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사도행전 21:15~26)
* 본문요약
드디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바울은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였던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1~3차 전도 여행 중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 돌린 후 야고보가 바울과 유대인들 간의 오해를 풀기 위한 일을 제안합니다. 바울은 그 제안에 따라 유대인의 정결예식을 행합니다.
찬 양 : 29장(새 29) 성도여 다 함께
376장(새 450) 내 평생소원 이것 뿐
* 본문해설
1.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함(15~17절)
15) 이렇게 그곳에서 며칠을 지낸 뒤에 우리는 행장을 꾸려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16) 가이사랴에 있는 제자(성도) 몇 사람도 우리와 함께 동행하여
오래 전부터 제자가 되었던 구브로(키프로스)사람 나손의 집으로 데려다 주어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17) 우리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형제들이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2. 선교 보고 및 바울에 대한 오해(18~22절)
18)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거기에 다 모여 있었습니다.
19) 바울은 그들에게 문안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사역을 통해서
이방인들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을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20) 그들은 이 말을 듣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여, 당신도 아는 바와 같이 유대인들 중에 믿는 사람이 수만 명이
나 되는데, 그들은 모두 율법을 지키는 일에 열심을 가진 자들입니다.
21) 그런데 그들은 당신에 대해 소문으로 듣기를, 당신이 이방 지역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가르칠 때에 모세를 배척하고, 자식들에게 할례도 베풀지 말며,
유대인의 풍속도 지키지 말라고 한다는 것을 그들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22) 그러니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신이 여기에 왔다는 소식을 그들도 들어 알고 있을 테니
3. 오해를 풀기 위한 결례 이행(23~26절)
23) 우리가 일러주는 대로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서원을 한 사람이 네 명 있습니다.
24)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함께 정결예식을 행하고, 그들이 머리를 깎는 비용을
대십시오.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 대한 소문이 전혀 사실이 아니며, 도리어 당신 자신도 율법을 잘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25) 주님을 믿는 이방인 성도들에게는 우리가 이미 우상에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결의하여 그 편지를 보낸 바 있습니다.”
26) 이튿날 바울은 그 네 사람을 데리고 함께 정결예식을 행한 후에, 성전에 올라가
정결의 기한이 끝나는 날자와 각 사람이 예물을 바치는 날짜를 신고했습니다.
- 서원(23절) :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 나실인의 서원을 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
(자세한 것은 아래 묵상 포인트 4 참조)
* 묵상 point
1.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
1) 드디어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15~18절)
도착한 그 이튿날 바울이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로 있던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를 찾아 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도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문안하자 그들은 기뻐하며 바울을 맞아 주었습니다.
2) 아직도 율법에 열심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19~20절)
문안 인사를 받던 야고보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수만 명이나 된다고 말하며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유대인이든 아니든 간에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했으면 그 순간부터는 예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로 했다면, 할례와 같은 율법이나 정결법과 같은 장로들의 유전은 이제 더 이상 구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율법을 벗지 못하는 이유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
어찌하여 아직도 율법에 열성적인 사람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1)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유대 사회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믿고는 있으나 아직 그들이 유대인들과의 인간관계를 벗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을 믿기 전의 인간관계를 벗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인간관계를 벗지 못해서 주일을 잘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라든지, 그 인간관계를 벗지 못해 술이나 도박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들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하지만 여전히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사도들을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가 그들을 말씀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사도들을 비롯한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이 그들(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인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해 수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야고보를 비롯한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그저 유대인들과 잘 지내기 위해 가급적이면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말씀을 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는 복음을 바르게 전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설령 듣는 자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기를 거부하고, 때로 박해와 핍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복음의 말씀을 내 임의로 가감하지 말고 바로 전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려움이 오면 바울처럼 어려움을 당하는 자가 되십시오.
3. 바울에 대한 거짓 소문들
1) 예루살렘의 지도자 야고보가 전한 바울에 대한 소문들(21절)
야고보가 전한 바울에 대한 흉한 소문은
① 바울이 모세를 배척하고 : 모세가 전한 율법을 모두 부인했다는 것
② 유대인들로 하여금 그 자식들에게 할례를 받지 못하게 했으며
③ 장로들의 유전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는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유대인의 장로들의 유전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디모데로 하여금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 다 자란 성인인 그에게 할례를 시키기도 했습니다.
2) 바울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들
그 소문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한 말을 유대인들에게 한 말로 바뀌어 전파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을 넘어뜨리기 위해 악의적으로 바울의 말을 과장하고 바꾸어서 소문을 퍼뜨린 것입니다. 이처럼 악한 자들은 주님의 일꾼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거짓을 꾸미며 공격합니다. 예수님도 이런 거짓 고발에 고난을 받으셨고, 스데반 역시 그런 거짓 고발에 순교를 당했습니다.
● 묵상 :
우리도 때때로 거짓 소문에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위해 바르게 일하다가 이런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것은 핍박이고 박해이니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주께로부터 받을 상이 큽니다.
