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야고보서 강해

야고보서 개론

에반젤(복음) 2019. 11. 29. 15:59



             

야고보서, 광야의 설교



1. 매직아이 같은 삶


요리저리 뒤척이다 잠 못 이루고 맞이한 새날,

기나긴 외로움에 울다 지친 초장은

밤새 차가운 사막이 되었습니다.

목마른 양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때

사막은 내게로 다가와

순례의 길을 재촉하는

아침.


   최근 지인의 때 이른 죽음을 겪었다. 그 이가 아니었다면 덜 아팠을까. 참 맘 고운 사람이었는데, 사랑하는 이도 만났는데, 하나님은 또 얼마나 이쁘게 사랑했던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었는데...몇 번이고 빈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사람이었다. 모를 일이다. 목숨 더 주시면 하나님께 결코 손해 될 리 없었을 것을..., 왜 그리도 모질게 우리 청을 거절하셨는지, 정말 알 길이 없다. 그렇게 그이는 우리가 자주 잊어버리지만 결코 새롭지 않은, 삶의 불확정성과 불확실성의 또 하나의 예가 되어 우리 곁을 떠났다. 아무도 자기 생의 길이를 모르는 우리의 존재의 실상이 어떠하며, 그러니 우리가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묵직한 설교 한 편 남기고 서둘러 가버렸다. 겨우 서른 세 해를 살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하시던 예수님처럼, 우리에게는 삶의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며 수수께끼 같은 인생에 대해 우리가 대답을 모른다고 대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며 오히려 말없이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갔다. 그래서 남은 자는 ‘차가운 사막’ 같은 현실과 늘 함께 존재하는 ‘초장’을 보기 위해, 지금 그이가 남기고 간 안경을 쓰고 인생의 매직아이를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2. ‘시험’의 책 야고보서

    그 이가 남긴 안경으로 야고보서를 보니 우리가 사는 현실과 그 현실 너머의 삶이 모두 보인다. ‘콩 심은 데 콩 안 나고, 팥 심은 데 팥 안 나는’ 현실도 보이고, 그 현실 너머에 ‘심판자가 문 앞에 서 계시는’ 모습도 보인다. 하나님 업신여기면서 자기 눈에 선한대로 살아도 오히려 떵떵거리면서 잘 누리지만 하나님 잘 믿고 의지해도 속절없이 당하고만 사는 징그러운 현실과, 그 현실 너머에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이 많으신 주님이 이 요지경 세상을 다 보고 계시는 것과 또 영광스럽게 강림하시는 모습도 모두 보인다. 심는 대로 거두지 못하는 혼돈(chaos)이 마침내 행한 대로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질서(order)의 일부가 되고, 그 혼돈과 악과 무질서를 통해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게 된다. 이렇듯 야고보서는 하나님의 통치와 질서가 무기력하게 허물어지는 듯이 보이는 아래의 세상에 사는 이들에게 저자 야고보가 위에 속한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쓴 편지이고 설교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life style)이 셋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과 하나님을 버리는 것, 양다리 걸치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이 세 부류의 선택 가능한 반응에 대해서 현실적인 예를 들면서 평가하고 있다.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그 분의 판단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이들에게 주어질 보상과 하나님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임할 망설임 없는 심판, 그리고 가면을 쓰고 둘 사이를 오고가는 이들의 위선에 대한 폭로(exposure)와 심판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서신은 경건성과 세속성의 타협으로 경건의 모양만 추구하는 이중적인 태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힘주어 말한다. 믿음이 있노라 하고 실상은 믿음이 없는 이중성, 기도하지만 응답도 기대하지 않고 자기 욕심을 따라서만 구하는 이중성,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지만 형제를 저주하는 이중성, 말은 경건하다고 하지만 존재 자체는 욕심으로 가득 찬 이중성, 지혜가 있다고 하지만 세상적인 지혜로 가득 찬 윤똑똑이들의 이중성, 그리고 마귀와 가까이 하면서 하나님과 가깝다고 생각하는 이중성 등이 만연해 있었다. 그들은 ‘정함이 없고’(1:8) ‘두 마음을 품은’(4:8) 자들이었다. 삶의 방식은 셋이지만 결국 두 부류의 사람만 남는다.


