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1-8(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성경본문: 5:1-8
1.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젖을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시라
2. 내가 잘찌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 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3.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4.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5.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6.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7.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8.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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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 당시 이단중 영지주의(靈知主義)가 있는데, 그 안에 육체의 사용에 대해 각각 다른 주장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육체 그 자체는 선악의 판단 밖에 있으므로 어떠한 육체적 사용도 죄가 아니므로 육체를 함부로 사용해도 좋다고 주장합니다. 남녀의 정상적인 애정행위나 창녀와의 음란의 행위나 혹은 근친상간의 행위 어떠한 것도 죄의 문제가 아니므로 마음껏 육체를 즐겨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런가 하면, 구원의 한 요건으로 극단적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영지주의파도 있습니다.
참 하나님이 아닌 데미우르고스(Demiurgos)라고 하는 창조의 신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남자를 만든 후에 이 사람이 하나님의 지혜에 이르지 못하도록 관능적인 '여자란 존재'를 만들고 그로 하여금 남자를 유혹케 하므로 창조의 신인 데미우르고스의 지배하에 머물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남자가 플레로마(Pleroma)라고 하는 참하나님의 나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철저히 금욕의 삶을 살아야하며, 그렇지 못하고 육체의 쾌락에 이끌려 결혼이나 다른 애정행위를 할 때 이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에 가지 못하고 금욕의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윤회(輪回)를 거듭한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어떤 입장인가 하면 남녀 간의 애정행위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만 만든 것이 아니고 또한 여자도 만들어 그들 간에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하고 사랑의 행위를 하는 것도 허락하셨습니다. 해서,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의 표현행위는 더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남녀 간의 애정행위를 세속적인 것으로 여기는 반면에 성경은 모든 남녀의 육체적 행위를 다 속된 것으로 치부(恥部)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스러운 책'이란 뜻인데 이 성경에 남녀의 애정행위가 때로는 암시적으로 때로는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성스러운 책 안에 유다와 다말--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육체행위가 들어가 있는가 하면, 보아스와 룻--홀애비와 과부의 애정행위가 있고, 호세아와 고멜--선지자와 음녀의 애정관계가 있으며,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왕과 포도원 일군의 애정행위가 묘사되어있습니다.
특히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애정행위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이러한 남녀간의 사랑이 결코 속된 것이 아니요, 한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자가 또한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혼자 살든지 둘이 살든지 적절한 사랑의 감정으로 사람을 대하는 사람이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관계가 남녀의 사랑행위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구약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신부(新婦)로 표현합니다.
이사야 54:4-6에서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입어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소시에 아내되었다가 버림을 입은 자에게 함같이 하실 것임이니라. 네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하셨고;
예레미야 2:1-2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말씀하십니다.
호세아서에서는 선지자 호세아와 음녀 고멜의 결혼행위를 거룩한 하나님과 음란한 이스라엘의 결혼관계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아가서(雅歌書)는 왕 솔로몬과 포도원 하녀 술람미의 사랑을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사랑행위로 승화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라고 표현합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에 또한 성도의 연합을 신부로 표현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인 교회를 남편과 아내에 비교하고 있습니다.
아가(雅歌)는 솔로몬이 직접 쓴 글이라고도 하고, 솔로몬의 사랑행위를 후대 사람이 묘사하였다고도 합니다.
히브리 성경의 제목은 쉬르 하쉬림이라고 하는데 '노래중의 노래'란 뜻으로 '가장 아름다운 노래'란 뜻이고 라틴어 성경도 칸티쿰 칸티코룸(Canticum Canticorum)이라 번역하여 원어의 뜻을 살리고 있습니다. 아가(雅歌)란 표현도 '아름다운 노래'로 원뜻을 살려 표현한 제목입니다.
아가(雅歌)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1-3:5은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만나 사랑을 느끼고 구혼(求婚)하는 부분이고,
3:6-5:1은 이것이 결혼으로 이어져 황홀한 첫날 밤을 보내는 부분이고,
5:2-8:14은 이어지는 사랑의 결정체인 결혼생활입니다.
문자적 해석만으로 본다면, 남녀간의 사랑행위는 속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도 크리스챤들도 이로서만 만족하지 않고 이를 확대해석하여 상징적 표현으로 보고있습니다.
곧 여기서 구체적으로 표현되는 남녀의 애정행위는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사랑--곧 결합관계로 보고있습니다.
아가는 유대인의 절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 기간중에 읽혀졌는데, 이는 단적으로 이 아가서가 유대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보여주는 것이며, 이 책이 어린 양의 피로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표현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는 표시입니다.
솔로몬이 사랑하는 술람미라고 하는 여인의 이름은 솔로몬 이름의 여성적 표현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솔로몬에 여성형 어미를 붙인 다음에 변형된 이름일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곧, 솔로몬 자신의 여성형 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신분의 관계를 초월하여 술람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인간간에도 신분적으로 커다란 벽이 놓여있는 듯하지만 솔로몬이 자기의 여성형 짝인 술람미를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인간을 필연적으로 당연하게 사랑하심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중, 1절은 사랑하는 남녀의 결합을 마음껏 즐기는 장면입니다.
