 목사로 시무하는 노만 샤우척 (Norman Sehawchuck)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영적인 교제에 강조점을 두면서 기독교 영성은 주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서 경험하는 삶의 변화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또한 3가지를 강조하는데, 첫째 기독교 영성이 주 예수님과 영적인 교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둘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교제는 삶의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셋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임을 강조한다.
죤 매커리 (John Macquarrie)는 영성을 한인간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과 관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는 진정한 기독교 영성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회복 뿐만 아니라 피조전 우주의 회복에까지 확장시키고 성령공동체인 교회가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이리스 컬리 (Iris V. Cully)는 교육학적인 각도에서 기독교 영성을 이해하고 있다. 컬리는 "인간의 본성과 교육과 양육에 의한 의도적인 개발의 상호작용이 영적성장을 가능케 한다" 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정한 영성은 묵상과 기도와 예식과 성서공부를 통해서 영적 삶을 개발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말하며 실천하는 삶의 과정이라고 말한다.n
기독교 영성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하여 라이리스 (Ryries)가 구분하여 천명하였는데 첫째, 주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남 둘째, 성령의 주간하에 있는 새 생명의 활동 셋째, 영성과 시간의 관계성을 들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통전할 수 있는 능력으로의 성숙임을 밝히고 있다.
제 2 절. 영성운동이란
현대의 교회는 신학적으로 볼 때도 신학과 영성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젖어 있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철학이나 신학적 사고에서 기인하는데  자연주의와 초자연주의의 갈등,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 신과 인간의 분리 등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1970년대) 이러한 사고방식은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에큐메니칼 운동과 타종교와의 대화라는 원인 이외에도 문화적이며 상황적인 요인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김외식 교수는 최근에 한국에서 급격히 관심하기 시작하는 "영성"에 대해서 논하였는데, 그는 먼저 영성신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된 원인을 서양의 근대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아노미 현상을 극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영성이 한국에 들어와서도 경재 발전의 과정 속에서 똑같이 요청되었으며, 이것은 또한 부흥회에서 성서연구 운동을 거쳐 온 한국 개신교의 성장과정 속에 당연히 나타나는 마지막 귀결이라는 것을 들고 있다.
  이제 교회는 지금까지 왜곡되게 취급해 왔던 영성의 문제를 다시한번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이러한 노력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5:16-18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가르친 바울의 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즉, 의지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자 할 때에 우리의 의지는 우상이 되지만 우리의 의지로 성령을 좇아 인도함을 받으려고 자신을 위탁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의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을 성령의 일에 고정시키는 영적 훈련이 없이는 성령께서도 우리를 고치실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영적 훈련의 삶을 생활화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성령에 의하여 인도받는 성령충만의 삶이 아니라 세속에 매여 근심과 걱정에 매인 삶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영성훈련의 의미를 천병욱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진 모든 시간, 모든 여건을 조성해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고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은 영성훈련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와 친교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위한 길을 배우는데 실제적이고 최선의 삶이라는 말이다.어떤 단어의 바른 뜻을 알아내기 위하여 그 단어의 어원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동안 사용되어 오면서 최초의 의미가 그 힘을 상실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서에서 사용되는 영(spirit) 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신학에 쓰일때는 아주 그 뜻이 분명(分明)하다.
영성훈련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있다.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한다.   다시말하면 우리는 인간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깨닫고, 참 자유를 얻을 뿐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기초를 얻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한다.
영성훈련을 통해서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   또한 이 훈련을 통해 우리는 더욱 더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생활을 하게 될 수 있다.   훈련의 반복을 통해 사고구조의 틀을 만들고 집중을 통해 훈련의 효과를 높이고 이해를 통하여 분별력과 통찰력을 기르고 숙고를 통하여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은사로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영성훈련의 목적은 우리들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며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살게하는데 있다.   강근환 교수는 영성훈련의 목적은 영성화 시키는데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회의 영성화를 교회로 하여금 교회되게 하는 일로 보았다.   곧 교회갱신을 뜻하며 이를 통해 진정한  교회로 갱신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는 영성화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3가지로 강조한다.
  ① 영성화는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이신 성령의 일깨우는 능력에 의하여 모이게 함으로써 신앙공동체가 되게 하는 일이다.
  ② 영성화는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고 성령의 생동케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지고 성장되며 옹호되는 신앙공동체가 되는 일이다.
  ③ 영성화는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고 그의 영이신 성령의 조명하는 능력으로 세상에 파송되는 신앙공동체가 되게하는 일이다.
즉, 교회를 교회되게 하며 개인생활과 사회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명을 다하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교회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데 그 목적을 두어야 한다.
본절에서는 영의 의미로써 구약에 쓰여진 히브리어 루아흐(ruach)와 신약에 쓰여진 헬라어 퓨뉴마를 중심으로 고찰하여 영성의 어원적 이해를 돕고자 한다.
제 3 절, 영성의 성서적 이해
 
      a. 루아흐(ruach)의 의미
성령은 구약에서 창세기의 시작부터 말라기의 마지막까지 나타난다.  창세기 1:2에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성령이 창조의 신으로 역사하고, 말라기 3:1-10에서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언약의 사자"로 임하실 것을 아주 적절하게 밝혀주고 있다.
구약성경의  저자들은 이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영 (ruach)으로 표시한다.
ruach 은 성령을 표기하는 구약성서의 히브리어이다. 볼프 (H. W. Wolff)는 ruach 의 어의를 "바람, 숨, 생명력, 영(Spirit), 정서, 의지력"등으로 구분한다. ruach 이라는 단어는 구약에 389회 나타나는데 이중에 378회는 히브리어, 11회는 아람어로 기술되어 있다. 이것들을 분석해 보면 세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으로 113회, 둘째는 사람과 우상들의 '정신이나 영들'이라는 말로 129회, 그리고 셋째는 하나님과 관계된 '성령'으로 136회가 사용되고 있다.
      b. 퓨뉴마(     )의 의미
       는 헬라어 동사     에서 나온 말로써 바람이 불다, 숨을 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의 의미는 바람이 임의로 불어 공기가 흐르는 것과 같이 숨을 들어마시고 내쉬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연의 바람, 인간의 숨결, 생명의 원인과 함께 사람들이나 짐승 그리고 사탄의 영이나 영들, 정신등을 나타내는 말이다.
신약성서에서      는 복음서에서 105회, 사도행전에서 69회, 바울서신에서 161회, 공동서신에서 27회, 계시록에서 23회등 모두 385회 사용되었다. 신약성서에서 다양하게 나타난 영성의 구심점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신약의 영성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체험 그리고 제자들의 부활체험과 초대교회의 성령 강림사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3 절. 영성의 역사적 배경
      a. 초대교회 시대
초대 기독교 시대는 30년경부터 콘스탄틴 대제하에서 기독교가 로마의 종교로 공인 (313) 받을 때까지이다. 교회가 최초로 나타나게 된 것은 예루살렘 원시적 공동체였다. 사도행전 2장은 우리로 하여금 실질상의 사도적 교회의 시발이 오순절 성령강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예수께서는 고별사에서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의 내림을 약속하셨고 이에따라 초대교회 교인들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다 (고전 12, 13, 14장 및 로마서 12장 참조).
바울은 이 오순절의 경험에 참여하지는 못하였지만 동일한 성령의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도는 구속의 대업을 완성하시었지만 성령이 비로소 이 구속을 신자들에게 소유케 하신 것이었다.
바울에 의하면 성령은 그리스도를 개인의식안에 계시하는 신적인 작용을 하고 새 생활을 가능케 하는 모든 은총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우리안에 그리스도"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다는 말과 같은뜻의 말이었다. 성령은 그만한 힘과 작용을 독특하게 해내기 때문에 그의 힘과 임재가 없이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부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가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성령은 근본적으로 자유하게 해준다. 성령의 법에 의해서 우리는 비로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풀려나와 새로운 삶 속에서 활보할 수 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이 있는 곳에 참 자유가 있다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롬 5:5, 7:6, 8:2 ; 고전 2:4 ; 엡 1:7, 4:23 참조).
요한은 그의 복음서와 서간에서 독특한 성령론을 발전시켰다.   그에 의하면 성령의 소임은 그리스도를 신자에게 계시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의 교훈을 기억시키고 가르치며 신자들을 완전한 지식에로 이끌고 간다.   성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비판과 의식에 이르게 한다.
초대교회의 과제는 세계선교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의 정립이었다. 그를 바로 알고 고백해야 영생의 구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에 대한 지식은  바로 올바른 영적지식이라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기독론 논쟁이 그토록 치열하여 기독교 자유화 후의 로마제국의 정치적, 사회적 통일을 위태롭게 할 정도였던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과 그 지식에서 오는 영생의 삶을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2세기 중엽에 나타난 몬타너스의 성령운동과 재림설교의 실패는 기독론의 지식이 미숙한 까닭이었다. 몬타너스 주의는 성신강림, 예언적 열성을 합해 말세의 박두를 외쳤는데 그것은 당시 교회의 세속화에 대한 반동이기도 했다.
몬타너스는 소아시아 브르기아 근처 아르다브로 (Ardabau) 출생으로 원래 이교의 사제였으나 156년경 성령의 도구가 되었노라며 예수의 말씀대로 성령의 시대가 왔다고 했다.  몬타너스주의는 교회의 세속화의 문제로 인해서 야기된 최초의 독특한 운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운동은 독신, 금식, 일체의 육적 욕심의 절제를 강조하므로 교회의 세속화에 대해서 항거하였으며 교회를 원래상태로 회복 시키고자 힘썼다. 이 운동은 후에 수도원 운동, 노바티안 (Novatians), 도나투스파 (Donatists), 왈덴시안 (Waldensians)등으로 발전하였다.
