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 3:2의 말씀은 많은 교회들이 표어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교회가 합 3:2의 말씀을 표어로 정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빠른 시일내에 숫자적인 교회부흥을 담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리고 실제로 대화를 해 보면 역시 교회의 부흥을 소망하며 합 3:2을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합 3:2의 말씀이 교회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말씀으로 부흥이란 말씀을 하신 것인가? 좀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몇자 적어 본다.
먼저 시대 배경을 지면 관계상 간략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하박국(B.C 621~609)은 예레미야(B.C 627~574)와 동시대의 선지자이며, 유다왕으로는 요시야(B.C 640~609)와 여호야김(B.C 609~597) 때이다. 그리고 밖으로 앗수르의 세력이 점점 무너지면서 갈대아라고 하는 신흥 바벨론의 세력이 일어나는 시대이다. 신바벨론 시대에는 바벨론 판도 전체를 일커러 갈대아라고 불렀다. 이때의 바벨론 왕으로는 나보폴라살(B.C 626~605)때이며, 나보폴라살을 이어서 잔인하기로 소문난 느부갓네살(B.C 605~562)로 이어진다.
이제 본문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박국서의 전체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합 1:3~4을 보면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라고 함으로서 당시에 유다의 신앙의 형편이 어떠했는지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또한 하박국의 구성은 하나님을 향한 선지자의 두번의 탄식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두번의 응답(합 1:2~2:4)과 그리고 바벨론에 대한 징벌로 다섯 번에 걸쳐 “화 있을진저”가 나타나고(2:5~20), 마지막으로 3장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능력을 찬양하는 하박국의 노래(3장)로 끝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악한데 공의의 하나님이 왜 벌하시지 않습니까?’(1:2~4)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벌할 것인데, 유다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바벨론을 들어서 사용할 것이다(1:5~11).’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이어서 하박국의 두 번째 질문에서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더 악한 것을 들어서 징벌하십니까?라는 항의성 질문을 한다(1:12~17).’ 이에 대한 하나님의 두번째 답변은 ‘기다려라,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2:1~4).’고 하셨다.
계속해서 2:5에서 ‘바벨론의 악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고, 다섯번에 걸친 “화 있을진저”라는 “הוי(호이)”라는 형식으로 바벨론을 징벌 하시는데, 첫째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노략 하는 것에 대하여 화가 있을 것’이며(2:6~8), 둘째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며(2:9~11), 셋째로 느부갓네살의 잔인함과 피흘림으로 성을 건축하는 것에 대하여 화가 있을 것’이며(2:12~14), 넷째로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남의 수치를 드러내는 자에게 화가 있을 것’이며(2:15~17), 마지막 다섯째로 우상을 숭배하는 바벨론에 대하여 화가 있을 것’을(2:18~20) 선포한다.
그리고 3장은 위대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노래로서 신앙의 승리를 말하는데, 하박국의 기도를 담고 있다.
이제 교회가 숫자적 부흥을 기대하고 사용하는 합 3:2의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말씀인지 살펴보자.
먼저 합 1:2~4을 보면 당시의 유다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악 하였는지 알 수 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유다의 패역을 말하는 것이다. 이처럼 죄악 가운데 있는 백성들을 보는데 하나님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갈대아 사람들을 통해서 유다를 징벌할 것이라는 것을 선지자에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선지자는 유다 보다 더 악하고 무자비한 자들을 통해서 징벌하시는 것이 옳으십니까? 라고 반문을 한다. 적어도 유다 보다는 좀 의로운 자들을 통해서 징벌을 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의미에서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기다려 보겠다는 것이다(2:1).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2:4에서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과 함께 2:3에서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갈대아 사람들의 잔혹함과 그들을 징벌하는 말씀을 2:5~20에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합 3:2에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여기서 선지자는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들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갈대아가 유다를 잔혹하게 함락시키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징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지자가 3:2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부흥”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부흥”이라는 원문은 “חייהו(하예이후)”로서 “חיה(하야)” 동사의 피엘 명령 3인칭 단수이다. “חיה(하야)”는 “살다, 생명을 유지시키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חיה(하야)” 동사의 “חייהו(하예이후)”는 ‘당신은 살게 하옵소서’ 라는 말이다.
그래서 KJV은 “부흥”을 “revive”라고 번역하였는데 “다시”라는 “re”와 “살아나다”라는 “vive”의 합성를 사용하여 “생명을 소생시키다, 되살아나게 하다”라는 의미의 “revive”라고 했다. 그리고 바른성경은 “소생시켜 주소서”라고 번역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교회의 숫자를 많게 해달라는 의미에서의 “부흥”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달라고 하는 간구’이다. 이 말씀은 이미 있는 생명을 계속있도록 하는 의미에서 죽었던 것을 다시 소생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더욱이 여기서 “살다”의 “חיה(하야)” 동사는 강조형 피엘형 “חייהו(하예이후)”라고 함으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라고 한다. 이 말씀은 환란의 때가 지나가고 속히 회복시켜서 새생명을 달라는 의미로 강력한 소망을 담은 기도이다.
그리고 본문의 의미는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한 계속된 기도에서 더욱 확실해 진다. 특히 “이 수년 내에”라는 말이 반복 됨으로서 진노가 속히 지나가고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살리는 생명의 때를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다.
이처럼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강포와 죄악과 패역과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을 일삼고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는 헤이해져서 공의가 전혀 시행되지 않고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서 공의가 굽게 행하여지는 백성’들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에 놀라서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그러므로 3:3~15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합 3:16에서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고 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벌로 인하여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해도 오직 선지자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 하리로다.는 찬양으로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고 승리의 찬양을 드린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의 말씀은 죄는 징벌 하시되 긍휼을 베푸셔서 새생명을 달라는 간절한 선지자의 간구이지 결코 교인들의 숫자를 많게 해달라고 하는 교회의 숫자적 부흥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끝으로 한국교회에 소망하는 것은 합 2:4에서 하신 말씀처럼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이 말씀으로 하나님 면전에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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