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로마서 강해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율법의 본질과 기능 고찰

에반젤(복음) 2019. 12. 19. 09:14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율법의 본질과 기능 고찰



- 로마서를 중심으로 한 율법의 본질과 기능 고찰 -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
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
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
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 로마서 7: 1 ∼ 4

율법에 대한 신학적 논쟁은 초대 교회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이에 따르는 교리 적인 차이로 인한 교파 분열은 물론, 신앙의 이질화 현상까
지 빚어내고 있는 실정이다.
크게 나누어서 그 분류를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율법대로 행하는 믿음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치는 극단주의적 율법주의 경향을 띠고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모
든 율법을 다 이루시고 폐하셨으므로 이제는 율법은 필요가 없고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
치는 반율법주의 즉 율법 폐기론자들이 있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구원은 믿음으로 얻었지만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율법대로 지켜 행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자칭 복음주의 자들로서 그 중용을 채택하는 소위
복음과 율법을 조화 있게 주장하는 자들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한 신앙인들의 신앙적 혼선은 신자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성경 적인
고찰이 없이 자기 생각에 자기 의를 쌓아 가는 열심인 학생들도 있고, 이미 자유 안에 있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알지 못하여서 쓸데없는 죄책감 속에 자신의 젊음을 가두어 두는 젊은이-비단 청년만의 문제
는 아니지만-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성경 적인 율법의 기능과 필요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율법에 대한 성경의 명확한 해답은 무엇일까? 로마서를 중심 해서 율법의 기능과 성질 및 시효 등을
살펴서 그 해답을 구해 보고자 한다.

1. 교회사를 통해 본 율법(율법에 관한 견해)

성경적 유대교에서 율법의 의도된 역할이 어떤 것이었든 간에 1세기의 유대교는 하나님의 율법에 인
간들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만들도록 자극하는, 살아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율법을 통해
행하는 선은 하나님께서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복음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선포하고 있고 이미 율법의 그러한 기능들은 의미가 없어졌다고
로마서와 갈라디아서, 그리고 바울의 서신서에서는 강조하고 있다.
신약성경이 완성된 후에 이어진 시대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죄의 용서를 이야기하는 복음
의 초점이 흐려지게 되었고, 영생의 보증을 위해서는 선행이 필수적인 것으로 신봉되었다.
A.D,140년경에 활동했던 마르키온(Marcion)은 율법과 복음의 분리에 대한 주장을 함께 포함하는 개혁
을 시도했다. 이어서 발전된 카톨릭 교회에서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태도는 유대교의 태도와 유사한 것
이 되었다.
종교개혁에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선언으로 말미암아 율법의 기능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
게 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율법과 복음을 엄격하게 구분하였다. 율법, 즉 하나님의 요구사한과 규례들에 대한 하
나님의 계시는 우리에게 우리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다.
그는 율법은 생명을 주지 않고 언제나 죽이고, 우리를 내적으로 새롭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생명을 주지 못하는 대신 율법은 죄를 깨닫게 만든다고 믿었다.

루터는 율법이 교회들에서 설교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는 죄에 대한 지식이 양심을 일깨우고 회개와
회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아래 있지 않으며 율법을 의존하지 않는다.
율법은 우리가 해야 하는 바를 계시해 줄 수 있다. 율법은 병을 진단해 주지만 복음은 죄를 치료해 준
다고 루터는 말하고 있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모든 면에서 율법을 성취하신 분으로 일관성 있게 보았다.

존 칼빈은 하나님의 율법에 두드러진 역할을 부여한, 또 하나의 개혁주의 전통을 수립하였다. 루터와
칼빈은 율법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계시라는데 동의하고 있다. 그는 율법에 또 다른 기능이 있음을 강
조하였다. 즉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우리가 구원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하
나님의 명령에 순수하게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우리가 해야 했던 바를 발견하고 우리의 실패의 정도를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은 여기에 율법의 세 번째 용도를 추가하고 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인의 삶에 필요한 규범들을 지속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은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적극적인 의 의 원칙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인 지침으로서 계명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 번째
계명은 엄격한 규칙들을 따름으로써 사는 삶을 함축하고 있지는 않다. 칼빈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가르쳤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사랑이나 자비나 은혜를 선포하기 전에 항상 먼저 죄와 율법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 설교한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에게 "율법에 대하여 90%를 설교하고 나머지 10%는 은혜
에 대하여 설교하라"고 권고했다.

