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아 3년 반 동안 열심히 훈련을 받았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회적으로나 그렇다 할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죽도록 충성하겠다던 제자들의 고백도 그렇게 진실 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로마의 군병에 힘없이 잡혀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충성된 고백은 온데 간 데 없어지고 죽음이 두려워 생명을 보존하고자 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배신한다하여도 자신만은 죽은 곳까지라도 따라가겠다”던 베드로도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대 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어린 소녀에게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맨 마지막은 저주하면서까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변화를 받아 예루살렘 교회를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도 베드로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예루살렘교회를 튼튼히 세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와 같이 성령님은 인간들을 변화시키고, 그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된 사역들을 하나 하나 성취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행 1장 4절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서 인류를 구원하신 역사도 하나님의 약속된 계획이었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을 말하고 말씀을 전파할 때 예루살렘에 모인 경건한 유대인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비아냥거렸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행 2장 14-17절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삼시=오전 9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것임을 알고 선포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믿고 기다렸을 때 성령으로 침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갈 3장 13-14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마 5장 18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성령님이 임재 하셔서 그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질병에서 치료 받는 축복된 삶이 있을 것일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1.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상이요 거룩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중심지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가까이하여 머물러 있을 때 성령으로 침례를 받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 128편 4-5절 “야훼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야훼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온 = 예루살렘)
시 122편 6절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약속된 복과 번영을 누리게 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3.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사명이 부여된 곳임과 동시에 성령의 역사의 출발지이기 때문입니다.
행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이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그 약속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성령의 불과 복음의 확산은 더 나아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영적으로 예루살렘은 교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영적인 예루살렘인 교회에 나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을 믿습니다.
둘째로: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120명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위하여 오로지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행 1장 14절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오순절에 날에 성령의 불로 채워 주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못 걷던 거지를 고침으로 예루살렘은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베드로가 전한 복음을 듣고 그 날에 5천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때 바리새인들과 제사장들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겨 제자들을 잡아 가두고 심문하였습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과 제자들의 실수를 잡으려고 했어도 발견하지 못하고 비난할 말이 없어 결국 사도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위협하고 경고한 다음 풀어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놓인 후에 동료들을 만나서 있었던 이야기를 나눈 후에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도했습니다.
행 4장 29-31절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할렐루야!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모인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해 오로지 기도에 힘 섰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로 채워 주셔서 성령으로 충만한 제자들은 더욱 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권능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성령 받기를 원한다면 오로지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눅 11장 11-13절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부흥은 지금도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역사하십니다.
D.L 무디는 여러 달 동안 은혜를 받지 못하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고 할 정도로 성령 충만하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때 그는 세상일에 관심 갖지 않고 오직 신령한 은혜만 사모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면서 뉴욕 시가를 걸을 때에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마치 온 세계를 소유한 것 같은 느낌을 가졌습니다. 후에 무디는 “온 세상을 다 준대도 성령 충만 받기 전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성령의 운동은 당회장 조 용기 목사님을 통하여 온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령운동의 출발은 불광동 깨밭에 세운 천막교회의 기도부터 시작하여 서대문 교회를 거쳐 여의도로 와서 성령운동을 확산시켜 나갔는데 그 성령운동의 뿌리가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불이 꺼지지 않고 온 세계에 전파하게 한 원동력도 기도였습니다.
금식기도 운동과 성령 운동의 본거지인 오산리최자실기념 금식기도원 탄생 그렇게 화려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성도들의 묘소로 쓰기 위하여 사놓은 산에 가서 최자실 목사님과 당회장님과 문제가 있는 성도들이 천막을 치고 기도하는데 그 주위에 군부대가 있어서 큰 기도소리 때문에 진정이 들어 와서 결국 소리가 세어나가지 않도록 굴을 파고 기도한 것이 기도 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기도 굴 역사는 목사님과 문제 있는 성도들이 오로지 기도에만 힘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지금은 전 세계에 기도 운동과 성령운동의 모델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길선주 목사님을 비롯해서 큰 성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7시부터 시작된 성회는 새벽 2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새벽 2시에 성회가 끝나고 통성기도가 시작되면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선교사로도 실패했고, 교수로도 실패했으며, 목회자로도 실패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올드스케이트에서 개최된 부흥회에 참석하여 뒷전에 앉아서 설교를 듣고 기도하다가 1738년 5월 24일 밤 9시 15분에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웨슬레는 ‘전 세계를 나의 교구로 주소서’라고 기도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전 영국을 영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감리교 교단을 만든 창시자가 된 것입니다.
던컨 제임스도 하루에 13시간씩 기도하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던 찰스 피니도 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산속에 들어가서 회개하고 기도하다가 성령을 체험하고 대부흥사가 되어 미국 전역에 다니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원한다면 오로지 성령 충만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셋째로: 회개하여 예수의 이름으로 죄 용서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오순절 날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에 따라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유대인들이 마음이 찔려 사도들에게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꼬?” 말할 때
행 2장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로 받으리니” 라고 선포할 때 그들이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그날에 구원 받은 수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가장 슬퍼하시는 것이 성도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양심이 화인을 맞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은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해야 하는데 오히려 당당하며 하나님을 훈계하려 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인간적, 윤리적, 도덕적으로 볼 때 사울 왕보다 더 낳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셔서 다윗을 귀하게 사용 하신 이유가 무어이냐면, 다윗은 죄를 짓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곧 바로 회개하고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하루는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아를 죽였을 때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꾸짖었습니다. 그 때 다윗이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삼하 12장 13절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야훼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말하되 야훼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그리고 다윗은 시 38편 18절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죄로 인해 슬퍼할 줄 아는 사람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자기의 죄를 인해 슬퍼하면서 죄를 뉘우칠 때마다 성령이 그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윤 형주 장로님은 예수님을 믿기 전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그는 자신의 영광이 계속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는 불운을 맞게 됩니다.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어느 날, 감방 안에서 햇살 속에 놓여 있는 성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 성경을 펼쳐 읽어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었고 철저하게 과거를 회개하여 주님 앞에 나아 왔을 때 하나님은 청년 윤 형주를 만나주셨고 그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새로운 사명자로 사용 하셨습니다. 후에 윤 형주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비록 밧줄에 묶이고 수갑에 채워진 모습으로 법정에 나가야 하는 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법이 나를 해방시켜 주었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은혜의 역사가 내게 임하였습니다. 주님은 나의 죄 사슬을 끊으시고 내 목소리의 주인을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그는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주의 자리였던 구치소에서 그는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찬양과 선교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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