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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 주간의 설교준비에 대하여 / 이동원

에반젤(복음) 2020. 2. 9. 16:52



 후배 목사님에게

요즈음 봄이 피어나는 그 화려한 변신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변신의 계절에도 우리들 설교자들은 여전히 쉼을 누리지 못하는 듯 합니다. 여전히 다가오고 또 다시 다가오는 주일 그리고 수요일 때문이지요. 그러면서도 한 두번이라도 설교를 건너는 기회가 있기라도 하면 잠시 그 달콤한 해방감을 누리다가도 설교없이 열날이라도 지나치면 다시 강단이 그리워지는 우리는 영락없이 설교병자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교회 목사들에게 설교의 부담은 좀 지나치다고 모두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러나 대안은 아무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다가오는 다음 주일을 위해 또 다시 묵상에 들어가야 하는 우리를 위해 오늘 저는 한 주간의 설교 준비를 위한 시간 안배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니 저 자신의 설교 준비 습관을 공개하려고 합니다. 사실 이 질문이 제가 후배 설교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아온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씀드리면 주일 설교를 중심으로 저의 한 주간이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월요일 아침 눈 뜨는 즉시 다음 주일 본문 선정에 들어 갑니다. 물론 연속 강해 설교를 하는 때라면 본문 선정을 위해 고민할 필요는 없겠지요. 일단 본문 선정이 끝나면 수요일 까지는 계속해서 반복 적으로 본문을 읽습니다. 이 때 저는 여러 번역들을 번갈아 읽습니다. 한글 번역만 해도 이제는 개역,표준, 현대인, 공동번역등 무척 다양해 졌고, 거기에 영어가 가능하면 KJV, NKJV, NIV,RSV, Living Bible등 을 대조해 읽을수 있겠습니다. 시간이 허락되면 저는 신학교 시절 배운 히브리어, 희랍어의 기억의 끝자리를 살려 Interlinear Hebrew-English Old Testament나 Interlinear Greek-English New Testament를 참고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국내에서 발간된 분해 대조 로고스 성경도 자주 참조하는 편입니다. 이런 여러 번역을 대조해 보면 본문의 뜻은 스스로 자명하게 드러납니다. 물론 이 때 우리는 본문의 전후 문맥까지 살펴 볼 필요가 있겠지요. 문맥은 정당한 분문 이해의 묘판과 같다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문맥을 무시한 본문 이해는 바로 본문 왜곡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너무 자주 접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본문의 줄거리가 파악되기 시작하면 저는 세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1)본문의 중심 아이디어(Main Idea)는 무엇인가?를 정리해 봅니다. 2)그 아이디어는 본문에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저는 여기서 관찰된 전개방식을 중심으로 설교 개요(아웃라인)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3)본문의 메인 아이디어에 근거하여 설교 제목을 묵상합니다. 지나간 날의 한 설교학자는 설교 제목을 설교의 AIR(공기, 분위기)라고 했습니다. A-attractive(매력적이고) I-instructive(교훈적이고) R-reflective(반영적인)제목을 선정하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설교의 아웃라인은 설교의 뼈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그 뼈대가 잘 배열되어 있을때 우리는 설교의 살을 편안하게 입히게 됩니다. 제가 사용하는 가장 보편적인 아웃라인은 본문 순서적 정리형이지만 때로는 주제를 중심으로 한 논리적 정리형, 그리고 점진적인 전개형 아웃라인도 시도해 봅니다. 아웃라인은 보통 네개를 넘지않는 서술문(아주 드물게 질문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으로 합니다. 때로는 두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세가지 아웃라인입니다. 과거에 대지와 소지로 아웃라인을 나누었는데 현대적 설교에서는 되도록 소지는 사용하지 않는것이 보편적인 추세입니다. 소지가 대지의 분명한 전개를 오히려 혼란하게 만들수 있기 때문이지요. 정 소지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대지와 소지의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목요일 오전까지는 주일 설교의 아웃라인과 제목 설정을 완료하려고 노력합니다. 보통 목요일 오전에 교회 사무실에 주일 설교의 제목과 본문을 통보해야 하는데 그때는 이미 설교의 이웃라인이 설정된 후이고 또한 주보에 다음주간 셀(목장)에서 설교를 중심으로 말씀 나눔의 적용질문을 실어야 하기 때문에 설교의 전체 윤곽이 목요일 오전까지는 반드시 완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설교제목과 아웃라인이 설정 될때(목요일 오전) 까지는 본문을 붙들고 씨름할뿐 다른 참고 자료
는 터치하지 않는 것을 지난 한 15년 동안 제 설교 준비의 원칙으로 해왔습니다. 그 이유는 미리 다른
주석 혹은 다른 설교자의 설교 아웃라인을 참조할 경우 자신의 독창적인 묵상대신에 다른 분의 설교 아웃라인을 모방하고자 하는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설교의 초기에 다른 분의 설교 를 모방해 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설교를 해온지 한15년이 지난 어느날 저는 아직도 모방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고 부끄럽게 느낀 순간이 있었습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만 모방이 습관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강한 자책이 제 안에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저는 적어도 제 자신의 본문 묵상을 통한 설교의 기초 공사가 끝나기 전 까지는 다른 분의 설교나 설교 자료를 참조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 것입니다. 그후 제 설교는 보다 창조적이고 오리지널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목요일 오전 교회 사무실에 본문과 설교 제목을 통보한후 이제 저는 본격적인 설교 원고 쓰기에 들어가기전 소위 설교 원고 작성에 필요한 자료 모으기에 들어 갑니다. 물론 이때는 이미 설교의 아웃라인이 형성된 이후이기 때문에 아웃라인에 따라 필요한 주석도 참고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선배 설교자들이 본문을 가지고 어떻게 설교했는지도 참고하면서 소위 살 붙이기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 저는 아주 딱딱한 학문적인 주석류와 부드러운 강해류를 조화롭게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대체로 학문적인 주석류는 본문에 대한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제시해주고, 강해류는 설교자의 통찰력있는 인싸이트 (insights)들을 제시합니다. 이런 참조들은 저 자신이 형성한 설교뼈대를 보완할뿐 제 설교의 주 자료로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제 고유의 분문 묵상이 끝난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많이 참조하는 딱딱한 주석류는 The Anchor Bible, The New Century Bible Commentary,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Word Biblical Commentary이고 부드러운 강해류로는 The Communicator's Commentary,Warren Wiersby, Kent Hughes, Spurgeon, Arthur Pink, John Stott, Martyn Lloyd Jones등의 설교들입니다.