설교의 황제라 일컫는 찰스 스펄젼은 사람들은 의롭고 거룩한 율법 앞에서 두려워 떨기 전에는 은혜
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죤 위클리프는 우리가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하나님의 율법을 설교하는 것이라
고 했다.
유명한 무디는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식에 그분이 주신 율법도 완전하다고 하면서 이 율법은 사
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측정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라고 했다.

2. 율법의 단어적 의미
구약성경에서 "율법"을 의미하는 단어는 "가르침" 또는 "교훈"을 뜻하는 토라(torah)이다. 구약의 율
법관은 풍요롭고도 적극적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함
은 열국 앞에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짓기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
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하심과 같이 그 신의 가까이함을 얻은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신
4:6-8)
이 구절에서 토라의 발전된 의미를 보게 된다. 하나님의 교훈들은 구속력이 있는 교훈들이다. 그 교훈
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의식적, 종교적 삶을 규제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지적하기에
이르렀고, 율법이라는 말은 모세 오경 자체에 대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이처럼 구약성경에서 율법이라는 단어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계시, 일련의 특별한 교훈들, 기록된 도덕
적 또는 의식적 요구 사항들, 또는 모세의 저술들을 나타낼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율법"으로 번역되어 있는 헬라어 단어는 노모스(nomos)이다. 신약에서 그 단어는 토라
가 구약성경에서 갖고 있는 의미들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가진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헬라 문화에
서 율법은 어떤 관습이나 전통이 어떤 규범이 되는 사회적 과정, 즉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의무
와 책임들을 한정하는 방식들을 의미하고 있다. 노모아(nomoi)는 거기에 순종하지 않을 경우에 형벌을
초래하는, 기록된 법을 의미하게 되었다.
신약성경에서 율법이라는 말은 때때로 보편적인 원칙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바울이 로마서 7
장에서 자신이 자신의 인간적 본성(육신)가운데 있는 죄의 법칙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결국 바울은 또 하나의 원칙,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만이 자
신을 영적인 무능력함에서 건져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롬 8:2)
대부분의 신약에서도 구약과 같이 율법이라는 단어를 하나님의 교훈, 모세 법전, 모세의 계시의 본체,
그리고 계시 자체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3. 율법의 기원과 구성요소

율법은 하나님이 만들었고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주어졌다.
아브라함 이후 430년이 지난 모세의 때에 주어졌고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유효한 것이다.
* 그런데 여기서(오시기 전까지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마5:18절을 읽어보자.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와 엡2:15에는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시고"가 서로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
다. 롬3:31절에 나와 있듯이 율법은 폐할 수 없고 오히려 굳게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갈3:19절에 나오는
유효기간이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라는 말씀은 옛 언약으로서 율법의 법적인 통치가 끝났다는 말
이지 율법의 본래의 참 뜻이 상실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을 잘 이해해야 '그리스도의 법'을 이해할
수 있다.

율법의 구성들을 보면,
1) 십계명과 같은 도덕법(출20:1-7)
2) 배상과 재판에 관한 민법(출21:1-23:9)
3) 제사의식법(출25:1-30:38)
4) 식생활법(레11장)
5) 청결에 관한 보건위생법(레12-15장) 등 5가지로 되어 있다.

4. 율법의 목적과 기능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율법을 행함으로 그분 보시기에 의롭
게 될 육체가 없기" 때문입니다(롬3:20; 갈2:16).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려고
주셨다. 왜냐하면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롬3:20). 만일 율법이 "너는 탐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롬7:7). 이같이 "율법"은 사
람들로 하여금 그 입을 다물게 하고 자신들의 의를 자랑하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죄인
임을 알게 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롬3:19).
바울은 로마서 2장과 3장에서 율법이 가지고 있는 정죄 기능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 즉 율법 아래
서는 한사람의 의인도 있을 수 없다고 결론한다. 바울은 율법의 정죄기능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밝혀 준다.

