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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하나님을 설교해야 합니다. , 오륜교회 김은호목사

에반젤(복음) 2020. 2. 9. 16:59



 
 

오늘의 하나님을   설교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무엇이라고 정의하시고, 그것을 어떻게 설교에 접목하십니까?

설교란 기록된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맞도록 선포하여 그 말씀을 각 사람들에게 체험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과거의 하나님이 아닌 오늘의 하나님을 설교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설교자들은 오늘에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설교하기보다 과거의 하나님, 미래의 하나님만을 설교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우리의 하나님은 과거에도 역사하신 분이십니다. 출애굽의 사건, 성육신의 사건, 십자가의 사건 등은 모두 과거입니다. 또한 장차 우리는 천국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상급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과거나 미래에만 계시지 않고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에 대해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계 1:4, 8). 우리는 시제를 과거, 현재, 미래로 말하지만,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시제를 현재, 과거, 미래로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먼저 언급함으로써 과거나 미래만의 하나님이 아닌 현재의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과거가 아닌 오늘의 것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설교자가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 속에서 확신을 갖고 오늘의 하나님으로, 오늘의 말씀으로 선포한다면 그 현장에서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반드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설교자들 중에 과거와 미래의 하나님에 대해 확신 있게 설교하면서도 현재의 하나님에 대해 담대하게 증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것은 무엇보다 설교자 자신이 지금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말씀을 설교하려고 강단에 서기 전에 먼저 스스로 그 말씀을 체험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 자신 안에서 역사하실 때까지 묵상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설령 그 말씀을 체험하지 못하더라도 오늘 그 말씀을 선포할 때 성령님께서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의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은 동시에 성경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도 충족해야 하겠지요. 어떻게 하면 두 측면을 균형 있고 조화롭게 설교할 수 있을까요?

본문을 읽고 나서 그 본문과 상관없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물론 그런 설교도 상황에 따라 은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할 수 있는 한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을 설교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게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자신의 주장이나 철학이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설교자일지라도 본문과 무관한 설교를 한다면, 오늘의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것보다 자신의 생각이나 사상을 더 많이 말할 수밖에 없게 되지요. 또 지나치게 자신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설교는 청중에게 또 다른 상처와 쓴뿌리를 갖게 만들기가 매우 쉽습니다. 왜 성도들이 설교를 통해 상처를 받을까요? 무엇보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것을 바로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 인간의 영혼이 공허해집니다. 그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삶의 간증을 들으면 그 시간은 재미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곧 영적 공허를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을 들을 때 소생케 되고 생명의 영양분을 공급 받게 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이 말씀하는 바를 전하는 강해 설교를 권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목회에 대해 상당히 앞서 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 목회 환경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면 좋을지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는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복음을 급변하는 세상 속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what’의 문제를 다룬다면, 설교자는 ‘what’을 확인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how’를 찾아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분명한 것 하나는 교회에서 복음과 문화가 서로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황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인 상황도 무시되고 있지만 미래적인 상황도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 상황이란 문화를 뜻합니다.

진리는 변함이 없지만 진리를 담는 그릇은 늘 새로워져야 하고 복음은 그 시대의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럴 때 복음이 효과적으로 증거될 수 있습니다. 물론 문화가 생명이라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복음이 문화의 옷을 입고 증거될 때 사람들은 그 말씀을 현장감 있게 받아들입니다. 설교자는 복음이 복음이기 위해서라도 그 시대의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지금은 듣는 시대가 아니라 보는 시대이고, 더 나아가 느끼는 시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던의 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지루함을 용서하지 않고, 강요된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현장감 있는 메시지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설교자는 성도들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자신의 삶과 전혀 상관이 없다면 사람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목이 터져라 외쳐도 오늘날 자신의 삶을 터치하지 못하는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고로 설교는 그 시대 문화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목사님께서 예배 갱신을 위해 여러 가지 형식적인 변화를 추구하셨는데, 그 중에 설교는 어떤 형태로 바꾸셨습니까?

한국 교회는 크게 보아 100년 전에 외국인 선교사들이 가르쳐준 서구 예배의 형태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예배도 하나님께서 받으시지만, 문제는 예배가 너무 형식적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생명력이 떨어지고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며, 왜 청소년들이 썰물처럼 교회에서 빠져나갑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예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높아진 교회의 문턱 때문에 불신자들은 쉽게 교회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예배 모습이 불신자들에게 높은 벽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배는 습관이나 형식이나 순서가 아님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그분께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원문으로 말하면 예배의 행위는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닌가요?