  하나님은 나중에 자기 아들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에 따라 심판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 때가 오기 전에 우리를 자주 시험하실 것이다. 본 고사가 있기 전에 예비고사를 치르는 것과 같다. 그 시험을 통해 지금 내가 선 자리와 나아가고 있는 생의 방향을 돌아보게 하신다. 그 뿐 아니라 우리가 더욱 마지막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신다. 그 시험은 우리 안에 약하고 허물어진 곳이 어디인지 드러내어 보수하고 더욱 강건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시험이 늘 고난이나 상실의 형태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상실의 고통을 통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었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지 깨닫게 하지만, 내 욕망을 자극하는 것-돈, 명예, 성, 자존심-을 기꺼이 취하지 않고 포기하는 자기 부인(self-denial)의 결단을 통해서도 주님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청중(audience)임을 되새기게 할 수 있다. 이런 두 시험 방법을 보이기 위해서 야고보서는 시험(test)을 뜻하는 ‘페이라스모스’라는 헬라어 단어를 ‘시련’(trial)과 ‘유혹’(temptation)으로 각각 다르게 번역하고 있다. 야고보서는 이 다양한 리트머스 시험지를 제시하고 이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주는 ‘시험’(試驗)의 책이다.

3. 시험에 임하는 태도와 방법과 시험의 예

  야고보서는 1장에서 시험에 임하는 태도와 결과, 시험에 임하는 방법과 시험의 예를 두 번(1:2-11; 12-27)에 걸쳐 반복하여 설명한다. 본론에서는 그 두 가지 예(부에 대한 태도, 혀의 사용)를 2장(부에 대한 태도)과 3:1-4:10(혀의 사용)에서 더 자세하게 설명한 후, 4:11-5:6에서는 이 두 예를 함께 담아서 다시 강조한다. 그리고 본론 전체를 요약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5:7-20).


I. 인사말

II. 본론(1:2-5:6)

   1. 시험에 대한 태도(1:2-27)

     A. 시험을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라(1:2-11)

       1) 시험의 목적과 태도(:2-4)

       2) 시험을 이기는 방법: 기도 (:5-8)

       3) 시험의 예: 부 (9-11)

     B.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1:12-27)

       1) 시험의 결과와 태도(:12-18)

       2) 이기는 방법 : 말씀 (:19-25)

       3) 시험의 예: 혀의 사용 (:26-27)

   2. 시험의 예 (2:1-4:10)

     A. 부에 대해 (2:1-26)

     B. 혀의 사용에 대해 (3:1-4:10)

     C. 형제 비방과 교만한 부자들에 대해(4:11-5:6)

III. 결론 (5:7-20)


• 태도: 야고보서는 고난 앞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온전히’ 즐거워하고(1:2) 유혹에 넘어지고는 핑계하지 말라고 한다(1:13). 고난 없는 온전함이 없고, 우리 욕심에 이끌리지 않으면 미혹당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당장 그 대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 마지막은 반드시 있고, 욥처럼, 아브라함처럼, 라합처럼, 엘리야처럼,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으로 기도하며 약속에 순종할 때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 이기는 법: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첫째, 내 한계를 인정하면 된다. 내 지혜와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된다(1:5-8). 세상 지혜가 아닌 위로부터 난 지혜를 의지하고 겸손하게 그 지혜 자체이신 하나님께 순복하면 된다(3:13-4:10). 둘째, 내가 말하기를 멈추고 주의 말씀을 먼저 듣고 순종하면 된다(1:19-25). 순종하기 전까지 그 말씀은 그저 문자일 뿐이고 내 고백은 공허한 독백일 뿐이고 내 믿음은 송장 믿음일 뿐이다(2:14-26).

 

• 시험의 예: 예나 지금이나 우리를 위협하는 시험의 예는 ‘돈’이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독한 ‘혀’다. 돈과 자기 이익 앞에서는 하나님도, 형제도 없다. 공동체를 위선에 빠뜨리고 이간질 시키는 것이 바로 이 왜곡된 물질과 혀의 사용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재판장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오만하게 오늘 나의 자원을 가지고 내일을 장담하기 보다는 ‘오늘’ 주의 뜻을 상고하고 실천해야 한다(4:13-17).

