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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와체험

에반젤(복음) 2020. 2. 27. 11:41



성령세례와체험
 성령 세례라는 표현을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은 세례 요한이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라고 예언하였다. 예수님도 사도행전 1장 4, 5절에서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다.
  세례 요한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한 성령 세례가 오순절 날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약 120명 성도들에게 임하였는데 그 사건을 사도행전 2장 3, 4절에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주의할 것은 성령 세례 라는 표현을 성령 충만함 으로 말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 가정에 가서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때 그들에게도 성령 세례가 임하였는데 이때는 성령의 부어주심(행10:44-46)이라고 하였다. 이와같은 표현의 근원은 구약 성경 요엘 2장 28, 29절에서 온 것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주리니”라고 하였다. 또한 고넬료 가정에 성령 세례가 임한 사건을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와서 설명할 때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다” (행11:15-17)고 성령 세례를 선물 로 표현하고 있다.
  이밖에 많은 다른 표현을 했는데 성령을 받는다.(행19:3) 성령이 임하셨다.(행19:16) 성령의 나누어 주심(히2:4) 그리고 위로 부터 능력을 입히움(눅 24:49) 등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성령 세례의 표현을 크게 세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첫째는 세례라는 말이다. 세례라는 헬라어 원어 밥티죠 에이스(βαπτιω ειζ)에서 온 말로 영어로 to dip with 인 것이다.
  둘째는 성령 세례를 실제적으로 받는 수동적 상태를 표현하되 성령을 받다. 성령이 임하다. 능력을 입히움 그리고 능동적 표현으로 성령을 나누어 주심 이라고 하였다. 셋째로 사도 베드로의 표현처럼 성령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와같은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성령 세례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다 성령 세례로 표현하고 있음을 주의하여야 한다. 우리는 또한 성령 세례의 다양한 표현 속에서 우리의감각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 세례는 성령 충만한 사건이므로 내가 성령으로 충만하였는가 아닌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성령 받다. 성령이 임하였다. 는 것은 주고 받는 사건으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확실히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령의 선물이라는 표현도 선물을 주고 받는 사건으로 체험적인 것이다.
  성령 세례가 실제적으로 임한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 사건을 보라 사도행전 2장 14절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감각적인 바람소리 를 들었고 불의 혀 같은 것 을 보았으며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는 외적이고 감각적으로 당사자와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체험이라는 것을 인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체험에 대한 신학적 견해는 서로 다르다.
Ⅰ. 성령 세례와 중생 및 성화의 체험이 같다는 견해
  성령 세례와 중생은 동시에 일어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신학자는 영국의 스토트(John R. W. Stott)박사이다. 그는 사도행전 2, 8, 19장에 의하면 성령 은사 혹은 세례는 신자들의 최초적 체험이라고 한다.
  물 세례는 성령 세례를 상징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들어가는 최초의 의식이며 모든 신자들에게 보편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의 실체인 성령 세례도 최초의 보편적 은혜일 것이다.
  이 말은 요약하면 성령 세례는 성도가 거듭남에 있어서 최초적 은사요. 보편적 은혜라고 하면서 물 세례를 구원의 상징 으로 그리고 성령 세례는 그 실체 라고 하면서 누구든지 구원 계약의 은혜에 참여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한다.
  또한 달라스(Dallars)신학교 학장인 월브어드(John F. Walvoord)박사는 융거(Merrill Unger)박사와 스토트(John R. W. Stott)박사에 동조하고 있다. 그의 저서 성령(The Holy Spirit) 제15장 “성령의 세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령의 세례에 대한 일반적 오해 중의 하나는 그것이 몇몇 그리스도인 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사역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구원받는 순간에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과 세례는 공존하며 성령의 이러한 역사가 없이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전12:13)
 
  영국의 신학자 가운데도 브리즈(Donale Bridge)와 몰간(Cambell Morgan)이 있는데 브리즈는 “개인이 그리스도의 몸에 신비적으로 연합되는 참 성도로서 변화될 때 그의 성품이 성화되며 봉사를 위하여 주어지는데 이것이 중생이요. 성령 세례 받는 것이다”고 하였다. 몰간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고 하였다.
  박윤선 박사는 신학지남 39권 3호(1972년 9월) “오순절 운동과 선교”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성령의 세례이다.(행1:5) 성령의 세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세례라는 것은 언약에 참가함을 말함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을 보아도 성령의 세례는 불신자로서 회개하고 믿어 계약 백성의 단체 琉 볕돛텝몸 속하게 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말함이다”고 하였다.