어거스틴은 바울을 따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율법을 완성시켰다고 생각하여 율법대신에 사랑을 강조하며 영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영적인식과 영적생활에서 필수적인 것은 영혼 깊은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었다.   바울에서와 같이 어거스틴에게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경건과 영성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사랑이다.
그는 저서 '독백'에서 서두에 만물이 하나님께로 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간다는 경건한 기도를 드리고 있다. 이러한 철학적, 이론적 노력도 인간의 종교적 영성운동으로서 경건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율법을 완성 시켰다고 생각하여 율법대신에 사랑을 강조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영성이라 생각하였다.
      b. 중세교회 시대
중세교회의 영성운동의 두 맥락은 초대교회때부터 있었던 수도원과 강력한 서방 로마카톨릭 교회라는 체제였다. 중세의 수도원 운동을 도피적인 은둔적 정신운동이며, 개인주의 운동일뿐 아니라 성서의 말씀과는 거리가 먼 금욕주의적인 고행주의를 중심으로 한 비복음적 운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정한 수도원 운동을 통한 영성훈련은 교회갱신, 사회정화, 구제사업, 교육제도 발전, 농축기술 개발, 종교 사상가 배출 등으로 형식적 형태만 남은 교회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어 넣은 활력소가 되었다.
수도원 운동의 시조인 안토니는 중앙 이집트의 코마에서 토착민의 혈통을 받아 250년경 출생하였다.   부자 청년에게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그의 소유를 포기하고 그의 고향마을에서 금욕생활을 시작하였다.   안토니를 모방하려는 사람도 많이 생겨 독거를 고집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집단거주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수도원 운동의 위대한 개혁자는 누르샤의 베네딕트였다.   480년에 출생한 그는 잠시 동안 로마에서 수학하였으나 그 도시의 죄악에 아연하여 로마 동편 수비아코에 있는 산속의 동굴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베네딕트의 유명한 규범은 그의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직에 대한 로마적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엄격한 생활이긴 하였으나, 보통 성실한 사람이면 절대로 불가능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베네딕트 수도원 운동의 안정되고 온건한 이상과는 매우 대조적으로, 켈트 형식의 수도원 운동을 신비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훈련되지 않는 무모성과 엄격한 금욕생활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운동의 뛰어난 공헌은 열성적인 선교활동과 학문에의 헌신에 있었다.
      c. 종교개혁 시대
종교개혁 정신은 프로테스탄트 원리로서 잘못된 신앙을 거부하고 올바른 성서적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교회의 갱신운동이다.   여기서 신-인간의 관계는 존재론적인 아래로부터의 당연한 획득된 관계가 아니라 위로부터의 하나님의 은혜의 강림이며 은총으로 시작되어, 지속되며 끝난다는 것이다.  은총의 현존은 계시사건으로 발생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을 심령의 문을 열고 받아들일 때 믿음은 시작된다.   믿음이란 또 다른 교리의 지적 인지행위가 아니라 신의 은총적 강림과 은총의 부어주심을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고, 마음문을 열고 죄인을 용납하시는 은혜로운 자비의 아버지를 받아 모시는 것이다.
중세기의 기독교 신학의 특징은 세가지 사닥다리에 의해서 하늘에 올라가는 점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은 스콜라주의적 합리주의와 신비주의적 황홀경험과 일반적인 도덕주의이다. 합리주의는 이성을 근거로, 신비주의는 경험을 근거로, 도덕주의는 행위를 근거로 하여 신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개혁에 의한 교회사의 전환점은 어거스틴파의 한 수도사인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가 수도원의 어떤 방에서 체험했던 경험에서 이루어 졌다.  루터는 로마체제를 뚫고 나아가서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돌파구를 열었던 사람이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그의 체험적 확신에서 였다.
루터의 궁극적 목표인 의롭다함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이며 그 믿음은 성서의 메시지의 전적수용이고 그것은 성령의 역사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루터의 신과의 관계는 객관적 관계가 아니고 인격적 신뢰의 관계가 된 것이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의 성령의 역사는 성서에 기록된 객관적 계시성의 주관적 신앙화 즉 성경을 통한 이신득의에 의한 신-인간에 있어서의 인격적 신뢰의 관계성립에 지나치게 치중한 나머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대한 언급에 있어서 소홀하였다.
그런가하면 칼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의 기독교 강요의 "성령론"안에서 신생( Regeneration)과 함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언급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신생은 양면성을 동시에 다 가지게 되는데 한면은 회개로 인한 옛 사람의 수정이고 또 한면은 새로운 삶에로의 참여인 것이다.  즉, 신생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회복이다.   이 회복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
칼빈은 신생에 있어서 의인과 함께 곧이어 성화에로의 경건의 재갈을 물린다고 할 것이다.   그점은 성령 안에서 자기 부정의 경건이요 그 자기부정은 신비주의자들의 자기 탈피와는 다른 것으로서 신과 그리스도와 이웃에게 정위된 자기부정인 것이다.
      c. 근대교회 시대
근세에 있어서의 기독교 영성운동은 웨슬레 (John Wesley)를 중심한 영국의 부흥운동이 그 주축이 된다고 할 것이다.   웨슬레가 회심하던 해인 1738년에 있어서 영국의 도덕과 종교는 일찌기 어느 기독교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심히 부패되어 있었다.
사실상 18세기 초기의 영국의 부패는 종교, 특히 종교지도자들의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신론 (deism)의 영향에 의한 결과이었다.   이때야말로 이신론이 모든 분야를 휩쓸었던 시대였다.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으나 인간의 삶속에 역사하시는 존재로서의 하나님은 제거되어 버리고 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계시의 다리를 부수어 버리며 성서의 권위를 형편없이 떨어뜨렸다.
웨슬레 신학의 중심은 확신 (assurance)과 완전 (perfection)의 두가지 교리이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신생과 사랑으로 인한 성화인 것이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우리의 심령속에서 증거 하신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확신이라고 칭하는 복된 체험의 기쁨을 맛보았을 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백성에게 이 기쁜 확신의 체험을 외쳤다.
이상과 같은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개신교의 영성은 성경중심, 복음중심의 영성이며, 성령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하는 삶의 원천이며, 성령이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도록 하는 영성생활이 추구되었다.
 

제 Ⅲ 장. 영성운동의 실제 및 개발
인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참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이러한 삶을 위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고 이 믿음은 또한 성령의 감동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신자들은 영성훈련이 잘 되어 있었다.   이들은 모이기를 힘쓰고,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힘써 기도하고 필요한 것을 서로 공급해 주고, 복음을 전하였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러한 영성훈련을 생활화하며 성령께서 어떤 변화를 시키시며,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영성훈련은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훈련이지만 동시에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드리는 훈련이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체화된 하나님의 형상을 그리스도인안에서 이루어 나가는 삶의 과정이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 때문에 모든 영성훈련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오시게 하도록 하나님과 인간 및 피조물과의 깊은 친교와 연대성을 성취하도록 돕는 전인적인 훈련이다.
훈련은 엄한 규율, 복종, 인내의 연속이다. 하나님의 풍요함을 우리 삶으로 가져다 주는 영성훈련 또한 그렇다. 그러나 율법에 매인 훈련은 우리를 죽음으로 인도한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처럼 영성훈련이 외형적 행실에 치우쳐 율법화되면 교만해져서 남을 지배하려 들고 심판하게 되며 그렇게 되면 이 영성훈련은 축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의 길이 되고 만다. 즉, 훈련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훈련이 그로 하여금 우월감을 느끼게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제1절. 개인적인 영성훈련
하나님과 관계된 훈련 중 침묵과 명상의 훈련, 기도훈련, 학습훈련을 취급하려 한다.
     a. 침묵과 명상훈련 (묵상)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고 행동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어느때는 침묵하며 행동을 멈추고 조용히 쉼을 바라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많은 활동을 하지만 그에 반해서 모든 활동을 떠나서 모든 것을 멈추고 조용히 침묵하므로 영성을 훈련강화 할 필요를 느낀다.
명상은 하나님과 교제, 하나님과 대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것, 하나님 말씀을 받아순종을 다짐하는 하나님께 응답하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침묵과 명상의 생활은 고독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기회이다. 예수는 이일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경험했다 (마 4:1-11).
침묵을 통해 영성훈련의 방법을 잘 설명한 사람은 헨리나웬이다.   나웬은 영성훈련이란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의 세계와 이웃에 대한 사람들과 하나님에게 이르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 운동은 그의 내면의 세계에서 경험되고 감지되는 사건을 조용히 찾아 고독에서 정숙으로 적개심에서 친절로, 환상에서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라 하였다.
명상의 목적은 ①마음의 말을 배우고,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수용성을 높이는데 있고, ② 하나님의 생생한 음성을 듣는데 있으며, ③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명상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매디타리 (meditari)에서 온것으로 그 의미는 무엇에 관해 '생각한다', '숙고한다', '반응한다'는 것인데 그 어원은 메드(med)이다. 이것은 측정을 의미한다. 이 형태의 명상은 인간존재의 신비와 경험의 측정을 위한 길이되나 명상에 대해 모톤겔시 (Morton Kelsey)는 '인간이 자라고 되어 가는 적절한 환경과 함께 영혼을 준비하는 시도' 라고 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우리가 명상을 실천하므로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는 경험의 위대한 측정의  기준을 말한다.