율법은 심판 아래 있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 1:18∼3:20 사이에서 인간의 불의한 상태를 지적을 하
고, 결론적으로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 3:19)"고 말하면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율법을 백성들이 지킬 수 있고 또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는 선언을 받
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율법을 더 하시므로 범죄가 더하게 하여 온전한 구속주 곧 자기들을 대신하여
자기들의 자리에서 자기들을 위해 율법을 온전히 지켜 주실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
게 한 것이다.

율법이란 인간 시조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된 자연인들이 율법이 없이는 자신이 죄인임
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에게 율법을 주어 원죄를 지니고 태어난 인간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여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율
법을 주신 것은 인간이 이 율법을 행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미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이 율법의 정죄를 통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는 것이
다. 이러한 기능은 어디까지나 인간 시조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율법의
기능이라 하겠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유다인이든 이방인이든 더 이상 "모세의 율법"하에 있지 않다. 이
는 그분께서 "율법"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즉 "율법"의 모든 예식과 의식들은 그분 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를 이루시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롬10:4, 갈2:19). 따라
서 믿는 모든 사람들은 더 이상 "율법주의"의 속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또한 율법은 범죄를 더하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 5:12∼7:25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입혀 주신
하나님의 의의 성질을 설명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5:12∼21에서 하나님의 의가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라고 밝혀 주고 있다. 그런데 그 중 5:20에서는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
해 주므로 또 하나의 율법의 기능을 역설하고 있다. 즉 로마서 4:15에서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고 바울이 말한 대로 율법은 범죄가 성립이 되도록 하는 것이 그
주된 기능이다. 이 기능의 목적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롬 5:20하)"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케 하시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기능은 어디까지나 성도 개인의 자범죄와
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기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나님의 계시의 목적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며 세상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를 로마서 5장의 죄를 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 본문은 하나님이 죄를 더하시려고
의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이미 죄와 그 결과로 인한
죽음이 보편적인 것임을 말했기 때문이다. 죄와 죽음을 넘어 더할 것이 없다. 창조주로부터 온 피조물을
분리 시키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있겠는가? 율법은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그 결과 죽음이 지배하게 된
이후에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죄를 더한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율법에 표현된 하나님의 선
하신 의도가 모독이 되고 침해될 때 나타난 죄의 파괴적이고 유린하는 특성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율법
을 깨달을수록 죄의 의식과 자각을 뚜렷하게 느낀다는 뜻이다. 죄는 그대로 있지만 죄를 더 많이, 하나
님의 기뻐하시지 않는 것으로 느낀다는 의미이다.
그것이 가능 한가? 율법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해서 아담의 죄는 그 계시된 계명에 환히 드러난 것이
다. 계명이 주어지므로 우리의 죄가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율법은 우리의 의무와 책임의 규범에 대
한 지식을 더해 주며 그 결과 우리의 부족과 미달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의 역할은
확대경과도 같다. 확대경은 우리의 옷에 붙어 있는 더러운 먼지의 수를 더 잘 보이게 한다. 먼지는 그
대로 있지만 더 자세히 봄으로 더 많아졌다고 느끼는 것이다. 안보이던 것들까지 보게 하므로 결국은
더해 준 격이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율법은 보이지 않는 죄를 보이는 범죄로 변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율법은 죄를 볼 수 있게 함으로 격렬한 감각을 더해 주거나 또는 범죄의 차원을 삽입시킴으로서
더 악화시킨다.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의 인류를 취급하는 경로에서 괄호 적인 경륜임을 암시한다.