 성령론의 권위자인 토레이(R. A. Torrey)박사는 고린도전서 12장 13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잠정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12:13) 그러나 잠정적 그들의 것이 되어있는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제적이며 개인의 경험의 문제로 되어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 모든 사람은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잠정적으로 의롭다. 함을 입었다. 즉 칭의는 그들을 위해 제공되어 있고 그들에게 속해있으나(롬5:18) 잠정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속해있는 그것을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자기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칭의가 실제적으로 경험적으로 그의 것이 되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세례는 잠정적으로 믿는 모든 자의 소유이지만 믿는 각자는 모두 그 성령의 세례를 받는 것은 아니다.(방금 주의하였듯이 모든 믿는 자가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모든 믿는 자는 잠정적으로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든 믿는 자는 성령의 세례를 실제적으로 체험하고 있다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데까지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로이드 존즈(D. M. Lloyd Jones)는 “성령 세례가 중생할 때 모든 사람에게 발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신약 성경을 부인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또한 분명히 성령을 소멸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중생은 무의식적이며 비 체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 세례는 근본적으로 체험적입니다” 고 말하였다.
  이어서 성령 세례와 성화의 관계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다. 로이드 존즈는 계속해서 말한다.
  성화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사역입니다. 아무도 그가 자신 안에 하나님의 영을 모시기까지 그 자신 스스로가 성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중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 거하시게 되며 성화의 사역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와 중생 성화의 관계는 일단 먼저 중생하고 성화가 시작된 크리스챤에게 발생하는 어떤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성령 세례는 전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비 신자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크리스챤이 된 자에게 알파 플러스로 주신다는 것이다. 성령 세례는 성령의 은사의 근원으로 선교의 능력과 봉사의 능력 이외에 사랑의 은사(롬5:5)가 부여되는 것이다.
  로이드 존즈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성령 세례가 성화와 관계가 있으나 바로 성령 세례가 성화는 아니라고 하였다.
  그가 성령 세례를 체험하는 동안 그는 결코 다시는 죄를 범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어떻게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항하는 죄를 범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이 성령 세례와 성화를 동일시 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비록 그때에 사람이 그와같이 느낀다. 할지라도 그것이 죄를 전적으로 근절시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Ⅱ. 성령 세례의 체험은 성령의 9가지 은사 중 하나 이상을 체험하는 것이라는 견해
  이는 주로 토레이(R. A. Torrey) 박사의 견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성경 구절로 고린도전서 12장 4-13절을 든다.
  토레이 박사는 이 말씀을 해석하되 성령 세례 는 하나이지만 그의 능력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즉 9가지 성령의 은사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성령 세례를 받으면 9가지 다양한 은사가 나타나는데 여러 다른 사람들을 부르셔서 시키시는 여러가지 직무에 따라 다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는 한 몸인 것이다. 그리고 몸의 각각 다른 지체들은 각각 다른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성령께서는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직무를 위하여 알맞은 은사를 주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가하여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의 특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4가지로 말하였다.
  첫째 은사들도 여러가지고 성령 세례의 나타남도 여러가지나 성령 세례를 받은 모든 자에게는 하나의 은사가 있을 것이다.(고전12:17 ; 엡 4:16)
  둘째 주어진 경우에 있어서 성령 세례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가 결정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셋째 성령 세례의 또 하나의 결과는 담대히 증거하고 봉사하는 것일 것이다. 넷째 성령 세례는 그 세례를 받는 사람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영적인 일에 사로잡히게 한다고 하였다.
Ⅲ. 성령 세례의 체험은 방언이라고 주장하는 견해
  오순절 주의자들은 성령 세례의 체험은 방언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의 모본적 사건을 들어 논증한다.
  1. 오순절에 임한 마가의 다락방 사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1-4) 이 사건에서의 특징은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 즉 청각과 촉각적 감각 현상과 그리고 다른 방언 을 말하는 언어 발성의 이성적 및 청각적 감성의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2. 고넬료 가정 예배의 사건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행10:44-46) 이 사건에서 우리가 주의 해야 할 것은 중생과 성령 세례가 동시에 일어난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 가정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고넬료와 그의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었다. 이러한 사람들 가운데 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를 많이 하였고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이라고 하였으니까 베드로 사도를 청하기 전에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중생하였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처음으로 베드로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메시지를 들었을 것이고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과 동시에 성령 세례가 임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방언을 말하였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현상이 뒤따랐던 것이다.
