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성경강해***/- 아가서 강해

[스크랩] 4:16(아름다운 동산)

에반젤(복음) 2019. 9. 22. 07:54




4장16(아름다운 동산)

성경본문: 4:16

16.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실과 먹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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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 처| 유관지목사

 

 

오늘 목양교회가 이웃 초청 큰 잔치를 하는 날입니다. 예전에는 총동원전도주일이라고 하여 규모가 크게, 요란하게, 일회성으로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조촐하게, 알차게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오셨습니다.

이 초청에 응해서 저희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오랫동안 나오지 않다가 오늘 나온 성도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의 본문이 수록되어 있는 「아가」는 그 제목을 풀면 ‘아름다운 노래’가 되는데 제목 그대로 아름다운 사랑의 노래입니다.

 

오늘의 본문인 4장 16절을 비롯해서 그 앞뒤에는 ‘동산’이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나옵니다.

동산이라고 하면 ‘좋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많은 문학작품들, 특히 동요, 동시에서 동산이라는 말이 그리운 곳, 정다운 곳, 가고 싶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아가서에 나오는 동산도 샘이 있는 곳, 사랑이 있는 곳, 향기가 날리는 곳, 아름다운 열매가 있는 좋은 곳입니다.

 

또한 기쁨의 노래가 있는 곳입니다. 오늘 본문, 4장 16절은 신부의 노래이고 5장 1절의 앞부분은 신랑의 노래, 뒷부분은 합창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최초로 주신 거처는 동산이었습니다.

창세기 2장 8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동산은 보기에 아름다운 동산이었습니다.

이 동산에는 먹기에 좋은 나무가 많았습니다.

이 동산에서 비손강;기혼강;힛데겔강 유브라데강이 발원했는데 이 강들은 지하자원, 특히 귀금속들이 풍부한 땅에 흘렀습니다.

 

인류의 첫 거처가 동산이었기 때문에 창세기 시작 부분에는 동산이라는 말이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에덴은 빙빙 도는 불 칼이 지키는 무서운 곳이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이 황폐해진 모습은 영국의 청교도 시인 밀턴「실락원」이라는 서사시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라크의 쿠르나라는 곳에 ‘아담 동산’이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후세인이 에덴 동산이었다고 추정되는 곳에 이 동산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후세인은 이 곳이 이 곳이 에덴 동산이었음을 말하는 동판도 걸어놓고 순례자들을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아담 공원 중앙에는 아담이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해 심었다는 유칼립투스(상록수) 나무의 씨앗이 퍼져 자란 나무들 몇 그루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곳이 이란과의 전쟁, 걸프전,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형편없이 황폐해졌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제 이 곳은 사람에게는 동산이 주어졌는데, 낙원이 주어졌는데 전쟁 때문에 그 낙원이 황폐해졌다는 것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에덴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습니다. 환경오염, 전쟁, 이런 것들로 세상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온난화 현상과 수질오염과 공기오염과 지나친 개발이 계속되면 지구는 머잖아 죽음의 별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누구나 에덴 동산에의 향수를 안고 살아갑니다.

결혼 주례를 할 때마다 새로 이뤄지는 가정이 작은 에덴 동산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1960년대에 제주도에 있는 공군부대에서 군복무를 했는데 그 부대에 전해 내려오는 인상 깊은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 부대의 소위 한 분이 결혼을 하는데 한라산 중턱에서 결혼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니 왜 유별나게 그곳에서 결혼식을 하느냐?’고 하자 이 소위는 ‘에덴에의 향수가 가장 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지금 에덴 동산에의 향수를 안고, 동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애쓰는 곳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은 교회는 어떤 곳인지, 특히 본문을 중심으로 어떤 동산인지 생각하는 가운데 은혜와 교훈을 받기 원합니다.

 

 

첫째, 교회는 사랑의 동산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신부가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내가 먹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먹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받기보다 주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모습에 대해 잘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도 가보고 지옥도 가보았는데 천국과 지옥에서는 팔을 안으로 굽히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혈색이 좋았고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파리했다, 식사시간에 진수성찬이 나오는 것은 천국이나 지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왜 같은 식사를 하면서 한쪽에서는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한 쪽에서는 저렇게 수척했을까?’ 했는데 식사하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지옥의 사람들은 안으로 굽히지 못하게 되어 있는 팔을 가지고 자기가 먹으려고 애쓰느라고 하나도 자기 입으로 보내지 못하고,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떠 먹여 주는 것이었다. 이 사람은 ‘아, 남을 위하는 마음,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이고 그것이 없는 곳이 지옥이로구나!’ 깨달았다, 이런 내용입니다.