그러면 이런 맥락에서 죄를 더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를 절망시키고 낙심시키려는 것인가? 그것
은 로마서 5장 20절의 하반 절이 대답이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 죄와 은혜가 다 같은 정도의
능력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은혜가 죄를 능가한다는 말이다. 죄를 짓지만 자신이 무슨 죄를 짓는지 알
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죄가 더욱 커지기까지, 아니면 큰 죄를 짓더라도 양심의 화인
맞음으로 인해 자신이 죄인인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은혜는 반드시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경우에만 성립된다. 죄인으로 인정치
않는 자에게는 은혜는 한낱 피상적인 단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죄를 더
많이 깨닫게 하심으로-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요, 지혜다-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죄의 크기가 크다고 느낄수록,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더욱 깊이 느낄수록 구원의 길은 더
가깝게 되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내가 죄인이요 죽어 마땅한 운명임을 자각하게 될 때에 용서와 구
원에 대한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관점에서 나의죄 많음과 연약성을 깨닫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더하는 것이고,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하는 것이다.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에 관해서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율법 말고 우리의 죄악을 완전
히 깨닫게 하는 도구가 없을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서 우리가 죄인임을 분명하게 깨닫는다. 아무런 잘못도 흠도 없
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율법의 기능에서만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피흘리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말할수 없는 죄인임을 알게 된다.

5. 율법의 성질

율법의 성질에 대한 오해는 율법 이해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성질에 대하여
분명한 결론을 주고 있다.
1) 믿음으로 굳게 세우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율법 폐기론자들 처럼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다 이루어져 폐기된
것으로 아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3:21∼31에서 하나님의 의의 실현 방법에 대해 언
급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얻어지게 됨을 말해 주고 "그런즉 우리가 믿
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고 말하고
있다. 즉 율법이 독자적으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믿음에 의하여 더욱 굳게 세워진다는 뜻인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로마서 3:19∼30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율법은 행위로는 의를 얻지 못하게 하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율법이 폐해지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굳게 세워진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율법이 굳게 세워져야 만이 자기 행위의 공로를 포기하고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이 율법대로 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 져서는 안되고 도리어 율
법에 의한 자기 행위의 공로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의 차이는 정
반대의 해석의 차이를 나타내어 주므로 율법주의 적인 신앙의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2)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 1∼11에서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알게 하고 죄인인 우리 자신을 죽게 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의의 열매를 맺게 하려 하
기 때문에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율법이 죄로 죄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한다고 해서 악한 것인 줄로 알아서는 안된다. 로마서 7:13 하반 절에서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는 말은 죄가 아닌 것을 죄로 만든다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되며 어디까지나 죄는 죄인데 그
죄를 율법이 구체적으로 죄로 구성시켜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알게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져야 하
는 것이다.

율법은 그 자체가 선하고 의로우며 거룩하여도 인간의 타락의 심각성 때문에 전적 타락으로도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을 지켜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 곧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
고 웅변이다.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만이 자신의 의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의만을 의지하게
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심히 죄되게 하는 율법이야말로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것이 되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14 에서 덧붙여 율법은 신령한 줄 안다고 하면서 7:16에서는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
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율법은, 죄인 된 인간을 죽게 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한 하나님의 의를 힘입은 그리스도의 의의
사람으로 거듭나서 성령의 선한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것이라는
결론이다.

6. 율법의 시효

그러면 율법이 언제까지 그 기능의 효력을 발휘하느냐 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율법이 굳게 세워지고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이니까 그 기능이 효력이 지금도 아니면 영원히 계속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도 성경은 매우 명쾌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1) 그리스도가 마침이 되셨다.