모든 성도와 함께 하나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히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엡 3:18-19)
명상의 준비는 참으로 중요하다. 명상의 단계는 종교적인 전통에 따라서 각양 각색으로 실시되므로 어떤 하나만을 말하기 쉽지않다. 오코너(Elzabeth o'Conner)는 그의 저서 '침묵의 추구'에서 명상의 여러단계를 자세히 설명한다.
명상의 준비단계는 여러가지이나 공통점은 천천히 마음의 긴장을 풀고 주의를 긴장시킴으로 명상은 시작된다. 명상의 대상은 첫째, 하나님의 말씀(수 1:8 ; 시 119:97)이다. 교황의 권위 보다 더 상위의 위치에 성경을 인정치 않는 카톨릭에서도 명상에서의 성서의 중요성을 18세기 프랑스 샤미드 신부는 역설한다. 그는 '명상 기도중에 우리의 믿음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가장 적절한 통로는 성서이다'라고 말한다.
명상의 구절을 기술해보면 ① 존재의 근원 (시편 1편) ② 신뢰와 확신 (시 23,31,131편) ③ 창조의 경외 (시 8,139) ④ 하나님의 영광 (시 19) ⑤ 고통과 비애 (시 22,38,39,56) ⑥ 도움의 기도 (시 4, 28, 69, 70, 86, 88, 130) ⑦ 찬양과 감사의 기도 (시 30, 34, 47, 65, 66, 67, 92, 95, 100, 104, 107, 111, 113, 135, 145, 146, 147, 148, 149, 150)등이다.
둘째, 하나님의 성품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그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명상함 (시 113:5-6, 117:12).
세째, 하나님의 하신일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놀라운 역사, 하나님의 만드신 우주와 자연, 나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등, 시 8:1-4)
명상에 있어서 성령의 현존은 중요하다. 기독교 명상은 하나님의 성령의 현존안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참된 자기의 실제를 바로 이해, 파악, 성찰, 행동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살레지오 신부는 묵상시의 성령의 현존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현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① 하나님께서는 어디나 계시다는 것을 조심하여 인식한다.
② 하나님은 그대의 마음안에 계신다.
③ 구세주는 하늘로부터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신자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④ 상상력으로 구세주의 거룩한 인성을 친구와 같이 우리곁에 계시듯 그분을 그려라.
성령의 임재를 의식하면서 성령의 신비한 임재를 경험하는 가운데 가지는 영적훈련이 곧 명상훈련이다. 명상의 시간은 성경을 통독하는 시간을 정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갖듯이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실천해야 한다. 성장의 주역인 평신도들의 명상훈련은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전인 새벽의 시간을 통해서 정해진 시간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 명상의 장소는 조용하고 방해받지 않는 장소를 택하여야 한다. 일정한 장소이어야 한다.
      b. 기도 훈련
기도는 영성생활의 문을 여는 열쇠와 같다. 침묵과 명상은 사람의 언어나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방법이라고 한다면 기도는 사람들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들어내는 것이다.   기도는 선물인 동시에 명령이다.   기도는 신적은총이 부어짐으로 가능하다.   John Preston는 '기도가 은총의 연회' 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은총이 많은 영성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기도는 본질상 겸손과 복종이며 형태상으로는 감사요, 고백이요, 찬양이다. 그 결과 기도를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만나는 대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훈련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심령에 가장 깊고 높은 행위속으로 들어 가는 것이다. 기도를 통해서 생활의 변화, 새생활이 창조된다.  웰리암 케리 (William Carey)는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밑뿌리" 라고 말한 것은 적절한 평가라 할 수 있다.
기도는 영적 생활의 기본이다. 제자들이 예수께 기도방법을 요청하였을 때 예수는 기도를 기꺼이 가르쳐 준 기록을 신약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눅 11:1).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생명선이다. 기도는 하루를 열고 닫으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창조주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으며 성령을 인격적인 분으로 내게 힘주시는 분으로 믿는 모든 이는 기도할 수 있다. 구약에서는 대체로 육신 유익을 위해서 기도한 기록이 많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기도 (출 2:23), 히스기야는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해서 기도했다 (왕하 20:1-7).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다 (삼상 1:10-11). 신약에서는 영적 유익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촉구하였는데 먼저 그 나라와 그의를 위해서 구하라 했다 (마 6:33).
기도는 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솔직 담백하게 (마 6:7)  ② 응답해 주실것을 믿고 확신을 가지고 (요 15:7, 3:22)  ③ 성령안에서 기도 (출 8:26-27)  ④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한다 (요 16:24)  ⑤ 기도의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 -  찬양 (Adoration), 고백 (Confession), 감사 (Ttankgiving), 간구 (Supplication).
왜 기도해야 하는가는 기도의 당위성 문제이다.
① 기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마 26:41, 살전 5:17)
② 영적 성장을 위해서
③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요 14:13)
④ 예수께서 친히 본을 보이셨기에 (마 6:9-13)
⑤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를 위해서
⑥ 하나님의 권능을 힘입기위해 (행 1:5-8, 막 9:29)
기도의 응답은 쉽게 대답하시는 기도가 있고 대답치 않는 대답도 있으며 기다려야하는 대답도 있다.   그러나 대답지 않는 기도는 응답을 받지 못하는 기도가 있다.
기도는 훈련의 대상이 아닌 것으로 오해하는 겅우가 있다.   기도훈련 없이 참된 기도가 될 수 가 없다.   개인의 기도훈련을 위해서 일정한 시간을 정해서 매일 기도하며 또한 일기를 쓰면 더욱 효과적이다.  효과적인 기도 일기를 쓰기 위해서 주의 할 사항을 찾아보면, ①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매일 글로 기도읽기를 쓸것  ② 나의 하루의 삶을 말씀에 비추어 잘못된 것을 고백하는 기도읽기  ③ 중보기도의 내용 및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계획 하나님께 아뢰고 확인하는 내용  ④ 자신의 영적인 생활의 성장과 성숙에 관한 내용을 언급되도록  쓴다.
기도일기를 쓰는 순서
① 기도일기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니다.
      i) 기도일기는 감사와 찬양
      ii) 반성과 회개
      iii) 하나님께 하고 싶은 이야기
      iv) 새로운 다짐과 결단
② 기도일기는 진실된 말을 꾸밈없이 씀
③ 타인을 의식해서 써서는 안됨
④ 구체적으로
⑤ 하나님께 대한 감사, 찬양
     c. 학습 훈련
영성훈련의 목적은 그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는데 있다. 이 목적을 이루는 것을 어렵게 하는 옛 습관을 버리고 생명을 강하게 하는 새 습관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 목표는 말씀 학습 훈련에서 이룰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우리가 변화함을 받는 길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학습은 우리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하나의 통로가 학습훈련임을 알아야 한다.
현금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학습훈련을 잘 감당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을 학습훈련을 잘 감당하지 못하므로 불안과 공포에 쌓이며 많이 봉사하여야 할일에 열성을 다하지 못하며 신앙적인 성장을 맛보지 못하는 경우를 볼 수가 있다.
학습이라는 말은 라틴어 studere에서 온것이며 그 뜻은 '열심', '부지런함' 그리고 '밀어붙인다'는 뜻이다. 학습에서 우리는 많은 제목을 알게되고 발견하도록 열심을 다하는 것이다. 진리탐구에 대한 열심이 없이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지식이 없이는 자유함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학습에는 단계가 있다. 단계는 4개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정신이 어떤 특정방향으로 향하도록 규칙적인 길을 위해 반복하는 것이다.   둘째 정신의 반복위에 집중하는 것이다. 셋째 이해로써 실제에 대한 통찰과 분별을 이루어 진정한 지각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며, 넷째는 우리가 학습하고 있는 것의 의미를 규명하기 위하여 숙고하는 것이다.
영성훈련을 위한 학습의 내용은 그 기본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서는 영적성장을 촉진하는 것으로 우리를 변화시키고 새롭게 하며 새로운 삶의 규범이다.   사람의 행실을 깨끗게하며 범죄치 않고 마음에 두어야할 것이 바로 성경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가지 의미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둘째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셋째는 하나님 말씀을 우리는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라 부른다.
성경말씀을 접근하는 방법을 생각하면 첫째는 말씀훈련을 통하여 정보를 발견하고 지식을 습득하고 진리를 깨달으려하는 지식훈련 (imformation training)이고 둘째는 말씀훈련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을 우리속에 넘치게 하여 우리의 인격을 변화시키는데 역점을 두는 생명훈련 방법 (transformation training)이다.
또한 말씀 훈련의 유형은 첫째는 신구약을 통독하는 훈련, 둘째는 성경공부훈련, 세째는 말씀 묵상훈련, 네째는 성구 암송훈련이 있다.
영성훈련을 위하여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은 영적으로 탁월한 이들의 경건서적을 학습하는 일이다.
