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아레오바고 광장에서의 바울의 설교(사도행전 17:24~34)
* 본문요약
바울은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천지의 주재이시므로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에 계시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만든 우상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교합니다. 또한 과거 무지했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새로운 시대가 왔으니 모든 자들이 그분 앞에 나와 회개해야 한다고 증거 합니다. 바울은 마지막 때 공의로 심판하실 날이 올 것이라 말하고,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이 바로 그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고 어떤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찬 양 : 75장(새 78) 저 높고 푸른 하늘과
94장(새 96) 예수님은 누구신가?
* 본문해설
1.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24~25절)
24)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니(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니),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계시지 않으십니다.
25) 또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 하나님을 우상과 같이 여기지 말라(26~29절)
26)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에게서 인류의 모든 족속을 만드셔서 온 땅 위에 살게 하셨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습니다.
27) 이렇게 하신 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과 그리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어떤 사람이 말했듯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29)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을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금이나 은이나 돌에 새겨 만든 형상 따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 연대를 정하시고(26절) : 민족의 흥망성쇠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심(26절) : 삶의 영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민족의 흥망성쇠와 사람의 삶의 영역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하는 자들(28절) :
크레타 섬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 주전 600년)’의 시 ‘Cretica’ 중에서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하는 부분을 인용
-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28절) :
시칠리 섬의 시인 ‘아라투스(Aratus, 주전 331~233년)의 시,
‘Phaenomena’에서 ‘우리가 그의 소생이다’하는 부분을 인용
3.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30~34절)
30) 하나님께서는 무지했던(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눈감아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31)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 날에 대한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32) 죽은 자가 다시 부활한다는 말을 듣고 더러는 비웃었으나,
더러는 “이 일에 관해서 당신의 말을 더 듣고 싶소”하고 말하였습니다.
33)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떠났습니다.
34) 그때 몇 사람은 바울을 가까이 하여 주님을 믿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레오바고 광장의 관리(혹은, 아레오바고 법정의 판사)인 디오누시오도 있었고,
그 밖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 디오누시오(34절) :
디오누시오는 아테네 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가
96년 도미티안 황제 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 묵상 point
1. 창조주이시며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1)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바울(24~25절)
그 유명한 아테네의 아레오바고 광장에서 바울은 이렇게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이시니(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니), 사람이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계시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아테네 시민들이 알고 있는 그런 신들하고는 전혀 차원이 다른 온 우주의 주인이심을 증거했습니다.
2) 올림피아의 신들처럼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그들이 알고 있는 올림피아의 신들은 항상 무엇인가 부족합니다. 사람처럼 서로 질투하고, 사람처럼 자기의 부족을 것을 상대에게서 빼앗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신들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에게 두 번째 설교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하고 증거합니다.
3)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25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와 예물을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어서 우리에게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인데 우리에게서 무엇을 바라시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생명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 묵상 :
주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요구하신 것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과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라 하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그 복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리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2. 우리 가까이 계신 하나님
1)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26절)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태초에 한 사람을 만드시고, 그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있는 모든 민족과 족속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민족과 족속의 연대를 정하시고, 그들의 삶의 영역을 정하셨습니다. 민족과 족속의 연대를 정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 민족의 흥망성쇠를 정하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거주의 영역을 정하셨습니다. 그 영역을 벗어나면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 영역 안에서도 비가 조금만 내리지 않거나 더 많이 내려도 사람은 살 수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2) 그러나 우리가 찾기만 하면 만나주시는 분(27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람과 민족의 흥망성쇠를 정하시고, 사람이 살아갈 삶의 영역을 정하신 것은, 그들로 하나님을 찾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담으로부터 지금까지 이 땅에 있는 사람은 모두 죄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하나님을 찾아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의 영역을 제한하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도록 하신 것입니다.
3)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27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을 더듬어 찾기만 하면 만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더듬어 찾기만 하면 찾을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우리와 가까이 계신 분, 우리가 부르고 찾으면 언제든지 만나주시는 우리를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찾고 부르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찾고 부르십시오.
