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하박국 강해

[스크랩] 제 33강/ 서른 세 번 째 구원드라마(합 1:1-3:19)

에반젤(복음) 2019. 9. 30. 21:52




서른 세 번 째 구원드라마(합 1:1-3:19)


하박국의 예언


I. 배경


  하박국은 다른 선지자들과 비교해 볼 때 독특하다. 우선 그 신분이 독특하다. 아마도 그는 성전에서 노래하던 찬양대의 대원으로 레위의 후손일 것이라고 추측된다.(3:19, 1, 3, 9, 13) 이점에서 그는 독특한 신분의 사람이었다. 다음으로 그의 예언 태도가 독특하다. 다른 선지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받아 그것을 백성에게 전달하며 교훈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대질하며 불평했다. 그 결과 하나님을 말씀을 받았고 큰 신앙의 소유자가 되었다.
  하박국의 이런 신앙 태도는 당시의 상황 때문이었다. 그가 예언을 시작한 때는 유다의 큰 슬픔이 있었던 때였다. 요시아 왕이 애굽과의 므깃도 전투에서 전사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큰 슬픔을 겪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왕을 잃은 슬픔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게 되는 신앙적 고민이 그들을 더욱 당황케 했고 슬프게 했을 것이다. 즉 어찌하여 요시아 왕과 같은 의인이 원수의 칼에 죽어야 했느냐? 하나님은 왜 저를 버렸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시아 같이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한 임금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더라”(왕하 23:25)하지 않으셨던가?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슬픈 눈물이 앞을 가리울 뿐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먹구름이 그들을 절망케 했던 때였다.
  요시야 왕이 죽은 후 나라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애굽의 괴뢰로서 여호야김 왕이 백성을 억압했고 바벨론의 등장으로 나라는 망하기 직전이다. 저들은 신앙적으로 더욱 타락해 갔다. 저들은 요시아 왕이 영적 부흥을 이룬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라꼴이 이렇게 된 것은 요시아 왕이 우상을 제거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항변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여호야김 왕은 율법책을 불태웠고, 의인들은 정말 큰 박해를 받게 되었다.


II. 본문과 해석


   하박국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선지자와 여호와의 대화이고(1:1-2:4), 둘째는 다섯 개의 재앙이고 (2:6 -20), 그리고 셋째는 하박국의 노래(3:1-19)이다.