① 경건한 고전들
. St. Augustine : 고백 (The confessions)
. St. Igantius of Loyola : 영적훈련 (Spiritual Exercise)
. Thomas a kempis : 그리스도를 본 받아 (The Imitation of Christ)
. Martin Luther : 탁상담화 (Table Talk)
. Francois Fenelon : 기독자 완전 (Christian Perfection)
. Brother Lawrence : 하나님 현존의 실행 (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
. Willian Temple : 기독자의 믿음과 삶 (Christian Faith and Life)
② 기   도
. O. Hallesby : 기도 (prayer)
. Dick Eastman :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간 (The Hour that changes the World)
. Anthony Bloom : 기도의 시작 (Beginning to Pray)
. John Killinger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의 기도, 행동 (Prayer - The Act of Being With god)
. Charles Allen :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기도 (Prayer changes Things)
. George Buttrick : 기도 (Prayer)
. Andrew Murray ;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의 학교 (With Christ in the School of Prayer)
. R.A. Torrey : 기도하는 방법 (How to Pray)
. Joachim Jeremias : 예수의 기도 (The Prayerss of Jesus)
. Jean Nicolas Grou : 기도하는 방법 (How to Pray)
. W.E. Sangster : 나에게 기도를 가르치소서 (Teach Me to Pray)
. Michael Quoist : 생활을 위한 기도 (Prayers for Life)
. Andrew Murray : 기도의 생활 (The Prayer Life)
제 2 절. 공동체를 통한 영성 훈련
영성훈련의 관계성 훈련 중, 종의 훈련과 봉사의 훈련, 청빈훈련을 취급하였다.
      a. 종의 훈련
① 종의 자유 - 종교에 있어서 복종에 대한 그릇된 교훈만큼 인간을 파괴하는 것도 없다.    그러므로 조심스러운 마음과 분별력을 가지고 이 종의 훈련을 대해야 한다.
종의 훈련에  관한 성경의 교훈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정신에 일차적으로 촛점을 두고 있다. 성경은 상하 관계를 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섬김 관계의 내적 자세를 말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종의 정신을 통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을 존중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게 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유익을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다른 사람들을 무조건으로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어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 5:44에 말씀한 "...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② 시금석 - 종의정신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위해 시금석이 되는 말씀은 막 8:34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거의 본능적으로 이 말씀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기 부인' 이라는 말보다는 자기성취 또는 자기 실현이라는 말을 훨씬 더 즐겨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부인에 대하여 개성을 배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자기 증오가 없는 자기부인을 요청하셨다.
③ 예수님이 가르치신 혁명적인 종속관계 -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철저한 사회적 교훈은 '위대한'에 대한 현대인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지도력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데서 발견되었고 힘은 종의 정신을 통하여 발견되었다.
십자가의 길, 즉 고난받는 종의 길은 그리스도의 사역에 있어서 기본적인 것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생명의 삶을 사심으로써 그 당시의 관습을 타파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는 종으로 봉사하는 십자가의 생명의 삶이었고 그분의 죽음은 고난을 통해 승리한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완전히 연합한 가운데 항상 제자로서의 순종하는 선택을 하셨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십자가에 대하여 인간으로서의 두려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중에도 아버지의 뜻을 택하셨다. 이 선택은 제자의 도에 있어 가장 실제적이고 궁극적인 의미가 된다.
④ 신약의 서간서에서 가르치고 있는 혁명적인 종속 관계 - 예수님의 모범이 그리고 모든 인간 관계에 있어서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는 요청이 종의 정신에 관한 각 서신의 교훈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바울은 골 3:18-22에서 법적 혹은 도덕적 신분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던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였고 결정권 행사가 금지되어 있었던 사람들을 결정권 행사자로 만들었다. 바울이 그와 같은 명령을 한 유일한 이유는, 복음의 메시지에 의하여 그들이 사회의 종속적 신분에서 자유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사실에 있다. 바울이 그렇게 촉구한 것은 "주안에서 마땅한 것이라" (골 3:18)는데 기초를 두었기 때문이다.
서신에서의 제자됨에 있어서의 변화의 목표는 결코 변경되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제자의 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 방해되는 옛사람은 모두 거절 되어졌다. 옛 방식은 버리고 이제는 교회에서 새로운 제자됨의 과정을 취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변화는 예수를 함께 따르는 자들이 경험하게 되는 가족과 지체의식의 활력에 의지하여 촉진되어지는 것이다.
⑤ 종의 정신의 행위 - 종의 정신의 일곱 가지 행위가 있다.
i) 행위는 삼위일체가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ii) 성경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도 복종해야 한다.
iii) 우리의 가족에 대한 것이다.   종의 정신의 기본적인 실행은 가족이 서로서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데 있다.
iv) 이웃과 이상 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v)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대한 것이다.
vi) 상처 받은 사람, 멸시 받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vii) 세계에 대한 것이다.
      b. 봉사의 훈련
십자가가 종의 정신의 징표인 것과 마찬가지로, 섬김은 봉사의 징표이다.  "봉사의 훈련"에 있어서도 큰 자유가 있다. 예수님께서 지도력에 대한 정의를 완전히 새롭게 하셨고 권위의 배열을 새롭게 배열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지배 서열을 거꾸로 바꾼 것이 아니라 그것을 철폐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적 권위는 지위나 혹은 칭호에서 찾는 권위가 아니라 섬김에서 찾는 권위이다.
① 자기 의의 봉사와 진정한 봉사 - 진정한 봉사를 이해하려면, 그리고 진정한 봉사를 실현하려면 진정한 봉사와 자기 의의 봉사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i) 자기의의 봉사는 인간의 노력을 통해 온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내부 은밀한 곳에 계시는 거룩하신 분과의 관계에서 온다.
ii) 자기 의의 봉사는 늘 거창한 것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작은 봉사와 큰 봉사를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iii) 자기 의의 봉사는 외부적인 상급을 요구한다 (인간의 칭찬을 요구함).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숨는 봉사를 만족하게 여기며, 다른 사람의 주목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주목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오직 예수님의 인정만 바란다).
iv) 자기 의의 봉사는 결과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 진정한 봉사는 결과를 계산하는 일에서 벗어나 자유로우며 봉사 그 자체를 기뻐할 뿐이다.
v) 자기 의의 봉사는 누구에게 봉사할지 그 대상을 선택한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뭇사람에게 한다.
vi) 자기 의의 봉사는 기분에 의해 영향을 받아 섬길 기분이 내켜야 비로서 섬긴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순수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한다.
vii) 자기 의의 봉사는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일종의 생활 방식이다.
viii) 자기 의의 봉사는 지혜가 없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봉사를 수행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봉사를 보류 할 수도 있다.
ix) 자기 의의 봉사는 우리 자신의 이득을 계산한다.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우리의 관심사와 고통을 옆으로 제쳐두고 다른 이들에 대한 동정을 보이며 그들을 돕기 위하여서 어떠한 희생의 댓가라도 치루는 것이다.
x) 자기 의의 봉사는 공동체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가 드러 나기를 원함).   그러나 진정한 봉사는 공동체를 위한 자기 희생이다.
결국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 나간다는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이들과 계속적으로 접촉하면서 살아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합하여 있는 가운데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이들을 귀하게 여김으로써 그들을 섬기기 위해 우리  자신을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② 봉사와 겸손 - 겸손의 미덕은 다른 그 어떤 방법보다 봉사의 훈련을 통하여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 진다.   훈련을 통하여 겸손은 우리가 추구함으로써 얻을 수 없는 미덕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영적훈련" 가운데서 봉사의 훈련이 겸손의 성장에 가장 큰 도움이 된다.
③ 삶의 현장에서의 봉사 - 봉사가 진정한 봉사로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안에서 형체를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일상생활 속에서의 봉사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i) 숨은 봉사를 하여야 한다.
ii) 작은 일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
iii) 다른 사람들의 명성을 보호해 주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iv) 댓가를 바라지 않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v) 보편적인 예절의 봉사가 있어야 한다.
vi) 서로 대접하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vii) 듣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viii) 서로서로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ix) 서로 생명의 말씀을 나누는 봉사가 있어야 한다.
의무적인 동기에서 봉사하는 봉사는 죽어버린다.    우리의 속 사람에서 흘러 넘치는 봉사는 생명과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섬김의 봉사에 참여하라고 부르신다.   먼저 기도하고 봉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c. 청빈 훈련
① 청빈훈련의 의미 - 청빈이란 현대인들이 쓰는 가난이라는 말과는 그 뉴앙스가 다르다. 오히려 인간을 물질적 재산의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현대에 와서 가난이라고 하면 곤궁, 비참을 뜻하지만 교회에서는 마음을 물질에서 돌리는 것, 물질을 하나님을 위해서 쓰는 것을 의미한다. 청빈은 물질의 노예 상태에서 내부적으로 해방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물품을 분수에 맞게 쓰는 것을 의미한다.
청빈훈련은 내가 소유한 모든 소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원하는 곳에, 그리고 궁핍한 형제, 자매들에게 언제든지 나누어주는 청지기 훈련이다. 청빈은 물질의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청빈은 내적인 기쁨과 안정을 가져오나 사치는 근심과 불안을 가져온다(전 7:20). 청빈훈련은 내면의 본질이 외부생활양식에 결과를 맺는 것이다. 청빈의 내면과 외면은 다 중요하다. 청빈은 물질의 노예상태에서 내부적으로 해방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물질을 분수에 맞게 쓰는 것을 말한다.
청빈훈련의 중심점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개인적 사회적으로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마 6:33). 청빈의 참모습은 우리의 소유를 하나님의 선물로서 받아드리는 것이요, 우리 소유를 돌보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님을 아는 것이요, 우리 소유를 남들을 위해 쓰는 것이다.