 

세상은 이 ‘남을 위하는 마음’이 대신에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욕심이라고도 하고 이기주의라고 부릅니다. 사랑은 말라 있고 이기주의는 넘치는 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의 원인을 찾아보면 이 이기주의 때문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에서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사랑의 동산이 되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대형화되어 있다, 윤리의식이 부족하다, 분열을 잘 한다, 너무 많아서 한 건물에 두 세 개가 있는 경우도 있다, 대형비리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크리스천이 빠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여론이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먼저, 죄송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와 같은 것들이 교회의 전부가 아닙니다.

교회도 이 땅의 사람들이 모인 조직 가운데 하나로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교회는 상처와 문제들을 안고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온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갈등과 문제가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극복하면서 성장하고 확장되어온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은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 아름다운 동산에 남풍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풍도 있습니다.

 

북풍은 추위를 몰고 오는 바람입니다. 이제 시월도 하순을 바라보고 있으니까 앞으로 북풍이 점점 강해질 것입니다.

 

북은 고통이며 위험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는데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진 가마였습니다. 이 환상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재앙이 북방에서 일어나 이 땅의 모든 주민들에게 부어지리라”(렘1:14)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부정적인 요소가 발견되면 ‘그렇지 아가서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동산에도 북풍이 있었지!’ 이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더욱 풍성한 것은 남풍입니다. 사랑의 바람입니다. 따뜻한 바람입니다.

아가서에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의 사랑을 말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은 영적인 사랑입니다. 신적인 사랑이라고도 합니다.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최고봉의 사랑입니다.

인류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모델로, 원형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신문이나 잡지에서 설교에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스크랩해서 주제별로 파일을 만들어서 보관했다가 활용해오고 있습니다. 여기 파워포인트에 사용되는 자료들은 대부분 거기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몇 해 전에 ‘교회의 사회봉사’라는 파일을 새로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 때 이상하게 교회의 좋지 않은 면들이 사실 이상으로 심하게 부각되었습니다. 우선 나 자신이 흔들리지 말아야하겠고 성도들에게 교회는 사랑의 봉사를 많이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그런 주제의 파일을 만든 것입니다.

 

이 파일에는 교회가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 파일은 다른 파일에 비해서 두툼합니다. 양적으로 풍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모아진 기사의 내용들이 제가 보아도 감동적입니다.

-헌혈자 82%가 기독인, 장기 기증 65%, 골수기증 희망자 38% 차지,

-대북 민간지원 75%가 기독교계,

-우리 나라 자원봉사자의 주류는 20대, 미혼, 기독교, 여대생, 중산층 이하,

-사회복지시설 기독교가 1위

 

지난번 태풍 매미의 이재민들을 돕는 일에도 교회들이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이런 보도는 교회기구에서 내놓는 자료가 교회와 관련 있는 매체를 통해서 보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PR의 성격이 있는데 교회와 관련이 없는 일반 매체들도 이런 사실들을 많이 보도하고 있습니다.

 

한 일간지는 ‘억대 로비로 억억대는 세상에 어느 목자의 외양간 로비’라는 제목으로 공무원 출신의 한 성직자가 외양간을 뜯어고쳐 장애인 등의 숙소로 제공하고 있는 내용을 크게 보도했습니다.

 

재작년에 법무부가 한 에티오피아 청년에게 난민 지위를 인정한 일이 있었는데 정부는 이를 크게 홍보했습니다. 인권국가의 이미지를 심기 위해서였습니다.

