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야고보서 강해

[스크랩] 야고보서의 신학

에반젤(복음) 2019. 11. 29. 15:33



           야고보서의 신학

(1) 하나님
  가장 먼저 야고보서는 하나님을 창조자로 소개한다. 하나님은 불변적이며 무형적인 분이다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약 1:17). 하지만 하나님은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약 1:18). 하나님의 창조물 가운데 압권은 인간이다. "그가 그의 조물 중에 우리를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 약 1:18).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 (약 3:9). 또한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주 아버지" (약 3:9)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약 1:5)이시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 (약 5:11)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 (약 1:17)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위로부터 주시는 분이시다 (약 1:17).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 (약 4:6). 가까이 하는 자에게 가까이 하신다 (약 4:8). 그분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자를 높이신다 (약 4:10).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시어 믿음에 부요케 하시고 약속하신 나라를 주시는 분이시다 (약 2:5). 나아가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 하나님은 진정한 입법자와 재판자이시다 (약 4:12).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의를 들으시는 만군의 주이시다 (약 5:4).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 (약 1:20)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신다 (약 4:12).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시험하지 아니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받지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 1:13). 여기에서 말하는 시험은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는 시험이다 (약 1:14). 욕심은 죄악을 낳고 죄악은 사망을 낳는다 (약 1:15). 시험은 이 사슬에 관련된 시험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시험을 베풀지 아니하신다.

(2) 예수 그리스도
  특이하게도 야고보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이 직접적으로 단 두 번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약 1:1; 2:1). 이것을 근거로 야고보서의 기독론 몇 가지를 살펴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동일선상에 놓여있다 (약 1:1).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 (큐리오스)라고 부른다 (약 1:1; 2:1). 야고보서에서 "주"는 모두 13번 나오는데 (1:1,7; 2:1; 3:9; 4:10,15; 5:4,7,8,10,11,14,15) 대체적으로 하나님을 가리키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것은 야고보서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3) 교회
  야고보서는 교회를 회당으로 묘사한다 (약 2:2ff.). 이것은 아직 유대교적 공동체와 기독교적 공동체가 완전히 구별되지 않은 초기단계의 교회상을 보여준다. 야고보서의 교회는 장로가 있는 조직된 교회이다 (약 5:14). 이 교회에서 기도와 찬송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약 3:9; 5:13). 야고보서의 교회는 빈자와 부자로 구성되어있는데 상당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행하게도 야고보서의 교회에는 벌써 배도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약 5:19-20). 이런 현상가운데서 야고보서의 교회는 말세 (약 5:1), 재림 (약 5:7), 심판 (약 5:9)와 같은 종말론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4) 윤리
  야고보서는 "가난과 부"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 야고보서의 교회에는 낮은 형제들과 부한 형제들이 있었다 (약 1:9-11). 야고보는 낮은 형제들에게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높아진 것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들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비천을 발견하여 낮아짐을 자랑하라고 권면한다. 부요함은 풀의 꽃과 같다. 이렇게 권면하는 까닭은 집회시에 가난한 자들이 멸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약 2:1-13).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첫째로 신앙적 근거 때문이다 (약 2:1):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외모를 취하지 않는다. 둘째로 신학적 근거 때문이다 (약 2:5).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선택하셨다. 셋째로 사회적 근거 때문이다 (약 2:6-7). 부자는 폭행을 일삼는다. 넷째로 성경적 근거 때문이다 (약 2:8). 율법은 이웃사랑을 요구한다. 이에 더하여 야고보서는 부자들에게 경고를 준다 (약 5:1-6). 부자들은 재물의 부패 가능성을 인식할 것이며 (약 5:2-3), 급료를 체불하지 말 것이며 (약 5:4), 사치와 연락에 빠지지 말 것이며 (약 5:5), 의인을 정죄하지 말 것이다 (약 5:6).

(5) 믿음과 행위
  바로 이같은 맥락에서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위의 조화 문제를 다룬다 (약 2:14-17). 때때로 야고보의 신학은 바울의 신학과 마찰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약 2:21,24,25)고 말하는 반면에 바울은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롬 3:28; 갈 2:16; 빌 3:9)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고보서의 신학을 야고보서의 교회상황에서 이해하면 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야고보서의 교회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있었다 (약 2:6). 헐벗고 굶주린 형제자매를 말로만 위로하였다 (약 2:15-16). 따라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 (약 2:17)이라고 말한다. 물론 야고보는 믿음에 대한 긍정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믿음의 간구 약 1:16;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약 2:1;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약 2:19). 야고보는 믿음과 행위의 문
제를 아브라함을 예증으로 잘 설명해준다 (약 2:21-24). 야고보서는 아브라함과 관련하여 두 가지 사건을 제시한다. 첫째는 창 22:1이하의 이삭제사이다 (약 2:21-22). 여기에서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말하면서도 (약 2:21) 믿음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위의 상호기능을 정확하게 밝힌다. 믿음은 행함과 협동하며 (약 2:22상), 행함은 믿음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약 2:22하).

        --협동-->
믿음○    ○행위
        <--완성--

둘째는 창 15:1이하의 상속자약속이다 (약 2:23-25). 여기에서 야고보는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얻는다고 말하면서도 (약 2:23) 행위를 무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믿음과 행위의 조합관계를 정확하게 밝힌다. 믿음과 행위 의롭다하심의 두 근거라는 것이다 (약 2:24). "믿음 뿐 아니라". 말하자면 믿음과 행위는 칭의를 위한 두 겹의 근거이다. 마치 노랑색과 파랑색의 셀로판지를 겹치면 초록색이 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야고보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영혼없는 몸은 죽은 것이듯이, 행함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약 2:26). 영과 몸을 분리할 수 없듯이 행함과 믿음을 분리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