바울은 로마서 9: ∼ 11:에서 하나님의 의의 기초에 대해 언급하면서 율법의 행위로 의를 얻으려 했
던 이스라엘의 열심이 실패됨을 지적하고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
침이 되심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측면에서 보여주는 율법의 시효 한도를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율법의 요구에 응하셔서 율법 아래 나시고 율법 아래 생활하시고 율법 아래서
죽으심은 율법의 마침이 되기 위해서였다. 즉 로마서 8:3 ∼4에서 밝혀 준 것처럼 육신으로는 할 수 없
는 율법의 요구를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이루어지게 하시므로 율법의
마침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구속사적으로는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는
선언과 함께 이루심으로 마침이 되신 것이다. 여기서의 "마침"이란 율법 폐기론자들이 말하는 "폐했다"
라는 말과 구별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침"이란 말은 율법의 요구를 완수하므로 율법 기능의 역할
이 끝이 났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으나 "폐했다"는 말은 율법 요구의 말살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은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요구가 완수되었을 뿐이다. 예
를 들면, 채무자가 채주에게 갚을 빚을 친구가 대리로 갚아 버림으로 채주의 요구가 끝이난 것이지 채
주가 죽어 버린 것이 아니다는 말이다. 즉 율법의 요구가 끝난 것이지 율법 자체가 없어져 버린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7:18이나 또는 10:9에서 말하고 있는 "폐한다"는 의미 역시 율법 폐기론자들의 주장처
럼 율법 자체의 말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불완전한 제도가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도로 인하여 끝이
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2) 주와 함께 죽을 때까지이다.

바울은 로마서 5:12∼7:25에서 하나님의 의의 성질을 설명하면서, 7:1∼13에서는 율법에서의 벗어남 -
해방 -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은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 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
하느냐(7:1)"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살 동안 만"이라는 말은 육신의 수명 한도를 의미하지 않
고 그리스도와 함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바울은 갈라디아 3:23∼25에서도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
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아래 있지 아니하도다"라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사적으로 율법의 완성을 이룩해 놓으신 것을 성령을 통하여 우리 각 개인에게 구원을 적용
하시는 측면에서 말해 주는 율법 기능의 시효 한도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7. 율법과 은혜

1)은혜에 대한 이해
"너희가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
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엡2:8-9).

이 성경구절로부터 우리는 "은혜"가 선물임을 알 수 있다. 만일 사람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로 구
원을 받는다면, 구원은 단지 "삯"(혹은 임금)이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할 것이다. 만일 구원이
하나님께 드린 재물에 대한 대가로 주어진다면, 그것은 단순히 "보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서 사람이 구원을 삯이나 보상으로서 받게 된다면, 구원은 선물이 아니라 단지 자격이나 권리가 있어서
받는 어떤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에 의한 것이 될 수 없다.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율법을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해 주신 것도 아니다. 은혜란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데도 거저 주시는 긍휼인 것이다.

①은혜의 "원천"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유일하게 난 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존 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②은혜의 "통로"는 그리스도이다.
"율법은 모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 것이라"(요1:17).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딛2:11).

③은혜의 "도구"는 믿음이다.
"너희가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나니, 이것이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2)은혜와 율법의 비교, 차이
①"피"와 "포도주"
"율법"을 대표하는 자로서 모세가 행한 첫 번째 기적은 물을 죽음의 상징인 피로 변하게 한 것이었
다(출7:19-21). 그러나 "은혜"를 대표하는 분으로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첫 번째 기적은 물을 생명의
상징인 포도주로 변하게 한 것이었다(요2:7-11).

②"어두움"과 "빛"
모세가 "칠흑 같은 어두움"을 일으켜 온 이집트 땅을 덮게 했듯이, "율법"이 할 수 있는 것은 어두
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출10:22-23). 그러나 "은혜"는 빛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
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라고 말씀하셨다(요9:5). 예수님께서는 신체적으로 눈이
먼 자들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눈먼 자들도 보게 하려고 오셨다.

③"죽음"과 "생명"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광경은 죽음이었다. 곧 장자들의 죽음이었습니다(출12:29-30). 이처럼 "율
법의 마지막"은 죽음이다(롬6: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기적 중 하나는 생명을 주는 것,
곧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킨 것이었다(요11:41-44). 예수님께서는 "은혜의 복음"을 통해 생명
과 불멸을 주시고자 오셨다. "율법"이 처음으로 선포되었을 때, 3,000명이 죽었다(출32:26-28). 그러
나 "은혜"가 처음으로 전파되었을 때, 3,000명이 구원받았다(행2:41).