 

기자들이 이 에티오피아 청년을 인터뷰하기 위해 찾아가 보니 포천군의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이 청년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기자들이 오니까 목사님이 그 청년을 데리고 피해 버렸다고 합니다.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피해가 미칠까보아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취재 갔던 「조선일보」 기자는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주말마다 예배에 참여해 주위 교인들과 터놓고 지내면서도 이름까지 가명을 쓰며 숨어 살아야했던 청년, 그렇게 힘들어했던 당사자를 보호하기보다 ‘인권 홍보’에 바빴던 정부, 속보경쟁에만 몰두해 신원을 공개해 버린 일부 언론의 보도가 청년과 그 가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라고 끝을 맺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좋은 일을 하면서도 숨기기에 힘쓰는 교회와 홍보에 열을 올리는 정부의 모습의 대조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6:3~4)는 말씀을 생각하며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 목사님을 향해 머리를 숙였습니다.

 

혹시 오늘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 가운데 교회에 대해 다소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분이 있었으면 그런 생각을 갖게하는 요인들이 교회에 없지 않은 것에 대해 죄송한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교회의 더욱 큰 면, 교회가 사랑의 동산임을 알고, 보시게되기를 또한 드립니다.

긍정적인 면을 보기에 힘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며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오래 나오고 있는 성도들은 교회가 더욱 더 사랑이 넘치는 동산이 되도록 힘쓸 것을 부탁드립니다.

 

 

둘째, 교회는 구원의 동산입니다.

오늘의 본문이 들어있는 「아가서」는 말썽이 참 많은 성경입니다.

아가서의 주인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인데 그들의 사랑이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 분들 가운데도 교양에 도움을 얻기 위해 성경을 읽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은 ‘아니 성경에 이런 글도 있나?’고 놀랍니다.

 

교회 안에서도 아가서는 성경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성경은 예순여섯 권으로 되어 있는데 한꺼번에 성경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고 한 권 한 권 구체적인 과정으로 거쳐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제일 늦게 결정된 것이 아가서입니다.

 

10년 전에 우리 나라의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현대적인 우리말로 쉽게 번역해서 출판했는데

그것이 「표준새번역성경」입니다. 최근에는 개정판도 나왔습니다. 참 잘 된 번역이어서 설교를 준비할 때는 이 성경을 반드시 참고합니다.

 

이 성경에 대해서도 ‘아가서가 너무 노골적으로 번역되어 인정할 수 없다’ 심지어는 ‘섹스 문학 같다’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그런 면이 좀 있습니다.

 

아가서는 성도들을 행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비유로 보여주고 있는 노래입니다.

여기에 아가서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가 성경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동산도 데이트 장소로서의 동산으로만 볼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동산으로 보아야합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의 동산으로 부르는 초청의 노래입니다.

이제 잠시 아가서의 동산을 떠나 성경에 나오는 다른 동산들을 찾아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동산들 가운데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시던 동산, 예수님께서 묻히신 동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인류의 대제사장으로 우리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너도 그들 안에 있게 하여 함이니이다”(요17:26b)라는 말로 끝맺었습니다.

 

그리고 기드론 시내 건너편에 있는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절은 이 일을,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고 적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동산에서 체포 당하셨습니다. 밤새 심문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고 일곱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리고 동산 안에 있는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41절과 42절은 이 일을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라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이 동산은 사흘 뒤에 부활의 동산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부활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서 교회는 구원의 동산으로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주보가 전도지 역할을 겸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보 6쪽에는 ‘지난 주일 설교 요약’을, 주보 7쪽 ‘목양광장’에는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과 선교에 관련된 내용들을 싣고 있습니다.

 

오늘 이웃 초청 큰 잔치에 7쪽에 무엇을 실을까 생각하다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잘 알고 있는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그 글의 끝 부분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사망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예수 안에서는 영원한 천당,

예수 밖에서는 영원한 지옥이다

 

여기 ‘예수 안에서는 영원한 천당 예수 밖에서는 영원한 지옥이다’라는 말은 구원의 동산인 교회 안에서는 구원,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한 영향력이 큰 신학자가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교회는 재판을 열고 그 신학자에게 교회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벌인 출교 처분을 했습니다.

그 과정은 매우 복잡했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만 교회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는 말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오늘의 본문 4장 16절 뒷부분은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가 무엇인지 모르는 분들, 오늘 처음 나온 분들에게 이 말씀을 이렇게 재해석하여간절하고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이 구원의 동산인 교회에 들어와서 구원의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합니다.