예배란 단지 주님의 고난이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나 부활을 기념하는 게 아니라 주님과의 만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임재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예배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배에 현장감이 필요합니다. 왜 사람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야구장으로 가겠습니까? 집에서 TV를 보면 해설자의 설명까지 들으면서 더 자세하게 볼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야구장을 찾는 이유는 그 속에 현장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는 감성 시대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독서나 강의를 통해 자신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기보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에 더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므로 종래의 주입식 설교나 교육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젠 다양한 방법, 매체(media)를 통해 의미(message)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는 아직도 듣기와 주입식 교훈 중심의 예배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대적으로 설교는 좀더 다양한 미디어를 사용하는 것을 필요로 합니다. 어떻게 하면 듣기 중심의 예배에서 직접 보고 느끼며 참여하는 생동감 있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스킷 드라마(Skit Drama)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킷 드라마란 일정한 시사적인 주제를 짧은 극으로 표현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라 할 수 있는데요, 현장성이 강하기 때문에 그날의 메시지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밖에 영화, 드라마, 책, 광고 등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친근감을 갖고 있는 것들을 이용해 말씀을 시각화하면 성도들에게 훨씬 더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내용들 중에 감동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들을 2~3분 정도 분량으로 편집해 말씀을 증거할 때 적절하게 사용하면 유익합니다.

또 읽을 책들 중에 감동이 되었던 부분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그 내용을 스케치해 영상으로 편집하거나 책 속에 나오는 도구들을 직접 강단으로 갖고 올라가 말씀을 전하면 더욱 효과적으로 증거할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삶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소재들을 시청각 도구로 사용해 말씀을 전하면 집중력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바람 빠진 배구공을 갖고 올라가 성령님의 충만을 상실한 인생으로 표현한다든지 여러 가지 설교 재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는 도구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설교를 하시려면 준비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목사님께선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경험담과 함께 듣고 싶습니다.

설교자가 준비한 것만큼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게 제가 사역하면서 깨달은 교훈입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곧바로 보내시지 않고 오랜 세월 동안 준비케 하신 다음에 이 땅에 보내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즉흥적인 분이 아니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말씀을 제대로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 작성 때 10가지 단계를 거치고 있습니다.

첫째, 이번 주 설교 본문은 지난 주 설교를 참조해 정하는 편입니다. 주로 강해 설교를 하기 때문에 이번 주 설교가 끝나면 다음 주 설교 본문을 정하기가 수월합니다.

둘째, 화요일 오전에 직원 예배를 드리는데, 그때 미리 정한 본문을 함께 묵상하면서 말씀을 나눕니다.

셋째, 본문의 내용을 여러 성경(주로 개역성경, 표준새번역, 영어 성경 NIV)으로 인쇄해 본문의 내용을 비교 분석합니다.

넷째, 본문을 암송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어디에 있든지 그 말씀을 묵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원어 성경을 통해 본문에서 말씀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더 분명히 살펴보는 데 좋은 원어 성경 주해서들을 참조합니다.

여섯째, 본문의 내용을 묵상하면서 제목과 설교의 구도를 잡습니다. 본문의 내용이 사건 중심일 경우에 하나의 그림으로, 서신서와 같은 경우에 대지를 잡는 형식으로 설교의 내용을 이미지(Image)화 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일곱째, 설교 제목은 주로 명사가 아닌 동사로 잡습니다. 이를 테면 ‘산 소망을 가진 자의 거룩’과 같은 표현이 아니라 ‘산 소망을 가진 자여 거룩하라’와 같은 제목을 사용합니다. 제목을 명사나 형용사보다 동사로 잡으면 그 말씀이 더욱 역동적으로 다가옵니다.

여덟째, 제목과 말씀의 구도가 잡히면 목회지원팀, 영상팀, 드라마팀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아홉째, 원고를 정리하기 전에 본문과 관련된 내용을 설교집과 인터넷으로 검색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원고는 A4 용지 8장 정도로 작성하는데 원고 정리가 끝나면 설교의 리허설을 통해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이 준비한 말씀 속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