이런 자료 모으기가 끝나면 대체로 금요일 오후부터 틈나는대로 원고작성에 들어 갑니다. 되도록이면
토요일 정오까지는 원고 작성을 끝내려 합니다. 설교 초기에는 자주 토요일 밤 까지도 설교 원고를 붙들고 씨름하곤 했는데 이런 습관은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빼앗고 또한 설교자로서의 여유로운마음을 박탈해 가는 것같아 한 10년전부터 완전히 습관을 바꾸었습니다. 토요일 정오까지 준비를 마치면 오후에는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위해 기도할수 있고 원고를 여러번 반복하여 읽으며 수정할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더군요.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토요일 저는 본 교회의 결혼 주례이외에는 다른 일체의 약속을 갖지 않도록 하는 원칙을 교회에 양해를 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른 일에 바쁘게 움직여도 주일 강단에서 성도들에게 은혜의 통로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의 목회는 결국 축복의 마당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오후 가능하면 저는 집근처에서 산책도 하고 명상도 합니다. 이런 여유로움으로 마음을 가꾸고 저녁에 다시 한번 설교 원고를 완전히 내것으로 소화시킨후 편안한 마음으로 안식에 들어 갑니다. 저는 늘 설교 원고를 가지고 강단에 오르지만 강단에 오를 때에는 설교 원고를 가지지 않은 듯 이미 원고가 설교자에게 소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다른 교회 집회를 인도하는 중 그 교회 평신도 지도자가 자신의 교회 목사님의 설교에 대한
불만을 말하면서 "나는 주일에 목사님의 설교를 접할때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싶다"고 한 말을 잊어버릴수 없습니다. "이 부족한 종이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설때 하늘문을 열어 주소서"--이것이 그후 저의 중요한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로이드 존스는 강단은 이 세상 가장 가슴 설레이는 로맨스가 있는 곳이라는 말을 했지요.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을 주선하는 곳--그 거룩한 곳에 부끄럼없이 서도록 지나치게 불필요한 일들의 신을 벗는 절제가 설교자들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럼 오늘은 이만 여기서 저의 부끄러운 설교 준비의 한 주간을 공개하는 이야기를 줄이고자 합니다. 다음은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의 설교 준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그럼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늘 부족함에 부끄러워 하는 한 선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