 

이 구원의 동산을 떠나지 마시고 구원의 아름다운 열매를 함께 나누자고 진정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

 

 

셋째, 교회는 힘을 주는 동산입니다.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요일에 등산이나 낚시, 레저를 너무 즐긴 분들, 월요일에 직장에 나가서 하품이 나고 몸이 노곤해서 능률이 오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주5일 근무제가 본격화되면 월요병이 더 심해질 것입니다.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월요병을 호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실 금요일 부터는 속회에서 시작해서 심야합심기도회, 토요일에는 교회 봉사, 주일에는 하루 종일 교회생활, 이것을 생각하면 심한 월요병에 걸릴만합니다.

 

월요병을 느끼는 성도들은 주일에 얻은 영적인 기쁨과 힘을 가지고 육신의 피곤을 이기는 습관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약간의 훈련을 하면 이런 습관은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서는 매일 시험을 치는 제도가 있는데 일요일에 도서관에서 공부한 생도들보다 데이트를 하고 돌아온 생도들이 성적이 더 좋은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교관 한 분이 그 원인을 분석해 보았더니 애인들의 격려가 힘이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주님은 주일에 사랑의 동산, 구원의 동산을 찾아온 성도들을 격려하십니다. ‘여기에서 힘을 얻고 세상에 나가 승리하여라!’ 하십니다.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 음성 분명하다”라는 찬송을 아실 것입니다.

 

찬송가 499장이지요. 이 찬송은 마리아가 부활의 동산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을 소재로 하고 있는 찬송입니다.

이 찬송가 3절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 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주님은 사랑의 동산, 구원의 동산인 교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힘을 얻었으면 그 힘을 가지고 괴로운 일이 많은 세상, 할 일이 많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교회라는 동산을 삶의 중심에 둘 때 가정생활이 힘을 얻습니다.

교회라는 동산을 삶의 중심에 둘 때 일터에서 힘있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58장 11절에는 동산과 관련된 아름다운 말이 하나 있습니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은 것이라”

 

교회라는 동산을 삶의 중심에 둘 때 우리의 삶은 물 댄 동산 같은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갈빗집을 가든이라고 합니다. 갈빗집들이 많은 곳에 가면 무슨 가든, 무슨 가든, 가든이라는 간판들이 즐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국문학자가 “나는 최근에 한글 사전을 만드는 일을 했는데 ‘가든’이라는 낱말을 올리고, ‘원래는 정원, 또는 동산이라는 뜻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갈빗집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음’ 이렇게 풀이를 할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아서 그만 두었다”라고 글을 쓴 것을 보았습니다.

 

갈빗집을 왜 가든이라고 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짐작해 봅니다. 가든, 동산, 정원은 좋은 곳인데 예전에는 갈비 먹는 일이 흔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모처럼 한 턱 크게 쓸 때, 요즘 말로 하면 쏠 때 불고기였고 정말 크게 쏠 때 갈비였습니다.

그렇게 귀한 것이니까 어떤 사람이 갈빗집을 개업하면서 가든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다른 사람들도 공감을 하고 이 이름을 쓰기 시작해서 오늘날과 같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짐작해 봅니다.

 

그 가든에서 한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광경, 참 보기에 좋지요?

그렇게 식사하고 집에 돌아가서 싸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화목하게 지날 것입니다.

 

교회도 가든입니다. 동산입니다.

갈비 먹는 가든보다 더 좋은 동산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먹고, 구원의 진리를 먹고, 힘을 얻고, 영의 양식을 먹고, 좋은 곳입니다.

 

동산은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잘 지어진 건물인데 관리를 잘 하지 않아서 퇴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라는 동산의 동산지기는 예수님입니다.

오늘 이 잔치에 참석한 분들을 다시 한 번 환영합니다.

성경에는 잔치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가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은 잔치였습니다.(요2:1~11).

어린 양의 혼인 잔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은 이 잔치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9절에는 하나님의 나라 잔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복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웃초청 큰 잔치가 점점 더 좋아지는 잔치, 나중이 좋은 잔치, 참석한 분들이 복을 받는 잔치, 하나님의 잔치가 되기 바랍니다.

 

이 잔치에 오신 성도 여러분을 다시 한 번 환영하면서 사랑의 동산, 구원의 동산, 힘을 주는 동산인 교회를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이 동산의 동산지기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