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사무엘상 강해

[스크랩] 사무엘상 4장 영광이 떠났는가? (김형익목사)

에반젤(복음) 2019. 11. 12. 12:41



   

사무엘상 4장 영광이 떠났는가? (찬 322)

1.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인생의 성취와 성공에만 관심을 가질 때 어떻게 되겠는가? 본문은 오직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언약궤를 필요로 하는 타락한 백성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아벡 전투에서 4천명이 전사하는 큰 패배를 겪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라고 질문했다(3). 이 질문은 합당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로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고 회개하게 하는 계기가 되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와 기도 대신, 분석과 대책을 생각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언약궤를 가지고 나가서 싸우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백성들이 기껏 생각하는 종교적 고려란 하나님을 자신들의 성취와 성공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쟁이었다. 그들은 실로에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가져왔고 더러운 홉니와 비느하스가 언약궤와 함께 있었다. 언약궤의 존재로 인하여 잔뜩 긴장하고 두려워한 블레셋 군대는(7~8) 도리어 더욱 용기를 내서 전투를 치르게 되었고(9) 이스라엘은 3만의 군사가 전사하는 대패를 당하고 언약궤 마저 블레셋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다.

2. 이날 언약궤 옆의 홉니와 비느하스는 함께 죽임을 당했다(2:34). 무명의 선지자와 사무엘이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대로였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홉니와 비느하스의 아버지, 사십 년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통치했던 제사장 엘리는 이 소식을 듣는 순간, 의자에서 자빠져 목이 부러져 즉사하였다. 그의 나이 98세였고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15). 엘리의 눈은 어두워서 보지 못하였다는 것은(3:2 참조) 그 시대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비극적 시대가 되었음을 암시한다. 본문은 엘리가 죽은 순간을 비교적 정확히 묘사하는데, 그것은 참패의 소식이나 두 아들의 죽음에 대한 소식이 아니라 언약궤를 블레셋의 손에 빼앗긴 사실을 말할 때였다(18). 두 아들이 실로에서 언약궤를 가지고 전쟁터로 나갔을 때 엘리는 이 언약궤 때문에 노심초사했었다(13). 그 시대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었던 엘리는 너무나 무력했다. 해산 때가 가까웠던 비느하스의 아내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긴 소식과 시아버지와 남편의 죽음의 소식을 듣고 해산을 할 때, 죽어가면서 태어난 아들에게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준다. “영광이 어디 있는가?”, 즉 “영광이 떠났다”는 말이다. 그녀 역시 시아버지나 남편의 죽음 보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빼앗긴 사건을 생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정확하게 성취되고 있었다(3:12).

3. 사실 하나님의 영광은 이날의 전투로 인하여 떠나지 않았다. 언약궤를 빼앗겼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떠는 것이 아니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 그리고 사사 엘리가 죽었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는 가시적인 현상이나 결과로 하나님의 영광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불순종과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아감 그리고 말씀의 감화가 없는 삶이 이미 하나님의 영광 없이 사는 삶이라는 사실을 왜 깨닫지 못하는가? 어떤 큰 사건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이 징계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둔한 자들은 아닌가? 하나님의 영광에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성취와 성공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이가봇! 무서운 이름이다. 하지만 그녀의 판단은 틀렸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떠나지 않으신다. 다만 그 영광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실 뿐이다.

4. “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하면서 저희의 삶의 성공과 성취를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하여 주시고, 저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오직 온 세계와 주님의 모든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열심으로 살도록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