여기 "나의 누이, 나의 신부"란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사람들 앞에서 어떤 애정적 표현을 해도 흠될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아름다운 친밀한 관계를 나타내고자 함입니다. 요즘도 베두인 유목민들은 같은 어머니를 가진 남매지간에 대중 앞에서 키스할 권리가 있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사람들은 아내에 대한 친밀하고 깊은 애정의 표현으로 '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솔로몬은 그의 사랑 술람미가 때로는 누이같이 친밀하고 때로는 신부로서 사랑스러움을 표현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축하객들과 함께 그의 사랑의 기쁨을, 혼인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기를 원합니다.
1절의 영적의미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그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 결합은 아직은 온전한 사랑의 결속이 아닌 이 세상에서의 삶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곁을 떠나시지 않는데, 우리는 우리의 게으르고 이기적인 행위로 그를 떠나보내는 일들이 세상의 삶 속에서 나타납니다.
2절이하에서 술람미 여인의 꿈 속에서 솔로몬과의 헤어짐의 아픔은 이를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2절에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 열어다고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의 꿈속에서 그의 완전한 연인 솔로몬이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문을 두드리며 애정어린 표현을 사용하며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합니다.
3절에,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문을 열기를 거절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예기치 않은 시간에 찾아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므로 핑계를 대며 이를 거절합니다. 내가 옷을 벗었기에 다시 옷을 입음이 번거로와 거절합니다. 발의 먼지를 말끔히 씻었는데 문열기 위하여 다시 발에 먼지가 묻을까 하여 거절합니다.
4-5절에 "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듣는구나" 말합니다.
그러나 그 사랑하는 자는 술람미 여인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할 수만 있으면 안으로 들어가고자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어 그의 간절한 뜻을 표합니다.
이 때 술람미 여인의 마음이 동합니다.
그의 사랑의 표현을 보고 그의 마음에 님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물밀 듯 찾아듭니다. 해서, 본래는 벗은 옷을 다시 입기 싫었고 씻은 발을 더럽히기 싫었지만 연정의 마음 이러한 감정을 제어하기에 충분합니다.
술람미는 급히 문으로 달려가고 문빗장을 잡는데 거기 몰약이 묻어있습니다. 몰약은 최고의 향품으로 왕 솔로몬의 손에 발라져있었던 것인데 그가 문을 열려고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몰약의 즙이 문빗장에 묻어날 정도로 그가 애썼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몰약의 즙은 술람미 여인의 손가락에 묻어납니다.
6절에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가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구나."
타오르는 연정으로 문을 활짝 열었지만 사랑하는 님은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벌써"란 표현을 사용했지만 그 님이 문에 머물러있던 시간은 몰약의 즙이 울어나올 정도로 오래이나 사랑의 감정의 시간으로는 지극히 짧게 여겨진 것입니다.
님이 떠난 것이 그의 게으름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회오(悔悟)의 감정은 더욱 더 크게 느껴집니다.
7절에 "성중에서 행순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웃옷을 벗겨 취하였구나" 말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사랑하는 님을 찾아 밤거리로 나왔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여인들은 어두워지면 길거리로 나오지 않는데, 술람미 여인이 밤거리를 헤매므로 파수하는 자들이 그를 밤거리의 여인으로 오해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해서 그를 방망이로 쳐서 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의 신분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의 얼굴에 쓰고있는 베일을 벗기고 웃옷을 벗깁니다.
수치와 욕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욕이 그의 님을 그리는 마음을 꺽을 수 없습니다.
8절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므나" 부탁합니다.
그는 그의 사랑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해서, 그는 예루살렘 여자들에게 그의 연인 솔로몬을 찾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를 혹 보거든 자신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열병을 앓고있음을 전해달라고 청원합니다.
님이 가까이 있을 때는 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의 크기와 깊이를 잘 알지 못하였는데 그가 떠난 후에 비로소 그를 얼마나 사랑하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술람미는 비로소 '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주님도 문 열기를 주저하는 우리의 마음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십니다.
그는 술람미 여인의 꿈속에서 솔로몬과 같이 떠나는 대신에 항상 거기 머물러 계십니다.
때로는 두드리속 때로는 잠잠히 거기 그냥 서계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열 때 우리는 문밖에 서계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술람미 여인과 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밤거리를 헤맬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연인, 주님은 늘 거기 그냥 서계시며 우리가 거절의 마음을 접고, 연정으로 팔을 벌릴 때 우리를 껴안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사랑하여 그와 혼인의 관계를 맺을 때,우리는 술람미 여인의 꿈에서와 같이 그를 떠날 것이 아니라, 그와 헤어짐의 시간을 가질 것이 아니라 늘 그와 함께함이 더욱 좋습니다.
출처: 은혜목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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