  3.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방문했을 때 일어난 사건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다.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며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 두 사람 쯤 되니라”(행19:1-17)
  이 사건에서 우리는 또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에베소 교회는 이미 믿는 신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미 예수를 믿어 중생하여 구원받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의 이름으로 물 세례를 먼저 받고 안수할 때 성령 세례를 받았다. 그들 중에 열 두 사람 쯤 성령 세례를 받았는데 방언도 하고 예언 현상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조용기 목사는 이와 같은 3 가지 사건을 종합하여 볼 때 성령 세례를 받을 때마다. 방언을 말했다는 것은 공통분모라고 할 수 있으니 성령 세례의 외적 증거는 방언이라고 하여 거스름이 될 이유가 있겠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물론 방언자체가 성령 충만은 아니다. 그러나 방언은 성서적으로 확증된 성령 충만한 체험의 강력한 외적 표현인 것이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의 견해는 완벽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성령 세례가 임한 다섯가지 사건 중에서 3가지만 방언 현상이 있다고 하였고 다음과 같은 2가지 사건에서는 그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그 첫째 사건이 사마리아 교회 사건이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며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은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8:14-20)
  우리는 이 사건에서도 이미 에베소 교회의 사건에서도 언급한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고 한 것처럼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어 중생하여 구원얻는 사람이 100%는 아니지만 태반이 구원얻는 사람이었으나 성령 세례는 받지 못하고 있다가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증거와 안수로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령 세례의 외적 현상이 방언하였다는 증거는 없고 전에 요술쟁이였던 시몬이 성령 세례를 받는 중 신기한 기사와 이적이 나타난 것을 보고 돈 주고 사려고 하였다는 것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이 사건에서도 방언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변증한다. 그 첫째는 시몬이 신기하게 여기고 돈을 주고라도 사려고 호감을 가진 것은 전혀 전에 배운적이 없는 외국어로 말하는 방언 현상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사도 베드로가 이 사건을 설명할 때 하나님의 선물 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성령 세례를 선물 이라고 처음으로 표현한 것은 사도행전 2장 37-40절에서 마가의 다락방의 사건을 설명할 때 사용하였다.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충만히 임할 때 방언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 교회에도 기록은 없지만 방언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셋째는 사도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을 받았던 예이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며 강건하여 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 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행9:17-20) 우리는 이 사건에서 장님이 되었던 눈이 다시 보게 되는 신유의 은사와 동시에 말씀을 담대히 증거하였다는 현상을 보게 되나 방언을 하였다는 말은 없다. 그러나 오순절주의자들은 바울 서신인 고린도전서 14장에 보면 친히 방언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다.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고 하였고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고전14:5)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도 성령 충만을 받을 때 방언을 했을 것이라고 미국 하나님의 성회 총회 신학대학 조직 신학 교수 윌리암즈(Ernest Swing Williams)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논증의 약점은 이미 성령 세례를 받고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서 받을 수도 있지 꼭 동시에 받았다는 확실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Ⅳ. 성령 세례의 체험은 다양하다는 견해
  성령님의 일하심은 무궁무진하게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성령의 그 본질과 사역을 나타내는 명칭부터 생각해보자
  삼위일체 각 인격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성령의 명칭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영이라는 명칭이 신, 구약 성경에서 11회나 나온다. 즉 하나님의 신(창 1:2 ; 마 3:16), 주의 성령(눅 4:18) 우리 하나님의 성령(고전6:11) 그의 신(민11:29) 여호와의 신(민3:10; 사 11:2) 그의 신(시139:7) 주 여호와의 신(사61:1) 너희 아버지의 성령(마10:20)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고후3:3) 나의 신(창 6:3) 그의 영(롬8:11) 등이다.
  그리스도와 관계된 명칭으로서는 5회가 나온다. 그리스도의 영(롬8:9; 벧전 1:11)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빌1:19) 예수의 영(행16:7) 그의 아들의 영(갈 4:6) 주의 영(행5:9, 8:29) 그리고 성령이라는 명칭이 나온다. 이는 신약에만도 170번이 언급되어 있다.
  이와같이 성 삼위일체와 관련된 명칭 이외에 보혜사(요14:16, 15:26), 진리의 영(요14:17, 16:13), 은혜의 영(히10:29), 생명의 영(겔37:1-10; 요6:63; 롬 8:2; 계 11:11), 그리고 양자의 영(롬8:15, 23) 등의 다양한 명칭들이 나온다.
  성령의 사역의 다양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많은 상징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사4:4; 렘 20:29; 마 3:11; 눅 3:16, 12:49; 행 2:3), 물(출17:6; 사 44:3, 4; 겔 36:25-27, 47:1; 요3:5, 4:14, 7:1), 바람(슥37:7-10; 요3:8; 행 2:2, 호흡 2:7; 욥 33:4; 겔 37:9, 10; 요20:22; 딤후 3:16; 벧후 1:21), 술(행2:12; 엡 5:18), 인(印)(고후1:22 ; 엡 1:13 4:30 ; 딤후 1:19), 기름(삼상16:13; 눅 4:18 ; 요일 2:20, 27 ; 고후 1:21) 비둘기(마3:16 ; 막 1:10 ; 눅 3:22 ; 요1:32), 능력으로 옷 입음(눅 24:49), 열매 맺는 나무(갈 5:22-24), 보증(고후1:22, 5:5 ; 엡 1:13, 14)등이다.