② 청빈의 외적 표현 - 청빈을 말할때 내면뿐만 아니라 청빈의 외면도 중요하다.   청빈을 위한 외적 표현 원칙을 R.J. 포스터 교수는 다음과 같이 10가지를 제시한다.
i) 물건을 살 때에는 위신에 관계 없이 실용성을 보아야 한다.
ii) 탐닉하게 되는 것을 모두 물리친다.
iii) 물건들을 주어 버리는 습관을 기른다.
iv) 현재 매스콤의 광고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v)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운다.
vi) 자연의 삼라만상을 깊이 감상한다.
vii) 지금 사고 값은 나중에라는 덫에 걸려서는 안된다.
viii) 정직과 일관성 있는 말을 해야한다 (눅 6:35)
ix) 남을 억압하게 될 일은 모두 물리쳐야 한다.
x) 나의 주요 목표에서 다른 곳으로 정신이 팔리게 하는 것은 모두 물리친다.   마태복음 6:33절 말씀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제 1 우선권이 되도록 굳게 지키고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청빈안에 거한다는 뜻이다.
      d. 예배 훈련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하여 양심을 살리는 것이며, 마음에 하나님의 진리를 공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의하여 더러운 상상을 정결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에 마음을 여는 것이고 하나님의 목적에 의지를 바치는 것이라고 윌리암 템풀 (William Temple)은 말했다.
예배의 어원적 의미는 구약성서의 중요한 용어는 "다라시'(darash), "아바드"(abad), "샤카드'(sagad) 등이 있다. 이러한 용어가 나타내는 구약적인 관념은 종교적인 숭배, 순종, 봉사의 개념을 겸하여 마음 혹은 몸의 존경을 표시하는 태도등을 말한다.
예배는 아버지의 마음속으로부터의 사랑의 제의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인간의 영혼에 접촉할 때, 비로소 불붙여지며 (시 103:1) 형식과 의식만으로는 예배를 산출할 수 없다.
① 예배의 대상 - 예배의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막 4:10)에서 누구에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하나님이시다. 예배드리는 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신앙고백을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게 된다.
② 예배를 위한 준비 -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의 거룩한 특징의 하나는 거룩한 기대이다. 예배를 위해서는 인간위주의 활동을 멈추어야 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마음가짐, 몸가짐을 새롭게 하여야 한다.
③ 예배의 인도자 - 진정한 예배 인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께서 예배 인도자시라는 말 속에는 첫째 예수께서 살아계시다, 둘째 예수께서는 모든 직책들 속에 계신다, 셋째 예수는 모든 권세안에서 계신다, 넷째 예수께서 예배 인도자라함은 인간이 사용된다면 과연 어떤 점이 사용될지를 결정하는 분이 예수시다.
④ 예배로 가는길 - 각기 예배 형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예배하는 자들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가까이 계심을 기억하게 해주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인간 주도적인 모든 활동을 잠잠케 하는데 있다.
둘째, 찬양이 우리들로 하여금 예배하도록 한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의 전존재가 가담하는 예배를 요청하신다.
예배드릴때 예배의 내적 정신과 일치하는 육체적 자세로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바쳐야 된다.
⑤ 예배의 결과 - 예배의 결과는 변화이다.   예배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그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은 변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개개인의 경건한 생활은 공동예배에 참여 함으로써 풍요로워 진다.
예배훈련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하나님의 사명을 받으며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함께 세상으로 나가며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훈련이다.
한국교회의 보편적인 기도그룹들 기도그룹을 소개해 본다.
① 그룹기도회의 종류
i) 가정기도회 : 가정 기도회는 한가정을 중심으로 하여 몇몇의 다른 사람이 장소와 시간, 기도제목을 같이하여 모이는 모임이다.   가정단위, 가족단위 예배 형식이다.
ii) 소 기도회 : "두 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느 내가 함께 하리라"(마 18;19-20)고 하셨다. 구역모임이나 그룹 성경공부 모임이다.
iii) 기관기도회 : 교회내에는 여러기관과 단체가 있다.   이 기관들은 서로 다른 사명과 특징을 가지고 일하고 있는데 기도로 그 일을 준비하고 기도회를 통해서 영성훈련을 하게 된다.
iv) 철야기도회 : 철야기도회는 매주 금요일 또는 목요일 오후 11에 모여서 새벽 3-4시까지 야간에 자지않고 기도하는 모임이다. 하나님이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는 것만으로 만족해 하면 사랑을 주어야 할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철야기도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받고 새힘을 얻고 신앙의 활력을 찾은 성도는 복음과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향해 나간다.
v) 매일 철야 기도회 : 당번 시간이 허락되는 자가 매일 저녁에 하는 철야기도이다.
vi) 구룹 산기도회 : 여름철, 봄, 가을(주일,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그룹으로 산기도를 가는 기도 모임이다. 저녁식사후 입산하여 오후 12시부터 새벽 1시 사이까지 하는 기도 그룹 모임이다.
② 기도회의 결과 - 기도 그룹모임은 여러가지 형태의 활동을 하게 되다.   즉 회원들은 기도와 명상에 의해 영적으로 성장하기를 위해 힘쓰며 삶의 중점들은 함께 나누며 서로 중보기도해 주고 또는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과 서로 간의 사랑을 위해서 어떤 일을 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는 교회의 성장이다. 기도회는 교회에서 중요한 모임이다. 교회에 어떤 진정한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기도의 응답으로 주어진 것이다. 내적으로 은사를 개발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회개하는 경험을 하고 성령의 임재를 느끼기도한다.
      c. 부흥회를 통한 훈련
부흥회라는 말보다는 초기의 부흥회는 부흥사경회였다. 알렌은 한국교회의 최초의 성경공부를 1887년 봄 아펜셀러의 선교사 집에서 배재학당의 학생 한사람과 젊은 관리 한사람이 시작했다고 하며, 1888년 1월 이화학당에서 처음주일학교를 시작하여 처녀 12명과 부인 3명이 모여 공부를 했고 1882년 2월 스크렌튼 부인이 주일밤 성경공부를 했는데 평균 35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교인을 훈련하는 방법은 다양했으나 가장 중요한 방법은 부흥사경회라고 볼 수 있다. 부흥사경회는 5일에서 2주까지 일정한 기간동안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키는 제도였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래서 나태해진 신앙과 해이해진 결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과거에 특별한 영적 훈련방법이 없던 시절에 부흥 사경회는 교인 훈련의 중요한 방법이었으며 부흥사경회를 통해 많은 헌신자들과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 부흥사경회는 과거에 영적훈련과 신앙훈련의 방법으로 중요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격변하는 시대에 살면서 영적으로 침체된 신도들에게 영성을 회복하게 하는 좋은 훈련이 되리라 생각하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시대 상황에 맞는 부흥사경회의 방법이 연구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로버트 콜먼 (Robert Coleman)은 교회부흥의 원리와 실제라는 그의 저서에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① 새신자 양육 - 새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갓난 아이들 (벧 2:2)이다. 그러므로 영적 보호자가 있어서 지속적으로 영적 지도를 해주어야 한다.
② 그룹모임들을 통한 성장 : 부흥 사경회를 통하여 교회에 들어오면 다른 사람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교제가 필요하다.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된다는 의미를 알고 함께 신앙 성장의 경험을 하게 된다.
③ 회중적인 생활 : 교회안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가족 속의 일원을 성장하도록 해주어야 하며 이러한 활동들을 통하여 부흥의 영력을 지속시키고 또 더욱 성숙한 영적인 훈련의 계기가 될 것이다.
제 3 절. 한국교회 영성운동의 현황과 실제
현금 한국교회에서는 영성훈련을 위한 기도훈련을 기도학교를 열어서 실시하고 있다. 개인기도 훈련, 공동기도(공적기도) 훈련, 새벽기도 훈련, 40일 새벽기도 훈련, 40일 철야기도 훈련, 한밤중 기도훈련, 40일 저녁 기도훈련, 정오기도훈련등 각양의 기도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한국 에서 실시하는 영성훈련을 위한 기도훈련은 100일 저녁 기도, 100일 새벽 기도, 40일 특별 새벽, 40일 저녁기도 훈련, 권사 기도학교 훈련, 기도학교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기도원을 찾아서 산기도를 통한 평신도 영성훈련이 있다.
말씀연구방법은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다. 근래의 한국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성경공부 방법들의 유형은,
① 강의식 성경공부 방법 - 성경 한 권 한 권을 강의식으로 (지식훈련).
② 모자이크식 성경공부 방법 - 특정한 교리에 기초하여 제목별로 성경을 정리 공부.
③ 조감도식 성경공부 방법 - 성경전체를 하나의 관점에서 정리하여 조감도식으로 성경전체를 일별할 수 있게 공부하는 방법 (베델성경공부, Cross Way방법)
④ 귀납법적 성경 공부방법 - 프리셒트
한국교회는 외적성장과 더불어 성숙한 교회로의 영적성장을 위하여 여러가지 영성훈련을 시도했으나 영성이해의 부족으로 성숙한 단계는 이르지 못하였다. 한국교회에서 공동체 영성훈련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그룹기도회를 통한 훈련과 부흥사경회를 통한 영성훈련이다.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는 많은 강점을 가지고 있다. 많이 모이고 정열적으로 모인다. 철야기도회도 많이 모이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기도에 의해서라고 주장하는 자의 말이 맞는 말이다.