 

4. 야고보와 바울; 야고보와 예수님

   마틴 루터가, 본 서신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언급이 없고 2:14-26은 바울의 이신칭의의 교리와 상치된다는 이유로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으로 묘사한 것은 아주 유명하다. 정말 그런가? 유감스럽게도 루터는 바울 서신뿐 아니라 야고보서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야고보가 비판한 믿음(2:24)은 지적인 인정에 불과한 ‘죽은’ 믿음이었으며, 바울이 비판한 ‘행위’는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행위가 아닌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행위였다. 야고보가 참되다고 생각한 산 믿음은 사실상 바울이 말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갈 5:6)과 같다. ‘믿음’은 ‘관계’ 용어이기 때문에 바울이나 야고보 모두에게 ‘행함’이 없는 믿음이란 있을 수 없다. 더군다나 바울이 비판한 대상은 이방인들의 구원을 위해 율법 준수를 주장했던 유대주의자들이지만 야고보의 비판 대상은 고백과 삶이 다른 이중적인 신앙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야고보의 가르침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저자가 예수님의 동생이자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던 야고보일 것이라는 주장은 그의 가르침이 그의 형 예수뿐만 아니라 바울을 포함한 사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이 그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거의 다 찾아볼 수 있다.


                                                                                      야고보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믿음이 시험을 받을 때 기뻐하라                                 1:1             5:11-12          6:23

완전함/성숙으로의 부름                                              1:4             5:48

구함과 받음                                                                   1:5, 17; 4:2-3     7:7-11          11:9-13

구원에 이르는 인내                                                       1:12            10:22; 24:13      

의를 파괴하는 분노                                                      1:20            5:22(5:20과 함께)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라                                            1:22-23          7:24, 26         6:47, 49

가난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음             2:5             5:3, 5           6:20    

자유의 법, 이웃 사랑                                                   2:10-12          22:36-40         10:25-28

긍휼히 여기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음                      2:13            7:1     

가난한 자들을 향한 실제적인 돌봄                          2:14-16          25:34-35

선한 일의 열매                                                             3:12            7:16-18          6:43-44

두 주인을 섬기는 것에 대한 경고                             4:4             6:24

마음의 정결                                                                 4:8             5:8

겸손과 높임                                                                4:10            23:12           14:11; 18:14

부의 위험                                                                     5:1-3           6:19-21          12:33-34

선지자의 예                                                                 5:10            5:11-12          6:23

맹세 금지                                                                    5:12            5:33-37          17:3

죄인을 회복시킴                                                        5:19-20          18:15


바울과 야고보는 모두 예수님 생전에는 반대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하였다. 바울의 가르침이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되었듯이, 야고보의 가르침 역시 예수님을 새롭게 이해한 후 그의 생애 동안 가르쳤던 것을 되새기며 형성되었다. 그러니 이 둘은 모순되기 보다는 다른 독자들에게 다른 상황에서 다른 강조점을 가지고 편지를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5. 나가면서

  야고보서는 광야의 책이다. 지혜의 책이다. 한 편의 멋진 설교다. 애굽으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인내하며 약속의 땅을 향해 순례의 길을 계속 걸어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결단을 촉구한다. 이 세상에서 들려오는 지혜의 소리에 귀를 막고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순종하며 살라고 요구한다. 둘 사이에 걸쳐 있을 곳은 없다. 자기만을 위한 위선적인 이중성은 자신에게는 물론이고 공동체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독이다. 시련은 쓰고 아프다. 유혹은 달고 근사하다. 현실은 부조리하고 냉혹하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허상(illusion)은 아니지만 전부도 아니다. 차가운 광야는 늘 초장과 함께 있다. 현실을 무시하면 현실 너머를 볼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 매몰되어도 현실 너머는 없다. ‘오늘’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서 현실과 맞서 믿음으로 살아갈 때 현실은 초장이 되고, 약속의 그 날까지 단지 버티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뻐하며 기다릴 수 있다. 그 날에 온전해질 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