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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야고보서>는 어떤 책인가?

에반젤(복음) 2019. 11. 29. 15:53



             

<야고보서>는 어떤 책인가? 
 
 
함께 읽을 성서 본문 : 야고보서 1:1

1. 야고보서는 편지일까?

야고보서는 여느 편지처럼 서두를 문안 인사로 시작한다. 이 짤막한 인사말에는 발신자와 수신자가 누구인지 명시되어 있다. 바울서신에 비해 인사말이 너무 간단한 게 조금 흠이긴 해도 서신의 인사말 형식상 특별히 하자는 없다. 전체 분량도 편지로 보기에 큰 무리가 없을 만큼 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야고보서가 실제 편지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왜냐하면 이 책의 말미에는 이상하게도 끝맺는 인사말이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용을 살펴보면, 수신자가 처한 구체적인 삶의 정황은 가려진 채 교훈적인 권고가 계속되고 있다.

야고보서의 장르는 서신이라기보다는 잠언이나 집회서 같은 유대 지혜 문헌의 형태에 매우 가깝다. 이 책은 가난과 부, 시험 극복, 경건, 차별, 행함, 혀, 인내 등 지혜 문학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물론 신약의 다른 서신들에서도 교훈적 권고는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야고보서는 여러 교훈을 수집하여 별다른 논리적 연속성도 없이 마치 나열하듯 제시하기 때문에 여타의 서신과는 사뭇 다르다.

야고보서는 특정인이 아닌 일반 수신자에게 보낸 편지라는 의미에서 오랫동안 7권의 '공동서신(Catholic Letters)' 중 하나로 분류되곤 했다. 그러나 야고보서에서 유일한 편지의 요소는 서두의 인사말 외에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책은 편지보다는 신약의 지혜 문서로 보아야 더 적합할 것이다.

2. 누가 이 책을 썼는가?

야고보서 저자는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종인 야고보'라고 소개한다. 그러나 이 야고보가 과연 누구를 말하는지는 아직까지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신약성서에는 야고보서 저자로 추정되는 세 명의 야고보가 있다. 첫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막 3:18; 행 1:13)다. 그러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그가 열두 제자 중 하나라는 사실 외에 아무 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둘째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막 1:19 ; 5:37 ; 9:2). 그는 형제 요한과 더불어 갈릴리 어부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예수께서는 그의 성격이 우레와 같다고 해서 보아너게(우뢰의 아들)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비교적 일찍 순교한 것으로 나온다(행 12:1-2 / 주후 44년경). 갈릴리 어부 출신이자 이토록 일찍 순교한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마지막 세 번째로 주의 형제 야고보가 있다(막 6:3; 고전 15:7; 갈 1:19; 갈 2:11-14). 주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의 생전에는 그를 믿지 않았으나 사후에 부활을 체험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부상했던 인물이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예수의 형제 의인 야고보가 율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대제사장 아나노스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고 예루살렘에서 순교했다(주후 62년)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오리겐, 유세비우스, 제롬 등 2-4세기에 활동하던 고대 교부들은 야고보서 저자를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보았다. 하여 주의 형제 야고보가 야고보서의 저자라는 설은 고대 교회 시절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다. 예루살렘 교회를 대표하던 주의 형제 야고보가 그 권위를 가지고 '세계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인다.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받은 영향이 감지되며 전반적으로 유대교적 색채가 짙은 편이다. 이런 점들도 이 책의 저자를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보는 중요한 증거로 거론되고 한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저자를 주의 형제 야고보로 보는 데 반대하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반대의 근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 책은 팔레스타인 상용어가 아니라 매우 세련된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다(예컨대 1:21 '심어주신 말씀' ; 3:6 '인생의 수레바퀴'). ② 예수의 생애와 교훈에 대한 언급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에 대한 언급만 해도 단 두 번밖에 찾아볼 수 없다(1:1 ; 2:1). ③ 병든 자들을 위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약 5:14)는 언급을 보면 이 편지의 시대적 배경이 교회에 장로 제도가 자리 잡은 후대임을 알 수 있다. ④ 야고보서가 기록된 시기는 어림잡아 서기 2세기 중후반 혹은 3세기 초반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이 서신이 무라토리 정경 목록(180년 전후)이나 2세기에 주로 활동한 어떠한 교부의 글에도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겐(185-254년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야고보서 존재가 증명되지만 그 권위가 널리 인정받고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심지어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조차 4세기 초반에 쓴 글에서 야고보서는 '논란이 되고 있는 책'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만일 야고보서 저자가 주의 형제나 사도였다면, 이 서신이 초기 교회 내부에서 이토록 긴 세월동안 철저히 무시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야고보서 저자는 누구였을까? 우리가 야고보서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초기 교회에서 활동하던 익명의 교사였다는 사실이다(약 3:1). 그는 바울의 가르침을 곡해하는 자들이 많아지는 교회의 현실을 우려하여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교회를 위한 윤리적인 지침을 제시하고자, 유대의 지혜 전승들을 참조하여 그리스도교적으로 각색했던 것 같다.

3. 야고보서가 정경이 되기까지

야고보서는 비교적 뒤늦게야 정경에 포함된 책이다. 이 책은 로마 회의(주후 382)와 카르타고 회의(주후 397, 419)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정경에 수록되었다. 야고보서가 이렇게 정경에 포함된 배후에는 아타나시우스의 39번째 부활절 서신(주후 367)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교회사가 유세비우스는 대부분의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이 이 책을 인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이 그 정경성을 부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특별히 내용상 문제는 없었으나 단지 널리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경에 포함되는 데 논란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종교개혁가 루터는 1552년 그의 9월 고백서에서 야고보서의 가치를 낮게 보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비평적 문제를 제기했다. ① 이 책은 복음을 선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지라도 복음주의적인 어떠한 것도 담고 있지 않다. ② 이 책은 사도에 의해 쓰여지지 않았다. ③ 야고보는 행위에 의한 칭의 같은 잘못된 것으로 간주되는 문제를 제시하고 또 가르쳤다. ④ 이 책에는 예수의 수난과 부활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없다. 이러한 논평과 더불어 루터는 야고보서에 대해, "그것은 결코 사도의 편지가 아니며, 오히려 지푸라기 서신이다"라며 다소 경멸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다.

이런 루터의 영향이겠지만, 오늘날까지 한국교회에서는 야고보서를 무시하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야고보서를 공부하다보면, 이 책이 그리스도교를 살찌우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