3. 하나님을 사람이 고안하여 만든 것과 같이 여기지 말라(29절)
바울은 하나님은 우주 안의 모든 것을 지으신 천지의 주재이시니, 사람이 고안하여 금이나 은이나 돌을 새겨 만든 것과 같이 여기지 말라고 증거 합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형상으로 새겨 만든 우상을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권력을 의지하고, 교회 건물을 의지하고, 교회 부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것 역시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들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 묵상 :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서 최고로 사랑하고 섬기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4. 모든 이들에게 회개하라 명하신 하나님(30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정해 놓으셨다고 증거 합니다. 조만간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이 오기 전에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회개하여 구원 받는 백성들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확실한 일임을 증거 하기 위해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보이셨습니다.
● 묵상 :
주께서 죽으신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이 확실한 일인 것처럼
주께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기 위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이 확실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5. 바울의 설교를 조롱하는 자들
1) 복음의 말씀이 헬라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고(32절)
헬라인들은 무엇을 깨닫고 이해했느냐가 중요할 뿐, 회개라는 말 자체를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이 실망한 것은 ‘부활’이라는 말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증거 하자, 그들은 더 이상 말을 들으려하지 않았습니다.
헬라 철학에서 육신은 영혼의 감옥입니다. 그들은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한 것인데,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영이 어쩔 수 없이 악한 육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다시 영이 아니라 육신으로 부활한다고 하니 그들은 바울의 말을 천하의 엉터리 같은 말이라며 바울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설교에 큰 실망을 합니다.
2) 자기들의 생각과 같은 설교를 찾는 어리석은 자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같은 설교를 기대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설교를 듣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기가 듣고 싶은 주제를 정해 놓고, 그 주제와 같은 설교를 원합니다. 감동을 주는 설교, 자기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설교를 원합니다. 내가 죄를 지었더라도 회개하라고 촉구하여 내 마음에 갈들을 일으키는 설교는 오늘날 관점에서 볼 때 못하는 설교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바울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묵상 :
오히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설교가 잘하는 설교입니다.
말씀이 살아있으므로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듣기 좋은 것을 들으시려면 설교가 아니라 일반 강사들을 찾아가십시오.
6. 바울은 아테네의 전도를 힘들어 했다. 그러나 실패는 결코 아니었다.
1) 아테네의 고전 시를 인용하며 설교했으나 참담한 결과(28, 34절)
바울은 그들이 알고 있는 시를 인용하며 설교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을 전하였으나, 그 말씀이 잘 전해지도록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했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고 믿기로 결심한 자들의 이름이 단 두 명이 기록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몇 명 더 있다고 했습니다.
2) 바울이 가장 힘들어했던 아테네 전도
바울은 핍박이 없었으나 그 어떤 곳보다도 아테네 전도를 힘들어했습니다. 차라리 말씀에 반대를 하고 핍박을 하면 힘이 났습니다. 그러나 형편없는 것이라며 실망하며 조롱하기만 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울도 기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바울 같은 위대한 사람도 이런 평가 앞에 이렇게 힘들어한다는 것이 오히려 힘이 됩니다. 바울이 저와는 다른 엄청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도 힘들고 어려워하는 면이 있었다는 것이 힘이 됩니다.
3) 그러나 바울의 아테네 전도는 결코 실패가 아닙니다(33~34절)
바울이 그렇게 힘들게 전도하고 물러났으나, 아테네에서 믿는 자가 된 유일한 남자 디오누시오는 아테네 교회의 초대 감독이 되었다가 96년 도미티안 황제 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의 아테네의 전도는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 묵상 :
우리도 눈앞의 일만 보고 힘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그 아픔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무엇이 부족하여
명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해
주께 예배하고 섬기라 명하신 것임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2. 내 귀에 듣기 좋은 설교만
찾는 자가 되지 말고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지라도
내 마음과 영을 살리는 설교를
듣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열매가 없어 패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주께서 열매를 맺게 하심을 믿고 이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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