또 한국교회는 일반적으로 부흥사경회가 가장 많은 행사가 되어왔다. 이는 선교사들의 정책적인 의도였고 한국교인들이 부흥사경회에 대한 수용도가 아주 높기 때문이라고 본다. 부흥사경회는 설교의 감화와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훈련, 그리고 기도운동과 전도열정에 큰 공헌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부흥사경회가 영적 훈련의 하나의 방법으로 유익한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영성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결핍되었고, 또 부흥사경회를 통해서 열광주의 혹은 신비주의 신앙에 빠지는 경우도 발생되고 있다. 따라서 부흥회는 일회적인 행사가 아니라 지속적인 것이어야 하며 부흥회의 영력을 지속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면 어떻게 부흥회의 영력이 지속될 수 있는가?
초기 한국 교회에 있어서는 계속해서 교회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기초적인 원리에 대한 훈련은 꼭 필요하였다. 교인들을 훈련하는 일은 바로 교회의 존립과 성장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천병욱 교수는 영성훈련을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기 위해 주어진 모든 시간 여건을 조성해 나가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닮고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 영성훈련이라고 정의 혔다. 그의 정의에서 본다면 훈련의 의미는 첫째, 자유로움이다. 훈련받지 않은자가 그에게 주어진 일에 자유롭지 못함같이 훈련은 우리에게 자유를 준다. 둘째 훈련이 성령안에서 우리의 기쁨과 평화와 의의 행동구조를 우리안에서 형성케하는 가능성을 준다. 세째 영성훈련의 의미는 강압적인 것이 아니라도 힘든것이며 부자유스러운 것이기에 현금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거성들의 영성훈련의 방법은 다양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을 점검 해본다면 다분히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진다. 그 문제를 열거 해보자면
첫째, 일부 오순절 교회나 기도원 운동등에서 볼 수 있듯이 다분히 신비주의적이다. 이것은 말씀을 떠난 영성 운동이므로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둘째, 일부 교회에서 보여주고 있는 100일 철야 기도회나  40일 새벽기도회등은 너무 율법적이 될 수 있다.
셋째, 영성운동이라는 개념 조차도 모르고 영성 운동자체를 거부하는 교회들도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된다.

 
제 4 장. 목회에서의 영성
제 1 절. 목회에서의 영성의중요성
 
교회성장에 대한 연구 활동이 북미에서 활성화한 것은 1972년 이후 이었으며 교회성장에 대한 교회 연구 활동의 기원은 맥가브란 (Donald A. McGavran)이 30년 동안에 걸쳐 인도에서 3대째 선교사로 봉직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아야 한다. 맥가브란의 연구서 "How Churches Grow"이라는 책이 나오면서 본격화 되었다.
"교회성장'이란 용어는 맥가브란의 사상에서 나온 용어이다. "교회성장"이란 용어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직 아무런 개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더불어 교제를 가지도록 해주며, 책임있는 교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데 관련된 모든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라 피터 와그너 박사는 정의하고 있다.
그의 정의를 볼 때 교회성장이란 단순한 숫자놀음이나 가치없는 목표가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을 교회회원 즉 그리스도인이 되게하는 것과, 전도의 사명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와 친교를 갖게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에 대한 예배와 기도, 봉사등을 의미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책임성을 갖게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교회안에서나 사회에서 성숙된 신자로서 생활을 하도록 하게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맥가브란도 교회성장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돈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전략이 아니라고 했다.   교회성장의 기반은 신학적이다.   교회성장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실상 잃은 자들이며 하나님께서는 그 잃은 자들을 찾기 원하신다는 성서적 원칙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고했다.   그러므로 교회성장 이란 단지 교회의 신도수가 더 많아지는 것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다.   교회 성장이란 첫째, 그리스도인 개인의 신앙이 질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이고 둘째, 신앙 공동체의 수의 성장을 가져오는 것이며 세째, 교회의 선교적 차원에서 각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잘 수행하는 것이라 정의 할 수 있다. "교회성장"이란 양적인 면과 질적인 면이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교회성장에 대한 원리를 그의 저서 "Your Church Can Grow"에서 7가지 원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유능한 목사 : 교회 전체를 위한 유능한 지도력과 적극적인 목회행정으로 교회 성장을 위해 활동하도록 촉매역활을 하는 유능한 목사가 있어야 한다.
  ② 평신도 운동 : 교회 성장을 바라는 곳에서는 기동력을 지닌 평신도 운동이 하나의 새로운 희망을 준다.   평신도들이 자신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또한 교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게되면 거기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③ 넉넉한 교회규모 : 교회는 각 교인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 의 규모가 되어야 하며 그렇게될 때에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말미암아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
  ④ 예배 + 모임 + 세포조직 = 교회 : 많은 사람이 한자리에 모여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구할 때 드리는 예배와 교회내의 다양한 친교로 능동적이고 적절한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성장한다.
  ⑤ 동질 구성단위 : 이들은 많은 점에 있어서 공통적인 이해 관계를 맺고 있는 구성단위로써 그들의 동질적 관계가 적절하게 균형을 유지해야 교회가 성장하게 된다.
  ⑥ 효과적인 전도방법 : 전도한 후 그들의 결심에 그치지 않고 제자를 만드는데서 교회는 성장한다.
  ⑦ 우선 순위의 배열 : 와그너는 교회는 두가지 일을 해야 하는데 즉 구령사업과 사회봉사 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실행하느냐 하는 우선 순위에 따라 교회는 성장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a. 말씀을 중심한 신앙훈련
하나님의 말씀은 영성훈련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고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가지고 당신의 백성들을 고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과 신뢰,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공부와 성경적 원리의 적용없이는 교회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기에 조직이나 행정 또는 신비적 방법으로 양적인 확장만을 꾀하는 것은 참다운 교회성장이라 할 수 없다.   오직 교회가 성경에 뿌리를 내리고 성경적인 원리 위에 세워질 때, 그 교회와 교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구원받은 감격을 계속 전할 수 있어 교회가 성장되는데 이것이 참된 교회 성장이다.
      b. 기도를 중심한 영성훈련
영성개발을 위한 훈련이라는 과정 가운데 기도훈련은 자기 중심의 삶의 방식에서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새로운 양식의 사람으로 변화된 모습이다.  즉 묵상을 통한 영성개발은 인간의 영이 자기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성령과 만나는 기회이다. 그리고 성령으로 채워진 영이 삶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나타내며 그리스도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다.
기도는 영적인 삶에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기도를 통한 영성개발이란, 기도를 통해 신앙이 성장되고 나아가서 하나님이 원하는 영의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이다. 영적으로 개발된 사람은 기도하기를 즐거워 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의 갈망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와지고 변화된 가운데 드리는 기도야 말로 개발된 영성에 의한 기도라 본다. 바울은 에베소교회 교인들에게 편지할 때 인간의 1차적인 원시상태의 기도가 아닌 영적성장을 위한 기도를 중요시하고 교훈했다 (엡 3:14-21).
하나님은 성도가 영적으로 나약하고 병들어 영적인 빈곤에 머물러 있을 때 슬퍼하신다. 하나님은 성도가 육적인 차원을 넘어 영적으로 성숙하고 개발할 능력이 있음을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기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인정하시고 개발을 원하신다. 평신도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면 나아가서 그리스도를 담대히 증거하고(행 2:37-47,38),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해 가는 생활을 하게 되고(빌 4:12-13), 모든 일을 참고 견디며 인내하게될 것이다.
제 2 절. 목회자의 영성
현대적 목회구조는 지금까지 고려해 왔던 영성의 전통과 복음의 세권고, 그리고 현상론적 네 요소가 균형을 이룬 구조여야 할 것이다.
  현대 교회는 모든 면에서 세분화되고 분업화 됨으로 말미암아 전체적인 통전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예배에서의 각 순서는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설교와 성만찬은 서로 공존하지 못하며, 설교-교육-선교-봉사 속에 있어야 할 일관된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목회자의 영성은 매우 중요하다.
  목회구조 속에서 영성의 전통을 회복시키려면 먼저 교회구조 자체를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개념의 이면에는 하나의 집합적인 혹은 총괄적인 인격으로서의 그리스도의 개념이 있다. 그리스도의 몸 사이에는 하나님에 의해 임명받은 교회 안의 다양한 직무들 사이에 상호 협력이 강조된다.  그러나 지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그리스도의 몸이다.  신앙과 세례,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증여에 대한 통전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수 없다.  그 안에서 교회는 성령의 친교를 이룰 수 있다.   이렇게 살아있는 유기체, 영성체로서의 교회를 통해 볼 때 교회는 어느 한 기능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차원에서 영성이 강조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의 각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몰트만의 교회론을 보기로 한다.  그는 교회를 "카리스마적인 공동체"로 본다.  교회는 전체 피조물의 자유와 화해를 위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고난, 하나님의 열망, 하나님의 행동의 일부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삼위일체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디아코니아와 케리그마와 코이노니아이다.  몰트만의 공헌은 이 기능들을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맥락 안에서 다루었다는 것이다.  즉 설교, 교육, 목회, 혹은 세상에 대한 봉사가 어떤 때라도 교회의 사역의 유일한 형식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날로 세속화의 양상이 첨예하게 가속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크리스챤의 영성개발은 실로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평신도의 신앙훈련, 제자화 훈련은 영성개발 내지 영성훈련 (Sjpirituality training)과 함께 수행되지 않으면 안된다. 훈련이 없는 신앙은 맹목적인 경향으로 흐르게 되며, 제자화 훈련이 없으면 '영의 교제'에 의한 신앙의 삶이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영의 교제는 단순한 탈 세속적 (de - secularization) 삶의 방향 지시가 아니고 오히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나타내게 하는 영적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영성개발은 양면성을 갖는다. 즉 내면적인 삶이나 내향적인 인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영혼을 포괄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동시에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의 양면성의 실천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부흥운동 (Revival Movement)의 맥락에서 다소 감정적이요, 개인주의적인 영성으로 굴절되게 된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영성운동이 심령의 힘과 도움을 크리스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 (Koinonia)가 단절된다면 어떠한 탁월한 계획과 프로젝트도 그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며 나아가 풍성한 결실을 맺기는 어려운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 선교 제 2세기를 맞이하면서 보다 성숙해지는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가 교회로써 참된 태도를 보일 때 교회는 성장한다. 이러한 현상의 밑바닦에는 반드시 영성 훈련이라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이러한 성장 이야말로 참된 성장이며 바로 성숙과 통하는 것이다. 이 시대의 현상을 볼 때 그리스도인의 영성개발과 훈련은 정말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가장 모범적인 영성화된 교회의 실제를 초대 교회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대 교회 발전의 공식은 사도행전 1:8에서 볼 수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성경안에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성령에 있어서 그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초대교회 중에서도 예루살렘 교회, 안디옥 교회, 에베소 교회를 비롯하여 여러교회가 있겠지만 예수님 부활 승천후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모였던 무리들을 최초의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것을 고려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에베소 교회 그리고 안디옥 교회의 예를 기억해야 한다.