1. 첫 번째 예언: 선지자와 여호와의 대화(1:1-2:4)
  1) 첫 번째 탄원(1:2-4)
  하박국은 대단히 화가 나있고 불만에 차 있다. 그의 분노는 그가 처한 현실로부터 기인한다. 그리고 그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 대하여 그는 불만하고 있다. 그는 유다에서 불의와 부정과 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가 횡행하고 그로 말미암은 투쟁과 혼란이 판을 치는 현실(2-4)을 경험하고 있다.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서 율법은 무너져내려 효력을 발하지 못하고 공의는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오히려 왜곡을 당하고 있다.(4)
  그러나 현실이 그러한데도 하나님은 이런 현실을 종식시키고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다. 선지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한 역사 현실에 개입하여서 구원하셔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상당기간 부르짖고 외쳤지만 하나님은 묵묵 부답이시다. 그래서 탄원한다. “어느 때까지 입니까?”(2),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습니까?“(3)
  2) 하나님의 첫 번째 답변(5-11)
  애타게 기다리던 하나님의 답변이 임했다. 요지는 두 가지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5)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6) 즉 유다의 악을 심판하시겠다는 것과 바벨론을 유다의 악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하시겠다는 것이다.
  3) 두 번째 탄원(1:12-17)
  하박국은 예상 밖의 답변을 들었다. 이 답변은 더욱 큰 혼란을 겪게 했다. 그래서 바로 두 번째 탄원을 쏫아냈다. 13-14에 “어찌하여” “어찌하여”를 반복하여 탄원한다. 갈대아 사람이 유다를 심판하다니 갈대아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선지자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악한 자요 패역한 자요 궤휼한 자들이요 악인들이다.(13) 그들에 비하여 유다인들은 오히려 의인이다. 갈대아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이 더 잘 아신다.
  왜 유다의 악한 자들에 대하여 잠잠하시느냐는 탄원에 대하여 그들보다 더 악한 갈대아 사람으로 하여금 유다를 심판케 하겠다는 하나님의 답변을 들은 선지자는 오히려 전보다 더 큰 딜레마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래서 질문한다. “눈이 정결하셔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는 분이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잠잠하시며 어찌하여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13)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들 한 마디로 하나님의 공의에 맞는 처사이냐고 따지고 있는 것이다.
  4) 하나님의 두 번째 답변(2:1-4, 5-20)
  두 번째 항변을 쏟아놓은 선지자는 문득 질문을 멈추고 다음 태도를 결정한다. “내가 파수하는 곳에 서며 성루에 서리라” 이것은 선지자가 자기의 본 임무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금까지 고민하며 하나님께 도전적으로 질문하는 위치에 있었으나 이제는 선지자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하여 고요히 기도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선지자 본연의 제 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또한 결심한다. “그가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다답하실지 보리라”(2:1b)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두 번째 대답은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악한 바벨론은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하고야 만다는 것이다. 정한 때가 있고 그것은 반드시 이르고야 만다. 다른 하나는 악인이 아니라 의인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갈대아의 악한 자들이 어떻게 망할 것인가 뿐만아니라 유다의 남은 자들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될 것인가를 말씀해 주신 것이다.    이것은 이중적인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의인된 자는 악인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의인은 믿음의 행위 곧 믿음의 삶이 있어야 됨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 자는 악인들이 망하는 가운데서도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예언: 다섯 가지 재앙
  여기에서는 악한 바벨론 사람들을 향한 다섯 가지 재앙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있다.
  첫째 재앙 예언은 욕심과 강포에 대한 것이다.(6-8) 바벨론이 주변 국가들을 침공할 때 지녔던 과도한 욕심과 그 욕심을 실현시키기 위해 식민지 백성들이나 도로된 행했던 강포와 폭행에 대한 재앙이 예언된다.
  둘째 재앙은 잘못된 안도감에 대한 것이다.(9-11) 바벨론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침공한 국가의 백성들로부터 빼앗은 탈취물로 자신들이 거할 집을 높은 지대의 안전한 곳에 짓는데 사용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도감을 맛보고 있었는데 이에 대한 재앙이 예언된다.
  셋째 재앙은 인명경시 정책에 대한 것이다.(12-14) 바벨론 왕이 신도시 건설 시 식민지 국가에서 많은 노예를 데려다 강제 노동을 시켰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이에 대한 재앙이 예언된다.
  넷째 재앙은 이웃 민족들을 피폐하게 만든 것에 대한 것이다.(15-17) 바벨론 왕들이 국가 건설을 위해 레바논의 백향목을 모두 잘라 가져가 버렸다. 이런 바벨론에 대해 결국 그들도 수치를 당케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다섯째 재앙은 우상 숭배에 대한 것이다.(18-20) 바벨론은 수 많은 신들을 섬기며 그들을 상징하는 우상들을 만들어 섬겼다. 이에 대한 재앙이 예언된다.


3. 세 번째 예언: 하박국의 노래(3:1-19)
  1) 하박국의 기도(2)
  하박국은 두 가지 간구를 담아 기도하고 있다. 하나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흥은 커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심판과 징벌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긍휼을 잊지 말라고 기도하고 있다.
  2) 하나님의 나타나심(3-15)
  하박국은 전사처럼 오시는 심판주 하나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하나님이 오시는 목적을 묻는 질문을 던진다.(8) 그리고 두 가지 답을 얻었다. 하나는 열국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 백성과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3) 신앙의 결단(16-19)
  하박국은 승리자처럼 노래한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항변으로 시작했다. 기쁨의 노래로 마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환란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고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는냐고 따졌지만 지금은 참고 기다리고 있다. 그 이유는 믿음 때문이다. 19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확신이 다가오는 환란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III. 신학적 의미


1) 기다림
  하박국은 “기다리라”(2:1, 3)고 선언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을 기다리겠다는 결단이고,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겠다는 결단이다. 이 기다림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기대와 소망을 갖고 하나님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고 살펴보는 것을 말한다. 바로 이 기다림이 신앙의 결코 소홀히 취급될 수 없는 소중한 요소인 것이다.


2) 믿음
  하박국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선포했다. 악인은 멸망할찌라고 의인은 구원 받고 살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박국은 지금 환란을 당하고 그 몸이 떨리며,(3:16) 먹을 양식이 없어도(3:17) 기뻐하겠다고 신앙의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는 믿음 때문이다. 나의 높은 곳이란 현실에서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하감하는 높은 위치에 섰다는 것을 말하는데 바로 이는 믿음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