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야고보서 강해

[스크랩] 야고보- 각권 연구

에반젤(복음) 2019. 11. 29. 15:51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약 2:22절, 183.383.384장.&

믿음이 행위를 가져옵니까? 아니면 행위가 믿음을 가져옵니까? 또한 믿음은 반드시 행위가 나와야 합니까? 만약에 믿음에 걸 맞는 행위가 없다면 그 믿음은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 행위가 믿음을 결정(決定)해 주지는 못합니다.

믿음은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집니다. 믿음에 따른 행위와 그냥 행위(行爲)와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그리고 믿는 자의 행위는 어떠해야 합니까?

1.루터의 고민입니다. 종교개혁자(宗敎改革者) 루터는 카톨릭 신부였습니다. 루터는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부정과 잘못된 교리를 바라보면서 섬광처럼 떠오른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은 공로와 선행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했습니다. 면죄부 판매에 앞장섰던 당대의 웅변가이며 장사꾼인 테첼은 군중들을 향하여 면죄를 구입한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그 영혼은 천국으로 올라간다라고 외쳤습니다.

젊은 신부 루터는 분노했습니다. 그는 비텐베르크교회의 입구에, 95개 항목의 반박문을 내걸고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루터는 면죄부가 인간의 죄를 대속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회개를 통해서 죄가 용서된다는 성경 말씀을 외쳤을 때 그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1517년 10월 31일이었습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라는 교리를 주장한 루터에게,야고보서는 문제 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믿음을 말하지 않고 행위를 이야기한 야고보서를 못마땅하게 여겨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평가절하 했습니다.

물론 루터의 이 같은 견해는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루터는 말년에 자신의 이 같은 발언을 취소했습니다. 초창기 루터는 야고보서를 믿음의 구원이 아니라 행위 구원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행위 없는 믿음 = 믿음 없는 행위입니다. 야고보서에는 믿음이 행위를 가져옵니까? 아니면 행위가 믿음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말해 주는 말씀입니다. 나무가 열매를 가져다주는가 아니면 열매가 나무를 가져다주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줍니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오는 하향식이었습니다. 성경은 열매가 나무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열매를 맺게 해 줍니다.
행위가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행위를 갖게 합니다.

이 말씀은 믿음과 행위를 각각 다르게 보는 이원론(二元論)적인 개념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를 같은 선상에서 보는 일원론(一元論)적인 개념입니다. 따라서 야고보서는 다음 두 가지를 거부합니다. ①믿음 없는 행위와 ②행위 없는 믿음, 이 두 가지를 함께 거부합니다.

이 같은 야고보서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진리(眞理)와 원리(原理)를 제공해 줍니다.
믿음이라는 특징은 행위를 동반합니다. 반대로 기독교인의 행위는 믿음이 전제됩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약2: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약2: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롬14: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시련입니다.(약1:3), 믿음으로 구합니다.(약1:6), 믿음의 기도(약5:15) 등 모든 것이 믿음이 전제됩니다. 따라서 야고보서의 주제는 로마서와 다르지 않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특징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일관된 메시지와 특수한 목적,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기록했다는 성경의 통일성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로마서나 야고보서 역시 같은 일관된 하나의 주제에 의해 기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3.환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 자들입니다.(1장)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 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1)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야고보의 일차적인 독자가 누구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차 독자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입니다.

야곱의 아들로 구성된 12지파가 이스라엘 국가를 형성했습니다. 이들은 민족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서에 보면 유대인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에게 배신자라고 낙인찍힌 자들입니다. 같은 동족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죽음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흩어져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대 크리스찬들은 믿음을 지키며 흩어져 살았습니다. 이들은 많은 고난과 환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 동족인 유대인들이 거부한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것인가라는 고민도 있었을 것입니다. 흩어져 살아간 개종한 유대 크리스찬들에게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그 믿음을 끝까지 지키며 환난 속에서 참고 인내할 것을 말씀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눈물로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 그 믿음은 반드시 인내가 요구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어떤 유혹이 올지라도 이겨내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의 생활 모습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에 따른 행위를 다양한 주제로 말씀합니다. 따라서 야고보는 1장에서 믿음과 그 믿음생활 가운데 나타난 다양한 모습들을 말씀합니다. 그 모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시련(시험)을 기쁘게 여깁니다.(1:2) ②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1:3)

③지혜가 있어야 합니다.(1:5) ④기도를 하게 됩니다.(1:5-8) ⑤믿음이 성장합니다.(1:6) ⑥부(富) 문제를 극복할 줄도 알았습니다.(1:9-11) ⑦유혹(시험)의 욕심을 버리게 됩니다.(1:12-15)

⑧속지 말아야 합니다.(1:16-18) ⑨말하는 것에 조심합니다.(1:19) ⑩이웃 사랑의 실천입니다.(1:22-25) 이 같은 주제의 말씀들을 더욱 구체적으로 다룬 것이 2,3,4,5장 말씀이 되겠습니다.