안디옥 교회의 역사는 스데반 (Sjtephen)의 순교 이후에 있었던 성도들의 이산으로 시작된다 (행 11:19-21).   이방도시 안디옥에 세워진 안디옥 교회는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설립되고 그들은 유대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가 가지고 있었던 장점은 이러하다.
첫째, 안디옥 교회는 미약한 교회였지만 선교하는 교회였다.   바나바와 바울은 이곳 안디옥에서 이방전도를 위한 터전을 찾았다.
둘째,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따랐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세웠다 (행 13:2).
안디옥 교회는 이와같이 훌륭한 두 인재를 선교사로 파송했고 바울의 성공적인 선교여생은 바로 여기에서 잉태되게 되었다.

제 3 절. 영성목회의 필요성
영성훈련이 잘된 성경에 타나난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행 2:1-47), 안디옥 교회(행 11:19-30), 에베소 교회(행 19:5-7)를 생각해 보았는데,
김선도 목사는 한국교회 성장의 요인으로 9가지 특질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① 한국교회는 기도에 근거하고 있다.
      ② 한국교회는 성서적 근거를 확실히 가지고 있다.
      ③ 폭발적인 영적 각성운동을 한국교회는 가지고 있다.
      ④ 역사적 고난의 흔적을 가졌다.
      ⑤ 십일조등 재정적 뒷받침이 있다.
      ⑥ 잠재적인 평신도 지도자 참여가 강하다.
      ⑦ 풍부한 종교적인 유산을 가지고 있다.
      ⑧ 소집단 운동으로 성장했다.
      ⑨ 도시화 현상
그는 이상의 특질에 자신의 목회를 적용시킨 사실을 시인하고 있다.  위의 9개의 특질중 ①항, ②항, ③항, ⑥항, ⑧항 등의 요인을 보아서 평신도의 영적훈련으로 교회가 활력을 얻고 성장한 교회가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1946년 개척된 영락교회를 고찰해보면, 개척될 당시 100여명의 성도가 1978년 장년 제적만 6만, 세대수 1만 7천, 구역수 1천 5백으로 성장하였다.
이들의 성장요인이 무엇일까 ?
영락교회의 한경직 목사의 4대 신앙지도 원칙은 ① 복음주의 신앙노선(성경중심) ② 경건생활의 연습 ③ 교회연합 운동의 협력 ④ 사회정의 구현이다.   여기서 볼 수 있듯이 교회의 기본 골격을 성경중심의 경건생활 훈련에 둠으로 영락교회의 성장이 우연이 아닌 평신도 영성훈련을 통해서임을 알 수 있다. 영락교회의 교육 지도방침에도 평신도의 영성훈련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계시 하시는 하나님의 실재와 인간을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예배와 순종으로 그에게 응답하고 자신을 발견하며 성경 말씀으로 그리스도와 같은 품격으로 성장함으로 사회와 역사 속에서 몸된 교회의 선교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에 처한 사회를 건설하는 책임있는 삶을 살도록..."
제 V 장. 결   론

이제까지 영성훈련과 목회에 대하여 고찰 해보았다. 제 II 장에서는 영성훈련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다른 종교와 일반적인 영성에 대한 이해를 통해 기독교의 영성을 구별하였으며, 영성이란 언어를 성서적 어원을 설명하면서 초대교회로부터 중세를 거쳐, 종교개혁, 근대에 이르는 영성운동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는 기독교 영성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구분 또한 성서적인 근거, 교회사적인 역사전통 등,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만이 오늘날 영성운동이 바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영성훈련의 필요와 목적이라는 면에서 영성훈련의 진정한 의미가 우리의 의지에 의한 훈련이 아닌 성서적 근거속에서 성령에 자신을 의탁하므로 시작되어질 때 그 의미가 더욱 있음을 살펴보았고 영성훈련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그 필요성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음을 밝혔다.
제 III 장에서는 훈련의 대상인 신자들에 대한 이해와 영성 훈련의 성서의 어원적인 고찰과 초대교회에서부터 중세와 종교개혁, 그리고 웨슬레, 현대의 평신도에 대한 이해와 역할의 변천과정과 교회와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교회내에서의 훈련의 역할을 기능중심과 직분중심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다양한 기능과 나누어진 직분에 의해서 조직되어진 모임이라도 그 기능과 직분을 감당 할 만한 훈련되어진 일군이 없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영성 훈련의 진정한 의미와 효과적인 훈련방법들을 제시하였는데, 하나님과 나 사이의 일대일의 관계를 중요시하여 자신의 내적인 은사, 능력개발하는 방법인 개인 훈련, 다양한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과 접촉하며 살아야 하는 현재의 삶에 형태속에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타인과 관계를 어떤자세로 해야 할 것인가를 훈련하는 관계성 훈련, 주님의 몸된 공동체 속에서 그 공동체 구성원 전체의 실질적인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인 공동체 훈련등을 몇 부분으로 나누어서 실제적으로 사용하거나 실현가능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제 IV 장에서는 이제까지의 개념과 훈련이 목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교회성장에 대한 이해와 성서적 근거, 기본적인 원리를 맥가브란과 피터 와그너의 이론을 중심으로 제시하고 이를 종합하여 나름대로의 원리를 천명하였다.
아무리 잘 계획된 훈련 프로그램이라도 훈련받을 자가 없거나 훈련받는 자가 수용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영성훈련의 내용이 심오하여 개인과 어느 특정집단의 영성을 성장시킨다 할지라도 교회와 연관을 맺지 못하고 교회성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무익할 것이 될 것이다.
이에 본고의 의의를 두고 몇가지 제안을 하여본다.
첫째, 먼저 중요한 것은 평신도의 영성훈련 이전에 목회자 자신의 영성 훈련이 선행되어져야 한다.
둘째, 영성훈련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적인 삶을 우선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개인은 영적성장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다. 이 가까워진 관계는 개인의 만족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에 대한 헌신의 모습으로 나타나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온전한 하나님에 대한 헌신자가 나올때 교회는 성숙해 지는 것이다.
세째, 영성훈련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완성하도록 훈련해야 한다.  종교개혁의 주제인 오직 믿음이라는 표제 이후에 우리는 개인의 믿음을 강조하여 하나님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한 반응를 나타내고 열성적이지만 이웃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오늘날 같이 혼란한 사회 속에서는 영성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이웃에 대한 책임을 다하므로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넷째, 영성훈련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면서 더욱 새롭고 활동력이 있어 교회성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밑거름이 되도록 훈련되어 져야한다.  
하나님의 역사는 생명의 역사이다. 생명은 끝없이 성장하며 날마다 새롭게 변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활동하여 나간다. 이 생명의 역사의 주체는 바로 하나님의 영인 것이다. 성령이 내주하므로 개발된 우리의 영성은 활동력이 있으므로 교회성장에 밑거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 있었고 성령의 충만함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역사로 나타나 있음을 보게된다. 이런 점에서 영성훈련을 통한 개인의 성장이 바로 교회성장과 연결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 참 고 문 헌
1. 외 국 서 적
D. A. McGaran and Win Arnfield.  The Steps Church Growth, Sanfrancisco : Harper and Row, 1977.
D. Bonhoeffer.  The Communion of Saints, N. Y. : Harper & Row Publisher, 1960.
E. W. Bullinger.  The Giver and Gifts, Grand Rapids : Eerdmans, 1979.
Eliazbeth O'Conner.  Search for silence, Waco, Texas Word, 1972.
Ewelyn Underhill.  Mysticism, London : E. P. Putton & Co, 1961.
F. Windel.  Calvin, London.
G. Kittel.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IV, Michigan : Wm. B. Eerdmans Pub. Co., 1968.
Hans - Ruedi Weher.  Salty Christions, New York : The Seaburg Press, 1963.
Howard Snyder.  The Problem of wine skins, powner's Grove illinois : Inter - varsity Presss, 1975.
James F. White.  Introduction to Christian Worship, Bashville : Avingdon Press, 1980.
John Preston.  The Fullness of christ for rs, London, L. Joades John Stafford, 1940.