  우리는 이상과 같은 성령님의 명칭과 상징들의 다양함은 결국 성령님은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영원하신 성 삼위일체의 한 분으로서의 그 역사하심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신학적 이론을 정립하기 전에 먼저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세례의 체험도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본다. 물론 성령의 나타남 즉 은사들은 성령 세례 혹은 충만함을 먼저 받은 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성령의 세례도 받지 않고 은사들을 구하는 것은 수원지도 없는데 수도물만 먹겠다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초대 교회의 사례에서도 보았지만 방언도 있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은사와 예언의 은사 신유의 은사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는 은사 등이 함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로이드 존즈(D. M. Lloyd Jones)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Joy Unspeakable) 성령의 세례(The Baptism with the Holy Spirit)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성령은 그의 직무에 있어서 많은 사역들을 행하시는데 거기에는 회심 특별히 중생이 포함됩니다. 또한 우리를 성화시키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덧붙이면 성령은 확신과 보증 그리고 그와 더불어 증거와 증언 및 봉사와 사역의 문제에 있어서 위대한 활동을 하십니다. 성령의 이러한 사역들은 분명한 구별이 있는데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끝없는 혼란이 있게 됩니다. 그의 사역은 이렇게 분류되어질 수 있습니다. 즉 그의 일반 사역과 그의 특수 사역 다른 말로 쉽게 표현하면 그의 간접 사역과 직접 사역입니다.
 
  로이드 존즈는 성령의 다양한 사역을 인정하면서도 성령의 일반 사역 혹은 간접 사역은 회심 중생 성화라고 하였고 특수 사역 혹은 직접 사역은 성령 세례에 해당하는 확신과 보증 그리고 증거와 증언 및 봉사의 사역으로 구분하고 있다. 아울러 성령 세례의 다양한 체험을 설명하기 위하여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존 웨슬리 존 플라벨 요나단 에드워드 그리고 D. L. 무디의 체험을 소개하였다. 이들의 체험의 다양성은 하늘의 놀라운 기쁨 사랑 평강 마음의 천국 환상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 불의 뜨거운 체험이었던 것이다.
Ⅴ. 성령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준비
  첫째 중생과 성령 세례 혹은 충만은 구별된 체험이라는 것을 먼저 지적으로 동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의 성령 세례를 체험했던 다섯가지 사건을 다시 상고하기 바란다. 마가의 다락방 사건은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기다리라는 말씀을 인정하고 믿었다. 고넬료 가정 예배에서는 사도 베드로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가 되심과 그의 약속하신 것을 소개를 받으므로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사마리아 교회에서는 베드로와 요한 사도의 성령 받기를 기도하므로 그리고 사도 바울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 아나니아의 소개로 성령 세례 받았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 요한복음 15장 15 16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하셨다. 이외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이 성령의 불이 이미 붙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하셨고(눅 12:49)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이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였다.(행1:8)
  셋째 이와같이 약속하신 성령 세례를 나도 꼭 받아야 겠다고 열화같이 열망해야 한다.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듯이 성령 충만 받기를 목마른 사람이 생수를 찾듯이 간절히 사모해야 한다.
 넷째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누가복음 11장 13절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다섯째 끝까지 믿어야 한다.
 조금 기도해 보고 혹은 부흥회에 몇번 첨석해 보았는데 기별이 없다고 쉽게 낙심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 진다고”(마5:18) 하셨으며 “변역하시지도 않으시며”(막3:6)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야1:17)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섯째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이 창피한 일이거나 미치거나 잘못되지 않을까 염려하지 말라 어찌하여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와 능력을 덧입는 것이 창피한 일이겠는가 이 세상 일 중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요.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치거나 잘못되지나 아니할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무시한 처사이다. 사랑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소중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잘못되게 하실 어리석은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죄도 회개하지 않고 정욕으로 잘못 구할 때 원수 마귀도 천사를 가장하여 거짓으로 성령을 받는 것처럼 어떤 체험을 줄 수 있다.(고후11:4)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구할 때 먼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가 구하되 다른 사람과의 비교 의식과 경쟁에서 구하거나 마음에 해결하지 못한 죄를 그대로 품고 구해서는 안되며 그리고 잘못된 목회자에게 함부로 안수를 받아서는 안된다.
마무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도를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오직 중생만 한 신자와 성령 세례를 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인 것이다. 중생만 한 성도는 다같은 주님의 백성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의 그 쓰리고 아픈 공로로 예비하여 놓으신 축복과 유업을 반쪽만 누리고 사는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 세례와 체험을 인간 자신의 지성과 체험 만으로 그것을 분석 종합하려고 할 때 솔직이 한계 상황에 부딪칠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그 전지전능하신 역사를 하나님과 같은 지성과 지혜가 아니고서는 명확한 대답을 4 차원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약의 성령님의 사역과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의 사역의 특수적이고 직접적인 사역의 구별은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인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