4.계명의 본질과 믿음의 행위입니다.(2장) 2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본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 계명과 믿음의 행위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씀해 줍니다. 예를 들어서 2:1-13절에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고 합니다.(2:9절). 그러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면 심판을 이기는 긍휼이 임할 것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합니다.(2:13절).

이 같은 긍휼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율법과 계명을 완성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2:8) 그러나 율법의 완성인 사랑을 통한 긍휼을 거부하는 행위는 무엇입니까?

2:9절에 기록되는데 그것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의 완성은 사랑과 긍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과 긍휼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義)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목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는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행위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결단이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야고보는 여기서 두 사람을 예로 듭니다. 아브라함과(2:23절) 라합(2:25절)입니다. 이 두 인물은 자신들이 믿음이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입니다.

그때의 행동은 죽음까지라도 불사한 행위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위해 목숨을 겁니다. 야고보가 여기서 결론을 맺는 것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는 말씀입니다.(2:26절).

5.자신을 자제하는 것과 믿음과의 관계입니다.(3장) 야고보는 3장에 와서 성도들이 자신을 자제하고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말씀해 줍니다. 그러나 결국 성도들이 자신을 자제하고 지킨다는 것은 결국 믿음이 있음을 증거 해 준 결과라고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선생을 예로 들면서(3:1) 말의 실수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했습니다.(3:2절). 혀는 작지만 마치 불과 같이 많은 것,

큰 것들을 태워 없앨 정도의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稼得)한 것입니다.(3:8절). 따라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은 혀를 조심합니다.

성도(聖徒)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으로 저주를 말할 수 없습니다.(3:10절). 이것이 믿음에 따른 성도들이 아름다운 열매입니다.(약3:11-12절). 야고보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에게 혀를 잘 길들이고 자신을 지켜 아름다운 행위를 보이라고 합니다.

3:13절에서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고 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했습니다.(3:17-18)

6.믿음에서 떠난 행위 = 욕심입니다.(4장) 4장에서는 욕심은 우리들의 믿음과 신앙이 땅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욕심은 믿음 없음과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증거로 말씀합니다.

4:1절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이 욕심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합니다.

4:2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이와 같은 욕심과 정욕은 사탄의 유혹에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 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욕심과 정욕으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래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4:7절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찌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기도하는 자들은 지나친 자기 자랑이나 상대를 비방하지 않는 거룩한 행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입니다.(4:8-17).

7.말세의 심판을 자초한 욕심입니다.(5장) 욕심과 착취는 심판을 초래합니다. 예를 들어서 품꾼들에게 주어야 할 품삯을 주지 않고 착취할 때에 품꾼들의 하소연은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상달될 것입니다(5:1-6절).

이런 말세에 우리들은 서로 믿음을 따라 욕심을 버리고 제 역할과 사명을 다하여 주님의 강림을 소망 가운데 기다려야 합니다. 5:8절에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백성들을 위해 엘리야가 믿음의 기도를 했던 것처럼 장로들은 자신의 봉사의 직분을 성실히 감당하며 쉬지 않고 헌신과 희생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8.말씀을 정리합니다.

마7: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화자찬 하기를 자신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 심판(審判) 받아야 할 자들입니다. 그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입니다. 요6:40절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永生)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들은 믿음의 특징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믿었으니 멋대로 살아도 되겠구나가 아니라 믿었으니,내가 어떻게 멋대로 살겠는가라는 정신입니다. 이 같은 믿음의 정신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야고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이 세상에서의 환난과 고통 속에서 믿음을 지키며 시험을 이겨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가를 이야기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5: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고 했습니다. 5:20절에 "너희가 알 것은 죄인(罪人)을 미혹(迷惑)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靈魂)을 사망(死亡)에서 구원(救援)하며 허다한 죄(罪)를 덮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망의 급류에 밀려 멸망의 터널로 떠내려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은 생명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뒤따라야 세상 사람들이 보고 쫓아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기도가 되어서 전도의 문이 활짝열리는 역사가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