4. 지혜롭지 못한 야고보의 제안 : 바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1) 야고보가 바을에게 정결예식을 제안함(23~24절)
이런 소문에 대하여 야고보는 그 소문의 장본인인 바울이 직접 그 오해를 풀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마침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중에 네 명이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 한 서원을 갚기 위해 정결예식을 준비 중인데, 바울이 그들의 비용을 대면 어떻겠느냐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이 나실인의 서원을 하면, 그가 서원을 한 기간이 끝날 때에 머리를 깎는 의식을 성전에서 공개적으로 행합니다.
이때 서원 당사자가 서원을 이행하는 기간 동안에 깎지 않고 자라게 내버려두었던 머리를 깎아 하나님께 바치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제물을 함께 바칩니다. 이 경우에 그 서원자가 가난한 자이면 부유한 사람이 그 비용을 대신 감당해줄 때가 있는데, 이런 경우 그 비용을 대신 지불하는 일은 아주 특별히 경건한 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바로 이 일을 바울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바울 역시 7일 간의 정결예식을 해야만 합니다. 바울이 외국에 있는 동안 부정해졌기 때문입니다(27절).
2) 그러나 이 일은 바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 한 가운데로 들어가야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야고보와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은 유대인들이 얼마나 바울을 미워하고 증오하고 있는지를 이미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정도의 일로 바울에 대한 미움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 혼자서 예루살렘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은 사자나 악어의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일만큼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야고보는 바울에게 이 일을 부탁합니다. 이것은 바울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로마의 군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결예식이 끝나는 그 순간 흥분한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3) 바울이 복음을 증거하는 동안 손 놓고 가만히 있던 예루살렘 교회
바울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 하나하나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하려 힘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유대인들로부터 박해와 핍박도 많이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를 비롯한 예루살렘 모교회(母敎會)는 바울이 이렇게 애쓰며 복음을 전하던 20년 동안 손 놓고 가만히 있었던 것입니다.
5. 공동체의 일은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해야
1) 복음을 증거하다 생긴 일이니 바울 혼자서 감당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유대인들과 오해를 받게 된 것은 바울 개인의 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증거 하다가 생긴 일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일이고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이 일을 바울 한 사람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모두 나서서 함께 일을 처리했어야만 했습니다.
2) 그러나 바울 홀로 감당하게 하고 자기들은 빠진 예루살렘 교회
그런데 자기들을 쏙 빠지고 바울 한 사람에게만 이 일을 맡겨
그가 또 한 번 죽을 위기를 당하게 하고
무려 4년이 넘는 길고 긴 옥살이를 하게 합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 중에 주님의 일을 하다 어려움을 당했다면 그 사람의 어려움을 교회 공동체 전체가 책임져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의 초대교회 공동체에서는 교인들이 개인의 문제로 어려움을 당해도 온 교회가 함께 그 일을 처리했습니다. 함께 짐을 나누고 함께 어려움을 감당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나는 빠지고 저 사람에게만 힘든 짐을 지우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건강한 교인의 모습도 아닙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6. 야고보의 제안에 순종하는 바울(26절)
그러나 바울은 다소 지혜롭지 못한 야고보의 이런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어차피 죽을 각오를 하고 예루살렘에 왔으니 왜 그 일을 나 혼자에게만 맡기느냐고 불평하지 않고 그 일을 맡습니다. 바울은 정결예식에 참여할 필요도 없고, 서원에 참여한 자들의 비용을 대신 물어줄 필요도 없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그 제도를 폐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교회의 지도자인 야고보의 제안에 순종합니다.
● 묵상 :
교회의 지도자가 명하고 지시하는 것이 때로 내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시가 말씀에 명백하게 위배된 것이 아니라면 바울처럼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존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기 의견만 말하면 교회는 날마다 분쟁과 싸움만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이나 사교집단을 따라야 한다는 것과 같이 명백하게 말씀에 위배된 일이 아니라면, 교회의 계통에서 주어지는 지시나 명령, 혹은 의결사항에 불평하지 말고 따르십시오.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 기도제목
1. 주를 위해 일하다가
거짓 소문에 휘말리는 것과 같은
속상한 일을 당하더라도
주를 위해 받는 핍박이라 여기고
오히려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2. 교회 공동체 안에
누군가 힘들고 어려울 때
온 교인이 내 일처럼 여기고
함께 감당하고 함께 처리하게 하옵소서.
3. 교회 의결사항이나 지시나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신구약 성경강해*** > - 사도행전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에베소 교회 장로들과의 이별(행 20:25~38) (0) | 2019.10.03 |
---|---|
[스크랩] 선지자 아가보의 예언(행 21:1~14) (0) | 2019.10.03 |
[스크랩] 성전에서 체포된 바울(행 21:27~40) (0) | 2019.10.03 |
[스크랩]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의 회심을 간증함(행 22:1~11) (0) | 2019.10.03 |
[스크랩] 자신이 율법을 버린 자가 아님을 전하는 바울(행 22:12~21) (0) | 2019.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