④"벗기는 것"과 "입히는 것"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는 본래 강도들에게 강탈당해 옷마저 벗김을 당한 채
로 길가에 버려져 죽어 가는 자들이었다(눅10:30-37). "율법"은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그냥 지
나쳐 버리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지만, "은혜"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와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고, 자신이 타던 짐승 위에 우리를 태우고 우리의 장래를 보장해 준다.

⑤"찾는 것"과 "구원하는 것"
율법은 말하기를, "주님을 발견할 수 있을 동안에 그분을 찾으라"고 한다. 그러나 은혜는 말하기
를,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한다(눅19:10).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이를 얼마나 잘 그려주고 있는가! 이 비유는 잃어버린 양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떤 한 사람이 한 마리 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아담이 범죄하
여 방황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담아, 너는 나 없이 살 수 있을 지 몰라도, 나는 너
없이는 지낼 수 없느니라"고 하셨던 것이다. 바로 그때가 "은혜"가 일을 시작한 때였다.

⑥"행하라. 그러면 살리라"와 "살라. 그러면 행하리라."

율법은 말하기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레18:5)고 한다. 그러나 은혜는 "다 이루었다"라고 말한
다. 어떤 사람도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없다. 신자는 단지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
다. 우리는 십자가로 가기 위해서(즉 구원받기 위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에 행하는 것이
다.

7. "종"과 "아들"

"율법"은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말하기를, "네 신을 벗으라"(출3:3-5)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가 종이기 때문이다(히3:5). 그러나 탕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은혜"는 그에게, "
네 신을 신으라"(눅15:22)고 말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다(눅15:24).

"율법" 하에서는 "양"이 "목자"를 위해 죽었다. 그러나 "은혜" 하에서는 "목자"가 "양"을 위해 죽었다
(요10:14-15).

율법은 거룩함을 요구한다. 그러나 은혜는 거룩함을 준다.
율법은 이렇게 말한다 :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는 다 저주 아래 있나니, 이는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행치 아니하는 자는 다 저주받은 자라"(갈3:10).

그러나 은혜는 :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덮여진 자들은 복이 있고, 주님께서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롬4:7-8)라고 말한다.

율법은 : "너는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

은혜는 :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
사, 우리 죄들을 위해 화해물로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것이니라"(요일4:10).

율법은 : "그들이(제사장들이)해마다 계속해서 드리는 그 희생물들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
케 할 수 없느니라"(히10:1).

은혜는 : "오직 이 사람께서는, 죄들을 위하여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후에…… 그분께서 하나
의 헌물로 거룩케 된 자들을 영원히 완전케 하셨느니라"(히10:12,14).

율법은 : "율법 안에서 범죄한 자마다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으리니"(롬2:12).

은혜는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사망에서 생명
으로 옮겨졌느니라"(롬8:1상; 요5:24하).

그렇다면 은혜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에베소서 2장7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인자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부함을 오는 여러 시대에 보여주려 하심이니라." 은혜로운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은혜를 입은 구약의 모든 믿음의 선배들과 신
약을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에게까지 하나님께서는 보여 주시는 것이다.

결국, 구속사적으로는 이미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마침이 되셨으니, 실제적으로 각
개인에게 구원 사역이 적용되는 측면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죽으심에 동참하여 새 사람으로
중생될 때 율법에서 해방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 없는 이방인에게도 함께 적용이 되는 것이
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의 시효는, 구속사적으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이 마침이 되실 때까지이
며,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중생될 때까지가 그 기능의 시효기간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구속함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성도는 율법의 정죄에서나 요구에서 완전히 벗어난
자들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타락한 죄인에게 죄를 깨닫게 할뿐만 아니라 범죄를 더하게 하여 하나님의 심판 아
래 있게 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이루게 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써 폐해진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굳게
세워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성질을 가지고, 구속사적으로는 그리스도가 마침이 되시며, 개개인의 신
앙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중생할 때까지 그 기능의 시효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요약
하면. 율법은 옛 사람을 죽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게 하는 하나님의 구속 섭리의 한 도구
이다. 구원으로서의 율법의 기능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폐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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