John W. Bready.  England : Before and After Wesley, London, 1989.
Kin Parker.  Seven Chracteristics of the Growthing Church, Pasadena : Church Growth Press, 1979.
Kraemer Handrick.  A Theology of the Laity, Phil : Westminster Press, 1958.
O. T. Helmes.  A History of Christian Sprituality, N. Y. : Seabury Press, 1980.
Paul Miner.  Images of the Church in the New Testament, Philade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74.
R. William.  Christian Spirituality, Atlanta : John Kox Press, 1979.
Snyder Howard.  The Community of the King.
W. Arm.  The Community of the King.
W. Arn.  The Pastor's Chruch Growth Hard Book, Pasandena : Church Grouth Presss, 1979.
Wagner C. Peter.  Your Church Can Grow, Glendale, CA : Regal Books, 1976.
William M. More Man.  Developin Spritusally & Professionally, Philadelphia : The Westminster Press, 1984.
2. 번 역 서 적
C. 엘리오트.  [신국과 영성] 전병금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89.
D. A. 맥가브란, G. G. 헌터.  [교회 성장학] 박은규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3.
D. C. 알렌.  [한국 교회사] 서울 :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71.
E. G. 제이.  [교회론의 역사] 주재용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6.
Francois de. Sales.  [신성생황의 입문] 성모 영보 깔멜 수도원 역, 서울 : 카톨릭 출판사, 1989.
Gains S. Doddin S.  [교회보전] 이요한 역, 서울 : 침례회 출판사, 1967.
Gary W. Kuhne.  [새신자 양육의 원동력] 정학봉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78.
H. W. Wolff.  [구약성서의 인간학] 문희석 역, 분도출판사, 1976.
Hendrik Kraemer.  [평신도와 신학] 유동식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86.
I. C. 헤네르.  [폴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 : 한국 신학 연구소.
J. G. 스미드.  [교회학교를 위한 영성훈련 실제] 이은주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7.
J. L. 니이브.  [기독교 교회사] 서남동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J. 오스왈드 샌더스.  [성령과 그의 은사] 권혁봉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87.
John Fleming and Ken Wright.  [새로운 선교와 교회구조] 김정준, 김재준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79.
Leroy Eims.  [제자삼는 사역의 기술] 서울 : 네비게이토 선교회, 1982.
M. Gibbs & T. Ralph Mortan.  [오늘의 평신도와 교회] 김성환 역, 대한 기독교서회.
M. Gibbs, T. Ralph Morton.  [평신도의 해방] 이계준 역,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77.
Richard J. Froster.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 서울 : 보이스사.
Robert Coleman.  [교회 부흥의 원리와 실제]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81.
U. T. 홈즈.  [목회와 영성] 김외식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88.
W. 워커.  [세계 기독교회사] 강근환, 민경배, 박대인 이영헌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75.
Watson.  [제자훈련] 서울 :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7.
Waylon B. Moor.  [새신자 양육의 원리와 방법] 정학봉 역, 서울 : 요단출판사, 1970.
Williston Walker.  [세계 기독교회사] 강근환 외 3인 공역,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1988.
넬슨 떼이어.  [영성과 목회] 백상열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9.
도날드 맥가브란.  [교회성장학] 고원용 역, 서울 : 보이스사, 1974.
레이몬드 에드만.  [인생훈련] 권성수 역, 서울 : 기독교 문서 선교회, 1989.
로랜스 리쳐즈.  [신앙성숙과 영성훈련] 지상우 역, 서울 : 여수룬, 1989.
리로이 아임스.  [교인 성장 훈련] 서울 : 보이스사, 1983.
리로이 아임스.  [영적 전쟁의 성서적 원리] 서울 : 네비게이트 출판사, 1988.
리차드 포스터.  [영적 성장을 위한 제자훈련] 서울 : 보이스사, 1988.
빌헬름 니이젤.  [칼빈의 신학] 이종성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세계교회 협의회.  [세계를 위한 교회] 박근원 역, 서울 : 기독교서회, 1979.
아놀드 B. 콤.  [인간의 영과 성령] 김성민 역, 서울 : 대한 기독교 출판사, 1984.
아이리스 V. 컬리.  [영적성장을 위한 교육] 오성춘, 이기문, 류영모 역, 서울 :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 교육부, 1986.
알란 R. 티펱.  [교회성장과 하나님의 말씀] 장중열 역, 서울 : 보이스사, 1978.
윌리암 바클레이.  [성령의 약속] 서기산 역, 서울 : 기독교문사, 1972.
제임스 G. 로슨.  [위대한 영성인] 엄성옥 역, 서울 : 은성 출판사, 1990.
조던 오먼.  [영성 신학] 이홍근 역, 서울 : 분도출판사, 1987.
존 F. 맥아더.  [영적 성장의 열쇠] 성낙일 역, 서울 : 보이스사, 1981.
존 매쿼리.  [영성에의 길] 장기천 역, 서울 : 전망사, 1986.
캐니스 레토랫.  [기독교사] 유두혁 역,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폴 A. 미키.  [웨슬레 사상의 현대적 선언] 허선규 역, 서울 : 보이스사, 1987.
폴 요셉 호퍼.  [현대 영성생활] 마리아회 역, 서울 : 도서출판 계성, 1984.
프랭클린 M. 지글러.  [예배학 원론] 정진황 역, 서울 : 요단 출판사, 1987.
피터 와그너.  [교회성장 원리] 권달천 역,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80.
피터 와그너.  [교회성장에 대한 신학적 이해] 이요한 역, 서울 : 성서 연구사. 1986.
피터 와그너.  [성령의 은사와 교회성장] 권달천 역, 서울 : 생명의 말씀사, 1962.
3. 국 내 서 적
김복수.  [평신도 훈련] 상권, 서울 : 임마누엘 출판사, 1985.
김성복.  [영적 제자훈련] 서울 :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89.
나일선.  [교회성장의 원리] 서울 : 크리스챤 헤럴드사, 1976.
맹용길.  [평신도와 교회] 서울 : 예장 총회 교육국, 1981.
박근원.  [오늘의 목사론] 서울 : 기독교서회, 1987.
송길원, 김향숙.  [영성개발과 공동체 훈련] 서울 : 한국 문서 선교회, 1989.
엄세천.  [영성신학 개론] 서울 : 기독교 한국 연수원 출판부, 1986.
엄세천.  [영성신학] 서울 : 경희대학교 동목회.
오성춘.  [광야의 식탁] 서울 : 장신출판사, 1989.
오성춘.  [영성과 목회] 서울 : 장로회 신학대학 출판부, 1990.
옥한음.  [평신도를 깨운다] 서울 : 두란노 서원. 1989.
이용호.  [목회와 현장] 서울 : 교회교육 연구원, 1986.
이용호.  [목회와 현장] 서울 : 기독교 교육 연구원, 1986.
임택진.  [제직훈련 가이드] 서울 : 한국 문서 선교회, 1982.
장중열.  [교회성장과 선교학] 서울 : 성광 문화사, 1986.
전가화.  [진정한 영성] 서울 : 도서출판 믿음의 집, 1988.
정대식.  [영성생활] 서울 : 크리스챤 출판사, 1988.
정석현.  [교회성장의 평신도의 역할] 서울 : 보문 출판사, 1984.
정진경.  [신학과 목회] 서울 : 성광 문화사, 1977.
조종남.  [웨슬레 신학강의 개요] (부천 : 서울 신학 대학), p. 1979.
홍철화.  [교회성장과 청지기] (서울 : 대한 기독교 교육협회, 1986.
황규애.  [청지기 교육] 서울 : 교회 교육 연구원, 1989.
4. 정 기 간 행 물
강근환.  "한국 교회의 영성화" [월간목회], 1986.  1.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헌법] 제 38회 총회록 별지 1.
기독교 대한 성결교회.  [활천] 421.
김경재.  "한국인의 심성과 기독교의 영성" [기독교사상] 1988.  4.
김소영 박사 회갑 기념 논문집.  [교회의 예배와 설교의 일치] 서울 : 대한 기독교서회, 1990.
라기성.  [교회갱신과 평신도 운동] 장로회 신학 대학원 석사논문, 1979.
문상희, "예수의 신앙체험과 초대교회의 부활체험" [목회의 전문화와 영성] 서울 : 연세대 출판부, 1984.
박근원.  "제 3세계의 교회와 영성" [기독교 사상] 1987.  1.
______.  "신학교육과 영성훈련" [기독교 사상],  통권 297, 1983.  3.
오성춘.  "Q.T.코너" [빛과 소금] 86년 2월호.
이윤철.  [교회성장을 위한 평신도 훈련방법에 관한연구] 서울 : 장로회 신학대학원 석사논문, 1984.
이장식.  "기독교 영성의 사적 고찰" [신앙과 신학] 제 4집, 서울 : 양서각, 1988.
이종성.  "목사상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개관" [현대신학] 서울 : 연신대학원, 1966.
이형기.  "영성운동의 역사적 배경과 실제" 제 40회 연신하기 세미나.
정인찬.  [성서대백과] 서울 : 기독지혜사, 1981.
주재용.  "성령과 경건운동의 사적고찰" [신학연구] 제 20권, 1979.
천병욱.  "신학교육과 영성훈련" [신학과 선교] 제 14집, 부천 : 서울 신대 출판부, 1989.
한국 기독교학회.  [오늘의 영성신학] 신앙과 신학 제 4집, 양서각,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